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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1/24 21:32:31
Name 소년
File #1 코뿔소.JPG (0 Byte), Download : 48
Subject 가지 않은 길과 가지 못한 길 사이에서...


<동물원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가보지 못했으므로 불행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 언젠가 동물원에서 의외로(?) 좋은 색감에 찍어 본 뿔소형님 -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여우가 길을 가다가 키가 닿지 않는 곳에 달린

  포도송이를 발견한다. 맛있을 것 같아서 몇번이고

  팔짝팔짝 뛰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여우가 말한다.

  "저 포도는 분명 시고 맛없을 거야."

  여우는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살아가면서 시간은 한정된 것이고 몸은 하나여서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몇번이고 찾아온다.

  하지만 그 여우의 포도는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이었고, 자신이 원했으나 가지지 못했다.

  



  언뜻 우화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간단해보인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합리화 시키는

  능력없고 용기없는 자들에 대한 비아냥 정도로 받아들이기 쉽다.

  



  확실히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점차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을 알아갈 수록

  대부분의 사람, 거의 '모두'에 가까운 사람들이 저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저렇게 살지 않고서는 쉽게 쓰러지고 말지 않을까.





  유능한 컨설턴트가 되어서 단 몇 달만에 쓰러져가던 기업을

  일으켜세우고, 동시에 소설가와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주말이면 이종격투기와 마라톤을 즐기고, 친구들과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 즐길 줄 알고, 부인과 자식, 부모님께 훌륭한

  가장이자 아버지, 남편, 아들로서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점을 잘 받아가면서도 몇주동안 쓰러질 듯 밤새워가며

  연애도 하고, 기분에 따라 훌쩍 여행도 다니며, 느낌이 올 때는

  언제고 시와 소설을 쓰고, 좋아하는 운동도 하고

  춤도 추러 다니고 뒤늦게라도 첼로나 일렉베이스라도  

  열정적으로 배우고 작은 연주회를 열 수 있다면...





  우린 선택해야하고 때로 부들부들 거리면서까지 어릴 적부터

  잡고 있던 희망과 욕심의 끈을 놓아야 한다.  누군가는 기타라는

  목숨처럼 아끼던 끈을 고3때 놓으며 좌절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돈을 위해 우정이라는 끈을 놓기도 하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현재의 사랑을 놓기도 한다.





  영적인 얘기가 아니라면 옳고 그른 것은 없지 않을까.

  너무 안타까워 할 것도 없고, 비난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예술 영화를 찍던 사람이 배고픈 가족을 위해서 상업영화를

  찍는다는데 비난할 수 없듯이, 대중소설을 쓰던 사람이

  순수 문학을 해보겠다고 돈 안되는 걸 계속 쓴다고 해도

  비웃을 수 없듯이...





  여우와 포도,

  그 여우는 가엾게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안되는 것을 저런 방식으로라도 포기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많다.  포기해야할 것을 저런식으로도 포기 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랑의 문제는 언제나 포기하지 못하는데서 생기지 않던가,

  생각해본다.







  ps. 늦게나마 코뿔소처럼 갈 길을 가는 임요환 주장 이하 SKT1 팀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프로팀 감독이 언제나 최고의 수훈이심은 물론이죠^^)! 더이상 하지 '못했다'는 말이 두려워서 방황하는 모습은 없었으면 합니다 ^^ 우리 모두 말이죠!

  p.ps.

  가지않은 길
    by 프로스트(R.Frost)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원문)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by 브레히트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p.p.ps 블룸님의 조언에 따라 프로스트의 시와 브레히트 아저씨의 시를 추가합니다.
제대하고 얼마 안되서 미니홈피에 나란히 올려놨던 두 시인데 이 글을 쓰는데 은근히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  혹시 시에 관심있으신 분은 홈피에 오셔서 제 시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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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
06/01/24 21:36
수정 아이콘
추게로 가야하는 글이군요 ^^;; 잘 읽었습니다
06/01/24 21:38
수정 아이콘
아... 좋은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비롱투유
06/01/24 21:42
수정 아이콘
모든건 단지 선택이죠..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
My name is J
06/01/24 21:43
수정 아이콘
아쉬움을 가질수 있지만 후회는 말아야죠.
그랬어야 했는데-는 그자리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일테니까요.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믿어야죠 스스로를-
최고는 너무 어려운 선택이잖습니까. 으하하하
06/01/24 21:49
수정 아이콘
정말 그럴수 있다면.......
06/01/24 21:55
수정 아이콘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없겠죠. 다만 때로 '안타까울'뿐이죠.
4EverNalrA
06/01/24 22:02
수정 아이콘
이 글 처럼, 자신이 했던 혹은 할 행위에 대한 성찰은, 사춘기가 지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 이상 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글이 그 성찰의 과정을 많이 도울것같네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면 좋을것 같네요.
추게로.
아케미
06/01/24 22:16
수정 아이콘
선택 선택 선택의 연속…… 최선만을 따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요. ^^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보내야죠 이건~)
06/01/24 22:1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06/01/24 23:58
수정 아이콘
댓글은 지웠구요. 본문 안에 있는 것이 다른 분들이 읽기 편하실 것같아서...
난폭토끼님/ 제가 댓글을 지워서 난처하게 됐네요. 약간 장난스럽게 남긴 댓글인데, 조금 변명하자면 소년님이 맘편하게 프로스트의 시를 본문에 실어주십사 해서 쓴 것입니다(원래의 의도도 같이 올리려다 깜박하셨다니).
06/01/25 01:16
수정 아이콘
아..블룸님의 배려 감사해요 ^^
Peppermint
06/01/25 02:06
수정 아이콘
이 선수 처음으로 ACE 게시판 가나요? 그야말로 "아무도 가지 않은 게시판"을 최초로 밟는 영광이 "소년"에게 주어지길..


근데 전 아직도 가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살날이 많이 남았기에..^^
한동욱최고V
06/01/25 02:14
수정 아이콘
추게~
이제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옳바른 선택이 되고 나 자신이 후회하지 않기를 바래요
오드아이
06/01/25 03:17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어요~ 경영에 관한 도움을 받은 이 후 피지알에선 처음인 거 같네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경영에 대한 자문을 구했으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띠었을까요?


두 갈래 길 앞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 인생의 한번 있을 선택이니까요. 많이 고민한 만큼 더 빨리 걸으려구요 조금만 쉬면서 걸으려구요

이 길이기 때문에 쉬지 않아도 빨리 걸어도 힘들지 않아요
이 길을 걷는 것이 쉬는 것이요, 이 길을 걷는 것이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니 앞은 깜깜해도 손으로 앞을 더듬거리진 않을 거예요

지금 내 가벼운 발걸음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지바고
06/01/25 04:07
수정 아이콘
잘 보았습니다.

ACE게시판의 첫 게시물이 되는건 어떨까요?
봄눈겨울비
06/01/25 10:36
수정 아이콘
짊어진게 많아서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은 포기하고 뒤돌아 섰습니다..
하지만 그 짐을 덜어내고 나면.. 다시 한번 시도 해보려고 합니다..
힘들겠지만 포기하면 영원히 불가능하니까,, 포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06/01/25 14:35
수정 아이콘
오드아이님//제 얼치기 설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족하죠 ^^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아는 사람이 지구에 몇이나 있을까요,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말이죠) 가는 길이 즐겁고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거라 생각해봅니다.
06/01/25 14:40
수정 아이콘
봄눈겨울비님// 언젠가 누가 그런 말을 써놨더라구요. "인생에 리셋이란 없다. 젊은 족속들이여 리셋증후군에서 벗어나라." 장문의 글이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에 앞뒤 안 재고 사고 치는 사람들을 주로 겨냥해서 한 말이겠죠. 여기에 대고 말장난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리셋이 인생에서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젊음'의 원동력인 것 같구요. 가끔씩 인생을 리셋하곤 합니다. 군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사회에선 가능한 것이기도 하죠.
주로 A집단에서 활동하다가 '이건 아닌데..'싶거나 '좀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때로는 아예 소속을 바꿔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곤 해요. 게임과 달리 인생에서는 그 전에 갖고 있던 것들을 잃지 않고도 리셋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이죠 ^^ 너무 다른 얘기를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는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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