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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3/29 22:28:49 |
Name |
시퐁 |
Subject |
차재욱의 한방, 그리고 후회없는 끈기. |
가끔 생각합니다. 스물 여덟, 아직 서른이 남았으니 초조해야 할 필요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을 믿자, 처음의 다짐을 잊지 말자.
이런 모든 것들을 낭만이라 치부한다면, 혹은 꿈이라 치부한다면 제 인생의 전부가 부정되는 것이기에 어떤 순간, 그 어느 순간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쥐고 주변에서 밀려오는 무언의 강요를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그것은 홀로 살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하기에-주변과의 관계를 생각치 않을 수 없고 시선을 생각치 않을 수 없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충족시켜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섬에서 살거나 혹은 산에서 도를 닦지 않을테니까요.(그런 소문이 돌기는 합니다, 스님이 되었다는 소문에 깜짝 놀라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한방, 차재욱의 한방. 러쉬거리가 멀지 않은 지상맵에서 노배럭 더블 컴을 가져가면서도, 심소명 선수가 그것을 파악하고 소수 저글링으로 견제하며 공식과도 같은 대처법으로 자신의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어갈때도 그는 결코 다른 타이밍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른 운영을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랍쉽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급격한 고테크 플레이도 생각치 않았으며 다섯시를 견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린을 모았고 탱크를 모았으며 진출하고 상대의 병력을 격파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평범한 진출이라고 평할수도 있고 평범한 승리라고 이야기할수도 있으나 저는 그 진출과 그 승리가 가져다 주는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테란과 저그는 운영, 프로토스는 전투력. 제가 플레이어를 마음에 들어하는 가장 우선순위는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서지훈 선수를 좋아하고, 마재윤 선수를 좋아하며 송병구 선수를 좋아합니다. 최연성 선수의 괴물같은 파괴력에 사람들이 놀라나 저는 그러한 힘을 이끌어내는데 빛난 최연성 선수의 운영을 더욱 높게 칩니다. 차재욱 선수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합니다. 전투해야 할 때를 알고 물러설 때를 알며 견제할 때를 알고 참을 때를 아는 그의 플레이는 피망배 이윤열 선수와의 경기때부터 주목해왔었고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록 아직까지는 모자라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제 인생의 방식에 투영시킬수도 있었고 오늘의 경기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함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차재욱 선수는 자신이 전투할 타이밍을 자신이 설정했습니다. 심소명 선수는 그에 맞춰 경기를 했었기에 이미 주도권은 차재욱 선수가 쥐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나의 넓은 전장이 전투시 저그에게 유리한 요소가 분명 있었기에 불리하지 않았다고 심소명 선수는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재욱 선수는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타이밍이었고 참아왔던 모든 전투력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리고 강렬한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저는 그의 한방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짧긴 하나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가 현실을 도외시할 정도의 나이는 아닙니다. 어쨌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까지 나와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치일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취업 제의도 많이 받았고 안정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제의와 주변의 반대를 무시했지만 내심 '내 길이 옳은 길일까'라는 의구심은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면서 그 의구심을 조금씩 덜어내곤 하는 것이 서지훈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최연성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송병구의 승리에 보여준 한방, 차재욱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그런 한번의 굉장한 공격들이었습니다. 그 공격 자체가 주는 퍼포먼스에는 그들이 그러한 병력을 갖추고 그러한 전투력을 갖추기까지 이끌어왔던 운영에 대한 믿음, 더러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모조리 축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수많은 경기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수없이 같은 패턴을 연습했을 것이며 같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는 제게는 하나의 '임팩트가 강한' 승부입니다. 그 승부에서도 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고 후회하지 않는 끈기를 배웠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수많은 인생의 지침들을 몸에 직접 적용하는데 그들의 플레이가 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감사합니다. 제 하루에 이런 멋진 경기를 더해 주었음을. 그리고 믿습니다. 선수들의 후회없는 순간으로 인해 더욱 멋진 하루를 희망할 수도 있음을.
ps.01 몇달만에 키보드를 두들기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공부를 했고 책을 읽으며 뒹굴거리기도 했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네요. 부족한 글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02 영화 '애수'를 다시 보았습니다. 올해들어 두번째 봅니다. 잊혀지지 않네요. 워털루 다리와 자동차 헤드라이트, 비비안 리의 푸른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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