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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1/22 02:30:29 |
Name |
시퐁 |
Subject |
나는 삼성전자 칸을 응원했다. |
1.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몇 가지의 멋진 상상을 했다.
마재윤 선수가 MSL에서 우승하고 송병구, 서지훈 선수가 OSL 8강에 오르고
삼성 전자 칸이 후기리그 우승하고, GO팀이 그랜드 파이널 우승하고..
길을 걸으면서 이런 상상들을 했고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히죽거렸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나의 바램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올 한해는 잘 풀릴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면 시간도 3시간 정도로 줄여가면서까지 그들의 경기는 보았다.
일전에도 썼지만 나의 일상은 너무나도 바쁘기에
스타리그를 관람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나의 이런 바램에도 불구하고 마재윤은 통한의 준우승을 했고
서지훈, 송병구의 8강 진출은 무산되었으며
오늘 삼성 칸은 준우승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바램중 세가지가 벌써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불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것이 불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늘 그들의 경기를 보고 나의 상상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2.
GO팀과 삼성 칸을 좋아한다.
패배에도 아쉬움을 내색 않는 GO의 담담한 여유가 좋고
작은 전투의 승리에도 팀원 전부가 기뻐하는 삼성 칸의 화기애애함이 좋았다.
패배의 분노는 가슴으로 삭히고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GO의 절제가 좋았다.
승리에 대한 기쁨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삼성 칸의 유쾌함이 좋았다.
그들의 승리는 나의 승리였고 그들의 패배는 나의 패배였다.
그러한 놀라운 동질감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했었다.
그러기에 오늘 삼성 칸의 승리를 기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패배를 패배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는 4:3의 아쉬운 패배지만
김가을 감독의 말처럼 후기리그의 주인은 삼성 칸이었기에.
그들이 보여준 명경기의 순간 순간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기에.
3.
언제였던가, 팬텍 엔 큐리텔이 막 창단하고 나서 프런트에서
'삼성만 이겨라'라는 오더를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결과는 팬텍팀의 무난한 승리였고
송호창 감독은 '자존심이 상했었다'라는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만 해도 그 인터뷰를 수긍할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그들은 약체였기에, 최하위 결정전을 할 정도로 약했었기에.
하지만 승부사 출신이었던 김가을 감독은 그 인터뷰가 얼마나 분했을까.
프로로써 그런 말을 들어야 했던 선수들은 얼마나 자존심에 금을 그었을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삼성칸에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GO팀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GO의 승리를 바랬지만
한 편으로는 삼성칸 선수들의 선전도 기원했었다.
그들은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고 그 이름은 '노력' 없이는 유지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의 노력을 믿었다.
'언제나 목표는 우승이다'라고 말하는 김가을 감독의 승부근성을 믿었고
'우리는 약체가 아니다.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선수들을 믿었다.
4.
그들은 준우승을 했다.
마재윤도 준우승을 했고 서지훈과 송병구는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올해가 정말 멋진 한해가 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의 바램과는 달랐지만 나는 그런 상상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전 경기에서, 그들의 불같은 투혼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연성을 3:0으로 꺽고 올라가 자신의 테란전을 증명해 보인 마재윤의 투혼을 보았고
경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드라마같은 역전을 해낸 송병구의 투혼을 보았고
GG를 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다음을 기약했던 서지훈의 투혼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 유닛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반응하며 함께 기뻐하고 아쉬워하던
삼성 칸의 모습에서 너무나 큰 감동을 느꼈다.
그들은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이렇게까지 와닿을줄은 몰랐다.
나는 그들을 응원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후회는 커녕 오히려 너무나도 기쁘기까지 하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었기에.
스스로가 주인인 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비록 텔레비젼을 쳐다보며 홀로 박수치고 탄성지른 것에 불과하지만
영원한 우주 한 구석의 작은 응원일지라도
나의 응원이 영원보다 작다고 느껴지지 않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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