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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0/09 11:38:05 |
Name |
세이시로 |
Subject |
'팬'으로서 마음이 아플 때 |
어제 한 게이머가 듀얼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선에 있지 않은게 어색한 선수'가 지난 시즌 양대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후 부활을 하나 싶더니 오히려 이른바 '피씨방 예선'까지 떨어져 버린 거다.
묘한 감정이 드는 그 소식을 들으며, 난 본선에 있지 않은게 이상하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선수들이 예전에 두 명이 더 있었던게 떠올랐다.
...
한 명에게는 그게 거의 2년 전의 일이었다. '영원한 4강후보'로 불리며 지지 않는 태양일 것 같은 기량을 뽐내던 선수였다. 난 그 전 대회 결승전에서 그가 분루를 삼키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었다. 오랫동안 역사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려온 게이머인 만큼 애정이 없다면 이상했다.
아마 당시 그 누구도 그가 떨어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진출한 상대 팀의 두 선수를 정말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을 제외하고서는.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의 아래에 있을 것 같은 두 선수에게 허무하게 패했고, 최초 100전의 기록이라는 상처뿐인 영광과, 훗날 자신의 업적을 뛰어넘어 버릴 어린 선수에게 챌린지 시드를 주고 예선으로 가 버렸다.
그 전 대회에서 그에게 눈물을 안겼던, 자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선수도 같이 탈락했지만 팬들의 이슈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강했었던 그 남자였다. 훗날 그가 연습을 잘 하지 않는다는 풍문을 듣고는 그를 향한 내 팬덤은 '비판적 지지'로 바뀌었지만(지금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만), 그가 듀얼에서 떨어진 후 예선에서마저 미끄러져 버린 그 시기는 어쨌든 꽤나 충격적인 시기였던 것은 분명했다.
...
또 한명은, 솔직히 고백해 나의 우상인 선수였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아직까지 무엇을 초월한 존재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왠지 그때였던 것 같다. 그의 '10회 연속 스타리그 진출 기록'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기사가 신문들에 실렸던 것은.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팬들의 희망을 항상 이뤄 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였다. 그가 속한 듀얼 마지막 조는 누구나 '이번에는 어렵다'고 말하는 조였지만, 나는 그가 올라갈 거라고, 이런 말들을 일축시켜 버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던 그 현장에. 하지만 그것은 훗날 알게 될 일이었고, 당시의 나에게, 그리고 그의 팬들에게는 하나의 역사가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런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황제는 영원하다'라고 목이 타도록 외친 것은, 멍한 내 마음속에서 뿐이었다.
...
오랫동안 게임계를 봐 왔고, 그 역사 속에 있었던 수많은 선수들을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좀더 오래 지켜봐온 선수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이 없을 수가 없지만, 그 애정 혹은 팬덤이 모든 선수에게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첫 번째로 언급한 선수가 그가 분투 끝에 흘린 눈물로 내게 기억된다면, 두 번째로 말한 선수는 나에겐 항상 잘 되었으면 하는, 항상 우승하는 것을 보고픈 그런 선수인 것이다.
어제 소식을 들은 그 선수는 뭐랄까, 처음부터 강렬하게 끌리진 않았지만 서서히 친해진 그런 친구같은 느낌이랄까?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소심한 아이처럼 생각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친구는 이번에도 전교 1등 먹었더라는 그런 소식보다, 그의 시련이 반 친구의 안좋은 일처럼 내게 다가왔다.
이제 자신의 천하가 계속될 것이라는 듯이 자신있게 시작한 올림푸스에서의 16강 탈락, 그때부터 그의 시련이 시작됐다. 그 당시 불거졌던 계약문제는 아직 어렸던 그에게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열린 스타우트배의 결승전. 나는 그가 이번에는 패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 편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그에게 성숙함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
반 친구라고 하기에는 많이 위로해 주지는 못했다. 원래부터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가끔 눈길을 주고 토닥여 주는 그런 사이가 그와 나의 사이다. 그래서 올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2년 전에, 그의 성공을 향한 열망이 아버지에 대한 빚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가 떠오르며, 많이 갚지 못한 그 빚을 떠안게 가게 될 그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다만 계속 커가고 있는 그가 더더욱 성숙해져 그 아픔까지 껴안고 가기를 바랬다.
누구에게나 영광의 시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련도 있다. 누구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지만 실제로 현재의 자신을 짓누르는 것은 아픈 기억들 뿐이다. 홍진호에게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한 기억들이 있고, 임요환에게 젊은 날의 상실감과 무거운 책임감이 있다면, 이윤열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빚을 갚겠다는, 그리고 갚지 못한 그런 아픔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번 시즌 데뷔 이후 처음으로 양대 마이너까지 내려간 그를 보며 '이제 좀 쉴 때가 됐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 휴식이 충분하지 못한 모양이다. 학창시절에 1등만 하다 명문대 진학한 친구가 장기휴학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 마음이다. 항상 소년일 것 같지만 나와 동갑내기 청년인 프로게이머 이윤열의 앞날에 또다시 빛이 있을 거라고,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전혀 모르는 친구로써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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