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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17 23:32:06 |
Name |
윤여광 |
Subject |
[yoRR의 토막수필.#5]내 인생 오늘만 같아라. |
말 그대로.
아임 낫 오케이. 언제나 그랬지. 21년 인생 살면서 좋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어.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는 좋지 않았냐고? 그 몇 시간으로 하루는 괜찮았어 라고 말하기엔 내 좁디 좁은 그릇으로는 감당이 안되. 적어도 진짜 24시간 동안 내내 웃었다면 그건 괜찮았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또 364일 동안 거지같았던 날들에 묻혀버리거든.
근데. 항상 좋았던 것이 없었던게 나쁘진 않은 거 같어.
적응이 되니까 그냥 그래. 오늘도 이러려나 그러고는 말어. 어릴적과 달라진 게 있다면 주름살 가득한 담배 하나랑 가스가 간당간당한 일회용 라이터 하나. 그거 하나로 하루 기분 나빴던 것 털고 나면 없어. 아무것도. 집에 가서 티비를 보다가 연예인들 나와서 깔깔 대는거 보면 나도 멍청하게 깔깔대면 머릿속엔 아무것도 없어. 참 사는게 장난같지. 이런 일상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게 참 압박이야. 안그래?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내 부모가 나 죽을때까지 옛다 니 밥 하고 언제까지나 가져다 줄 것도 아니고 창문 열고 이것 좀 가져와 봐라 해도 아무도 들을 사람 없어. 하다 못해 똥 싸려고 휴지가 없어도 내가 벌어야 되.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똥싸게 휴지 하나 줘보슈 이러면 주려나. 주긴 주겠지. 대신에 똥 끝이 찝찝하게 이상한 눈초리 하나 휙 남기고 줄게야. 난 그게 참 싫거든. 남들이 나 이상하게 보는거. 근데 나 지금 이렇게 하루 하루 사는거 공중파에 방송 태우면 그거만한 코미디가 없을거야. 그래서 난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이 맘에 안들어.
근데 있지. 그거 맘에 안 든다고 바꾸기가 쉽지가 않더라? 습관이라는게 참 무섭더라고. 남들 보는 앞에서 바지 고쳐 입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거 때문에 여자한테 차이고 머리 긁지 말아야지 하면서 멍청하게 계속 긁다가 중학교 3년 내내 애들한테 왕따 당하고. 참 웃겨. 뭐 고치지 못하는 내 잘못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 작은 습관 하나 때문에 내 사는게 꼬인다는건 너무 잔인한 거 같어. 왜 티비 드라마나 영화 같은거 보면 가끔씩 완전 범죄극 같은거 나오잖아. 그 뭣이냐 자카르타? 김상중씨랑 임창정씨랑 이재은씨 나왔던 영화. 나 박준규씨도 나왔었구나. 거기서 결국에 한 팀은 돈 가지고 외국으로 튀잖아. 난 그거 보면서 쟤들은 저렇게 큰 일을 벌이고도 외려 남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 놓여졌는데 왜 난 머리 긁는 거 하나 때문에 말 붙일 친구 하나 없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지금 생각하면 무지하게 웃기는 소리긴 하지만. 여튼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야. 습관. 진짜 사는데 도움 안되는거 같어. 물론 나에 한해서 하는 말이야. 남들은 뭐 부지런한 습관 하나로 거지에서 어디 회사 사장이니 회장이니 하는 얘기도 종종 들리는데 불행하게도 아니 정확하게 멍청하고 미련스럽게도 나에겐 그런 좋은 습관 같은 게 없어. 단 하나 억지 부려서 꼽아보자면 내가 남들 앞에서 말은 좀 잘해. 잘하는건가? 여튼 내가 뭐라 뭐라 말하면 거기에다 뭐라 면박주거나 반박하는 사람이 없더라. 내 말대로 단체 행동해서 내가 속한 조가 손해 보는 것도 없었고. 1등은 못해도 2등은 했단 말이지. 근데 또 웃기는 건 나 혼자 있을 때는 그런 우연찮은 말빨도 안 나온다? 혼자 있으면 맨날 삽질하고 혼나고 그래. 그것도 되게 웃기는 거 같애. 자기 하나 못 챙기는게 남들 사이에 들어가면 괜히 나서고 싶어하고 뭔가 해주고 싶어하고 그래. 이게 미련한 건지 멍청한 건지. 왠지 멍청하다고 말하는게 좀 착해 보여서 그 쪽으로 생각하려 애쓰는 중이야. 왜 습관 얘기 하다가 이리로 빠진거지? 이래서 멍청하다니까는…끌끌.
하나 만 더 얘기 하자면 남들이 보는 눈. 그것도 내 멍청한 습관 못지 않게 웃기고 재수 없어. 모르겠다. 내가 그런 쪽으로만 격어 봐서 모르겠는데 난 길가는 사람이 나 흘끗 보면 되게 기분 나쁘더라. 그렇다고 그 사람 붙잡고 ‘얌마 너 나 왜 봤어.’ 이러면 동네 깡패로 낙인 찍히는 거니까 관두고. 그냥 길가는 동안 내내 저 사람이 왜 날 봤을까 하는 생각에 다른 생각을 못해. 저 사람이랑 마주치는 순간에 배에 힘을 빼서 불룩 튀어나왔었나 혹은 바지 지퍼를 안 올려서 오늘 입고 나온 검은색 팬티가 보였나 하기도 하고. 하여간 온갖 잡생각이 다 들다가 내가 길 가는 다른 사람 슥 쳐다보면 그제서야 그런다. 아 그냥 옆에 지나가길래 저게 사람이구나…하고 봤나보다. 저 사람도 길 가는 내내 저 시키가 왜 날 봤을까 하면서 고민할까? 맨날 이래. 남에 눈을 이렇게나 신경쓰는 녀석이 눈에 바로 보이는 안좋은 건 왜 그리 골라서 하는지는…그래 내가 미련하고 멍청해서 그렇다는거 진심으로 인정해. 근데 안 고쳐지는 걸 어떻게 해. 팔 다리를 잘라내려니 그 좋아하는 스타도 못하잖아. 최소한 마우스질은 해야 이 기계로 가득한 세상 살 거 아니야. 말이 너무 극단적으로 흘렀나. 미안 미안. 내가 좀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일만 가득한 하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누구나 할 거야. 그렇지? 난 맨날 무슨 생각하냐면. 술 마시고 싶어. 나 혼자 마시는 것도 좋고 내 목숨 같은 친구들이랑 마시는 것도 좋고. 될 수 있으면 같이 마시는게 좋겠지. 난 옆에 누가 없으면 못사는 인간이니까. 이러면서 중학교 3년은 어떻게 살았나 몰라. 여튼. 술 마시면 있잖아. 되게 행복해져. 그게 나랑 알코올이랑 되게 친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항상 좋아져. 근데 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있지. 잠도 안 올 만큼 슬퍼져. 더 마시고 싶은데. 아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난 남잔데 남자가 좋다? 이러니까 왠지 그 뭐냐 홍조가..였나? 그거 생각나네. 뭐 남자라기 보단 친구가 좋은거겠지. 나는 여자랑도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는 친구들이 다 남자라 그냥 남자가 좋다고 하는거야. 갈수록 두서가 없어지네. 미안. 술 마신 것도 아닌데 애가 맨날 키보드만 두들기면 앞뒤가 없어져. 소위 말하는 키보드 워리어 근성이 있나봐.
수습이 안되니까 줄 바꿔서.
애들이랑 술 마시면 있잖아. 되게 기분이 좋아져. 왜 좋아지냐면. 그냥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 그게 되게 단순하면서도 사람이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거거든.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거. 그거를 사람들은 되게 쉽게 생각하더라. 그냥 마주쳤다가 나중에 보자 하고 돌아서면 끝이야. 그러다 내가 혹은 그 사람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차에 치여서 저 세상가면 어떻게 해. 나중이라는게 없는 거잖아. 그 쉽게 생각하던걸 내가 좀 어릴 적에 심하게 디여본 적이 있어서 다행히도 알고 있어. 그 소중한 것을 내가 지금 만끽하고 있구나.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술마실 돈이랑 안주 먹을 돈 몇 푼만 있으면 세종 대왕 몇 백장이 있어도 못 사는 그런 소중한 것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는거야. 아니 몇 푼 돈이 아니라 내 시간 같이 보내고 그 사람 시간 같이 보낸 내가 있으니까 그걸 즐기는 거야. 너무 쉬워서 잊기 쉽지만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 친구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걸 아니까 더 좋은거기도 하고. 여튼 그래. 술 마시면 좋아. 아니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좋아. 내가 살아있는걸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거든. 그게 너무 짧아서 아쉽고 서럽고 그래. 다 사는게 그렇지 뭐.
오늘도 하루가 끝났네. 오늘은 내 소중한 친구 한 놈 생일이었는데 축하한다고 전화 한 통 못했어. 그 놈이 좀 바빠서 전화를 못받네. 있다가 자기 전에 꼭 해야겠어. 바쁘더라도. 생일 축하한다고. 그래도 나란 인간 친구라고 기억하고 있어줘서 고맙고 머릿속에 기억만 하는게 아니라 가슴속에 넣어두고 품어줘서 더 고맙다고. 어이. 지금 조금은 시비조에 기분 나쁘면서 그럴듯한 얘기에 홀려서 여기 마지막 줄을 읽고 있는 당신. 늦었지만 그 쪽도 전화 한 통화 해봐. 오늘 하루 좋았든 나빴든 그래도 지나갔잖아. 정리는 하고 자야지. 뭐 전화만이 마무리 수단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날도 춥고 한데 속 좀 뜨뜨해지게 아무나 싸잡아서 전화 걸어봐. 뭐 해. 아무 말이나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랑 간단하게라도 하고 자잖아? 되게 좋아.
이쯤 되면. 제일 처음 내가 했던 말은 바꿔야겠지?
그래도 뭐. 오늘 하루 괜찮았어. 내 인생 오늘 하루만 같아라…하고. 그리고 씻고 자자. 그래야 내일에 오늘 하루 자기 전에 나마 내 인생 오늘만 같아라 하고 자는지 확인해 보지.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날은 편하게 눈 감는 날이 오겠지. 그래도 내 인생 괜찮았다고. 그 날까지. 살자. 나에게 남은 하루 하루가 어떤 날인지…그거 하나 확인하는 재미 빨리 느껴보고 싶어서 자야겠어.
다들 잘 자. 건방진 내 얘기 끝까지 봐줘서 고마워. 말투가 맘에 안 든다고 화 내지는 말아줘. 가끔은 이런 밑바닥을 질질대는 글도 봐야 눈도 높아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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