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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1/27 02:20:56 |
Name |
Timeless |
Subject |
흰 머리 두 가닥을 뽑으며 |
평소 거울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이유는 묻지마세요),
오랜만에 어제 거울을 보니 흰 머리 두 가닥이 보이더군요.
그 흰 머리 두 가닥과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올드보이##
'아~ 항상보며 느끼는 거지만 거울 속에 니가 내가 아니었음 좋겠다! 에이~'
'응? 왠 흰머리가'
발견하자마자 들었던 기분은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수 년간 자신을 감금했던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런.. 아마도 분노에 가까웠던 것 같다.
'누구냐 넌'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아주 잔잔한 호수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작은 조약돌 하나에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반면에 굽이 쳐 흐르는 계곡물은 거칠어 보이지만 작은 조약돌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가 호수같이 얼핏 평화롭게 잔잔하게 살고 있었던 것일까?
흰 머리 두 가닥이란 조약돌을 강하게 느꼈다.
##실감##
가끔 궁금하다.
녹음된 내 목소리는 정말 내 목소리랑 같은 것일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정말 내 모습과 같은 것일까?
어쩌면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사실 거울에 비추어진 흰 머리 두 가닥은 빛의 반사에 의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먼지 같은 것이 묻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한 가닥을 수고스럽게도 뽑아보았다.
뿌리부터 끝까지 틀림없는 흰 머리였다.
'내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다니..'
'난 이제 아저씨야..'
여러가지 우울한 생각이 잠시나마 떠올랐다.
##후회되니?##
곧이어 두 번째 가닥을 뽑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두 가닥 다 뽑았으니 이제 없을 거란 생각에 왠지 후련하기까지 했다.
뽑혀서 책상 위에 놓여진 흰 머리 두 가닥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흰 머리 두 가닥에 왜 이렇게 부산을 떨었을까?'
내가 지금 인생의 어디까지 와있는지는 숫자로 된 나이가 알려주지 않는다. 같은 스물 다섯이라고 하여도 그와 나는 다르고, 그녀와 나는 다르다.
아마도 나는 흰 머리에 '내가 지금 인생의 이 만큼 와있구나'라고 느낀 것 같다.
'이 만큼이나 와버렸는데 나는 지금 어떤가?'
아마도 이 물음이 두려워 그렇게 유난스러웠나보다.
##검은 머리 두 가닥##
언젠가 세월이 흘러서 이제 검은 머리 두 가닥이 남았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 때는 이번처럼 일부러 뽑기는 커녕 행여나 빠질까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두 가닥도 하얗게 되던지 아니면 뽑힐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또 다시 부산을 떨것이고, 또 그 마주대하기 두려운, 불편한, 어려운 물음과 대면할 것이다.
'후회하니?'
하지만 그 때의 내 대답이 이번과 다름없기를 바란다.
"후회 되는 일은 많지.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게 산 것 아니야?"
이 대답을 내면서 다시 흰 머리 두 가닥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까 그렇게 난리를 치면서 사라졌나보다.
아니면 혹시 내 대답에 만족해하며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진 것이 아닐까?
PS.
사람일은 참 신기해요.
원효대사는 부처(진리)를 찾아 머나먼 천축국에 가려다 해골물에 진리를 깨우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몇 분 새에 있었던 일일까요?
이렇게 긴 글이고, 또 이렇게 글로 쓰는 시간도 상당히 들었지만 정작 저 사건은 몇 분 되지도 않아요.
지금 TV 무엇을 볼까 채널을 바꾸는 시간이나 저 사건이 있던 시간이나 별 차이 없는데 의미가 참 다르네요.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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