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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0/22 00:16:04 |
Name |
웹이즘 |
Subject |
실력 이상의 한 가지 |
오늘 경기는 정말 박서의 팬으로서 극과 극을 경험한 하루였습니다.
박서의 패배를 보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기에,
차라리 보지 말고 이겼다고 하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일찍 퇴근도 하였기에 어쩔수없이 시청 시작.
우선 전승 우승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아무도 뭐라고 못할만한 기록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데 1경기를 졌습니다. 좋았는데 졌습니다.
전승우승이 날라간 것보다, 이러다가 4강에서 떨어지는 것 아니야라는 걱정이 앞서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가을의 전설에는 늘 임요환이 조연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이 때까지 1경기 내 준 후 결승간 확률이 50%라고 하니까,
믿어보자, 아직은 몰라.
그리고 2경기. 정말 박죠의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이 때는 텔레비전 꺼 버리고 싶더군요.
역시 가을의 전설에 또 조연으로 남는 것인가...
채널을 돌려 엑스포츠에서 하는 프로농구 개막전을 잠시 시청.
쉬는 시간 동안의 해설자 분들의 설명도 듣기 싫더군요.
그만큼 완벽한 패배였고, 3:0의 패배가 눈 앞에 왔으니까요.
농구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채널을 돌렸는데,
바로 경기가 시작되더군요.
박서의 패배를 정말 보기 싫어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채널이 돌려져 있더군요. (누가 돌린거야? 이 넘의 손가락이)
센터 배럭 발견, 본진에서 뛰노는 질럿들, 이제 졌구나.
그나마 멀티 빨리 하는데 박죠는 게이트 늘리고
어 한 타임만 막으면...
어느 새 소모전 몇 번하고, 플토 멀티 늘어나고 아비터 나오기 직전.
졌구나.
임요환 병력 모아 나가는데, 어찌나 초라해 보이는지, 마지막 러쉬구나...
그런데 바로 이순간이, 박죠에게는 가장 승리가 가까이 왔을 이순간이,
패배의 그림자 역시 가장 가까이 다가왔더군요.
황제라는 닉네임을 가진 상대로 벌이는 4강,
그만큼 준비도 많이 했고 긴장도 되고,
가을의 전설이니 로얄 로드니 하는 주변의 말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1,2 경기를 이기면서 분위기도 자신에게 가져왔고, 3경기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맵,
게다가 상대방의 필살기마저 발견한 순간,
아마 결승전 무대가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승부를 끝내는 것.
정말 이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경기는 거의 이겼고, 이제 빨리 승부를 끝맺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바로 실력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죠의 이상한 전투. 곧 이은 지지 선언.
박죠가 정말 이기고 싶었구나, 빨리 끝내고 싶었구나라고 느꼈죠.
그래서 그 만큼 박서의 승리도 조금씩 확신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금만 더 참았다가 싸웠다면, 이 때까지 잘 참아 왔는데...
경기는 졌더라도 본진이 밀릴 때까지 시간을 벌었더라면,
그 동안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추스릴만한 여유가 있었다면...
가장 이기고 싶을 때, 가장 승리가 가까이 왔을 때,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여유까지 기대하기에 박죠는 아직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밝을 선수이겠지요.
아무튼 4경기.
임 포인트. 하지만 대각선. 그래도 오늘은 박죠에게 운이 따르는 구나.
FD, 상대방은 리버, 초반 압박에 리버 발견. 분위기 좋다.
엇 그런데 이상한 대응.
터렛도 안 짓고 그냥 병력으로만 막네.
엔지니어링 베이 자체도 늦고, 베이 완성 후에도 터렛 안 짓고,
뭐지..
결과론적이지만, 이 때 베이 먼저 짓고 터렛 짓고 하는 자원 모아 병력 뽑은 것이 이후 타이밍 러쉬에 도움이 된 듯...
이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장 본인이 유리할 때 타이밍 러쉬로 승리를 따내는 박서.
이제 승부는 원점, 분위기는 박서에게 일단 왔고,
처음 2:0일때는 한 경기라도 이겨라 제발 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결승이다라는 생각에 티비 시청.
아마 박서도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듯...
맵은 815. 박서의 전략은?
빠른 투배럭. 필살기.
준비된 전략이기도 하지만,
박서도 박죠만큼 이기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그의 승리를 바랬던 것은 자신이었겠죠.
그런데 이번에도 박죠에게 운이 따르고 초기에 발견, 배럭 취소.
그런데 멀티가 아닌 한방 드롭 준비. 여전히 초반 승부.
첫 드롭이 막히고, 두 번째 드롭.
그런데 참더군요.
이기고 싶었을텐데, 승부를 결정짓고 싶었을텐데, 피곤도 할텐데,
어쩌면 드롭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만도 할텐데
참더군요.
현재보다 과거가 화려했던 선수였기에, 수많은 전장의 경험이 그를 참게 만들더군요.
아마 이 때 드롭을 했으면 경기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죠.
승부를 길게 가져가기로 하고 멀티.
어쩌면 오늘 승부는 실력 이상의 변수에 의해 갈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력 이외의 변수가 아닌, 실력 이상의 변수.
현저한 실력차가 아니라면, 이 변수가 바로 승패를 가리죠.
그래서 스포츠가 재미 있는 것이고요.
오늘은 변수는 이기고 싶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욕망은 승리가 가장 가까이 왔을 때, 패배의 그림자도 그만큼 가까이 오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박죠는 아직 이런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기에는 미래가 더 밝은 선수이고,
박서는 과거가 더 화려했던 선수이기에 본능적으로 참을 수 있었죠.
제가 박서의 팬인 이유는 그의 실력이 아니라,
그의 경기에서는 실력 이상의 뭔가가 느껴지기 때문이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 실력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는 선수이기에 좋아하죠.
그리고 오늘은 박서의 팬으로서 그것을 맘껏 누린 날이구요.
전승우승을 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박서에게는 안 어울리죠.
치열한 승부의 순간에 승리를 낚아채는 박서가 더 박서답죠.
그의 경기에서 실력 이상의 뭔가를 볼 수 있다면 언젠까지나 저는 그의 팬입니다.
그리고 그런 뭔가를 보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의 팬입니다.
왜냐면 이미 그는 뭔가를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긴 박서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잠 못들 박서의 팬들에게도 축하를...
박죠에게는 당신은 과거보다 미래가 더 화려한 선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위로를..
담주에는 연성 선수의 승리를.. 또 다시 덜덜덜 보고 싶지 않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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