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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4/16 15:15:31 |
Name |
Sickal |
Subject |
"그러니까...나도 몰라." |
어두 컴컴한 밤에 스타크래프트를 한창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지이~~잉
...문자네. i_terran 형이 보낸 거다.
'10초 셀 동안 msn으로 들어와라. 8초 9초 이런거 필요 없다. 10초다.'
피식. msn으로 들어갔다. 왜 불렀을까? 뭔가 할 얘기가 있어서겠지. 혹시 내가 바보 짓 한게 걸렸나? 내가 뒷담화 하고 다닌게 들켰나? 내가 A형이라서 그런가? 이러저러한 잡생각과 달리 대화의 시작은 평범했다. 그런데...갑자기 MSN 대화창이 바뀌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기범군이 들어온다.
대화방에서 나갔다가 3초만에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i_terran : 너도 알겠지만...
sickal : 몰라
i_terran : 일 팔...좀 들어봐 후
sickal : ...말해봐
skb : ...
i_terran :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주어졌다.
sickal : ...
i_terran : 맵을 만들어야 한다.
sickal : ...왜?
skb : ...
i_terran : 그러니까...나도 몰라.
아니 다 좋은데 왜 작가가 맵을 만들어야 하냐고. 작가가 무슨 맵퍼인 줄 아느냐. 맵 잘못 만들었다가 무슨 얘기를 어디로 들으려고 그러느냐. 난 팀리그 작가도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맵 하나 준비 안하고 대체 뭐한거냐. 그리고 리그가 얼마나 남았다고 이제 맵을 만들어서 테스트는 어떻게 할 것이며...주마등처럼 이 말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3초가 걸렸고 이것을 다 써내려 가는데 33초가 걸렸다. 그리고 i_terran 형의 반격.
i_terran : 지난 달 네가 나한테 꿔간 돈이...
sickal : 뭐든지 분부만 내리십시오 주인님.
...어쨌든 그래서 '긴급 4차 팀리그 용 신규 맵 신속 배출 추진 의원회'가 즉석으로 결성되었다. 그러나...신규 맵을 인정사정 만든다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i_terran 형이 개인적으로 없이 수백전을 테스트하며 공을 들였던 '커브드 밸리' 가 퇴출당한 곳이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맵의 세계였다. 게다가 당시의 상황도 매우 악조건이었다. SPRIS MSL 덕분에 나는 나대로 시간이 없었고, 기존 리그와 각종 프로그램을 도맡아 하던 i_terran 형 역시 신규 맵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맵 제작자 역시 당시 MBC게임 맵을 제작해오던 양귀비(채정용)님에서 skb(송기범)군으로 바뀌는 과도기였기 때문에 상당히 어수선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당시 송기범군은 딱히 연락처도 없는 상황이어서 msn과 e메일로만 대화가 가능했다. 게다가 미리 준비해 놓은 맵도 없는 상황.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맵은 그렇게 똑딱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발등의 불은 일단 끄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는 발등의 불에다 소변을 보...아니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회의를 시작하고 나니 뭔가 딱히 꽂히는게 없었다. 여분의 맵조차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는 않는 상황...이대로라면 그냥 시간을 죽이는 것에 불과했다. 그 때 내 머리를 스친게 있었다.
sickal : ...팀리그잖아.
i_terran : ...? 당연하지.
sickal : 밸런스 빼자.
그랬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무슨 맵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지 알 것이다. 바로 Tucson - ARIZONA 맵을 이야기 하려 하는 것이다. 즉, 이 맵은 애초에 밸런스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맵이었다는 거다.
그런 발상이 어디있냐? 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애초에 팀리그는 '맵 밸런스를 검증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일 수 있는 리그'라는 것을 주목하고 있었다. 3차 팀리그에서 쓰였던 패러랠 라인즈의 경우, 섬맵임에도 저그가 할만하다는 점과 크게 무너지지 않은 밸런스 덕에 꽤 오래 쓰인 섬맵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즉 팀리그의 맵이 개인리그로 이동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난 4차 팀리그의 신규맵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밸런스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팀리그는 상대에 맞춰, 맵에 맞춰 선수를 내보낼 수 있었으니까.
내 아이디어가 나오자 의견은 순식간에 조율되었다. 중요한 건 테란과 저그의 밸런스. 그리고 프로토스와 테란의 밸런스였다. 프로토스와 저그의 밸런스는 하늘이 버린 밸런스니까 무시한다고 치면, 두 종족간의 밸런스를 맞추며 맵의 형식을 파괴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sickal : 앞마당 개스 빼고, 미네랄만 깔되...11덩이 GO
i_terran : ...니가 무슨 이병헌이냐? 왜 올인을 하고 그래.
sickal : 아 됐고, 11덩이 go. 그리고 섬멀티 개스 주되 2개 넣자. 대신 타넘을 수 있게.
i_terran : 이...이色히, 완전...갔구나.
sickal : 뭐 어때, 테란 저그랑 프토 테란 밸런스만 맞으면 돼.
내게 강림한 지름신이 서서히 두 사람에게도 강림한 것일까? 두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과격한 안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예 본진 노 개스에 앞마당에 개스 2개를 줘버릴까?' 부터 시작해서 '본진 2500짜리 2개스에 앞마당 미네랄 12덩이 어때?'라는 의견까지...
sickal : 아 그리고
skb : ?
sickal : 타일 셋은 반드시 데저트로...부탁합니다. 안하면 재미없습니다.
skb : ...네;
다음 날, 맵이 도착했다. 이미지 파일을 열어본 순간...속칭 '필'이 왔다. 이 맵 뭔가 있다. 명경기를 잘 내보내줄 것 같은 그런 필이. 데토네이션을 처음 봤을 때가 그랬고, 그 전에는 유보트를 봤을 때가 그랬다. 물론 급조한 맵은 여러가지 오류가 있었다. 개스통이 돈다든지 특정 지역이 유리하다든지...
그러나 어쨌든 투싼은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특히나 테란 vs 테란 전에서 정말 정신 없고 재미있는 경기가 많이 나왔으며 (4차 팀리그 변길섭 vs 이병민, 5차 MSL 서지훈 vs 최연성 등) 애초에 가장 신경 썼던 테란 대 저그와 테란 대 프로토스의 경기 역시 명경기가 많이 나와줘 매우 고마운 맵이었다. 하지만...
투싼이 저그 대 프로토스가 안좋은 건 이미 리그를 하면서 검증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MBC게임은 5차 리그에서 또 여차저차한 이유 때문에 신규 맵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레이드 어썰트가 들어오긴 했지만, 당시에 2개의 맵을 교체하던 시기라 1개의 맵이 부족했고, 결국 투싼이 아리조나로 이름을 바꿔 들어가야 했다.
개인적으로 이부분이 참 아쉽다. 팀리그에서만 쓰였다면, 물론 명경기는 몇개 줄었겠지만 '밸런스 무너진 맵'이라는 평가를 굳이 듣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애초에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만든 맵이니 밸런스가 무너진 것은 당연하지만, 개인리그에 쓰일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밸런스 보완조차 하지 못하고 내놓은 점은 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바빴던지...그 뒤 다시 한 번 msn에서 대화를 했다.
sickal : 그 때 뭣 땜에 맵도 못고칠 만큼 우리가 바빴지?
i_terran : 그러니까...나도 몰라
ps - 픽션이 '좀 강하게'들어있는 이번 화입니다. 기억이 전부 나질 않아서.
ps 2 - 밸런스 논쟁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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