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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9/20 22:12:56 |
Name |
Arata_Striker |
Subject |
나는 게임을 사랑한다. |
나는 게임을 사랑한다. 게임이라 하면 워낙 그 범위가 넓은 탓에 도대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느냐는 반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사랑한다.
게임, 그 중에서도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리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를 인도한다. 새로운 경험,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삶의 희열을 가져다 준다. 그 경험은 1인칭이다.
기술의 발전은 책으로 읽고 사진으로 보는 정적인 경험을 넘어, 영상을 보고 음향을 듣는 동적인 경험의 세계에까지 우리를 이끌어주었다. 고화질의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7.1채널 서라운드음향에 묻혀 있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험의 주체과 객체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움직일 수 없고, 화면이 흐르는 대로 우리 자신을 맡겨야만 한다. 들리는 대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은 경험의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을 재구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게임을 하는 그 시간동안 우리는 철저히 그 세계 안의 존재가 된다. 세계 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사고와 행동은 그 세계 안의 다른 존재와 연관되어 있다. 나의 사고와 행동은 다른 존재들과의 연관속에서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는 게임 세계 속의 규칙은 실제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한다. 이것이 시뮬레이션 게임의 핵심이다.
퍼스널 컴퓨터의 초창기 시절에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시뮬레이션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이제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더라도 그 원리만 입력된다면 무엇이든 시뮬레이트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우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의 험난한 여정에 동참할 수 있고, 보잉747 여객기를 몰고 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할 수 있으며, 구형 화기를 손에 쥐고 총탄이 빗발치는 노르망디 해변을 기어올라갈 수도 있다. 실제감이란 꼭 시각과 청각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2차원 화면으로 구성된 경기영상만으로도 우리는 각종 스포츠 시뮬레이션에서 실제와 같은 스릴을 맛볼 수 있고, 만화책에 등장할 법한 간단한 삽화만으로도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싸움을 즐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그러니까 1988년 가을에, 친구집의 8086 XT컴퓨터에서 처음 F16 전투기 조종간을 잡은 것이 내 시뮬레이션 게임의 시작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게임기나 오락실 기계들이 줄 수 없는 것을 이 컴퓨터 게임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에 와서는 문명 류의 전략시뮬레이션, 챔피언십매니저와 같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을 즐겼다. 물론 아케이드성의 액션게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때문에 오래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어쩌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게임에 재능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 그것도 현대 기술의 첨단을 모아놓은 컴퓨터 안에서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고자 하는 닮은꼴이다. '가상 현실', '시뮬라시옹'이라는 어려운 단어들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된다. 직접 부딪쳐 경험해 보면, 마치 텔레파시와 같이 머리속에 경험이 뿌려주는 이미지가 녹아들어오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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