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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3/27 23:22:06 |
Name |
별마을사람들 |
Subject |
[잡담]누군가에게 쓴 연애편지 |
술이 올라 마음이 있던 여자에게 그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과연 잘한건지, 못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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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에
별들은 겨울에 익는다
보석보다 더 단단하게
여물어 여물어...
입에 넣고 깨물어 보고 싶은 충동은
와사삭 소름 돋는 귀울림
부서지는 것은 나의 치아
이건 아니지 고개를 흔들어도
싸아하게 턱으로 남아도는 여운
아, 이가 시리다
익을 대로 익은 별은
꽃을 피운다
사람 세상 천년에 한 번
별 하나가 꽃을 피워,
눈으로는 볼 수 없지
평생으로도 건널 수 없는
아득한 공간에서
날아온 그림자 별 그림자
흐르는 유성이
별꽃, 별꽃의 꽃가루라네
이 매운 밤
얼굴이 따끔거리고 투명한 안경 뒤에서
눈동자가 식어 가는 밤에
하늘 위로 저 숱한 겨울 열매들 중에
어느 별 하나가...
아, 어느 풋풋한 별 하나가
그리워
천년을 기다려 그 꽃가루를 받고 싶네
그러고도 한 평생 더 살아서
그가 남긴 씨앗 하나
이 땅에 심고 싶어
겨울밤에는
오랫동안 별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칫 네가 별이 될지도 모른다고
있지도 않은 연인에게
심각하게 충고를 하고 돌아누운 자리
배고프고 등시려운 내 잠자리에서도
어느새 별은 익어가고
어느새 별은 꽃을 피우고
그 밤 꿈속에서는
이가 모두 부서지도록 별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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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여도 더 전에 며칠 밤을 새워 위의 시를 쓰고 나서 친구를 불러 소주를 마셨습니다.
이거 어떠냐고 물었더니,
스윽 한번 읽어보더니...
이따위로 시를 쓸거라면 펜 놓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녀석의 입가에 살짝 떠오르는 입술의 흔적을
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좋은 녀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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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가슴 아픈 시를 읽고 나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걸까요?"
내가 이렇게 작자에게 묻는다면 그 시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나에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그건 바로 당신이 방금 읽은 시를 스스로 또한번 가슴속에 쓴 까닭입니다.
아픈 시를 읽고 그 때문에 눈물 흘리는 당신은 이미 나와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거지요.
내가 느끼는 고통은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느끼는 고통도 이제는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나의 이 아픔과 슬픔이 바로 당신것이 되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시를 읽은 이후로 내가 가졌던 경험이 당신 것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아무나 그리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을 받아들일 자세와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
그리고 덧붙이자면 현재 당신의 마음가짐이 준비되었을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지요.
어쩌면 나는 당신께 무궁한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점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언제고 당신의 감정을 굳이 시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처럼 당신과 똑같이 기뻐하고 또는 슬퍼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충분한 감사의 마음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답례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한테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진실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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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제가 썼던 어설픈 시들에 동참해 줬던 친구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법 그 이후로 시간은 흐르고 다들 무언가를 좇아 약간은 한발자국 이상
떨어져 버렸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그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어떨땐 차마 놓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가슴속에 쌓였던, 숨겨 놓았던...
직장생활하면서...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보여줄 수도 없던것들...
하나 둘씩 놓아버리고...그래도 이것만은, 이것만은...
마지막까지도 가지고 가려 했던 것...
그게 뭔지는 지금 당장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닌거 같습니다.
어느날 뜻밖에 누군가에게 불같은 연정을 느끼고 그걸 몸소 행동으로 옮기기엔
저는 너무 나이가 먹어버렸습니다.
언제나 몸을 도사리고 누군가에게 혹시나 상처는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죠.
하지만 바로 위에 말했던 제가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그 조그만 어떤 것에 이끌려
저는 지금 이순간 조심스럽게, 이렇게 어설프게! 편지를 쓰고 말았습니다.
하나씨에게 무언가에 매어있지 않은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것이 현실에선
지나친 욕심이란 걸 알고, 그리고 또한 시간을 가로 지를 수 없다는 걸 알고,
덧붙여 촘촘히 그 시간들을 같이 지날 기회마저 없다는 걸 알기에...
무례함을 무릅쓰고 감히 이렇게 몇자 적고 말았습니다.
모쪼록 폐가 되지 않았기를 정말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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