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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0/10 21:36:46 |
Name |
윤여광 |
Subject |
[yoRR의 토막수필.#1]휴지를 주세요. |
파란 티코를 몰고 가던 한 20대 남성은 전방 100미터앞에 주유소를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배변 욕구 그리고 알파벳 E와 마주하고 있는 빨간 작대기. 급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고 휘발유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운 다음 달려 나오는 주유원에게 만원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디.
“휴지 좀 줘요.”
주유원은 조금은 당황한 얼굴로 휴지가 모두 떨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배변 욕구는 말끔히 사라진다. 남아있는 생각이라고는 주유원의 휴지가 없다는 말에 대한 심한 반감과 불만. 그는 그것을 속으로 눌러 내리지 않고 바로 내뱉는다. 매정하게도.
“주유소에 휴지가 없는게 말이되!!!!”
주유원은 방금 전 보다 더욱 굳은 얼굴로 사장의 늦은 발주로 휴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다른 판촉물을 드리겠다며 자신을 달래려든다. 그리고 그 행동에 그는 더욱 화가 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휴지, 휴지뿐이다.
“아 젠장 내가 지금 필요한 건 휴지라고!! 화장실에 가야 되는데 휴지가 없단 말이야!!!”
주유원은 아까와는 미묘하게 다른 정확히 말하자면 황당한 얼굴로 결정적 한 마디를 날린다.
“화장실에 휴지 많은데요.”
무언가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이자 소망이라고 본다. 더불어 내가 누군가에게 하나를 줬다면 최소한 그와 대등한 다른 ‘하나’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살아가며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모두 상호작용에 의한 주고받음이 성립하기에 유지된다. 물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가슴속에 심어두고 받기보단 주면서 상대방의 감사하다는 한 마디만을 양분 삼아 살아가는 이들도 많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가슴속에 심어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뿌리에 난 잔털 중 하나는 분명 받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숨기고 있으리라. 오고 가는 사이에 싹트는 우리의 정이라는 녀석이 가끔 난감한 방향으로 적용되어 가는 실로 연결된 너와 나의 사이를 갈라 놓기도 하지만 끊어진 그것은 상대방에게 바늘을 건넴으로서 다시 이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흔히들 말하는 열린 화장실은 예전과는 달리 깔끔하게 관리되는 곳이 많고 특히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주유소의 화장실은 필드에 서있는 주유원 이상으로 그 주유소의 이미지를 어필하는 것이기에 철저하지는 못하되 깔끔하게는 정리가 되어 있다. 물론 대변에 필요한 휴지를 필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유원을 닥달하면서 휴지를 찾았던 이유는 배변에 필요했던 필수품이 아닌 주유 후 자신이 지불할 대금에 대한 사은품을 받고 싶다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옵션이었다. 화장실에 가야 하니 휴지를 달라는 그의 투정은 말 그대로 투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따금 내 눈 앞에서 그런 손님들을 보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한 마디가 있다.
“할인 마트에서 만원어치 물건을 사면 휴지 한 조각이라도 줍디까?”
물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비록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인력으로서 고객에게 부정적인 언사는 절대 금물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입 다물고 어눌한 대답만 되풀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손님에게 주유소의 판촉물 현황을 되도록이면 납득하기 쉽게 설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나 역시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고객의 이해를 받고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그 소망은 고객의 무조건 휴지를 내놓으라는 억지에 의해서 산산조각나고 결국은 궁시렁대면서 차를 몰고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 쌓이는 스트레스와 스스로의 업무 처리에 대한 불만족에 한숨만 나오게 된다.
내가 눈앞에 서 있는 당신에게 100원을 주었다고 해서 꼭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그 100원을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100원에 상응하는 고무지우개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물교환으로만 발전해온 인간도 아니며 유지될 사회도 아니다. 분명 주고받음이라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흡사 무형문화재와도 같은 정의되지도 않고 해서도 않되는 상황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는 물과 같은 것이다. 내가 고객에게 휴지가 없음을 어필했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은 휴지도 없는 주유소 나가겠다라는 실망과 포기가 아니라 그럼 내가 받을 수 있는 다른 판촉물이 있는가에 대한 타협이다. 당장 눈 앞의 자신만의 타협을 요구하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고집만 부리다 결국엔 짜증만 안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귀찮더라도 오른발에 살짝 힘을 주어 상대방의 눈 앞에 다시 설 것인가. 그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결국에는 한 가지 결론으로 도달한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후회라는 반갑지 않은 사고를 동반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나라는 사람이 적어 내려온 이 글에 작은 공감의 미소를 띄워주실 수 있으십니까?
2005 10 10
yorr 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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