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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0/29 16:57:20
Name unip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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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30~32편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30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9. 26.


If I were your appendages
I'd hold open your eyes
So you would see
That all of us are heaven sent
There was never meant to be only one
To be only one

-Incubus "Megalomaniac"중에서


#1
얄궃게도 그의 하나뿐인 목숨을 구한 사람은 이 드센 아가씨였다.

지금 그는 하필이면 그녀에게 빚을 졌다는 것을 불운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다른 모든 것은 행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진호는 독을 마시지 않았다. 때마침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위험을 알 수 있었다.


진호는 재빨리 판단해야만 했다. 그가 아는 한 동수, 연성, 성준, 요환, 민, 그리고 자신이 진실에 접근해 있다. 그리고 앞의 세 사람과 자신이 공격을 받았다. 이 넷의 공통점은 외부와 연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사했던 자신이 타겟이 된 이유는 진실을 알리려는 속마음을 노출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감독님 방에도 도청장치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감독님까지 그들과 한통속인 걸까?'

동수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를 둘러싼 미스테리를 밝히려고 애쓰던 정감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감독은 선수들 틈에 끼려고 애쓰며 동수의 집까지 찾아갔었다. 진호는 고개를 흔들어 정감독에 대한 의심을 지웠다.

'내 잘못이야. 너무 경솔하게 말을 입밖에 냈어. 혼자 짊어지고 싶다느니, 혼자 힘만으로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느니, 아는 사람이 들으면 딱 눈치챌 만한 말들만 했어. 민이가 알면 죽으려고 환장했냐고 길길이 뛰겠군.'


진호가 핸들을 두 손으로 잡은 채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시현이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진호는 비로소 생명의 은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수님, 큰일날 뻔했어요. 누가 맘먹고 테러한 것 같으니 앞으로 계속 조심하세요."

"정말 고마워요. 아까 물 마시지 말라고 뺏지 않으셨으면 꼼짝없이...... 덕분에 살았네요. 어떻게 휴지에 양배추즙 밴 걸 보고서 물이 이상한 걸 아셨는지 대단해요."

"제가 원래 아는 척에 참견에 많이도 끼어들어서 욕 먹곤 하거든요. 나쁜 버릇인데 그게 처음으로 한 건 했네요."

진호의 감사를 받자 시현이 그 큰 눈을 반쯤 감다시피 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렇게 확보한 인연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리로 가득차 있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쫓아왔어요. 제 친구가, 어떤 마스크 쓴 남자가 홍선수 화장실 간 사이에 테이블 옆을 왔다갔다 하는 걸 봤대요."

"뭐라구요?"

"워낙 남한테 관심이 없는 애라,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난대요. 제가 식당에 있던 사람들 다 붙잡고 물어봤는데 그때 워낙 사람이 많았던지라 다들 모르겠다네요. 점심 때의 송호장은 누가 눈뜬 사람 코 베어간대도 모를 만한 곳이예요...... 아무튼 홍선수 스토커나 게임에 미친 테러범이 고의로 한 짓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긴장이 진호의 온몸을 휘감았다.

'동수형 메일에 보면 놈들이 미행까지 한다고 하는데,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물에 독약을 타는 건 일도 아니겠지.

성준이도 이런 식으로 당했을까? 아니, 그때 술집엔 우리밖에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2
아무것도 모르는 시현은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 주길 기대하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진호는 드디어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말을 꺼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서로 전화번호를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래가지구 그 남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뭐 알아낸 게 있다던가 하시면 연락주셔야 하잖아요 저도 병원에 계신 분 한 명 알고 있으면 성준이 보러 갈 때도 좋을 거 같구 그래가지구......"

시현은 계속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시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듣던 대로 말이 빠르신데요?"


아차 싶었다. 진호는 방금 한 말을 다시 하려다가 그냥 전화기만 내밀어 버렸다.

자신 역시 그녀에게 번호를 찍어 주는 동안, 그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지는 손을 느꼈다. 정말 무섭게 들이대는 아가씨군, 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진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여자가 아니었다.

"요환이형!"

T1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져 병원을 떠난 뒤 홀로 주차장에 온 요환이 진호와 시현을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요환은 시현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고, 진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해하지 마셔. 오늘 처음 만난 내 팬이야. 어쩌다 도움을 좀 받아서 잠깐 얘기하고 있었어."

"숙소 무단 이탈까지 한 녀석이 무슨 도움을 받았길래 전화번호를 다 따는데?"

"그게요, 이상한 사람이 홍선수 물에 독극물을 타는 바람에......"


말하지 말라고 열심히 손사래를 쳤지만 시현이 이미 다 말해 버린 뒤. 표정이 싹 굳어져 버리는 요환 앞에서 진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젠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둘러대 볼 틈도 주지 않은 채 요환은 미친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그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요환의 그 눈빛이 진호의 가슴을 죄어왔다. 형은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요환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그의 시선은 진호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검은 대형차에 꽂혀 있었다. 진호는 이제 요환의 눈빛뿐만 아니라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주먹을 움켜쥔 그에게서 진호가 읽어낸 것은 공포가 아닌 분노였다!

"들어가, 빨리!"

요환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진호를 조수석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3
"그 좋은 숙소 두고 나와서 고작 이런 여관에서 지내고 있는 거냐?"

"곧 다른 데로 옮길 거야."

진호는 침대에 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요환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채 미친듯이 차를 몰았을 뿐이었다. 일부러 복잡스러운 길로 들어서 한참을 이리저리 달린 후에야 그는 진호가 머무는 곳을 묻고 차를 돌렸던 것이다.

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진호의 목에선 그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형이 내가 위험에 빠진 걸 알았어, 이제 형은 화를 내겠지. 하지만 위험을 자초한 건 나 자신인데 뭐라고 변명할 수 있겠어.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아, 기자님이시군요, 제가 사정이 생겨서 말인데요,"

요환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전화를 끊으려던 진호는 곧 폰을 뺏겨버렸다.

"여보세요? 저 임요환입니다."

"형!"

"그쪽은 기자십니까? 진호 아무말도 못하겠답니다. 이제 진호랑 연락하지도 마십쇼."

딸깍 닫히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침대 위에 내던져졌다.

"내 전환데 왜 형이 그렇게 끊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널 죽이려 들 거야. 숙소에서 도망치기까지 하고, 얼마나 티를 냈길래 놈들이 바로 알고 따라붙니? 날 잡아 잡수 하니까 그렇게 시원해?"

진호는 차마 요환을 바라볼 수 없었다. 형은 상욱이를 시켜 조심하라고 전해주기까지 했는데 난 결국 폭로하겠다고 나섰으니. 누구에게도 아는 티 내지 말라고 당부하던 형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진호는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형,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잖아. 이렇게 계속 감시당하고만 있을 거야? 폭로하려던 사람들이 다 나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계속 쉬쉬하고만 있으면 절대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아."

"폭로하고 나면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다고? 우리가 가진 증거는 고작 조작된 맵들 뿐이야. 진짜 무서운 건 그놈들이 우릴 감시하고 연성이랑 성준이를 해쳤단 사실인데, 증거도 없이 씨나 먹힐 것 같아?"

"일단 이슈를 만들면 경찰이 조사를 시작하......"

"경찰? 잘 들어, 힘을 가진 쪽은 그쪽이야. 대기업이 셋에, 방송국 둘, 어쩌면 팀 관계자들까지 가담하고 있을 수도 있어. 묻혀, 묻힌다고! 그놈들 이제 너 하나 또라이 만들고 다 덮을 거라고!"


"......형? 대기업이 셋이라니? 팀 관계자들이라니?"

"상대가 50게이트 하고 있는데 저글링 한 마리 뽑아서 보낼 셈이냐? 홍진호, 이제 직접 저글링 한 마리 되어 장렬히 산화하겠다?"

"말해 봐! 형 알고 있는 것 모두!"

"너한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지금 누가 듣고 있지 않다고 해도 내가 여기서 널 만나고 있는 게 노출된 이상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알아?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았으면 네 차가 어떻게 되었을 지 몰라. 그 검은 차가 따라가는 이상......"

"대체 형은 적군이야, 아군이야? 뭘 더 아는 거야!"

침대에서 일어선 진호가 요환의 두 팔을 붙들고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요환은 가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를 붙잡았다.


"너 강민하고 무슨 얘기라도 했니?"

"형이 우리의 적이라고, 민이가 그 얘길 했어. 지금 다 말해, 그렇지 않으면 나 민이 말을 믿어버릴 거야."

요환은 무어라고 대답하는 대신, 흥분한 진호를 단단하게 붙잡아 진정시켰다.

"나 만난 얘기 민이한테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어. 절대로 KTF숙소로 돌아갈 생각 마라."

"왜 그래? 형, 우리 팀도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연성이에게 손을 댄 사람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 숙소 안의 누군가였어. 네가 돌아가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 없어."

진호는 침대에 주저앉아 버렸다.

"......여기엔 하룻밤도 더 있어선 안돼. 짐 싸서 바로 대전 집으로 들어가. 내가 연락할 때까지 한 발짝도 나오지 마."


문을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요환이 떠났다.

진호는 힘없이 쓰러지면서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제 그는 다시 물러서야만 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포기. 그것을 택해야만 했다.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31편
(원문은 BGM있음)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10. 1.


#1
2005년 8월 27일.

수많은 사람들이 긴장 속에 기다리던 듀얼 F조의 경기가 있었다.

마인드컨트롤로 퀸을 빼앗아 인스네어를 써서 해설자들이 언제 저런 패치가 됐냐며 오류를 남발하게 만든 강민이었다. 그는 상기된 두 뺨의 붉은 빛을 누그러뜨릴 틈도 없이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그리고 결과는 마재윤과의 경기를 묻히게 했다.

5시즌째 탈락한 그의 스토리는 차재욱에게 쏟아지는 조명과 대비되어 더욱 암울하게 보였다. 원래 승부의 세계가 그런 법이다. 아비터까지 조합하고 프로토스의 거의 모든 마법을 보여주던 그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돌아온 강민은 눈을 감고 계속 누워만 있다. 한참을 누워 있던 강민이 전화기를 들었다. 상욱아, 요환이형한테 나 오늘 도저히 못나가겠다고 해. 나 형을 피하는 거 아냐. 오늘은 형이랑 한판 벌일 날이 아니다.

막 머리를 감은 정석이 수건을 뒤집어 쓰고서는 용호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위로의 말을 건넬 생각도 버린 채, 단지 강민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용호는 민에게 무슨 말을 걸려고 했지만 정석의 눈짓을 보고 그만두었다. 수건을 머리에 문지르고 있던 정석이 그에게 속삭였다.

"용호야, 그냥 형 혼자 있게 냅둬라."

"이럴 때 진호형이라도 있어주면 좋을 텐데, 도망나가선 며칠째 돌아오질 않고......"

두 사람의 대화에 불편함을 느낀 민이가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나가자 무슨 생각인지 정석이 갑자기 수건을 집어던지고 따라갔다. 그리고.


"행님! 화이팅!"


정석이 두 팔을 손 위에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부산 사나이의 갑작스런 애교에 기습을 당한 강민은 걷다 말고 거의 엎어지다시피 했다. 그는 한참을 웃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 웃겨서 그러지도 못하고, 그는 비틀거리면서 사라졌다. 정석은 거의 존경하는 듯한 눈빛의 용호를 민망한 듯 외면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이제 민이햄의 테란전을 기대해도 좋을끼다, 이제부턴 모든 테란을 윤열이라고 생각하면서 경기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야 강민답지 않겠나? 이게 또 다른 시작이란 말이다."


정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수건을 집더니 젖은 머리카락을 영화의 한장면처럼 멋지게 털어냈다.


#2
대전 집에서의 생활조차 불편할 줄은 몰랐다. 그가 여관 생활을 하는 동안 그를 잡으러 내려왔던 정수영 감독 때문에 집에서는 걱정이 대단했다. 어머니만 남겨두고 출국할 예정인 형은 바빴고, 진호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온갖 말로 둘러대기를 하루 세 끼 먹듯 똑같이 반복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죽지 못해 밥을 먹는다는 그 흔한 푸념과 똑같은 심정이 되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곤 했다. 그렇게 한번이라도 연습을 해야 마약처럼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다.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고민으로 밤을 지새는 날들이 이어졌다.


메일함을 보여주며 강민은 말했었다.
동수는 절대로 가스회사 직원을 사칭한 시정잡배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주한 계획적인 범죄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요환은 분명히 범인을 도왔거나 아니면 최소한 방관했을 거라고.

이 위험한 추리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게임 조작의 실상을 동수가 정리해 둔 자료에는 연성 윤열 병민을 비롯한 많은 게이머들을 불리하게 조작한 게임이 올라 있었지만, 유리한 쪽으로 조작된 것이 단연 많은 게이머는 바로 요환이었던 것이다.

당사자 그것을 원했는지 아니면 반대했는지, 또는 애당초 알지도 못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 것을 어쩌랴. 그 나쁜 작자들이 원한 게 임요환의 승리라는데.

'하지만 그것만으로 형을 의심할 수는 없어.'

요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오래였는가. 애증을 넘어서 이제 끊을 수 없는 정이 생길 만한 시간이었다. 애당초 그을 의심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민이의 믿음이 너무나 확고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놀라운 속도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확신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했던가.

처음 진호에게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던 날, 강민이 했던 비수 같은 말들이 이제 진호의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고 있다.


#3
<"죽지 않고 멀쩡히 돌아다니면서 게임 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이 놈들과 타협했다고 단정짓지 마. 민이 너도 멀쩡하잖아!">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마 성준이와 연성이를 말렸기 때문일거야. 변명이래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네 말대로 요환이형이 이미 다 알고 있다면 형에겐 변명도 없지. 동수형이 메일에다 쓴 '나와 같이 폭로하기로 했던 T1 게이머'는 형 아니고 누구겠어?">

<"메일이라니? 너 동수형 메일함 풀어내기라도 한 거야?">

<"그래, 내가 그 메일함 패스워드 풀었다. 얘기할 수 없었던 사정 다 설명했으니까 이해하겠지. 어쨌든 동수형이 T1숙소가 24시간 감시당한다고 쓴 메일이 보낸 편지함에 남아 있어.">

<"세상에, 풀었단 말이야? 그걸 너 혼자만 알고 너 혼자만 봤다고? 왜 요환이형이 널 믿지 말라고 했는지 알만하다!">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앞뒤를 따져 보자, 연성이가 처음 사실을 알았던 때는 출국 일주일쯤 전이야. 바로 나한테 의논하러 전화했었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이 나거든.

그런데 동수형은 T1숙소에 카메라가 이미 올해 초부터 설치되어 있었노라고 메일로 남겼어. 시간상 그 훨씬 전이란 말이야.

그럼 그땐 도대체 누굴 감시하려고 CCTV를 돌렸던 거겠냐?">

<"......">

<"처음엔 그게 궁금했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 도대체 T1의 누가 또 알길래 이미 그때부터 감시를 하고 있었을까 하고 말야. 그런데 네가 얘기해줘서 이제야 알았어. 요환이형 때문이었군.">

<"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T1 게이머가 정말로 요환이형일까?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닐 수가 없지! 두 사람이 세운 계획 때문에 한 사람은 죽었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그 자리에 마침 함께 있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남았다? 방으로 도망가서 신고까지 하도록 내버려 두고 범인은 그냥 나가 버렸다? 설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진호는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까지 화장실 문 손잡이를 돌렸다. 나가버렸다. 워낙 허둥대고 있어서, 문 앞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던 정석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부딪쳤다.


그는 그대로 쓰러져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가 정신을 제대로 붙잡아야 했다.

홍진호, 그가 강해져야만 자신이 신뢰하는 두 사람을 끝까지 지킬 수가 있지 않는가.

그가 쓰러져 버리고 나면, 서로를 의심하는 임요환과 강민을 둘다 믿어 줄 사람은 더이상 남지 않기 때문이다.


#4
언제나 그랬듯이 성제가 들렀다 나간 후엔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요환의 표정이 심각해 보여 인규는 방 안에 남아 있기가 불편했다. 성제를 따라 나가 상욱과 수다라도 할까 했지만 왠일인지 요환이 그를 불러세웠다.

"아직도 연성이 일이 네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출국 전날 방마다 살충제 뿌린 일을 못 잊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요즘에도 자면서 헛소리로 연성이형을 부르나 보다. 그 얘기를 형이 꺼내다니 또 괴롭게시리 왜?

그러나 고개를 든 인규의 찌푸린 눈썹이 곧 풀어졌다. 요환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 보였다. 그들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다 가늠할 수가 없는 그의 따뜻함.


"난 잘 모르겠다. 왜 남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일로 상처받고 서로 의심해야 하는지."

사고가 아니라 타살이라면 반드시 T1 안의 누군가가  범인일 거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수많은 어린 선수들의 마음이 처참하게 긁혀 왔다. 그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은 역시 요환형뿐이라고 인규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도 누가 내 타들어가는 마음 좀 알아 줬으면 좋겠다, 인규야......"


중환자실에서 하태기 감독은 말했다. 원인은 약물이라는데 자신이 아는 한 성준이는 감기약 한번 먹은 적이 없다고. 더 놀라운 것은 당시의 증상 또한 요환이 들은 것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약들, 동시에 복용해선 안된다고 의사가 했던 그 경고와.

4천만명 중의 한 명이 그런 증상으로 쓰러졌다면 요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리라. 그런데 그날 밤 성준의 곁에는 줄곧 몇 명의 사람들만 있었다. 상욱이는 강민, 박태민, 선기자의 이름을 말했다. 적어도 셋 중의 한 명은 자신의 약을 가져다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이 이상 진행시키는 것은 요환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형이 인규한테 나 좀 불러달라고 했다며? 무슨 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너 성준이 보고 병원에서 바로 들어왔니?"

"아니, 조규남 감독님 생일선물 좀 사러 갔었어."

태민이가 그 작은 얼굴에 자리잡은 눈 코 입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 오밀조밀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반쯤은 미소였고 반쯤은 박태민 특유의 진지함이었다. 요환은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비밀번호를 기억한다는 네가 나와 연성이의 폰을 다 보지 않았니? 상욱이가 진호에게 얘기할 때 정말 밥 먹으란 말만 했어? 약은 네가 발견한 게 아니라 가져간 건 아니니, 중환자실을 나와 진호를 쫓아간 건 아니니?

말해 봐, 누가 시켰니? 강민이 지오시절 네 약점이라도 잡았지? 민이가 시켜서 그런 거지? 그냥 넌 내 약을 민이 갖다주기만 했고, 넣은 건 민이지?

......물어볼 말이 이렇게 세면 백 가지도 넘겠건만 요환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요환이 끝내 그 입을 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한 이후 갑자기 일어서면 저혈압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요환은 뭔가 붙잡고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태민의 두 손이 되었다. 그냥 따뜻하기만 했다. 태민은 요환이 그 손을 통해 그에게 표현한 신뢰를 아직 깨닫지 못했다.

"형 할 말 있다면서 왜 안해. 말 안 해도 돼?"

"너 머리 길어졌다?"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던 태민이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 요환이 그냥 따라 웃었다.

"응, 확 반삭해버리려고. 그런데 할 말이란 게 그거였어?"

"그래. 그게 다야."


#5
강민은 '협회'가 진호에게 손을 댔을까 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전화를 걸었지만 진호의 전화는 늘 꺼진 상태. 대체 진호가 정감독에게 어디까지 말했을까 하는 불안까지 더해져 강민은 악몽에 시달렸다.

홍진호가 사라진 지 1주일이 넘은 뒤 KTF의 분위기는 수습할 수 없게 되어 갔다.

정민이 애를 썼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임시 주장을 맡은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종일 연습을 했으나 머릿속에는 걱정으로 가득할 뿐이다.

'진호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대체 무슨 일일까? 왜 그 녀석이 숙소에서 도망쳤을까?

식탁에 앉아 물을 술처럼 마시고 있는 그의 옆자리에 어느새 민과 정석이 앉았다. 그들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나서서 지노햄좀 불러와야 할 때 같다."

"우리가 아니라 블리자드 회장이 와도 진호 못 불러올거다. 돌아올 애면 진작에 돌아왔어. 대전 집에 멀쩡히 있으면서 우리한테 전화 한 통 없는데 말다했지."

"아니다. 지노햄도 지금쯤 돌아오고 싶은데 뻘쭘해서 못하는지 누가 아나? 왜 나갔는지는 뻔하다, 요즘 슬럼프 때문에 힘들었다던가 집에 무슨 일이 있다던가...... 잘 달래서 돌아오게 해 보자. 이러다가 프로리그 개막전까지 안 들어오면 회사에서 가만 있겠나?"

"우승할 의지가 없는 놈은 돌아올 필요도 없어."


정민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민이는 대뜸 진호를 위해서 반박했다. 진호에겐 사정이 있노라고. 그러나 정민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둘째손가락을 세워서 천장을 가리켰다.

"그래, 뭔가 바삐 돌아가는 일이 있겠지, 우리는 모르고 몇 사람만 아는. 천장의 카메라도 그런 거냐? 병민이가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냐? 회사에서 이제 또 무슨 욕심으로 우릴 감시하는데?"

물을 마시던 강민이 숨을 멈추었다. 하기야 그렇게 오래 달려 있었는데 애들이 못 알아챌 리는 없지만, 김정민 이 녀석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어!

그런데 그의 앞에 성난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정민이 아니라 정석이었다.

"저거 카메라 아이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미니햄은 알제?"

"진정해 봐. 나중에 다 얘기해 줄 날이 있을 거야."

"숨기지 말고 말해 봐라. 성준이가 그리 된 이유도 아나? 이상한 사건 일어나는 게 한둘이 아닌데 숙소에 무슨 CCTV란 말이가?"

정석이 거의 싸움이라도 벌일 듯이 민이를 몰아부치자 민이도 바짝 다가서서 맞섰다. 그러자 정민이 더욱 시니컬한 표정으로 부추겼다.

"잘 한다! 민아, 니 아랫배로 밀어버려!"


그 부추기는 소리에 어이가 없어진 정석이 피식 웃어버리자 그 틈에 민이가 재빨리 정민 쪽으로 돌아서서 그를 달랬다.

"김정만 나랑 얘기 좀 하자. 네가 갑자기 임시 주장 하고 힘들어서 머리 복잡한 건 알겠는데, 지금 일어나는 일들 조금만 참아 줘라. 듀얼도 끝났으니까 내가 어떻게 해볼 거야. 나 당장 대전 내려가서 진호부터 데려오고......"

"네가 뭔데 나서!"

그 동안의 마음고생으로 눈밑까지 퀭해진 정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강민에게 소리쳤다. 동갑내기의 테란과 프로토스 사이에 들이닥치는 차가운 긴장.

"그동안 진호랑 일 꾸미고 다닌 거 다들 눈치채고 있어. 프로리그 연습이나 해. 네가 무슨 탐정이나 해결사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뭔데!"

"나, 난......"

이제는 정석까지도 침을 삼키며 강민을 바라보았다.

두 남자의 네 개 눈동자가 강민의 얼어버린 입술을 주시했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

그런데 강민은 어처구니 없게도 이 상황에서 웃어버렸다.


"......난 에이스란 말이다!"


그것도 잇몸까지 드러내며 환히 웃어버렸다. 우리가 긴장이 풀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아마 지금은 빙산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으리라. 그리고 강민은 그곳을 떠났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한 남자를 불러오기 위해.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32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10. 10.


#1
"그러니까 정만햄 생각은 저 카메라는 회사가 달았다 그기제? 우리팀이 연습 안해서 우승을 못하나 아니면 감독님이랑 포카리탑 쌓느라 못하나 감시하러?"

"아직도 못 믿는 거지. 이 멤버에 병민이가 또 필요할 만큼."

정석은 정민의 음모론에 완전히 빠져서 딱히 민에게 설명을 구하지 않았으므로 민의 입장에선 오히려 잘 된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정민의 불만 섞인 주장이 나름 깜찍해 보여 강민은 또 씨익 웃었다.

"아무튼 난 진호랑 연락 되는 대로 내려갔다 올 생각이야."

"진호 계속 폰 꺼놓고만 있고 우리랑도 연락 안 하잖아. 게임 싫어 나간 녀석, 어느 세월에 닿는다고."

"고작 그런 일로 이탈할 진호가 아냐. 걔만한 프로가 어디 있어, 당장 걔 나이만 봐도 게임 하기 싫다고 도망갈 나이냐? 마이너에서 허우적댈 때도 꿋꿋이 게임하던 애가 스타리그 진행중에 도망을 가겠냐고."

"지노햄한테 뭔 다른 심각한 이유가 있을 거란 얘기가?"

"그래. 정말 그냥 도망간 거라면 감독님이 저렇게 화난 기색도 없이 붙잡으러만 다니시겠어? 믿어 줘. 그 녀석은 그저 숨어 있을 뿐이야."


인간 강민이 많이도 품은 그놈의 정이란 것이 언제나처럼 그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냉정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진호, 네가 고향집에 숨어 있다고 해서 그리 안전하진 않을 거야.

무너지든 쓰러지든 여기 내가 지켜보는 곳이어야만 난 안심해.



#2
숙소도 아닌 곳에 틀어박혀 외로이 지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동료들 생각이 간절했다. 더구나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지금은.

감독님은 내가 없는 사이 대전까지 내려오셨었다. 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얘기 때문에 속만 태우시고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한번쯤 연락해 드리는 게 도리다......

진호는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던 폰을 켰다. 그간 그를 애타게 찾던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도착하며 끝도 없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원래 열몇개만 들어 있던 메시지함이 금방 가득 찼다.

그런데 그가 하나씩 내려 체크해보니 가장 많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정감독은 물론 동료들, 친구들 중 누구도 아니었다.



시현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것은 자신에게 독을 먹이려 한 작자에 대해 정보를 얻으면 연락해 달라는 뜻이었지, [선수님 이기세용 화이팅이용*^^*] [오늘도 행복한 날 아잣 아잣 ^_^/]같은 문자를 하루에 열 개씩 보내라는 뜻은 절대 아니었단 말이다.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진호는 열일 제치고 시현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일단 그녀를 불러서 만나고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정중히 할 생각이었다. 마음만으론 한대 쥐어박고 싶지만, 큰 도움을 받은 일도 있고 하니 얼굴이라도 직접 보면서 얘기하는 게 도리 아닌가.


마침 집을 나갈 일이 있었던 형이 이 길까지 진호를 따라나섰다. 어찌어찌 찾아오라고 전화로 알려 주긴 했지만 분명히 못 찾겠다는 전화가 올 것 같아서 그는 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형이 진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니가 불렀다는 사람이 저 예쁘장한 아가씨냐?"

"예쁠 리가 있나."

"아닌데, 예쁜데?"

방금 미용실에서 나온 듯 찰랑거리는 머리의 그녀에게 형이 먼저 인사할 때까지, 진호는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몇 초가 지난 후에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눈썹 밀었어요?"

"밀었다기보단, 정리했다는 표현을 써 주시면 좋겠네요."


#3
5월 19일.

요환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뒷차도 정차했다.

"대체 어쩌자는 거야!"

요환은 차 문을 쾅 닫고 돌아섰다. 뒷차가 선 곳까지 한참을 뚜벅뚜벅 걸어가, 백미러가 반쯤 칠이 벗겨진 그 차의 운전석 창문을 노크했다. 짜증 때문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운전자가 내리기만 하면 단단히 따져 물으리라. 왜 나를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오냐고.


그리고 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넷, 다섯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더 빨라야 했다.

큰 소리를 치고 돌아서긴 했지만 그는 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차 한대 지나가지 않은 도로다. 지금 빨리 내 차로 돌아가서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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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쏠
05/10/29 17:39
수정 아이콘
근데요 제가 나름대로 막 열심히 추리하고 이런게 있거든요? 스갤이랑 피지알같은데 올려두 되나요? 꽤 장문인데
지니쏠
05/10/29 17:43
수정 아이콘
혹시 맞으면 재미없어질까봐; 스갤엔 올려두 되겠죠?
엘케인
05/10/29 18:05
수정 아이콘
빨리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unipolar
05/10/29 18:11
수정 아이콘
지니쏠//어디든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엘케인//오늘밤 자정 즈음해서 전부 올리겠습니다.
지니쏠
05/10/29 18:15
수정 아이콘
유니폴라님 스갤에 올려써여 읽어봐주세요 답변도 덜덜
unipolar
05/10/29 18:44
수정 아이콘
지니쏠//읽고 전부 답플 달았습니다. 정말 날카로운 지적들이었습니다OTL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kiss the tears
05/10/29 18:56
수정 아이콘
어제부터 오늘 자정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unipolar님은 사람의 애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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