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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9/20 21:23:23
Name DarXtaR
Subject 저는 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온게임넷 2차 맵공모전 즈음에 캠페인 에디터(스타크래프트 기본 맵에디터)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2년 정도된 것 같군요. 2년 사이에 정말 수 많은 맵을 만들었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수십 수백여개의 맵들이 자작맵 폴더에 추가되었다가 삭제되었다가를 반복했을 겁니다. 간혹 제 맵에서 게임을 해보시고 재밌었다며 리플레이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한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았지만 틈틈히 에디터를 열고 닫고, 맵구성을 떠올려보고, 스케치까지 해가면서 맵을 만들고 나름대로 테스트도 해가며 참 즐거웠었죠.

개인적으로 맵퍼는 설계자(Architect : 아키텍트)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각종족의 생사가 결정되는 전장인 맵에 일정수의 스타팅 포인트를 부여하고 본진과 앞마당, 센터의 복합적인 구성 결정을 비롯한 자원량 조절과 기타 아기자기한 요소들을 불어넣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서 아키텍트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e스포츠의 아키텍트, 즉 맵퍼에게는 그 권한 혹은 매력 만큼이나 고충이 많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 세 종족이 있듯이 맵에도 게임성(밸런스)/독창성(발상)/디자인(시각효과)이라는 세 가지 쟁점이 있고, 아무리 바짝 신경을 쓰더라도 어느 한 쪽은 부족할 수 밖에 없기에 맵퍼는 항상 트릴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여느 수 많은 맵퍼분들이 그러하듯, 제 개인적인 성향상 게임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게임성 조절을 위한 맵을 많이 만듭니다만 중요한 만큼 가장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럼 게임성을 조절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명확하게도 답은 딱 하나,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떠 어떠한 변수가 발생는지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 종족전별 유불리입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테란/저그/프로토스라는 세 가지 종족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종족은 여섯가지의 종족전을 만들어내는데 맵의 유불리가 작용하지 않는 동족전을 제외하면 맵의 유불리가 작용하는 세가지의 종족전(TvsZ / ZvsP / PvsT)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수의 유불리가 작용하는 실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러쉬거리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요? 기본적으로 러쉬거리가 가까우면 테란이 저그에게 유리하고, 토스가 저그에게 유리하고, 테란이 토스에게 유리합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실 명제이지만, 맵퍼는 이 명제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군.. 러쉬거리가 가까우면 테란이 좋고 멀면 저그가 좋은 거구나. 그런데 토스는 뭐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고 물음표를 던져봐도 해답이 없는 이런식의 문제점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각종 변수에 따라서 그 기본 명제조차 뒤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두번째로, 경기 양상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보통 맵퍼는 어느 정도의 게임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정상급 프로게이머분들이 격돌하는 공식전에서의 경기는 맵퍼의 상상을 뛰어넘기 마련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구성인 로템식 언덕형 본진에 8M+1G의 자원, 평지 앞마당에 8M+1G의 자원을 준다고 하더라도 매번 같은 양상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전략/전술적인 흐름, 각각의 프로게이머분들이 준비해오는 가위바위보 선택 심리전 등등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애를 먹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프로게이머분들도 특정맵에 적응함에 따라 실시간으로 더욱 더 다양한 전술적 변수들이 생기게 되므로 맵퍼가 이를 예측한다는건 불가능하고, 대부분이 예측이 아닌 예상에서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변수는 테스트라는 검증의 노력을 통해 다스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겠지만 말그대로 노력일뿐 변화무쌍한 경기 영상 예측은 테스트만으로는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적합한 예로 각 시즌마다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온 레퀴엠을 들 수 있겠네요.

세번째로는, 맵이 가진 근본적인 불균형 때문입니다. 보통의 맵은 픽셀(맵포지션)상 가로 세로 128×128의 사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캠페인 에디터를 열어보면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게임성에 치명적인 불균형을 입히게되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네 곳의 모서리 지점(1시 5시 7시 11시)에 스타팅 포인트를 가진 맵은 가로와 세로간 러쉬거리가 다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저그 게이머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죠). 그 밖에 여러가지 불균형이 있겠지만 또다른 대표적인 불균형은 언덕 입구입니다. 2D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언덕 입구는 좌하(↙) 우하(↘) 방향으로만 넣어줄 수 있고 우상(↗) 좌상(↖)의 언덕 입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본진과 앞마당 동선이 길고 짧아지는 등의 스타팅간 불균형이 초래될 수 밖에 없습니다(로템 8시와 레퀴엠 3시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마치 카오스 이론의 나비효과와도 같은, 게임성을 해치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과 설명입니다. 글이 좀 길어졌네요. 그동안 너무 어두운 부분만을 말씀드린건지 모르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밤이 깊으면 아침은 빨리 다가오는 법, 지금부터는 밝은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99'PKO를 시작으로 지난 약 7년여간 발전해온 맵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게임성/독창성/디자인 세가지 부분 모두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게임성 부분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전진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게임성은 쉽게 잡아나갈 수 있는 녀석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맵퍼분들은 지금까지 겪었던 수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당장의 1분 1초 전의 맵보다 더욱 더 뛰어난 맵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예전의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맵적 유토피아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영화 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아키텍트를 기억하십니까? 아키텍트는 매트릭스를 설계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그 원인인 예외인 자(neo)를 완벽하게 제어해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맵퍼들 또한 그 아키텍트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e스포츠의 예외인 자 즉, 프로게이머분들의 놀라운 능력으로 인한 예측을 벗어나는 게임성 파괴를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좀 하자면,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은 이것입니다. 밸런스는 분명 맵으로 잡아줄 수 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맵퍼분들은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설계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외인 자가 그랬듯이, 프로게이머도 같은 인간일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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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트
05/09/20 21:38
수정 아이콘
좋은 맵들은 많이 있었고, 밸런스가 무너졌더라도 참신한 발상의 재미있는 맵도 많이 있었죠.
맵퍼분들이 있기에 새로운 리그에서 저희가 새로운 스타일의 경기를 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DarXtaR 님께서 만든 맵이 정규리그에 쓰이길 바래봅니다. ^^
(이미 쓰이고 있다면 낭패인데.. -_- )
05/09/20 21:40
수정 아이콘
참신한 발상조차도.. 현재로서는 딜레마가 되어버리는 현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거죠..
모두를 만족시킨 척 하는것은 가능하지만...

후우.. 노력.. 또 노력입니다.
서정호
05/09/20 21:41
수정 아이콘
DarXtaR님 만드신 맵은 어디가면 볼 수 있죠?? 어떤 맵들을 만들어 왔는지 궁금하네요. ^^
삼산동노숙자
05/09/20 22:02
수정 아이콘
맵만든다는건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지요
위치 구조물 자원등등
참으로 수많은 생각과 고심을 필요로하는 고된 작업에서
하나의 수작을 만드시길
저vs프만 얼추 맞추셔도 최고의 맵이지요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05/09/20 22:19
수정 아이콘
다크님 맵은 맵도리 사용자 맵게시판이나 YG 맵커뮤니티에서 닉네임으로 검색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많이 부족한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니요!!! 본좌께서 이러시면 다른 분들은 뭐가 됩니까-_-
뭐 어쨌든 마음이 뜨거워지는 글이네요. 맵을 만들지는 않지만 같이 테스트해주는 사람으로써;
i_terran
05/09/20 23:31
수정 아이콘
많이 고민하신 흔적이 느껴집니다.
보아남자친구
05/09/20 23:33
수정 아이콘
열심히 노력하시는 맵퍼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더욱 재밌고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수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등장한 상식을 뛰어넘는 맵들, 라이드 오브 발키리나 철의장막 같은 경우는 볼때마다 감탄하게됩니다.
레퀴엠, 노스텔지아같은 완벽에가까운 밸런스를 가진 맵들 또한 그렇구요.
열심히 노력하셔서 곧 다크님 맵을 방송경기에서 볼수있었으면 합니다.
05/09/21 00:17
수정 아이콘
평소에 제작된 맵들을 보...'이 맵은 종족간 벨런스가 안맞아!' '왜 하필 이런 타일이람!' '참 특이한 발상이네..'라고 무심코 말하곤 했었는데 참 제가 가벼웠다는 생각이듭니다.
다크님을 비롯한 많은 맵퍼님들의 고뇌가 엿보이네요.
더불어 글안에도 다크님의 깊은 생각과 배려가 보입니다.
조심스레 '추게'를 외쳐봅니다^^
Peppermint
05/09/21 01:31
수정 아이콘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키텍트와 네오에의 비유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맵퍼님들 화이팅입니다!!!
05/09/21 03:26
수정 아이콘
추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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