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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26 20:57
한사람이 전방위로 유능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따라서 선조에게도 유능한 분야와 무능한 분야가 모두 있을 수 있을것입니다. 다만 어떤 인물을 평가 할때, 그 사람이 이룬 결과로 평가됨을 감안 할때 그는 분명 무능한 왕이었습니다. 시대가 달랐다면 인정받았을텐데.. 같은 이야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06/03/26 20:59
임진왜란전의 선조의 치적은 볼만한데가 많습니다. 임진왜란후의 선조의 행적은 잘못된점이 여럿있었지만 전란후에 대한 대처만큼은 선조도 여럿 치적이 많았죠. 그리고 임진왜란전의 통치기간의 후의 기간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그수많은 인재를 등용한것도 선조죠.
그 치적들을 고려하지 않은채 너무 선조를 비난하고 무능한 왕, 멍청한 왕으로 모는건 잘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선조가 임진왜란때 의병장을 죽이고 이순신을 견제한것만 알지 임란전에 선조가 어떤 치적을 올리고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아는 사람은 없더군요.
06/03/26 21:00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거죠.
붕당과 임란... 이것만으로도 그가 글씨를 잘 썼다느니 - 이완용도 명필이었다고하죠. - 뭐니는 부질없는 겁니다. 님이 언급하신 대동법의 단초나 성리학의 융성을 선조의 치적으로 볼 수는 없잖습니까.
06/03/26 21:02
좀더 부연하자면.. 리더에게는 그 시대가 그에게 원하는 '숙명'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에서의 승리일 수도 있고, 개혁일 수도 있고, 치안일 수도 있습니다. 요는 우선순위가 다르단 겁니다.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왕으로서 선조는 너무도 무능했습니다. 그럼 이미 게임 셋이죠.
06/03/26 21:16
그 많은 인재를 기용한건 다름아닌 선조 본인이지요.
선조시절때만 특별히 조선에 인재가 넘쳤을까요? 훌륭한 인재들을 등용하고 자기밑에 둔건 다름아닌 선조입니다.
06/03/26 21:16
'전란 후에 대처가 뛰어난 왕'보단 '전란을 일어나지 않게하는 왕'이 훨씬 유능하다 할 수있죠.ㅡㅡ))(소 잃고난 다음에 첨단보안장비로 무장한 외양간을 만들어봐야 소가 없으면 뭔소용이랩니까.ㅡㅡ)
06/03/26 21:17
왕권유지를 위해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많은 의인들을 사형장으로 보낸센스를 본다면... 선조왕은 무능한게 아니고 약간의 정신병자라고 생각됩니다.. 집착증이라고나 할까...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과 오버랩 되네요.. 박정희대통령이 이뤄놓은 많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권유지를 위해 행했던 최악의 사태들이....
06/03/26 21:20
한 나라의 통치자에게 따르는 역사적 평가는 정말 냉정하고 엄격하죠. 김영삼 전대통령도 하나회 청산, 칼국수 식사-_-, 금융실명제 시행, 12.12사태주동자를 법정에 세움...등 업적을 꽤 쌓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IMF만 기억할 뿐이죠. 선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06/03/26 21:40
드디어 글을 쓸수 있게 됐네요..^^
이순신 장군님만 아니었다면...중국으로 망명했겠죠... 다른 좋은 사실들도 열거했지만 나라를 버릴려는 왕이 과연 좋은 왕일까 싶네요....
06/03/26 21:46
치적과 인품에 대한 평의 출처도 같이 밝히셨으면 더 좋았을 뻔했네요.
저 역시 선조가 무능하기만 한 왕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랬다면 왕위를 지키지도 못했겠죠. 분명 공은 있죠. 과가 그걸 뒤덮고도 넘치니 문제일 뿐..-_- 탁월한 정치감각을 지녔다고 했는데 그게 지나쳐 나라를 말아먹을뻔 했죠. 통치 능력에서의 평가는 어쨌든 절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통치자로서 제1의 조건이 뭐겠습니까. '안전보장'이 아니겠습니까... 임란 이전에도 수차례 왜변이 있었고 상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를 과소평가하여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참변을 겪게 한 사실 하나로도 후세의 비웃음을 받아 마땅한거죠. 그리고 임란 이전의 붕당 정치는 절대 '평화적'이지 않았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없기는요... 그럼 정여립 모반 사건 이후 벌어진 '기축옥사'는 대체 뭐란 말입니까..-_- 선조가 인조보다 낫다는 말은 동감합니다. 적어도 선조는 자기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으니까요.
06/03/26 22:01
폐위당해야 할 마땅할 폭군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그다지 훌륭한 왕도 아니었다고 봅니다. 평범했기에 평범하지 않은 시대 상황에 의해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단 하나, 내치라는 점에 있어서는 뛰어났다고 봅니다. 나름대로 균형감각도 확실했고 그걸 끌고 나가는 방식도 훌륭했습니다. 단지 임란 이후의 논공과 안정화 정책에서의 문제점, 그리고 국제 정세에 대한 개념 부족이 단점이었고 하필이면 그 단점이 부각될 시기에 왕이었다는게 불운이겠죠.
06/03/26 22:13
선조는 왕권유지에 있어서 태생적인 약점이 있기때문에 기반이 취약할수 밖에 없었죠.. 선조는 조선시대 최초의 방계혈통으로 왕이 된 인물이기에..
선조시대 붕당이라는 것은 선조 자체의 왕권수호 차원에서 어느 하나의 세력을 다른 세력으로 견제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이제이랄까 물론 왕으로서 저런 방법을 쓸수밖에 없던 선조이기에 그에게는 한계가 있었고 그것이 그 치세 전반에 영향을 끼칠수 밖에 없죠
06/03/26 22:18
임진왜란 직전의 행동도 엉망이었고...
시대를 잘못 탔다는 표현은 글쎄요, 그냥 평범한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인생 망친 스타일이라고 봅니다. 시대를 잘 탔다면 현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긴 힘들죠. 전 못난 왕이라는 관점에 좀더 동의합니다.
06/03/26 22:31
선조는 임진왜란 전의 행동도 왕권에만 집착했습니다.
"정여립의 난"이 왜란 전에 일어났는데 , 당시에 난 진압 후에 엄청난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처단했죠. 제 개인적으로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무능하며 가장 왕권에 집착한 왕이 바로 선조라고 생각합니다.
06/03/26 23:39
음.. 전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 대비되어, 평가가 더욱 나쁠지도 모르겠네요.
똑같이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했음에도, 태종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고.. 결과도 시원찮았고..
06/03/27 00:06
임진왜란은 분명히 방비할수 있는 전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방비를 못했죠 임란전 대마도주가문인 소오(宗)씨가 누차 경고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임란이 터졌으니깐 말이죠 그것만 해도 선조는 무능이라는 평을 달게 받아야합니다
06/03/27 00:16
선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선군의 왜란 초기 대응은 그다지 허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 근래 다시 조명하고 있는 부분은, 조선군이 의외로 강했던 것이고, 가장 큰 문제는 일선 지휘관에 있었다는 점이죠. 대립제 등으로 인해 조선의 군사력이 100% 그 기능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전쟁 발발 이후 대구에 경상도군 거의 대부분이 집합하였던 것을 보면, 당시 행정 조직이나 군사 조직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당시 늦게 도착한 이일이나, 일선 지휘관의 일본군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작전 실패에 있는 것이죠. 전쟁 발발 이듬해부터 조선과 일본은 거의 대등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06/03/27 00:17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측을 아예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거죠. 그 부분이 가장 큰 실책이고, 뼈아픈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취약한 왕권 기반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군주였고, 이를 현명하게 풀지 못하고 국정에 잘 못 반영한 점은 분명 비난받아야 할 군주였다고 봅니다.
06/03/27 00:37
선조-광해군 때는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가족제도인 종법제도가 흔들려가는 시기였죠. 임진왜란 초기 임금이 도망가는 것을 본 백성들의 상당수가 일본군에 협조하는 등 말이 아니었습니다.
선조가 무능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는 조선 지배층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임진왜란에서 실질적으로 공을 세운 의병장이나 이순신 같은 무장들을 제거했던 것이지요. 이후 광해군은 나름대로 개혁(물론 성리학적 틀 안에서긴 하지만)을 하려고 했지만, 선조에 의해 사대외교, 성리학 중심체제 등을 그나마 개혁할 수 있는 인사들은 다 제거된 상태였지요. 어느 나라든 선조-광해군 시기와 같은 때가 있습니다. 지배층이 수십, 수백년간 쌓아올린 지배 이데올로기가 흔들리고, 그것이 무너져서 좀더 사회가 앞으로 나가느냐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지켜지고 대신 중국의 명, 청 시대처럼 정체되느냐 혹은 외국에게 먹히느냐... 차라리 선조가 임진왜란 도중에 죽고 광해군(광해군이 개혁군주적 면모를 유지한다는 가정을 넣겠습니다)이 임진왜란을 지휘했다면, 중국보다 더 철저한 성리학과 종법제도를 지킨 조선 후기보다는 중국을 넘어 더 넓은 세계를 봤던 일본처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06/03/27 01:03
음..조선시대의 왕들..아니..대한민국의 고대 역사상의 그 어떤 왕조시대의 왕이라도..왕권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유는..우리나라에서 절대 왕정이라는 게 존재했던 시절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이래로 거의 대부분의 왕정시대가..사실상 귀족연합의 우두머리로 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거라고 밖에는 볼수가 없죠. 프랑스왕 루이 14세 마냥..짐이 곧 국가니라..이런 말을 조선시대의 그 어떤 왕이라도 할 처지가 못 되었던겁니다.
사극을 보면.."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신하들이 무릎꿇고 왕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그건 하소연이 아닙니다...협박인것이죠; 조선초기에 반정..소위 쿠데타가 자주 나온것은..그만큼 왕권이 취약했다는 얘기일뿐이고.조선후기로 넘어서면서 붕당간의 대립이 심화되었다는 말은..왕은 허수아비이고..왕권이란 말은 이미 사라진채..신하들간의 신권대립이 있었단 얘기일뿐입니다. 어차피 조선왕조 실록도 왕이 간섭할 수 없는 가운데..귀족계층인 양반들 중 누군가가 서관으로 뽑혀 써내려가는 기록이죠.. 거의 예외없이..폭군이라고 신랄하게 적힌 왕들은..."유신"...즉...전제왕정을 꿈꿔왔던 사람들일겝니다. 신하들의 입장에서 볼때는..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뤄주는 사람이 명군인게고.왕의 입장에서 볼때는.."내가 곧 국가다"라고 외치고 싶었던 거겠죠;; 선조...뭐..딱히 잘한게 있을리가 없겠죠;;; 결국..왕이 최고책임자이고...무슨 정책을 어찌 피웠던간에..전쟁이 일어난 것만은..절대 피해갈수 없는 숙명이었을 테니까요..다만...그 후에.의병장이나 이순신을 쳐낸것은..그가 그의 연약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방법중 하나였을 겁니다. 신하의 세력을 견제못해 목달아난 임금은 조선시대에 한둘이 아니니까요;
06/03/27 01:05
몇가지 비판을 더하자면 인재가 많았고 등용을 했다 해서 훌륭한 왕이었다고 할수는 없지요 그 인재를 적절한 곳에 쓰고 어떠한 성과를 내야지만 훌륭한 왕이라고 할수있습니다
06/03/27 01:20
조선시대 왕들 중 유이하게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한 왕이 연산군과 광해군인데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현재 많이 좋아졌지만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폭군이다죠.
그런 연산군도 미치기 전 - 친모에 대해 알기 전 - 에는 꽤나 영특한 왕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로도 소시적에는 똑똑했다더군요.) 어차피 역사는 결과를 말해줄 뿐입니다. 시대를 잘못타고난 것도 안타깝긴 하지만 말입니다.
06/03/27 11:50
임난 직후에 그 의병장들을 전부다 역모죄로 사형당하죠.
선조의 불만이 오죽했으면 그 때 의주로 피난가던 선조의 아들 임해군이 의병을 모으려고 하는데 함경도 백성들이 그 왕세자들을 결박시켜서 왜군에게 갖다받쳤을까요 선조는 무능한 왕이 맞습니다.
06/03/27 12:19
골키퍼가 100번을 잘해도 한번 실수하면 손가락질 받고 그것이 엄청난 삽질이면 말할 나위가 없죠..
위치에는 합당한 자격이 필요한 것입니다. 글을 잘 쓴다느니, 효심이 뛰어났다느니... 위 두가지가 있다하여도 평화시에 뛰어난 성군이 되리라는 가정에 어떠한 연관성도 가지기 힘들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조시대의 무수한 인재들은... 조선의 인재양성 시스템이 정점에 올라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임용은 왕이 했으나 이마저도 정승 그리고 이조와 예하 행정기관에서 보조하였었고 이들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사회시스템이었습니다. 적어도 선조 이후 중기까지는 조선의 인재양성 시스템은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창업초 부터 고려의 과를 거울 삼아 이부분을 신경썼느니 만큼, 과연 선조에게 그많은 인복이 있었음을 그의 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의 사례는 적절히 임용시킨 것도 잘한 것만이 있으나 적절하지 못한 예도 다수 있습니다. 그어떤 사람도 왕에게 완벽함을 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떤 사람도 왕에게 결정적인 실수를 동정론으로 눈감아 줄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의도하지 않았던 그리고 퇴행적인 왕조교체의 조짐이 아닌 외세로부터 야기된 난세로 부터 왕조를 지키기 위한 그 각별한 노력만큼은 우매하지만은 않은 왕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씨왕조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왕이었을지 몰라도 민족적인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무능한 자였습니다.
06/03/27 17:07
태종,세조,세종정도는 절대왕정 비슷할정도로 평가해주지 않나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태조 세종 광해군 이 3분이 가장 뛰어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06/03/27 17:37
굳이 비교하자면 괜히 페널티에어리어를 벗어나 원맨쇼하려다 딩크형님한테 완전히 찍힌 김병지선수와 비교가 가능할지도...모르겠군요..@.@
06/03/27 19:13
선조 말년에 임진왜란 뒷수습은 선조의 업적이라기 보다는 광해군의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맞지 않나요?
대동법의 시행이나 성의 수리, 무기 수입이나 국방력 강화, 의서 편찬 등은 광해군의 지시로 이루어 진 거라고 알고 있거든요. 임진왜란 때도 선조가 북으로 북으로 피난을 갈 동안 평양에 남아서 백성들을 독려하고 의병을 조직하려 했던 건 광해군입니다. 임진왜란 기간동안 광해군의 치적이 너무 많았고 백성들이 선조보다 광해군을 오히려 칭송하자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을 제거하려 했던 선조입니다.(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을 밀어내고 적자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봉하려고도 하죠.) 똑똑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시대를 읽는 눈과 책임감이 부족한 왕인 건 틀림 없을겁니다.
06/03/27 20:11
그전의 치적의 자세함은 모르겠지만 임진왜란을 방비없이 당해서 나라가 기울도록 만든 장본인이라는것만으로도 무능으로 넣어버릴수있죠. 임진왜란때문에 잃은 무형,유형적 유산이 얼마이며 죽은 백성이 얼마이며 그뒤로 복구비용등등 - 계산이 안섭니다 .
06/03/27 20:34
영혼의 귀천님// 전 공무원 준비생입니다
귀천님이 말씀하신그 업적 모두를 광해군의 업적으로 지금은 배우고있습니다. 심xx강사는 아마 선조에 대하여 엄청난 비판을 했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06/03/27 21:11
개인적으로 선조에 대해 내린 판단입니다.
일단 결론은 인조와 더불어 사상 최악의 암군.그것도 약간 머리좀있는 그래서 더 꼴통에 가까운 암군이라고 봅니다. 그가 행한 최악의 뻘짓은 1. 임란을 원천봉쇄할수 있었는데도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하들이 당파와 국가 혼란어쩌고 저쩌고 해서 사실을 숨겼다 어쨓다 하지만 애당초 임금이 변변치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2. 임란시 한게 없다는 겁니다. 경황이 없었다 할려고 해도 할게 없었다 하는데 할게 없어서 이순신 장군 파직시키고 할게 없어서 도망만 가고 한거라고는 겨우 요동주둔 명나라 말단 하위직 장수에게 황제의 칙명을 받고 왔다고 감개무량해 맨발로 뛰어나가 그앞에 머리쳐박고 감읍해서 명나라 황제의 은총을 황송해 한것이죠 3.이게 정말 최악의 뻘짓이라고 보는데 다음대 정권을 이어나갈 아들 광해군에게 안정적인 정권을 물려줘도 모자랄 판에 세상에 왕이라는 자가 제가 먼저 나서서 광해군의 세자 자리를 쥐고 흔들고 어떻하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영창대군에게 세자자리를 줄수 있을까 했다는 거지요 광해군이라는 걸출한 영재가 채 그 정견을 펴지도 못하고 쓰러진것은 선조라는 저 최악의 암군이 아예 정권자체를 반편으로 만들어 물려준 원인이 큽니다. 말이 좋아 인륜을 저버린 뭐 어쩌고 저쩌고지 애당초 인목대비를 방패로 왕인 광해군을 핍박할 세력자체를 만들어 놓은게 선조입니다. 세상에 어느나라의 어느왕가가 다음대 정권의 안전성을 제가 먼저 해꼿이하고 넘겨줍니까 고금을 통털어 저 선조외엔 저지르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말그대로 고금을 통털어 볼수 없는 암군입니다. 명종이 저런 자를 세제로 임명한것 자체가 우리민족의 비극이고 명종역시 선조 인조와 함께 암군삼총사로 들어가야 할 확실한 증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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