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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2/13 16:02:38 |
Name |
마술사얀 |
Subject |
코리안 숯불 바베큐 |
내가 좋아하는 코리안 숯불 바베큐가 내 혀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할때마다 내 어릴적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어릴적 부모님이 다투시고 나면 늘 아버지는 주말까지 불만스런 침묵을 지키시다가
일요일 한나절을 시내 삼익백화점 5층에 있는 삼익 기원에서 다른 대국자들과 수담을
나누시면서 시간을 죽이시곤 했다.
결국 저녁시간이 다되어갈때쯤 집에 전화를 하셔서 내게 그러셨다. 엄마와 동생 데리고
삼익 쇼핑으로 나와라. 외식이나 하자꾸나...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하면
어머니는 못이기시는척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에 오르시고.
나와 동생은 백화점 앞에서 기다리시겠다는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를 불러내려 기원에
들어가 아버지 팔을 끌고 나오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 어색한 시선과 침묵은
그 삼익 백화점 바로옆 치킨집으로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곤 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나는 그 치킨집에서의 기가막힌 바베큐의 맛은 어린나에게
먹는것이 삶의 한 목표가 될수도 있겠다라는 막연한 삶의 철학까지도 안겨주었다.
내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내 전속 요리사는 여기 치킨집 주방장으로 채용해야지란
조숙한 생각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다투시면 좋겠다란 철없는 생각까지
그 매콤한 바베큐 치킨속에 함몰해 들어가던 시절.
내 기억속의 그 맛을 코리안 숯불 바베큐가 완벽에 가깝게 재현을 하는것이다.
수원 매탄동에 있는 코리안 숯불 바베큐는 한번 시켜먹을때마다 스티커 쿠폰을 한장씩
주는데 그걸 10장을 모으면 한번 공짜로 숯불 바베큐를 제공해준다.
결국 나에게 그 구폰은 1200원짜리 현금 지폐와 다를게 없는 가치를 지닌탓에 그 쿠폰을
차곡차곡 모으는 수납 공간까지 따로 마련했다.
어제도 코리안 숯불 바베큐를 시켜 붙어 있는 스티커를 떼어내 그 수납공간에 넣으니
이제 4장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10장 쿠폰 모아서 공짜로 먹은게 2번이고. 초반에 쿠폰을
몇장 잃어버린거 생각해보면 수원에 와서 근 30번을 코리안 숯불 바베큐를 시켜먹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베큐 한마리에 12000원나 하는 그 가격이 월급쟁이인 나로서는 한끼 가격으로는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고. 또 몸무게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나이인지라. 바베큐 시켜먹는 호사를
자제를 해야 하기때문에 나는 바베큐를 시킬때마다 무언가 나를 설득할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회사에서 큰 상을 받았을때는 정말 주저함 없이 그날 저녁 난 바베큐를 시켜먹었고.
그 외에 소소하게 자축할만한(이를테면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프로그램 버그를 잡았을때) 일이 있는날
바베큐를 시켜먹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베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가 붙여지곤 했다.
첫눈이 온다고 시켜먹고, 냉장고를 샀다고 시켜먹고, 스타리그 결승전이 있다고 시켜먹고,
엄지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갔다고 시켜먹고... 이불빨래를 했다고 시켜먹고 어제는 요즘 스트레스 받는다고
시켜먹었다. 결국 그렇게 처절하게 혹은 비굴하게 나를 설득하기를 2년새 서른번을 했다는것이다.
아아 유혹에 한없이 나약한 영혼이여...
배달올때만 해도 그 오롯한 자태를 뽐내며 하루종일 독서와 게임, 바둑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폐인의 눈동자에서
생기 발랄한 탐미적 시선을 끌어내던 닭 한마리는 20분도 안되서 뼈만 남기고. 남은 소스를
젓가락으로 의미없이 휘젓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때의 허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상념에 들어갔다.
2년동안 내 뱃속에 들어가 있는 서른마리의 닭. 양계장에서 닭털을 흣뿌리며 날지 못하는 날개를 힘차게
퍼덕거리고 있는 30마리의 닭이 떠올려지는 순간. 나 스스로의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한 회의가 들었다.
수치적인 30마리의 닭이 내 상상속에서 실제의 생명체의 무리로 구체화 되는 순간 또 다른 깨달음이 왔다.
나 하나의 삶을 위해 수많은 생명들이 스러져 갔구나... 나를 위해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나는 살고 있는것일까. 반짝 반짝하는 닭들의 60개의 눈동자가 꼬꼬댁 울어대며
내게 묻고 있었다. 그래 이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서른번의 단말마 비명을 떠올리며 늘 끊임없이 각성해야
겠다라고 생각하는게 지나치게 변태적이고 그로테스크한것일까....
주섬주섬 바베큐 만찬의 잔해를 치우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코리안 숯불 바베큐는 맛있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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