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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4/22 01:58:21
Name kama
Subject [연재]Daydreamer - 6. 東과 西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여기저기 들어선 공장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상관측소와 캐스터들의 과장인지는 구별하기 힘들지만 어찌되었든 매일 마다 중국 5천년 역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해가는 동안에 천진팀 소속의 두 워3게이머인 두 명은 지금 매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팀의 에이스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게이머인 리허는 중국내 대표적인 대회인 CIG의 지역예선에 들어간 시기였고 유망주에 속하는 조우렌 역시 WCG 2차 예선에 임하여 순위를 올리기 위한 스퍼트를 끌어올려야하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워3를 즐기는 많은 중국의 팬들이라면 이런 바쁜 시기를 맞아 이 둘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의 역군들처럼 땀을 흘리면서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두 명은 그런 예상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워......]

  좁은 연습실 마루 위에 속옷만을 걸친 상태로 누워버린 모습의 조우렌이 쥐어짜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수준의 크기였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그 소리는 리허에게 정확히 들려왔다.

  [덥다고 하면 더 더운 법이야.]
  
  확실히 리허는 조우렌에 비하면 양호해 보이는 상태였다.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뜨거운 공기에 덥혀지지 않아 가장 시원하다는 주장과 함께 방바닥에 온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조우렌에 비하면 가벼운 손목 스냅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차디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편이 더 효율이 좋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조우렌은 물 떠다 나르기 더 힘들다는 이유로 그 기안을 각하했었다) 다만 그 역시 이런 더위에 전술을 짜고 타이밍을 연구하기는 힘들었는지 오른손만으로 마우스를 살짝 살짝 움직이며 온라인 포커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더운걸요.]

  [그럼 나처럼 신경을 다른 곳에 써보던가.]

  조우렌은 상반신을 살짝 들어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탁탁 하는 단조로운 효과음과 함께 카드 패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던 조우렌은 다시 뒷통수를 바닥에 붙여버렸다.

  [......어지러워요.]

  [좀 배워보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해.]

  [......그거 재밌어요?]

  [그럭저럭 할만 해. 잘 치면 돈도 되고 하니.]

  말은 저렇게 해도 일정 승률을 기록하기 위해 여러 패턴은 연구하고 파고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본 종목인 워3는 물론이고 사소한 게임, 심지어는 과자사오기 가위바위보마저 지는 것은 무척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대화는 단절되었지만 확실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조우렌 쪽이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든 것으로 보였다. 그는 계속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툭 내던졌다.

  [연습은 안 해요?]

  [난 별로 상관없어. 어차피 현재 지역예선에서 날 위협할만한 선수는 이 근방에 없거든.]

  [갑자기 괴물 같은 신인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이야기 들어보니 북경 팀에 굉장한 신인 하나가 등장했다던데.]

  [아무리 대단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도 워3는 연륜의 게임이야. 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너야말로 연습 안 해? 난 아직 지역예선이지만 넌 2차 예선이잖아. 등수 더 올려야 오프예선 가능하잖아.]

  [......그건 그렇죠.]

  WCG 온라인 예선. 1차예선을 통과한 워3게이머들이 채널에서 모여 랜덤하게 겨뤄서 오프라인에 나갈 선수들을 뽑는 형식. 현재 조우렌의 순위는 어중간했다. 끄트머리에 걸릴까 말까한 아슬아슬한 순위. 하지만,

  [......너무 더워요.]

  [그래, 덥지.]

  조우렌은 말하는 것도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멍하게 천정을 바라보았고, 리허는 그런 조우렌에게 시선 하나 보내지 않고 부채를 부치는 속도만을 약간 올리면서 여전히 묵묵히 마우스를 딸각거리며 움직였다. 한없이 무료하며 끝없이 나태한 광경이었지만 이들이 원래 이 시기의 여름날에 항상 찌는 날씨에 굴복하며 무의미한 백수의 나날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의 발단은 그들이 있는 방 한 구석에 있는 낡은 기계였다. 리허의 활약으로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인지 지방정부의 지원금이 예전보다 늘어났고 팀에서는 큰맘 먹고 그 돈으로 정들었던 선풍기들을 치우고 에어컨을 건물에 설치하였다. 전기료의 압박으로 팍팍 사용할 수는 없어도 어쨌든 냉방장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들. 하지만 그 기간을 길지 않았다. 건물 전체에 설치를 위해 최대한 돈을 아끼며 중고로 샀던 것이 화를 불렀던 것이다. 실로 전복위화가 되는 순간. 낡은 구시대여 안녕! 하며 선풍기를 섣불리 처리했던 것은 불을 지핀 격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었고, 수리공을 부르기는 했지만 여름이 가기 전에 찾아오면 다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에어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묻은 채 각자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두 명은 오히려 의지가 그나마 강한 편으로 볼 수 있다. 최후까지 기계는 두들겨 맞으면 정신을 차리는 법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끝까지 관철하려 노력하던 매니저가 그 대가로 무수한 땀띠만을 품에 안은 채 자리를 떴을 때는 이미 다른 선수들이 각자 제각각 더위의 맹습을 피해 어딘가로 도망간 후였던 것이다. 물론 저녁 때 인터넷 회선에 사람들이 몰려 폭주를 하기 때문에 배틀넷으로 연습 시합을 맘껏 할 수 있는 좋은, 아니 유일한 시간대라 할 수 있었고 또 규칙으로 정해진 연습시간이기도 했었지만 그걸 감독해야할 매니저마저 어디론가 사라진 지금 제대로 된 연습이 될 리 없었다.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

  땀에 절은 몸을 질질 끌고 가서 다시 양동이에 찬 물을 받아와 자리를 잡은 리허는 드디어 워3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실제로 그는 같은 중국의 선수들보다 유럽의 선수들과 더 친하고 더 많이 연습시합을 하는 편이라 시차의 문제, 그리고 렉의 문제 때문이라도 지금 시기를 놓치면 더더욱 안 되는 처지였다. 조우렌은 그런 그를 존경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하고도 열심히 하네요.]

  [이게 일이니 이 악물고 해야지. 더욱이 CIG 때문에 WCG는 포기하더라도 곧바로 WEG 3차 시즌 예선도 있으니 말이야......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너도 슬슬 연습 시작해. 가뜩이나 성적도 안 좋았는데 WCG까지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방바닥의 차가운 부분을 찾아 이리저리 몸을 굴리던 조우렌은 그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열기로 신기루처럼 비스듬히 일그러지는 하얀 벽을 보자 미쳐 일어서서 컴퓨터 앞에 앉을 엄두가 없는지 그 상태에서 또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리허도 연습에 들어가서인지 더 이상 보채지는 않았고 다시 연습실의 안은 무더운 공기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어느 사이, 매미마저 울기 시작해 한여름의 분위기를 최대치로 고조시키는 순간, 이질적인 소리가 그 여름날의 적막함을 조각내 버렸다. 흔히 들을 수 없는 소리에 누워있는 상태로 굳어있던 조우렌과 한 게임 하다가 거듭되는 렉으로 채팅창만을 이용하던 리허는 반응이 늦었고 그 진원지가 말라비틀어진 화분 뒤에 숨어있던 내부용 전화기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이미 열 번 가량 날카로운 음향이 고막을 얼얼하게 만든 후였다.

  [저 전화기가 울리는 일도 있네.]

  조우렌은 억지로 몸을 움직이며-리허가 움직일 리는 없었으니-중얼거렸다. 그 전화기는 그들의 팀이 들어가 있는 건물의 관리실과 연결되어 있는 전화기로 외부에서 오는 전화는 일단 그 곳을 통해서 다시 건물 내부로 연결되게 되어 있었다. 물론 예전에, 이 낡은 건물이 건설될 당시에나 사용되던 시스템으로 번거롭기 그지없는지라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건물 안의 사람들은 각기 자신들의 전화기를 배치해놓은 상태였다. 천진 팀에 오는 모든 연락들이 매니저, 혹은 선수 개인들이 지닌 핸드폰으로 오기 때문에 그냥 방치해뒀던 것이었는데......
  
  ‘도대체 어떤 인간이 철지난 방법을 사용하는 거지?’

  흘러내린 땀을 다시 흩어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조우렌이 전화 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허는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위로 인해 녹아 흘러내릴 것처럼 늘어졌던 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고 잠시 후에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들이 얼굴 여기저기서 올라왔다. 원래 나이가 나이다보니 자기감정 조절이 미흡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성격이기는 했으나 그런 식으로 여러 감정들이 혼합된 얼굴은 근 1년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입도 뭔가를 외치고 싶어 하듯이 계속 크게 움직였지만 오히려 목소리는 자꾸 작아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중얼거리다 못해 옹알거리는 수준까지 작아졌을 시기에 조우렌은 힘겹게 수화기를 벽에 걸었다. 리허가 더위마저 잠깐 잊게 해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누구냐고 물어보려고 하였지만 그보다 먼저 조우렌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네요.]




  당연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이 시간에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라는 약속을 한 것처럼 리허를 비롯한 천진 팀의 멤버들이 한여름 무더위에 탈수증상을 내보이며 고생하고 있는  시간에 비행기로도 몇 십 시간이 걸릴 지구 반대편의 스웨덴에서도 K.D의 멤버들은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여름기후의 더위에 맹공을 받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위도상의 문제로 아무리 햇볕이 따스하고 난류가 기온을 덥혀준다고 해도 따스한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며 무엇보다 시차로 인해 그들은 새벽에 가까운 시간대였으니 기온은 오히려 느끼기에 춥다싶을 정도로 떨어져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연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단순한 딴 짓거리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윽, 너 다프네 녀석과 친했냐?]

  휴식이 없는 근무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론 같지 않은 이론을 들먹이며 빈둥거리던 로이가 라이센마저 연습을 하지 않고 채팅을 나누고 있기에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채팅 상대가 비밀리에 숨겨놓은 애인이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한 나엘 유저인 다프네 드 오를레앙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어느 사회에서도 극히 소수의 정상권을 제외하면 천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었고 적어도 로이에게 그 천적 중 한 명이 다프네였고 따라서 그에게 있어 하나의 타도 대상으로 지목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너도 그렇게 말하면서 친하잖아.]

  [그거야 상대를 꺾기 위해 정보 수집을 하려는 방안인거지.]

  [뭐, 어쨌건 난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고 단지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기에 응해주고 있을 뿐이야. 어차피 관심사는 내가 아니니까.]

  [응?]

  [이 녀석, 계속 고메에 대한 것만 물어보고 있어. 건강해 보이냐느니, 실력을 어떠냐느니, 라는 말만 꺼내고 있다고. 뭐 해줄 말은 없지만.]

  그는 저번 ESWC에서 팀의 새로운 멤버인-정확히는 멤버가 될-아실과 만났던 일을 기억했다. 사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같은 팀이라고 해도 프랑스와 스웨덴의 거리와 중간의 해역은 그리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도 원래대로라면 그런 아쉬움 없이 온라인상으로 같이 연습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던 지 할 수 있었겠지만 아실 고메와 K.D팀은 아직 정식적으로 계약이 끝난 상황이 아니었다. 계약금이나 마찰 등으로 생긴 연기가 아닌 아실이 요구했던 연기였다. 실력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공백이 너무 길어 최근의 빌드와 추세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활동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BenQ와의 스폰 건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기에 급한 마음이 없어진 리더는 이것을 승인하였던 것. 그런 정도의 연습이라면 팀원들도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권유도 사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같은 팀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상황.
  라이센은 그런 사실에 자신이 약간 아쉬워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실 고메, Benissant라는 전설적인-말 그대로 초반에 무수한 소문 섞인 명성만 남기고 사라졌으니-게이머의 실력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도 그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워3네트워크가 연결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실은 배넷 상에서만 활동하며 오프대회에는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름도 알아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니까.

  [하긴 계집에 녀석도 워3 자체는 꽤나 오래했으니 어쩌면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군. 뭐, 그 기간만 많을 뿐 업적은 부족하지만.]

  라이센은 로이의 중얼거림을 듣고 사고의 방향을 살짝 바꾸었다. 다프네는 나이로 치면 그보다 어렸지만 경력으로 치자만 확실히 화려한 선수였다. 특히 프로즌 쓰론에서도 유럽 굴지의 나엘 유저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오리지널 시기에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인물. 워3의 초창기 시절부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더욱이 국적도 같은 프랑스이니 실제로 예전에 만나고 알던 사이일 가능성은 높았다. 라이센은 아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어차피 갑자기 말을 끊기도 애매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조금 더 시간을 소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열렬했다. 그가 쳤던 문장은 ‘예전의 고메와 만나본 적 있느냐.’라는 단순한 내용이었음에도 그 대답은 그 문장의 구조와 용법과 역사를 설명하는 것처럼 쫘르르 쏟아졌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과 같은 10대의 열성팬과 같은 열정으로 과거 오리지날 초기 시절의 낭만과 그 때 전설처럼 활약했던 아실 고메의 활약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자니 잠시 대화창을 내려놓고 잠시 후에 정독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고메에 대해 잘 몰랐지?]

  언행일치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실천에 옮긴 라이센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여전히 뒤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로이에게 물어보았다.

  [뭐, 난 워3를 처음 접한 게 조금 늦었으니까. 그래도 아실 고메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어도 Benissant라는 아이디는 몇 번 들어보았어. 예전 컴퓨터에는 리플레이도 몇 개 있었을 거야.]

  [기억나는 게임 있어?]

  [어이어이, 몇 년 전 이야기인데. 게다가 하루에 몇 십 판을 하고 그 리플레이를 분석하는 상황에서 그걸 기억하라는 거야? 혹시 내가 했던 게임이면 모를까.]  

  [그런가......]

  이쯤하면 멈췄을까 싶은 마음에 다시 메신저 창을 올렸지만 그 상황에서도 다프네는 계속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차별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의 부모가 저것을 예상하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구나하는 납득이 갈 무렵, 쉴 새 없이 올라오던 글들이 멈췄다. 그리고 난데없이 파일 전송을 알리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뭐지?]

  전송되는 파일은 JPG파일이었고 사용하는 사람도 적은 새벽시간 때라 금방금방 전달이 되었다. 로이는 다프네가 우리를 놀리기 위해 귀신이나 엽기 사진을 보내는 것이라고 악의 섞인 농담을 했지만 그 사진의 내용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약간은 어두운 조명의 실내의 모습. 주변에는 여러 명의 사람, 많아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가벼운 복장의 사람들이 사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각자 컴퓨터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한 가운데는 사진의 주인공인 한 명의 남자가 밝게 웃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브이의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전형적인 서구형의 미남. 시원스러운 미소와 훤칠한 키, 밝은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이유 모를 사진 한 장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을 읽어낼 만큼의 예지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라이센은 그 주인공이 꽤나 호탕한 성격에 주변 인물에게서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군나르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그런데 이 남자는 누구지? 그는 다시 메신저를 읽었다.

  [2002년 12월, 워크래프트3 랜파티......아실 고메?!]

  이 남자가 아실이라고? 놀란 그는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읽었고 다프네에게 그 사진이 워3가 발매되고 프랑스에서 열린 랜파티에서 그가 직접 아실을 찍었던 사진이라는 확인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는 다시 사진을 모니터에 띄었다.

  [이 사람이 그 고메라는 거야?]

  황당하다는 어투의 로이의 질문에 라이센은 고개를 끄떡이며 곧바로 ESWC회장에서의 아실 고메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사실을 알고 사진을 보니 전체적인 얼굴 윤곽이나 키와 같은 특징들이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것은 그 반도 걸리지 않는 법이지만......’
  
  10대 후반의 청소년은 원래 빨리 성장하고 특히 서양의 백인 남성은 그 변화가 빠르다는 사실을 대입해본다 하더라도 이 변화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ESWC에서 만난 그는 사진처럼 쾌활하고 밝은 인상이 아니었다. 보다 진중하고 차분한, 그런 무게감이 느껴지는 선이 굵은 얼굴. 나이는 그보다 어렸음에도 같은 연배, 아니 더 나이를 먹은 느낌마저 드는 사람이었다.

  ‘아실 고메가 배틀넷에서 명성을 날렸던 시기는 길지 않았다. 압도적인 시합과 승률을 보였던 Benissant란 아이디의 기록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그가 사라지고 이후 워3는 세계적인 게임이 되었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각종 세계대회와 리그들. 그리고 그에 맞춰 속속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고수와 새로운 스타들...... ’

  그는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안의 아실 고메는 자신감이란 단어 자체를 각인한 것 같은 눈빛을 띄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남자의 윤곽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인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지금......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계속해서 모니터 속의 사진을 노려보던 라이센은 잠시 후 고개를 흔들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다. 어차피, 이제는 같은 팀이 될 것이니까 알기 싫어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사진을 모니터에서 없앴다. 그리고 워3의 시작키를 간결하고 빠르게 두 번 클릭했다.

  

  1부 : Romance
1. Boy meet Girl
2. Boy meet Guy?
3. 남매
4. 데이트
5. 발을 내밀다
6. 예선 7일전
7. 끝과 시작
8. Log Bridge
9. 그리고

2부 : Daydreamer
prologue
1. new challenger
2. 각자의 이유  
3. 한국으로
4. meet again
5. 한여름날 어느 복도




  ......역시나 늦었습니다. 확실히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머리도 둔해지고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만큼 하기 힘들어지는군요. 다음 화는 좀 더 빨리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댓글과 조회수에 비례할지도......응?) 그나저나 정말 제목 짓기 힘들군요.
  참, 그리고 지난 글들 클릭해보니 로맨스의 링크가 잘 안되었더군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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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6/04/23 22:19
수정 아이콘
시험기간에 살짝 들어와 읽고 갑니다. 역시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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