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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0/10 04:37:55 |
Name |
항즐이 |
Subject |
[꽁트] 완벽 - 주먹을 꽉 쥐고. |
"
포르테 서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워의 남측 저지선이 뚫리고 보급선이 차단되었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전선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저지 할 수 없습니다!
사령부! 사령부!
"
쾅!...
"사령관님.. 이 전장에서는 물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도깨비의 꿈을 훔쳤다는 몽상가라도 이런 전장에서는.."
"닥쳐라."
"사령관님.."
"포몰포스 부위. 자네도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나?"
"... 부위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난 지금 훈련소 병참 안에서 복무신조를 외라고 한 것이 아니다. 부위, 알포인트 북쪽에서 있었던 무모한 진격은 어디로 갔나? 대답해봐! 내가 완벽한 인간인가?"
"...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신다는 의미로 사령관님은 완벽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쌍욕을 뱉어내고 있는 것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완벽함의 완성인가? 그렇게 생각하나?"
"세상이 당신을 일컬어 완벽하다고 하는 것이 전승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사령관님"
"...."
"최선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고, 최선을 다하는데 있어서 주저하고 망설임이 없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사령관님이 여기까지 저희를 데려 오신 것이 바로 그 모든 것을 하신 결과입니다. 세간의 평은 정확합니다. 사령관님. 당신은 완벽합니다."
그는 며칠 사이에 승리와 패배 속에서 잃어버린 세월을 한꺼번에 돌려받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이미 한 참 전에 미리 세월을 받아 두었던 듯한 나무 의자에서 힘겹게 벗어났다. 짙은 겨울 나무색을 띄었다고 말하기에도 초라한 먼지 색의 막사 안 풍경을 넘어, 멀리 이종족들의 괴성과 포화소리가 남의 일 처럼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채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령관님, 알포인트 북쪽에 새로운 전장을 펼치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서 병참을 수습하고 보급선을 새로 꾸려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늦을 지도 모릅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프로토스의 병력은 그 사도를 닮아 광신도들 중의 광신도들처럼 산을 거푸 넘어오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젊고 치기 어린 사도의 검은 흘려보낼 순 있지만 급하게 칼을 들어 막기는 힘이 듭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예기를 흘려내며 전투를 해 나가는 것이.."
"틀렸다."
"네? .. 하지만 알포인트마저 내어 준다면 .. 이 겨울을 넘기기는.."
"그렇지 않다. 부위."
포몰포스의 너머에 있는 광경을 보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돌아서면서도 여전히 두 눈의 시선은 먼 곳에 둔 채, 그는 죽음을 쏘아보듯 한 발자욱씩 짓밟아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방책이라도?"
"아니. 그렇지 않다. 과연 자네 말은 정확해. 알포인트를 잃게 되면.. 우리 군의 미래는 당분간 야산 기슭에서 여행객들을 노리며 간간히 굶주림을 피하는 고블린 떼거지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겠지. 아니면 저 거지같은 광신도 자식들이나 열까지 셀 줄이나 아는지 궁금한 저 괴물녀석들의 역사책에 기분 좋은 낱말들이 되어주거나. .. 예나 지금이나 자네를 보면 하는 말이지만.. 교위가 되거나 하장군이 될 생각은 없나? 자넨 늘 전투가 아닌 전장을 보고 있는데 말이지. 부위로서는 곤란한 일이야."
"... 사령관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게 더 중요합니다."
"똑같은 대답인가. 하여간 여전하군. 고향 자랑을 그렇게 무뚝뚝한 성품을 대표로 내세워 할 필요는 없네. 아무튼, 잘 알겠어."
"하지만 사령관님, 그렇다면 뭐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자네 전략은 완벽하네. 과연 군 최고의 전략가 부위야. 부위로서는 골치아픈 능력이지만, 어쨌거나 내일 전투에서는 그 젊은 광신도 사도놈의 블레이드를 맘 놓고 맞아 줄 수 있겠군.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완벽한 셈이니."
"사령관님!!"
"조용하게 부위. 이미 우리는 충분히 괴롭다. 바깥의 장병들은 적어도 그들의 사령부 막사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전략 토론이 조용히 들려오기를 기대할 권리가 있어. 혹은 어쩔 줄 몰라 다투는 소리는 들려주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지. 우리에겐."
"...."
포몰포스는 이제 등을 돌려 다시 막사 밖의 부상병들을 향한 그의 뒷모습 끝자락을 바라보며 시선을 떨구어 갔다. 생지옥을 구현하려는 듯한 아비규환의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는데도 묘하게 조용한 분위기는 앳된 병사가 뛰어와 소리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령관님!! 보고드립니다! 하장군님께서는 위임받은 권리와 명령에 준하여 전투의 승패를 받아들이고 지시하신 방법으로 병력을 수습하여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알포인트로 바로 갈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뭐라고?!!"
"부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용하게. 연락병, 허락한다. 본부 중대는 나를 따라 오도록. 벌쳐를 대기시켜라."
"사령관님! 본대를 수습하시고 안전한 방법으로 이동하십시오. 사령관님!"
쾅! 어느 새 벌쳐의 콕핏에 앉아 통신기를 연결한 그가 계기판을 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포몰포스의 중이에 심어진 통신기를 통해 크게 증폭된다. 주저앉으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포몰포스는 급히 준비된 벌쳐를 타고 그를 쫓아간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들리십니까?!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
"사령관님! 전 소대 벌쳐에 탑승하라! 전장을 사전 확보한다! 다시 반복한다. 전 소대.."
"...부위. 자네가 틀린 것은 완벽이라는 것에 대한 자네의 생각이었다."
"네..?"
"완벽이라는 건 실수가 없다거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
"어쩌면 자네는 나보다 더 완벽해 질 수 있어. 언제나 난 선친께서 자네의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네. 완벽이라는 건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말이지. 인간은 제한된 선택 속에 살고 있는 존재. 가질 수 없는 선택을 가지고 병행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하는 인간에게 완벽이라는 말은 애초에 글러먹은 표현이야."
"사령관님."
"하지만 말야, 내가 완벽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표현을 발길로 걷어차고 욕지거리를 내뱉지않은건 병사들의 사기 문제만은 아니었다네. 난, 정말로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해."
"네?"
"우린 선택을 통해 완성하고 그와 동시에 이루지 못한 선택으로 실패하는 존재들. 그래서 선택하기 전의 우리와 그 후의 우리는 너무나 달라지지. 그리고는 또 다른 실패를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거야. 자, 난 또 이렇게 실패를 했네. 하지만 또 달려가지. 다음번에는 또 어떻게 선택해야 할 지만을 생각하면서. 뒈져버린 놈들의 이름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말이야."
"..."
"빌어먹을 전장에서 난 가장 인간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선택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멋지게 실패하고, 욕지거리를 뱉어놓고 또 다시 다른 모습의 나를 보면서 새로운 선택만을 생각하는 일을 반복하는 거 말이야. 승리? 그것도 다음의 실패를 뜻하는 말이겠지. 죽음? 그것도 선택의 한 결과일 뿐이야. 전쟁? 거대한 선택의 집합이지, 매번 내가 선택해 나갈 때 마다 모습을 변화시키는 괴물같은 정체를 가진 놈의 이름이지. 난 그 속에서 매번 괴물이 되어가는 나를 보네. .. 처절하게.. 인간이기를 원하는 완벽한 괴물을 보고 있네. 인간이라면, 아까 거기서 울 수도 있었겠지. 황제는 그랬다고 하더군. 혹은 영웅이라면 멋지게 일장 연설이라도 했을테지. 천재라면 숫자만을 보고는 돌아서서 벌써 다음 전장을 정리해 놨을지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난, 지난 일에 발목을 잡히지도 그렇다고 헛된 희망의 거짓말을 내뿜는 혀에 감길 줄도 모르는 완벽한 바보지. 그래서 이렇게 달릴 수 밖엔 없는거야."
"사령관님은 완벽한 인간이십니다."
"... 그래. 그래서 우린 이렇게 완벽한 괴물이 되기 위해 지랄맞은 전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거겠지. 잡담이 길었군. 좌측으로 선회한다. 진형을 유지하게."
"네! 소대, 산개를 대비해서 간격을 유지하면서 전진한다! 좌측 선회 후 사방을 살펴 보고하도록!"
"부위. 오늘 날씨 어떤가?"
"네? 네.. 완벽한 전장의 날씨입니다. 너무 익숙하군요."
"그래? 자네도 좋은 말을 남기기는 영 글렀군. 멋지게 죽어 볼 인간다운 권리를 버렸다면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게 좋아. 적어도 자네 앞에 있는 건 사상 최고로 빌어먹게 완벽한 군인이니까."
덧말.
무지하게 오랜만에 쓰는 글이네요. ^^
이영도님의 새 시리즈 컨셉을 조금 차용한 절대 꽁트입니다. 썰렁해도 욕하기 없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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