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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04 17:00:51 |
Name |
Paul |
Subject |
Zerobell! 무대를 지배하라 |
어쭈.. 귀여운데..
조명 아래서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이쁘장하고 어려보이는군. 뽀야티 뽀얀 피부에 미끄러운 목선..
흑과 백의 단조로운 옷을 선택한거 보니 굉장히 쿨해 보이는군. 자.. 찬찬히 훑어볼까.
그래 왜 나의 제자가 그에게 넘어갔는지 알 것도 같군. 도도해 보이는 입술, 차가운 피부. 특별한 프로토스족이군. 무언가 인위적이고 어색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어. 긴장한걸까.
그의 추종자도 제법 보이는군. 프로토스의 계절 가을. 나의 세력에 반대하는 연합 세력의 봉기가 일어나곤 했었던 시기라는걸 익히 알고 있지만 이번 규모는 만만치 않은걸. 풋.
자네 아는가 ? 내겐 두려움이란게 없다네. 두려움은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걸 일찍이 깨우쳤고 그 깨달음이 황제의 자리로 이끌어 주지 않았던가. 나를 가르치는건 바로 시간. 시간만 흘러가면 승리는 나의 것이야. 황제의 이름으로 응징하겠노라.
....
젠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황제 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거야.
눈은 어둡고, 귀는 혼란스럽구나. 희미하게 들리는 외침 "오영종.. 오영종.. 제로벨.. 제로벨.. ". 세상은 날 그렇게 불러왔지.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는 편이 낫겠어. 아 이리도 외롭고 짖눌리는 자리였던가. 뜨거워진 심장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뛰는구나. 그토록 갈망하던 왕좌를 향한 마지막 관문에 왔건만. 다 필요없어. 모든게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이 느낌은 대체 알 수가 없어.
대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이건 아니야...
지금 황제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주문을 걸고 있어. 넘어가면 안돼. 두려움은 내면에만 존재하는 허상일 뿐야. 자 이제 눈을 떠. 황제군의 규모를 직접 보아라. 소름이 돋는군. 예상했던 만큼이야. 그래 이제 보이기 시작했어. 황제! 저기 있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네.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아. 역시 그의 존재 자체가 전설이야.
자 난 이미 알고 있어. 당신이 눈빛만으로 나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걸. 오랫동안 이를 고심했지. 그래서 필살의 전략을 준비해왔어. 당신과 당신의 70만 대군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군. 지금 보고 있는건 Hallucination으로 만들어진 형상이란걸. 이건 내가 아니야. 본형은 너의 등 뒤에서 매복중이거든. 이 사실을 알아차릴 때 즈음이면 이미 차가운 검이 너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을거야 하하. 황제여! 그대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전략 그대로 나 역시 너의 자리를 노리는거야.
완벽하게 준비해왔지만 나를 감싸고 도는 이 불안한 느낌은 도무지 감출 수가 없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 너를 이토록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왔는가.
....
지금부터 정확히 20년 전 85년 가을. 학교에선 합창대회 열기가 한창이었다. 거의 유일한 행사였기 때문에 모두가 열심히 준비했다. 각 반마다 필살카드 하나씩 쥐고 그날을 기다렸다. 우리는 성가곡 "모퉁이 돌(Corner stone)"이라는 제법 어려운 선곡을 했다. 반주를 맡은 나는 사실 반주 뿐 아니라 총괄지휘를 했다. 부족한 아이들을 하나씩 남겨 지도하기도 했고 잘하는 친구들을 끊임없이 독려했다. 우리는 100% 완벽한 준비를 한 것이고 대망의 그 날 무대 위로 올라섰다.
연습때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던 우리팀이 긴장한 탓인지 음정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가 반음이 플랫이 되었고, 반주 따로 노래 따로 형국이었다. 이쯤되면 사실 머리 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지만, 한번 더 마음을 추스렸다. "그래 이까지꺼.. 반주를 맞추면 그만이지.." 나는 연습해왔던 반주와 달리 팀의 떨어진 음정에 맞는 코드로 조를 바꿔 즉흥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까지 마무리하고 나서 다른 이들은 알 턱이 없었다. 다만 이를 알아챈 몇몇 선생님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계신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대상을 거머쥐었다. 수업까지 빼먹으며 연습을 시킨 나를 질책하던 담임선생님의 태도도 달라졌고.. 그 짠돌이께서 짜장면까지 하사하시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사실 예상했다.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서면 음정이 플랫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연습을 하진 않았지만 머리속으론 조를 바꿔 연주할 수 있을거라는 준비를 해 둔 셈이다. 무대 위의 연주는 연습처럼 될 수가 없다.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예측하고 준비해 온 자가 무대 위에서 그나마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거다.
오영종! 너의 필살기가 반드시 통할 수는 없다. 너에게 가장 큰 적은 탱크, 벌쳐, 마인이 아니다. 바로 네가 지휘하고 있는 프로토스 부대의 질럿, 드래군, 다크템플러, 리버다. 거대한 무대 앞에선 그들이 네 명령을 묵살하고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른다. 준비해야 된다. 그들이 어느 곳으로 튀어나가던 그걸 이끌어 줄 수 있는 건 바로 네 자신 뿐야. 100% 완벽한 준비를 했다고? 웃기지마라. 무대는 다르다 분명히 너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아는가.. 황제에겐 무대가 없다. 그는 노련하다. 아니 노련함을 넘어 그는 입신의 경지에 이른 자다. Hallucination 이란 너의 필살 전략이 통하게 하려면 자신을 다스려라. 연습 때의 움직임과 무대위의 움직임이 일치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건 그 예측하지 못한 다른 움직임마저도 너의 전략으로 활용해야 한다는거다. 손을 다스리기 전에 마음을 다스려라.
승리를 거머쥐더라도 그건 네가 연습한 모습 그대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연습 때와 다른 돌발상황이 펼쳐졌을 때 얼마나 완벽한 대처를 해내느냐가 승부의 열쇠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준비이다.
눈을 떠라. 자 이제 보이지 않는가. 너를 바라보고 있는 애정 가득한 눈빛들. 잘했다.. 힘든 승부였지만 니가 승자다. 황제군의 모습도 보아라 그들도 너의 완벽한 모습에 승복하고 경의를 표하고 있구나.
프로토스의 영원한 우승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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