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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8/30 06:18:26 |
Name |
DEICIDE |
Subject |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54화 |
2005년 5월 8일 3시 5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고오오오오……”
낮으면서도 묵직한 진동으로 인해, 경기장 전체가 가늘게 떨렸다. 하늘에 현란한 불빛을 수놓으며 돌아다니던 외계인들의 비행선들이, 점점 그 숫자가 사라져갔다. 그 비행선들의 궤적을 따라, 강민의 시선이 이동했다. 비행선들은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둥근 모선으로 속속 귀환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데.”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요환이 중얼거렸다. 외계인의 모선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면 하늘을 거의 뒤덮어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계인들의 모든 비행체는 귀환했다. 하늘에는 거대하고 시커먼 모선만이, 동체에서 실오라기 같은 빛을 뿜으며 떠 있었다.
“저게…… 저게 뭐지?”
그 때, 정민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크기는 거대했지만 아직 꽤나 높은 곳에 떠 있던 외계인의 모선에서, 무엇인가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참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늘고 긴 선 같은 것이었다. 외계인의 모선에서부터 뻗어나온 그 기다란 선은 서서히 내려오더니, 어느 새 연성이 앉아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아무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경기장 안에 외계인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너희 인간들이란 정말 알 수 없군.”
목소리를 들은 프로게이머들은 화들짝 놀랐다. 경기장에 갖추어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면서 나는 목소리였다. 바로 경기장에 모여 있던 수천, 수만의 외계인이 동시에 내는 소리였다.
“뭐, 뭐야?”
“이게 뭐야?”
프로게이머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외계인은, 그 수천 수만의 울림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더 이상 재미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 우리의 전부로 상대하겠다. 우리들의 전사 개인 개인이 모아둔 인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하나로 모으겠다. 또한 위대한 우리 전사들의 모든 지혜 또한 전부 하나로 결집시켜서, 그것으로 너희를 상대하겠다.”
모선에서 뻗어져 나온 촉수는, 앉아 있는 연성의 목덜미에로 서서히 다가갔다.
“죽어라.”
그 말과 함께, 촉수가 연성의 뒷 목에 꽂혔다. 순간, 모든 외계인들의 움직임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요란하던 경기장에 모여있던 모든 외계인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던 연성의 눈과 귀, 입에서 빛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으읏……”
그것을 보고 있던 강민의 왼손이 움찔 했다. 외계인들이 지금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대충 알 듯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최후의 수단을 쓰는 외계인들에게, 지금의 강민이 승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2005년 5월 8일 4시 0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강민은 자리에 앉았다. 모든 외계인들은 완전히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이들의 행동과 생각, 정보와 지식 등은 모두 한 곳에서 수집, 통제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스타크래프트에 이기는 것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방송을 중계하던 외계인들마저 그렇게 되어, 경기장에서 일을 하던 다른 지구인들이 중계를 대신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오오오……”
강민은 간헐적으로 낮은 진동을 느끼며, 앞에 앉은 연성을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은 그것이 외계인들의 전부였다. 그리고 외계인 전체였다. 경기에 진 선수는 목숨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해서, 지금 외계인이 진다면, 외계인 전체가 자멸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도 그만큼 총력을 다 해서, 인류를 이기고 인류를 말살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가. 승리한다는 것이.’
강민이 그렇게 씁쓸해 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그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꾸만 그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상태여도 이기기 힘든데, 지금 그에게 있는 치료수단이라고는 아까 의무실에서 급히 들고온 스프레이형 소염제가 전부였다. 이것으로 순간적으로 통증이 완회될 수는 있겠지만, 궁여지책에 불과했다. 이러지 말자.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두자.
“슈웅.”
그러는 사이, 맵 선택 화면아 나타났다. 이것은 외계인들의 조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도록 한 모양이었다. 더 이상 손 부상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하면서, 강민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경기해야 할 맵이었다.
“타타타타타타…… ”
무슨 맵이 결정되면 좋을까, 강민은 생각했다. 하긴, 어떤 맵이든 무슨 상관일까. 이 승부는 이제 맵 같은 것에 구애받는 승부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강민은 결정되어진 맵을 보고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타타타타타…… 탁.”
<Neo The Lost Temple>
2005년 5월 8일 4시 04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로스트 템플이 한번 더 등장했다. 강민은 맵이 선택되어지자 마자 윤열을 생각했다. 그래. 윤열이의 원한을 복수해주겠다. 아니, 죽어간 모든 프로게이머들을 위해 복수를 해야 했다. 아니, 그동안 죽어간 전 인류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그 절호의 기회가, 부상을 입은 강민의 손에 주어져 있었다.
“경기 시작됩니다!!!”
Nal_rA 와 Gatzz 의 종족 선택도 모두 완료되었다. 해설진의 해설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starting in : 5 seconds>
<starting in : 4 seconds>
<starting in : 3 seconds>
<starting in : 2 seconds>
<starting in : 1 seconds>
<starting in : 0 seconds>
“슈웅-”
“슈웅-”
“아아아……!!”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해설진의 입에서는 절망 섞인 탄식이 터져나왔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스타팅 포인트가 열린 곳은 12시와 2시였다.
“강민선수의 위치는 12시, 테란의 위치는 2시……”
정일훈 캐스터는 우물우물하듯 선수들의 위치를 설명했고, 김동수 해설은 정말 맥이 풀렸다. 무언가, 마음껏 싸워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결정된 위치는 그것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강민을 옭아맸다.
“프로토스에게 좋지 않은 위치입니다. 하지만 강민, 제발 힘을 내 주기를 바랍니다……”
정일훈 캐스터가 중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동수는 강민의 첫 프로브 정찰이 나갈때가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민의 프로브가 게이트웨이를 소환하며 바깥으로 빠져 나가자, 그제야 김동수 해설은 입을 열었다.
“강민, 게이트웨이 올리면서 프로브 정찰 나갑니다. 정찰이 좀 늦은데요, 테란이 2시에 있다고 해도 어시밀레이터 러시를 하지는 않을 거였다는 이야기지요.”
드디어 강민의 프로브가 테란의 본진을 발견하였다. 테란은 입구에 SCV 한 기를 세워두어서 프로브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강민이 SCV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려고 했지만, SCV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공격해 들어오는 프로브를 핵융합 절단기로 지져댈 뿐이었다. 곧 테란의 입구는 막혔고, 프로토스는 결국 테란 본진 정찰에 실패했다.
“강민 선수. 지상군으로 맞상대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사실,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 리버뿐인데요, 그것을 모를 리가 없겠죠.”
“자, 강민선수 선택이 무엇인가요?”
그 때, 사이버네틱스 코어 이후 올라가는 강민의 테크트리가 화면에 보여졌다.
“다크 템플러네요. 시타델 오브 아둔을 짓는 강민!”
“아…… 강민! 다크템플러를……?”
동수의 생각은 솔직히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테란은 원팩 이후에 일단 엔지니어링 베이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죠. 테란은 플토가 초반에 무엇인가를 안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거죠. 그래서 미사일 터렛과 시즈탱크로 리버도 방어하고, 다템도 방어하고 멀티를 빨리 가져가서 안전하게 승리하겠다는 계산이에요. 강민선수, 다템은 통하기가 매우 힘든데 왜 하필 다템일까……”
그 때, 김동수 해설은 시타델 오브 아둔이 완성되려고 할 무렵, 12시 본진 아주 구석 즈음에 소환해둔 파일런에서 강민이 짓고 있는 건물을 확인하고서는 경악했다. 놀라기는 정일훈 캐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스타게이트??”
“강민? 스타게이트를 올립니다?”
두 해설진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정찰용 커세어? 아니면 스카우터? 설마 노멀티 패스트 캐리어를 생각하는건가? 그러나 곧, 김동수 해설은 자기 자신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하지만 김동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 전략의 이름을 말했다.
“강민 선수. 혹시 패스트 아비터인가요……?”
2005년 5월 8일 4시 08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로보틱스 올리지 않고, 아둔 올린 다음에 스타게이트와 템플러 아카이브. 이건 패스트 아비터입니다.”
“아…… 강민!!! 로스트 템플에서 패스트 아비터…… 로템에서 패스트 아비터라뇨.”
해설진은 어이가 없었다. 옛날 동수 자신이 섬맵에서 패스트 아비터를 시도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로스트 템플이라는 지상맵에서. 그것도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쓰는 전략이란 말인가. 이건 무모하다기보다는 완전히 미친짓이었다.
“……강민, 사람이 아니에요.”
김동수 해설은 그렇게 말했다. 한때 김도형 해설이 강민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동수가 보는 강민은 정말 사람같지가 않았다.
“……이게…….”
“예?”
김동수 해설이 무어라 중얼거리자, 정일훈 캐스터가 물었다. 그러자, 다시 김동수 해설이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게 그 방법인가요. 인류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저 하나로 밀집된 외계인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제야 정일훈 캐스터도 김동수 해설의 말을 알아들었다. 내내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던 김동수 해설이 거세게, 흥분되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 사람같지 않은, 지구인같지도 않은 전략을 꿈꾸는 자. 몽상가 강민 뿐이라는 건가요?”
2005년 5월 8일 4시 1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퍼헝! 퍼헝!”
“입구로 공격을 들어와보는 벌쳐! 하지만 캐논에 방어됩니다!”
아비터를 생산한 강민은 질럿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하였고, 본진 입구는 캐논으로 방어하였다. 테란은 터렛과 시즈탱크 등으로 프로토스의 초반 견제플레이를 예상하고 방어진을 갖추었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앞마당 멀티를 가져갔다.
“정말 초 긴장상태입니다. 강민선수,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이제 테란의 병력이 조금씩 진출을 시도하거든요?”
프로토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것을 테란도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탱크들이 한대, 두 대 프로토스의 턱 밑에 조이기 라인을 구성해 나가며 올라갔다.
“퍼헝! 퍼헝!”
“강민, 강민 아비터 움직이죠?”
탱크의 포화가 포톤캐논 있는 곳에 다다르자, 강민의 아비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란의 조이기 라인을 지나, 강민의 아비터는 테란의 본진에까지 쑥 들어갔다. 해설진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강민의 병력!!! 강민의 병력!!! 테란의 본진에 리콜!!!”
“기이잉-”
몽상가의 아비터가 테란의 터렛을 피하여, 본진의 팩토리 주변에 병력을 소환해 놓았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질럿들이 테란 본진의 시즈탱크와 벌쳐들에게 달려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하느라 왼손이 아파왔다. 강민은 어떻게든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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