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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4/04 20:48:15 |
Name |
Bar Sur |
Subject |
[잡담] 도서관의 저주. |
이건 쉽게 남에게 말 못하는 비밀이지만, 나는 도서관에 대하여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책을 빌리기 위해 당연히 들러야 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도서관은 나를 곤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건 아주 실재적인 '힘'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배가 아프다. 다른 의미로 배가 아픈 것도 아니고, 생리적인 욕구가 아랫배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보통의 공간을 걸어다니거나 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만 도서열람을 위해 열람실 책장과 책장 사이사이를 걷고 있자면 문득 그렇게 강렬한 생리작용을 느끼고야 만다. 참 곤란한 이야기 아닌가?
책 찾다가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야할 판이다. 처음엔 한 두번의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장 사이의 공간에서 책들을 찾고 있자면 이제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뱃속이 꾸르륵거린다. 그야 묘한 자존심이랄까 투쟁심이 생겨, 일단은 뱃심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아마 모 대학교 L도서관에서 책 찾다가 갑자기 주저 앉아 심호흡 운동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나라고 의심해도 될 판이다. 그러다가 결국 화장실로 직행하는 사태도 종종 벌어졌다. 갑자기 책장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겉으로 여유있는 척 하면서도 안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엉거주춤 화장실로 향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 또한 먼저 나를 의심해볼 문제다.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닌 어떠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고 했을 때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아마도 책들이 모여있는 장소고 종이들이 보관되는 와중에 그 특유의 냄새나 화학작용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은연 중에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미쳐 그 갑작스런 생리작용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차마 남에게 그걸 물어본 바가 없어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 그야, 나만 이상한 놈으로 보일까봐지.
그렇게 나와 도서관의 애증의 역사는 벌써 몇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만약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고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그건 심리적인 영향이라 해야하는 걸까? 이 증세가 처음 나타난 것은 아마도 2002년 내가 이 도서관 2관 5층의 일반소설 열람실 쪽에 자주 출입하던 시기였다. 당시엔 하루키나 류 같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라, 주로 그쪽에서 복통을 참아가며 책들을 찾아헤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혹시 "저주",가 아닐까? 문득 하루키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루키의 소설 가운데 "빵가게 재습격"에서도 그런 일이 나오지 않는가. 문득 이유도 없이 극심한 공복을 체험하게 되는 경험. 그것을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의 아내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저주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저주를 풀기 위해서 새로이 저주를 푸는 의식을 거행하는 방법으로 소설의 문제는 해결의 국면을 맞이한다. 그 의식이 바로 "빵가게 재습격"이고, 정확히 그들은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강탈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이 "저주"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멀쩡한 책이라도 훔쳐야 할 판인가?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으로 빠져든다.
헌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관은 책을 빌리기 위한 곳이다. 이를테면 도서관이란 대출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로 수탈당하는 쪽이다. 뻑하면 책을 더럽히고 연체는 기본에 잃어버리거나 반납을 안 하고 꿀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균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등가교환인가? 어쨌거나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는 법이고, 우리가 도서관을 수탈했다면, 그에 대하여 거부할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도서관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반작용'으로서 우리를 "저주"할 요건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게 갑작스런 생리작용으로서의 복통이라고 한다면 어쩐지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주를 풀 방법이란, 그저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가서 배설의 욕구에 충실하라는 "의식"을 치르는 것 뿐이라 해야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건 곤란하다. 음~ 정말이지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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