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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9/28 14:46:36 |
Name |
부산저그 |
Subject |
바람이 전하는 소식------ 전투 1. |
너희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 남기고 싶다.
1,
그날은 안개 자욱한 날이었다.
비상이 걸렸다고 결코 실망스럽진 않은 안개였다.
항상 아침에 일어나야만 살아 남아 있음을 느낄수 있던 무거운 나날이 계속 되던 때다.
세 사람의 불청객이 우리를 방문 했을때, 나는 살아간다는 사실이 비겁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3명이 움직였고, 돌아간 것은 10명이다.
세 명의 대학생들이 군사 분계선에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이라..
북한의 서울대라 말할 수 있는 김일성 종합대학.
김일성 종합대학이 양지의 대학이라면, 음지의 서울대라 말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김정일 종합대학.
정식 명칭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평양 근교, 지하에 잠실 운동장 세 배 크기로 세워진 거대한 지하 공간.
그곳에는 완벽하게 남한의 사회가 구현되고 있다.
이발소, 다방, 세탁소, 버스 정류장, 은행, 그리고 술집까지..
그대 쉬리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는 가?
남조선 해방을 외치며 살인적인 훈련을 거듭하는 광전사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바로 최종훈련을 받는 장소가 그곳이다.
북한 전역에서 모여든 최우수 인재들, 체력적으로, 지능적으로, 사상적으로 최강의 학생들이 모여, 살인적인.. 훈련중 살아 남는다면 초인이라 불릴수 있을 정도의 실습을 거처, 최종적으로 남한 사회를 실습하는 곳이 바로 김정일 종합대학이다.
그곳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바로 휴전선 155마일.
그들이 선택한 곳은 바로 철원 땅 .
남북전쟁의 최종 격전지로 결코 함락되지 않은 오성산 앞에 펼쳐진 철책을 통과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나갈 곳이다.
북한군 병사들의 움직은 애초부터 관찰되고 있었다.
일년중 가장 안개가 자주 끼는 날을 택해 자정에 움직인 13명의 병사들.
그들 가운데 최종 임무를 수행하고자 3명의 병사가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 지대에 숨어 있다.
그 세 사람의 행적이 밝혀져야 방금 울린 비상이 해제될 것이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철책을 무사히 넘어 남조선 땅에 발을 디딘다면 그들이 목적지는 어디란 말인가?
단언하건데,
무식하고 야비한 거짓말처럼.
그들이 남조선의 발전상에 반해 단숨에 경찰서를 찾는 일은 절대로, 하늘이 두쪽 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지 알수 없지만, 그들은 모두 최고의 인재들이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아주 현명하게 판단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배들의 인생항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남조선에 투항하여 언제 들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인민의 보복을 기다리며 불안에 찬 나날을 살아 갈지.
아니면 조국형명의 투사로 길이 남아 북조선에서 최상위의 삶을 유지할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들이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배웠다. 그리고 알고 있다.
인간의 감각을, 후각을, 청각을 지배하는 법을.
한걸음 걷는데 두시간이 걸리는 인내력을, 사냥개도 스쳐지나가는 은신술을, 소리없이 걷는 법. 철망을 두부처럼 잘라내는 법. 스쳐가는 바람소리 보다 작게 대검을 던져 상대를 죽이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뒤돌아 갈 곳은 없다.
함께온 일행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일행을 감시하던 남측 병사들의 감각이 둔해졌을 2시간 후.
손을 내 뻗으면 손가락도 헤아릴 수 없는 안개 자욱한 4시경.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낄 것이다.
아니, 느끼지 못하고 죽을지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결국은 알게 될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자가 누구인지.. 이제까지 알고 왔던 병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2,
처음부터 그들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아니 그들이 걸어 들어 온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이 상대할 최고위직은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다.
아.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나?
삶의 의미?
사랑이란 덧 없는 것, 결국은 남는 것은 생활.
사람을 상대로 사업이나 장사. 혹은 의료 행위. 혹은 지휘할때,
가장 금기시 하는 것은 바로 인정.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크게 될 수 없는 이해 할 수 없는 법칙.
그대 서빙을 해본적이 있는가?
웨이터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줄 아는가?
그런 웨이터라면 평생 웨이터로 살아 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라 고객으로 대하는 웨이터가 존재하는 법.
그렇지 않은 길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빠른 길로 가려하지 결코 멀리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휴전선을 지키는 이유란 무엇인가?
정전 협정은 무엇일까?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 왔다면 어떤 식으로 대처 해야 할까?
그들이 우리측 영토를 침입할때는 이미 각오를 하고 왔다.
죽기를 각오하고, 그들이 죽었을때 북한측은 아군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로 파생되는 문제점은 없을까?
북한군 병사 3명을 남측으로 유도하여 살해 했다고 민족이나 국가의 장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살인병기다.
세사람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 아군은 최소한 10배는 죽을 것이다.
모두.. 삶이 있다.
인생이 있다.
북한군도. 남한 병사들도..
그들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선 시점, 그리고 철책 앞에 3명을 남겨두고 떠난 시점, 충분히 그들이 감시 받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북쪽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 도 있다.
그들은 또 다시 남쪽으로 넘어올려고 할 것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설혹 그대라도..
그래서 그 세명의 병사를 포위할 만반의 준비를 한채 그들을 유인했다.
아니.. 제발로 걸어오는 것을 포위한 것이지만.
2중. 3중. 포위망이 펼쳐졌다.
중대, 연대, 사단, 군단이 움직였다.
5군단이 모두 3명의 병사의 움직임에 맞추어 비상이 걸렸고,
그 최전방에는 우리 소대가 있었다.
결국은 피를 흘리며 총알 받이가 되어 죽어갈 운명.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프레스 기계에 손등이 찍여 외팔이로 살아가겠지.
넌 청량리에서나 볼 수 있을까?
맨 처음 보충대에서, 철원에 왔을때, 이곳 철책 앞으로 왔을때, 점점 내 자신이 이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민이라는 것을 느낄 뿐.
가난한 농부의 아들.
오오..
얼마나 성스러운 말인가?
성골이다.
무엇을 위한 병역의 의무일까?
내가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난 내가 눈을 떳을때 이미 삶에 지쳐 있었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 사회.
권력의 지배자는 불변의 사람.
그대 아는가?
내가 그 절대 지배자가 죽었을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서럽게 울었던 것을?
애초부터 군대따윈 오고 싶지 않았다.
내게도 자랑스런 아버지가 있었다면 체중이 좀 빠졌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아메리카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곧 비행기 타고 돌아오겠지만..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3분 안에 90%이상의 사상자를 내게될 위치에 도착한 나.
무사히.. 조용히.. 돌아가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대들이 알지 못하는 처참한 전장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조직과 조직의 대결에서 개인기를 내세우는 것만치 무모한 짓은 없는 법.
남과 북의 대결에서 어찌 내 개인이 안전할 곳이 있겠는가?
계속되는 무모한 도발.
왜 자꾸 철책을 통해 넘어 오는 것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겠지.
자. 이제 완벽한 포위망이다.
쉽게 사로잡거나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하..
책상위에 도표를 그려 놓은체, 사람을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알고 작전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조금도.
돈을 중시하는 사람은 돈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사람이 돈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다. 그사람의 돈이 내게 돌아오는가 아닌가로 상대한다.
권력을 중시하는가? 출세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그 일이, 그 사건이 어떤 영향으로 내게 돌아올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것 같다.
흐뭇 했겠지.
완벽한 포위망에 사로잡힌 세 사람.
그리고 그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압도적인 아군의 병력.
이제 이 사건은 그대의 출세에 평생의 영광으로 남겠지.
남측 휴전선을 침투한 무장공비 세명.
완벽한 경계망에 걸려들어 일망 타진.
시체위에 웃으면서 걸어다니는 사진이 신문에 실릴지도 모른다.
영광스럽게도 전국지에 인터뷰할지도 모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의 장래는 탄탄대로..
조국을 지키는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한 내 자신.
아들에게도 자랑스럽겠지.
아무렴.
당연하지.
그대라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영광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아니.
그대의 잘못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운명은 예정된 것.
3,
언젠가 아주 어렸을때 작은 누나가 갖고 다니던 그림책을 본적이 있다. 대학생이었다.
루이제 린제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이다.
제목이 맞는지 모르지만..
루이제 린제는 김일성이랑 친했던 독일 작가.
너무 어려서 보아서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은다. 제목과 저자를 기억해낸 나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고 있다.
틀렸을지도...
그 내용은 애벌레에 관한 내용이다.
애벌레의 여행. 그리고 애벌레의 거대한 탑. 탑 아래 애벌레는 탑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도중에 만난 동료도 뒤로 한채..그리고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꼭대기 위의 애벌레들.. 구데기들은 중얼거린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왜 올라왔지?"
"그런 말 하지 말아. 밑에 있는 애들이 들어. 그들이 그 사실을 알고 떠나가면 우린 떨어질꺼야."
우린 그 애벌레와 같은 운명일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채, 누군가 이끄는 대로, 모두 몰려가는 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알받이로 사라질 운명.
그렇지 않다면 프레스 공장에서 손이 사라질 운명.
조금 일찍 공장에 다녔다면, 내 친구처럼 군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참혹하고 처참한 운명이 싫어서 학교에 같지만 결국은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아.
그 어른 그림책에서 애벌레는 나비가 된것 같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나.
기억이 난다면 좋을 텐데..
4,
"서 일병. 잠좀 잤어?"
"아뇨."
안개 자욱한 전방을 응시한 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우거지 일병이다.
훗..
지금도 우스워.
얼굴에 미소가 떠올라.
우모일병.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아. 그순간. 그 느낌. 영원할꺼야.
천년동안..
철책에 들어가기 위해 소대 티오를 모두 맞추었다. 그러기 위해서 엄청난 신병이 들어왔고, 2달 사이에 11명의 병사들이 비호의 깃발 아래 보며 들었다.
우모 일병은 나보다 1달 먼저 입대했다.
나이는 나보다 1살 어렸고 ㅎ대에 다니고 있었다. 아마 군생활 중 전출간 김모후임병 이래로 가장 학벌이 좋았다.
물론 자랑할 학벌은 아니지만.
맨 처음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원산폭격을 시켰었다. 그리고 내 머리는 짓물이 날 정도로 허물어 졌다.
아..
의미 없는 폭력.
후임병이 미워서가 아니다. 잘못해서가 아니다. 통과의례라고 할까? 강제적인,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하나?
싫다고 피할수 없는 생활.
어떤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
<<<<<<<<<<<<<<<<0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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