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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3/09 17:50:40 |
Name |
Bar Sur |
Subject |
어떻습니까? 내일의 전망은. |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느 시점시점마다 차근차근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가며 각오를 다지곤 한다. 인생을 투자하는 장기 계획부터, 방학마다 한장씩 찍어내던 생활계획표, 그리고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천천히 구상하는 오늘 하루의 계획까지. 그 계획을 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종종 그렇게 간단한 공식만으로 세상이 성립되는 건 아니다. 그건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난이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그 모든 불확정요소를 '재난'이라 부른다면, 도무지가 재난이라는 건 그러한 우리가 공들여 짜놓은 계획과 전혀 하등의 관계 없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냉장고처럼 그렇게 우리를 덮치곤 한다. 정말이지,
인정사정 없다.
그러니 나는 가능하면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전망이 서질 않는 것이다. 아마 그런 나의 경향을 남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짧은 인생 동안 겪은 몇 가지 재난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될테지만, 그거야 말로 웃는 낯으로 남을 협박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기에 나는 과감히,
행을 바꾸기로 했다.
이건 20분도 되지 않은 조금 전의 일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누나가 내 방문을 순간 열어젖히고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했다. "야,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데!" 11자, 쉼점 하나와 느낌표 하나, 그걸 묶는 따옴표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그 짧은 문장이야말로 사람의 생사를 전달하는 우리네의 가장 완벽한 문장이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사인도 알지 못하는, 그 짧은 문장으로 날아든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는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두고 맨처음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좀처럼 내일의 전망은 함부로 세울 수 없다고. 그러니까 난 지금 그 부고 소식을 듣고 준비가 되는데로 아마 저 먼 남쪽땅으로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야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글부터 적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혹시 난 바보가 아닐까?
부고를 듣기 전까지, 앞서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고 말한 나임에도 내일의 전망에 대해서만큼은 오늘따라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건 다시 며칠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친구의 생일을 하루늦게 알게 되었지만 달리 만날 수도 없었기에 간단하게 MSN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불현듯 내 생일 또한 3월의 어느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음력으로 생일을 세는 우리집이기에 매년 새 달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확한 생일 날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것이 내가 내일의 전망에 대해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았던 전말이다. 자, 그래도 우리에게 용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나 또한 용기를 내어 일단 물어보자. 내일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네, 흐립니다. 남부에서 굉장한 기세로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며 이곳 서울에서도 홍수로 인한 곳곳의 침수 피해가 예상됩니다.]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상식이지만, 대체로 일기예보는 신뢰할만 한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러나 나는 또 일기예보에서도 알지 못하는 속보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우리집 사람들 또한 여간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한 깜짝 놀랄만한 속보였다. 이제는 이 사실을 내 주변에 말할 필요조차 없어진 듯 느껴진다. 그래도 이 글에서만이라도 굳이 말해보자면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내일은 제 생일이 될 전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은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되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슬픈 날입니다.]
혹시나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지몰라 일단 말해두는 것이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있는 건 내 생일을 정상적으로 보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따위가 아니라, 이 웃지 못할 상황을 다시금 우리 앞으로 가져온 우리 삶의 돌발성 때문이다. 정말이지 재난이라는 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내 생일과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모호한 이 세계의 날짜의 기준을 넘어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오늘도 우리 삶의 곳곳에 죽음이 숨어들어 있다. 나는 고작 이십몇년을 살면서 대체 몇 번이나 내 주변의 죽음들을 이렇게도 쉽게 찾아내게 되는가. 그 사실이 지금으로선 뭐라 말할 수 없이 애달프다.
[덧 : 어머니는 급하게 친정집으로 내려갈 차비를 갖추면서 타고내려갈 차도 부족하고 학교에도 지장이 생기니 나에게는 남으라고 하신다. 결국 나는 홀로 집에 남아서 생일날을 보내게 되었고, 외할아버지는 그 많은 자식, 손주들 단 한 명의 얼굴도 죽음 앞에서 직접 보지 못하고 급사하셨다. 참으로 삶도, 삶과 함께 하고 있는 죽음도 당돌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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