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5/11/15 01:04:58
Name 雜龍登天
Subject 느낌의 단편들(노신의 글)
안녕하세요.


오늘도 노신 선생님의 글을 한편 다시 올립니다.
글을 올릴수록 점점 조회수와 댓글수가 줄어드는 압박이 있지만
그래도 뭔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잘 읽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읽는 기분이 참 좋더군요.
이런 기분에 글을 올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는 글 솜씨가 없는 관계로 앞으로도 노신 선생님의 글로 무임승차 하려고 합니다.

이번글은 짤막한 느낌의 단상들을 모아 놓은 글입니다.
보통 글의 가치와 독서의 효용은 글쓴이와 읽는이의 양자의 역량에 모두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글쓴이의 역량이 너무 뛰어나면 읽는이의 해석하는 역량이 발휘될 폭이 줄어드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노신 선앵님의 글은 글쓴이의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읽는이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이 큰 독서의 즐거움이 되곤 합니다.

아..그리고 저번 글에 씨리즈물임을 표시해주면 쉽게 찾아서 볼수 있겠다고 리플 달아주신 분이 계셔서 제목에 표시를 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느낌의 단편들>


1
꿀벌은 침을 일단 사용하면 자기 생명을 잃는다.
시니스터(cynist)는 침을 일단 사용하면 자기의 생명이 연장된다.
그들은 이처럼 다르다

2
J.S 밀은 독재는 사람을 냉소자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공화제가 사람을 침묵자로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3
전쟁에 나가려면 군의관이 되는 게 좋다.
혁명운동을 하려면 후방의 일을 보는 게 좋다.
살인을 하려면 인간백정이 되는 게 좋다.
그래야 영웅이면서도 안전하다.

4
명망있는 학자와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말 가운데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척해야 한다.
너무 모르면 업신여기게 되고, 너무 잘 알면 미워한다.
군데군데 모르는 정도가 서로에게 가장 적합하다.

5
세상 사람들은 지휘도(指揮刀)란 무인들만 지휘하는 줄로 안다.
지휘도가 문인도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6
이전에 잘 살았던 사람들은 복고를 주장하고,
현재 잘 사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를 주장하며,.
아직 잘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혁신을 주장하다.
대체로 이러하다. 대체로!

7
그들이 말하는 복고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몇 해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결코 우, 하, 상, 주의 고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8
속지 말자.
자칭 도적은 조심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풀이하자면 그는 착한 사람이니까.
자칭 성인군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반대로 풀이하자면 그는 도둑이니까.

9.
아래층에서 한 사내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 옆집에는 오디오를 틀고 있다.
건너편 집에서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윗층에서는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웃고 있다.
마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강 위에 떠있는 배에서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딸이 통곡을 하고 있다
인류의 슬픔과 기쁨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내게는 단지 그들의 법석을 떨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10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지나가면 발바리가 컹컹 짖어댄다.
그러나 이것이 꼭 개주인의 뜻이거나 주인이 시켜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발바리는 종종 그의 주인보다도 더 사납다.

11
누더기 옷을 입지 말라.
위반자는 공산당으로 몰릴 날이 불원간 닥칠지 모른다.

12
혁명. 반혁명. 비혁명.
혁명가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반혁명가는 혁명가에게 죽는다.
비혁명가는, 혁명가로 간주되어 반혁명가에게 죽든지, 반혁명가로 간주되어 혁명가에게 죽든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혁명가 또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혁명, 혁명의 혁명, 혁명의 혁명의 혁명, 혁명의 혁명의 혁명의 혁명........

13
사람이 적막을 느낄 때 창작은 탄생한다.
마음 속이 깨끗할 때 창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창작의 뿌리는 사랑이다.
양주(楊朱:전국시대 사상가, 극단적 이기주의 주장)에게는 저서가 없다.
창작은 자신의 마음을 적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보는 사람이 있기를 희망한다.
창작은 사회성을 지닌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친구나 애인에게.

14
사람들은 흔히 중을 증오하고, 비구니를 증오하고, 회교도를 증오하고, 기독교도를 증오한다.
그러나 도사(道士)는 증오하지 않는다.
이 이치를 이해하면 중국의 태반을 이해하는 것이다.

15
무릇 당국에 의해 <처단>되는 자는 다 <죄>가 있다.

16
반팔만 봐도 하얀 윗팔을 상상하고,
곧 나체를 상상하고,
곧 성기를 상상하고,
곧 성교를 상상하고,
곧 난교를 상상하고,
곧 사생아를 상상한다.
중국인의 상상력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이렇게 약진적이다.              (1927년, <소잡감> 중에서)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복숭아
05/11/15 01:41
수정 아이콘
루쉰 [魯迅(노신), 1881.9.25~1936.10.19]
-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노신 선생님..
그의 문학은 잘 모르지만 그가 걸었던 길이나 그의 성품은 참 좋아합니다.
날개달린질럿
05/11/15 04:32
수정 아이콘
은근한 팬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 많으니 부디 중단하지 마시길....
풍류랑
05/11/15 04:44
수정 아이콘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루쉰->아Q정전 밖에 떠오르지 않는 저로써는 이런 글 정말 좋습니다~!
유신영
05/11/15 07:56
수정 아이콘
오~ 아주 맘에 드는 조각들이군요~
My name is J
05/11/15 08:12
수정 아이콘
무시무시해요.....
음........역시..

잘읽었습니다.
youreinme
05/11/15 11:4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05/11/15 13:5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성의준
05/11/15 23:16
수정 아이콘
와 9번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8451 스타크래프트하면 스트레스 쌓인다? [62] 청동까마귀5583 05/11/15 5583 0
18449 대구 지하철 참사 이야기라고합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13] ForChojja3998 05/11/15 3998 0
18448 아버지의 눈물 [8] 은하수3513 05/11/15 3513 0
18447 협회 - esFORCE 그리고 피지알 [48] homy5026 05/11/15 5026 0
18444 [잡담]파이터포럼, KeSPA에 폭탄드랍하다--약간의 기우. [133] Daviforever7362 05/11/15 7362 0
18443 esFORCE...Kespa 에 칼을 빼들다?? [28] 삭제됨5072 05/11/15 5072 0
18437 황박사님의 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비판한다. [42] 파란별빛4682 05/11/15 4682 0
18436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8] lovehis5300 05/11/15 5300 0
18435 촌지 [39] 투덜이3947 05/11/15 3947 0
18433 So1 리그 시작 전에는 박성준 선수의 부진을 바랬습니다. [27] Radixsort5498 05/11/15 5498 0
18430 뜬금없는 책 읽기 릴레이 제안.. [27] kim3518 05/11/15 3518 0
18428 느낌의 단편들(노신의 글) [8] 雜龍登天3923 05/11/15 3923 0
18427 눈을 떠라 삼지안 [13] 삭제됨4138 05/11/15 4138 0
18426 갑근세 26%인상 월급쟁이가 봉이냐?(의도적인 여론조작?) [43] 어딘데4302 05/11/14 4302 0
18425 과선배를 좋아하고있습니다 .. [45] journey214190 05/11/14 4190 0
18424 다른선수들과는 다른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박서....그래서 더욱 불안한 차기시즌 [17] Steve_BurnSide4187 05/11/14 4187 0
18423 사랑의 기억 지우시겠습니까? <이터널 선샤인> [22] 마리아4104 05/11/14 4104 0
18422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스타리그 외의 리그들,그리고 e스포츠... [14] legend3698 05/11/14 3698 0
18419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37편 [19] unipolar6792 05/11/14 6792 0
18417 [관전후기] G.Ovs한빛 - 개념잡힌 형태씨 [23] 호수청년4613 05/11/14 4613 0
18416 전략게시판에 쓴 발리앗 체제에 대한 사과문겸 실험결과... [23] newromancer3744 05/11/14 3744 0
18415 wwe... [25] 타잔3850 05/11/14 3850 0
18414 날라,다시한번 비상의 날개를...... [22] SKY924189 05/11/14 418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