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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17 15:02:45 |
Name |
paramita |
Subject |
'人山人海' |
안녕하세요...PGR회원 여러분..잘 들 지내셨는지요...
그 동안 PGR은 매일 들어와서 글은 읽고 있으나 그다지 바쁘지도 않은 제가 이상하게 글은 잘 안 써지더라구요...정말, 오랫만에 글을 남기는 것 같네요...
어제, 부산 광안리에서 했었던 '불꽃쇼'를 보고 와서 느낀 소회를 한 번 적어봤습니다..
한 마디로 '인산인해' 이 말로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더군요...-.-;
다들 감기 안 걸리게 유의하시고, 한 해 마무리 잘 들 하시길 바랍니다....
지상 최대라는 ‘APEC 개최 기념 해상 불꽃쇼’를 보기위해 아내와 친구내외 등 우리 4명이 부산 광안리를 찾은 시각은 16일 오후 5시30분. 행사 시작시간(8시30분)보다 3시간이나 일렀다. 우리 딴에는 나름대로 일찍 왔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환상은 도착하자마자 깨져버렸다. 이미 광안리 일대는 벌써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미리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음식점 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일부는 예약이 다 끝나 입장조차 불가했다. 결국 우리는 가까스로 한 음식점에서 30여분이나 기다린 끝에 허기를 채울 수가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행사시작까지 2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적당한 곳에서 시간을 때우려 했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PC방 등 사람들이 갈 만한 곳은 대부분 진을 치고 있거나 몇 십분 씩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백사장 주변에서 2시간 동안 서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나 하고 광안리 일대를 돌아다녔으나 역시나 였다. 행사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주변 도로는 엄청난 교통체증이 시작됐고 인도와 바닷가 주변은 부산 및 인근 도시에서 모인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근 한 PC방에서 자리를 잡은 우리는 행사 시작시간 전까지 1시간 여를 때울 수 있었다. 하지만 PC방 문을 열고 밖을 나온 순간 우리의 입은 떡 벌어졌다. 도로는 이미 통제된 데다 왠 만한 중도시 인구 규모인 50~60만명(추산)이 모인 광안리 일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제대로 비집고 들어갈 틈 조차 없어 보였다. 우리 4명은 행여나 잃을 까봐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속을 헤집고 백사장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 썩 좋은 자리는 아니나 그나마 그 정도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성공한 것이었다. 멀리 광안대교가 아름다운 조명속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 옆으로 APEC 회의장인 동백섬 누리마루 하우스가 진주처럼 밝은 빛을 뿜어내며 밤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행사는 간단한 식전행사에 이어 외교부장관과 부산시장 등의 지루한 멘트가 끝난 뒤 8시40분쯤 시작됐다.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광안대교 앞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북선에서 순간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은 광안대교 상판에 ‘APEC’, ‘BUSAN’이라는 문구로 바뀌었고 몰려든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어 바지선 10척에서 쏘아 올린 폭죽과 함께 광안대교 주탑에서 발사한 레이저 및 특수영상, 조명이 갈매기와 현수교 연화 등 다양한 3차원 입체영상을 그려 내자 바라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과 환호성을 질러댔다.
나와 아내 역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우와’, ‘우와’만 연발했다. 정말 일찍 와서 오랜 시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을 만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아니 그 보다도 더한 정도의 수고는 충분히 해볼 만한 정도로 환상 그 자체였다. 총 15억원을 들여 8만발을 쏘았다는 이 불꽃쇼는 정말 지상 최대라는 말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낸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하지만 행사 하이라이트인 ‘나이아가라 폭포’(불꽃 직경 600m에 달하는 초대형 폭죽이 30여m 아래 바다를 향해 마치 물줄기 쏟아지는 내리는 형상)는 볼 수 가 없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는 끝나기 30분 전인 9시쯤 서둘러 나가기로 하고 불꽃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도로를 꽉 채운 인산인해 물결을 뚫고 가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 때부터 우리처럼 일찍 나가려는 사람과 자리를 잡고 서서 불꽃쇼를 구경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도 들어오는 사람 등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밀지마’, ‘참고 기다려’, ‘XXX야 죽을래’, ‘XXX야, 비켜’ 밀고 나오는 사람들과 진을 치고 구경하는 사람들간의 고성 및 욕설과 몸싸움이 오고 갔다. 여기에다 어린 아이들이 울음소리와 나이 드신 노인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나오며 점차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마치 전쟁터에서 서로 피난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 같았다.
나와 우리 일행 역시 중간에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아내는 체격이 작아 인파에 묻혀 안 보일 정도였다. 아내는 “숨 막혀 죽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 역시 인파 속에 끼여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아내 손을 꼭 잡고 “참고 기다려보자”고 안심시키는 말 밖에는.
그 순간 그 많던 경찰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아니 있어도 사실상 그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큰 행사에 당연히 이 정도의 인원이 몰리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최소한 되돌아 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길 정도는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인파 속에 끼인 채 우리는 불꽃쇼가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만과 외침은 더욱 커져 만 갔다. 사람들이 더욱 밀려들면서 숨 조차 제대로 못 쉬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순간 얼마 전 있었던 상주압사사고가 불현 듯 떠오르며 “이렇게 해서 사람이 죽는구나”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엄습했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초연해 진다고 했던가?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을 편안히 즐기기로 했다. 그 순간에는 그 방법이 최선책인 것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화려하게 펼쳐지며 폭죽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절정에 이른 뒤 행사가 끝이 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와 아내는 동시에 “살았다”고 외치며 불꽃놀이를 본 것 보다 더 기뻐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도로가 통제돼 차편도 없는 데다 지하철마저 운행을 안해 차를 세워둔 해운대까지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갔다.
수 십만 명이 한 꺼 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광안리 일대 도로의 교통체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들의 행렬은 마치 얼마 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피해로 피난 가던 행렬과도 같았다.
우리는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 무려 2시간 동안 찬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하지만 걷는 동안 그리 힘들 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죽음 일보직전까지 가서 살았다는 안도감이 발길을 가볍게 한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과 상처투성이가 된 다리, 찬 바람 덕에 얻은 감기까지 몸은 만신창이가 됐으나 그 보다 더 값진 추억을 얻은 것 같아 마음만은 뿌듯했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와 그 순간을 같이 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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