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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0/26 20:16:08 |
Name |
미센 |
Subject |
약점 |
박지호 선수와 임요환 선수의 4강전을 보면서 쓴 글입니다. 글의 성향상 존대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남을 아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뿐이 알수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박지호 선수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썼지만 막상 본인이 본다면 웃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1. 최후의 순간에 주저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보기에는 겉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보인다. 평상시에는 잘한다.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들은 패배한다. 최선을 다해보지만 넘을수 없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패배해 버린다. 혹은 승리를 바로 눈앞에 눈 순간에서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른다. 마치 승리를 가지기 싫다는 듯이.
홍모저그, 한량이란 별명이 붙은 게이머, k모팀...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지호를 좋아하게 된 것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2. 그는 관문에 약한 사람이었다. 그가 듀얼 최종전에서 패한 경기가 몇번이던가. 마이너 최종예선에 패한 경기가 몇번이던가. 항상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더 높은 단계로 뛰어오를 순간에 무너졌다.
그의 팬이 되게 만든 경기가 기억난다. 듀얼 최종전, 이병민과의 5차전이었다. 1차전에서는 다크 난입으로 싱겁게 이겼던 박지호. 초반에는 기세도 상당히 좋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경기 내용이 이상해 졌다. 벌처난입을 허용하지 않나, 유닛을 같다 박지 않나...좋지 않았다.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누구나 두렵다. 긴장된다. 약해진다. 도망치고 싶다...다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변명이 될수는 없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그 중에 또 누군가는 그 순간을 극복하고 한 발자국 나아간다. 그리고 남겨지는 것은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않은 자들 뿐이다.
이병민은 그것을 극복했다. 준결승에서 전력을 다한 승부끝에 투신 박성준에게 패했던 이병민. 연이어 박태민에게 3 : 0 패배를 당했던 이병민. 1경기에서 어이없는 다크 난입으로 패해 버린 이병민. 최종결승에서 어려운 처지에 몰린 이병민.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에서 승리했다. 그 승리의 대가로 그는 또다시 스타리그에 진출했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면서 치고 올라갔다. 비록 결승전에서 또다시 투신을 만나서 패했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을 대가를 얻을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겨내지 못한 박지호는 또다시 듀얼에 남아야 했다.
3. 그 패배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놀랐다. 도대체 왜 나는 박지호의 패배에 이렇게 괴로운 것일까. 물론 약간 호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박지호의 팬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말하자면 난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져도 별로 가슴아파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나는 박지호의 패배에 가슴 아파하며 나는 긴 글을 썼다. 길고 긴 글이었다. 완결을 할수 없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쓰면 쓸수록 말이 계속 나왔고, 중언부언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어렸을적엔 뭐했고, 커서는 뭐했고, 나의 인생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으며, 아쉬운 일들이 많았고,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무엇을 할 것이고, 그러나 물론 시간을 돌릴수는 없고, 후회만 남고...끝이 안났다.
끝이 나지 않는 글을 남에게 보일수는 없었다. 그 글은 완성해야지 완성해야지 생각만 하면서 잊혀졌다. 그리고 박지호의 패배후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았다. 마치 술한잔 마시고 떠벌여 댄 것처럼 민망한 말들이 가득했다. 나는 웃었다. 박지호에게 그 글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패배에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주도록 -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나는 왜 내가 박지호의 패배를 보면서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깨달았다. 나는 한계앞에서 자꾸만 주저않는 그에게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부끄러운 그 글을 휴지통속에 넣었다. 그러나 비우기를 누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꺼내서 하드속에 고이 보관했다. 내 자신의 자기연민과 어리석음과 치기와 부끄러움을 나는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했다.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을 믿으며.
4. 나는 박지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신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약점은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잘내고, 어떤 사람은 게으르고, 어떤 사람은 쉽게 좌절한다. 그리고 나나 박지호같은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약하다는 약점이 주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그런 자신이 못 견디도록 미웠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계속된 실패가 조금은 나를 지혜롭게 만들었다.
항상 한계앞에서 좌절할때마다 생각한다. 그 누구도 자기 그림자에게서 도망칠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나 자신을 알면서 조금은 내 자신을 추스릴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약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단단해졌다.
아마 박지호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번씩이나 듀얼에서 패하고 무개념플레이라고 욕먹고 만년기대주라는 말에 좌절했다면 이렇게 스타리그에 오르고 8강에 오르고 4강에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힘들어도 참고 다시 도전했기에 스타리그에 오르며 4강이라는 영광을 얻을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게이머들도 자주 피지알에 와서 글을 보고 간다고 들었다. 만약에 지금 박지호 선수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저지른 자신의 실수로 괴로워 하고 있다면 계속해서 실패했지만 또한 계속해서 도전했던 순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계속된 실패와 계속된 실패속에서도 다시 멈추지 않았던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당신이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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