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좌충우돌, KeSPA 2기가 나오다.
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KeSPA가 있었기에 한국의 E-Sports는 태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컸고, 그 결과물로 KeSPA가 나타난 것이지, 원래 KeSPA가 있어서 한국의 E-Sports가 발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KeSPA가 딱히 한 일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2년의 얼라이마인 사건에도 KeSPA가 해결한 것은 없었고, 뭐 그간의 발전에 그들이 한 일은 없었다.
잠깐, 여기서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온게임넷과 mbc게임, 게이머, 그리고 팬들이 사실상 리그를 만들고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이 점은 결국 그들이 E-Sports 판에 일정한 발언권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가진 발언권에 대해 딴지를 걸기란 쉽지 않다. 막말로 고깝게 본다면, 자신들이 일껏 키워놓은 것을 왠 엉뚱한 사람들이 와서 채간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협회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권위의 문제, 그리고 힘의 문제라고 하겠다. 전용경기장이나, 대중적으로 확고한 정립을 하기 위해서는 한 두 방송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단적으로 경기장은 대외적으로 이 판을 대표하는 단체가 있어야 그들과 협상이 가능하고, 대중들에게 어떤 확실한 권위를 가진 체계가 있어야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자, 여기서 대중은 우리같은 팬이 아니라, E-Sports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공인이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SKT의 김신배 회장을 축으로 한 새로운 2기 협회에 많은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강력한 자금력과 이를 배경으로 충분히 새로운 권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될 것이고, 그간의 문제점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지도 모른다. 경기장문제, 스폰 문제, E-Sports 종목의 다양화 문제같은 것을 해결하는 것을 기대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년간 된 것은 없었다. 아,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은 좀 짧기는 하다. 그럼에도, 문제를 삼는 것은 아마도 그 일의 결과 때문이라기 보다, 그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리라. 서두에서 필자는 E-Sports 협회가 있기 전에, E-Sports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이게 완고한 기득권이 되면 곤란하지만, 적어도 그 권리를 인정하고 대화를 취하는 행동은 충분히 필요하다. 전용경기장을 둘러싸고 방송사와 대립하는 모습은 과연 그러한 대화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당면의 과제는 스폰이다. 필자는 스폰없이 생존하는 게임단이 생겼으면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금이 지금의 대여섯배가 되기 전에는 어렵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면, 스폰을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과연 이 일에 처음부터 발 벗고 나섰는가는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물론, 스폰을 잡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력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와 뒤늦게 노력을 했다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과연 KeSPA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을 했을까.
타 종목의 소외 문제. 피파 같은 종목은 꾸준히 열리지만, 이 종목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하는지,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스포나 카트에 대한 규정의 정리, 스타 부분에서 규정의 모호성과 이로 인한 논란과 같은 것은 분명 KeSPA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거듭 말하지만, 해야 할 일을 1년안에 다 하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하고 있다는 모습은 보여주어야 한다. KeSPA는 그 자격에서 떨어졌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KeSPA 컵이나, 통합리그의 출범 같은 부분에서 분명 공헌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 부분 외에도 너무 많다. 새삼 협회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규모가 커진 E-Sports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조직이자, 대외적인 권위를 가진 조직으로, 일의 조정이나 세부적인 규칙을 세우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런 모습이 없이, 다른 일에 매달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일까? 올 한해, 적어도 협회가 방송사, 게이머, 스태프, 팬들의 구심점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동감하리라 본다.
로마인이야기 3권에 보면, 한니발의 언급이 3권의 주제인 혼미를 상징한다. 육체의 성장에 걸맞는 내장의 성장이 따라오지 못한 상태. E-Sports의 태동기에 비해 지금 그 규모는 커졌고, 많은 이들이 이 판에서 자신의 열정을 태운다. 그 규모에 걸맞는 내장의 성장, 그것은 규칙의 완비, 종목 다양화에 대한 지원, 비스폰팀에 대한 후원과 스폰 연결, 각 방송사와 운영 주체들의 조율 같은 점에 있다. KeSPA가 보이는 일인 프로리그 출범, KeSPA 컵등에 공헌을 한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KeSPA는 보이지 않는 일에서 더욱 공헌해야 한다. 우리의 협회는 과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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