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41편
#1
2005년 9월 10일.
진호는 자신이 시현과 통화하던 전화기를 나꿔채서 도망간 강민을 쫓아갔다. 그러나 강민은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환자가 어떤 약물을 먹었는지 일선 병원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독물 분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국과수인데 거기로 보내려면 오톱시를 해야죠, 하지만 환자는 죽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건 선생님들이 추측하신 가능성들 중 하나일 뿐이예요. 많은 약들이 해당되죠."
"걱정 마세요. 무슨 약을 썼는지는 뻔하거든요, 그리고 마침 말씀하신 가능성들 중에 있더군요. 우리가 범인 잡은 다음에 그 약이 뭐였는지 알려줄께요."
"사건 정황에 대해 뭐 아시는 게 있나봐요?"
"이게 꼭 성준이 얘기란 건 아닙니다. 그냥 성준이를 해치려는 A란 사람이 있다고 쳐봐요. 그 A가 마침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어서 고의적으로 그 약들을 몰래 같이 먹였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없는데요. 예를 들자면 프로작과 오로릭스를 같이 처방하진 않죠. 적어도 5주는 간격을 둬야 하는데요."
"인간사가 꼭 그렇게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어찌어찌해서 동시에 그 약들을 같이 갖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범인이라면 절대 그런 방법을 쓰지 않겠어요. 약의 효과는 물론이고 특히 부작용이라면 누구에게 얼마나 중하게 나타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거든요.
그냥 고혈압만 오고 끝날지, 늦기 전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살아날지, 정말 사망까지 갈지 절대로 알 수 없어요. 바보나 하는 짓이예요, 즉효가 있는 강력한 독극물들이 쫙 깔려 있는데 굳이 드럭 인터액션을 써서 살인을 기도한다는 건."
"수중에 약이 그것밖에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
"포타슘 사이아나이드 같은 건 입 안에 닿기만 해도 쫙 흡수되서 병원 실려올 때쯤엔 숨이 겨우 붙어 있어요. 그라목손은 유린에서 파지티브 나오는 순간 죽었구나 할 정도로 효과가 좋아요. 이런 약들 쉽게 구하진 못해도 못 구하는 것도 아니예요, 한국이 그런 나라란 말이예요."
진호가 이 아가씨와 통화할 때마다 왜 그렇게 인상을 쓰는지 알 만하다. 고의로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꼭 자기들끼리의 용어를 쓰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단 말이야. 게다가 이 박시현이라는 여자 너무 무서워. 별걸 다 알고 있군.
"그러니까 A라는 본인이 직접 자신의 약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겁니까?"
"본인이 정신과 약 처방을 받았고 그 약을 가지고 있다는 건, 조사하면 금방 밝혀질 테니 자기 얼굴에 나 범인이네 하고 써 놓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죠. 제가 A라면 일부러라도 그런 방법은 안 써요."
"후우......그러면, 고의로 누가 약을 먹였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조언이 필요해요."
"제가 보기엔 청부살인업자나 치밀한 계획을 세운 범죄자가 아니라 아마추어라면 가능성이 있겠네요. 남들의 약을 가져다가 우발적으로 했을 수 있다는 거죠.
아니면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불확실한 방법을 썼다거나. 전 그 쪽이 끌리네요, 한 방에 보낼 독약이 많은데도 괜히 드럭 인터액션을 쓴 거 보면......"
"!"
"단, 그게 어떤 약인지, 같이 먹으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하겠죠. 의사이거나, 그 약을 먹는 사람에게서 자세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거나."
그것이 화장실에서 강민과 박시현이 통화했던 내용이었다. 폰을 돌려달라고 진호가 아무리 밖에서 두들겨도 그 대화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온 민이 왜 그렇게 복잡한 표정으로 요환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2
연습 끝나는 대로 요환에게 전해 달라고 한 지 30분이나 지났다. 강민은 점점 초조해진다.
마침내 걸려온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요환의 목소리 역시 민처럼 흥분하고 있다.
"네가 날 의심했었던 건 이해할 수 있어. 시현씨가 난 아니라고 했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범인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구?"
"요환형도 역시 형 약이라고 생각했구나. 나도 그것 때문에 조언을 구했거든. 그런데 그게 어떤 약인지, 같이 먹으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 점이 포인트인 것 같아!
완전히 뒤통수 맞았어, 형이 약에 대해 얘기해줬을 만한 사람이면 완전히 주변 사람이잖아...... 혹시 태민이면 어떡해?
말해 봐, 게이머들 중에 누구한테라도 형이 먹는 약에 대해 얘기해줬었던 적 없어?"
"없어. 한번도. 그때 술집에 같이 있었던 애들은 몰론이고 누구에게도 어떤 약인지 얘기한 적이 없어."
"그러면 완전히 미궁에 빠지는 건데......"
"잠깐만. 잠깐만, 생각났어."
#3
요환은 회상을 시작했다. 자신이 병원에 약을 가져가서 먹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새 약을 타오던 때- 그는 정말로 몰랐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까 문열고 나오자마자 형 딱 마주쳐서 아주 기절하는 줄 알았네. 형이 서성거리면서 걱정하는 거 보고 간호사들이 우리 사귀는 사인 줄 알았을거야."
"그건 나도 사양이다. 눈이나 좀 붙여."
차가 급커브를 돌아서 그의 머리카락이 창문에 부벼졌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푹 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민이에게 직접 가서 따져 물을까? 아니, 그랬다간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항상 그것 때문에 미치지, 나 혼자만이 아니란 거, 진호, 훈이형, 또......'
언제부턴가 나의 잠은 모두 빼앗겨버린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어두운 존재에게. 그것이 내 마음 속에서 나가지 않을까봐 두렵다.
'강민......'
요즘 정말로 피곤했던 것일까. 요환은 드디어 잠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문열고 나오자마자 딱 마주칠 정도로 문 앞에 서 있었다는 건
진료실 안의 대화, 즉 의사가 요환에게 두 약을 같이 먹을 경우의 위험을 경고하던 그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는 뜻임을-
그를 숙소까지 태워다 주면서 요환이 차 안에서 잠들었다면, 잠깐 차를 세우고 약 봉지를 빼내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4
강민은 그 사실을 전해듣고 나서 요환과의 전화를 잠시 끊었다. 그리고 서지훈의 번호를 눌렀다.
"지오 애들하고 나 술마셨을 때 있잖아, 성준이 쓰러졌던 밤...... 성준이는 왜 초대했던 거야?"
"술값 내기로 한 사람이 시켜서 그랬지 뭐. 갑자기 왜? 나랑 성준이랑 친한 거 몰랐어?"
"아냐, 고맙다 지훈아.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끊을께."
"왜 그래,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형 목소리 좀 듣자고."
그러나 강민은 그대로 끊어 버렸다. 다시 요환에게 전화를 걸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확인 사살이야, 확인 사살이야!
그리고 두 사람은 결론을 냈던 것이다. 누가 그때 성준에게 약을 먹였는지에 관해.
강민이 경찰에 요청한 통화 목록도 때맞춰 나와 주었다. 통화 목록이 없으면 자신이 의심받기 때문에 자신도 사건 관련자라는 강민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통화 목록은 KTF 숙소 팩스로 보내졌다.
그리고 요환은 원하던 증거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강민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고, 약을 먹인 범인의 행적에 대한 자료이기도 했다.
2005년 9월 29일 밤.
그건 꼬깃꼬깃 접혀진 채 요환의 주머니에 들어 있다. 지금 요환은 그것을 펴서 당사자에게 보여주는 중이다.
※작가 코멘트
#1, #2의 시간적 연속성은 37편에서 이어집니다.
#3은 19편에서 나왔던 장면입니다.
19편을 잘 읽어보면 그 부분을 의심할 수 있을 법도 한데 다들 주목하지 않으시더라구요. 덕분에 저는 41편까지 끌어올 동안 한 방의 펀치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밤에 올리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일찍 올리게 됐습니다.-_-
왜 그는 임요환부터 42편과 지상 최후의 넥서스 6편은 다음 주 월요일 밤 10시에 올리겠습니다. 얼마 안 남았죠?
지상 최후의 넥서스 5편이 올라왔습니다. 드디어 게이머들이 진짜 테란군을 지휘해서 진짜 저그와의 싸움에 나서는군요. 제가 <왜 그는 임요환부터...>를 신나게 쓸 수 있도록, <지상 최후의 넥서스>에도 많은 댓글 부탁드려요.^^
링크: 새로 나온 지상 최후의 넥서스 5편 새 창에서 보기
링크: 수요일에 올렸던 지상 최후의 넥서스 4편 새 창에서 보기
링크: 월요일에 올렸던 지상 최후의 넥서스 3편 새 창에서 보기
링크: 지상 최후의 넥서스 2편 새 창에서 보기
링크: 지상 최후의 넥서스 1편 새 창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