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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8/23 22:47:10 |
Name |
DEICIDE |
Subject |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53화 |
2005년 5월 8일 3시 35분
서울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끝이 보인다’
시청앞 광장의 사람들은 손에 주먹을 불끈 쥐고, 정민의 경기를 숨죽여 지켜봤다.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다. 상황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정민에게 절망적인 상황만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상황이 희망적이었다.
“파팡, 파파파팡! 파파파팡!!!”
“파파파팡! 파파팡!”
열심히 서플라이 디팟을 공격하고 있던 정민의 벌쳐부대 뒤쪽으로, 귀환한 최연성의 병력이 들이닥쳤다. 주병력 싸움에서는 정민이 속절없이 밀렸다. 하지만 그와 함께 3시 지역에 떠 있던 연성의 배럭스는 기어이 폭발했다.
“김정민 선수, 9시 지역 가야죠! SCV 생산만 막으면 이깁니다!”
정민의 본진에 있는 건물도 모두 파괴되었다. 이제 정민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배럭스 하나, 그리고 레이스 한 기였다. 매우 초라해 보이는 병력이었지만,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을 진짜 사신(Wraith)이었다.
“가라!!! 이겨라 김정민!!!”
“이야아아아!!!! 김정민 이겨라!!!! 아아아아!!!!”
날아가는 레이스를 보고,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힘차게 소리쳤다. 승리가 멀지 않았다. 옵저버가 9시에 내려앉은 커맨드 센터에서 불이 깜박이는 화면을 비추었지만, 해설진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정민 선수!!! 지금 상황은 지난번 서지훈 선수와의 대결 때와는 아주 다릅니다! 아머리도, 배럭스도, 엔지니어링 베이도 없기 때문에 SCV를 한기 한기 생산해서 자원도 캐고, 건물도 지으면서 되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김정민!!! 기적적인 역전승을 기어이 일궈 내는건가요!!!!!! 지금으로서는 그럴 분위기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보는 사람들은 괴로웠다.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 제발 어서 연성이 GG를 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스를 보면 GG가 나올 겁니다. 제발, 제발 GG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민의 배럭스는 9시 지역 약간 아래쯤에 가만히 떠 있었다. 레이스도 레이스였지만, 이 배럭스가 정민을 살리고 있었다. 이 곳에 배럭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지 몰랐다. 정말 다행이다. 배럭스가 이 곳에. 배럭스가.
‘배럭스가 여기에 있는 건……“
순간, 정민은 불길한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배럭스의 시야에 막 생산된 SCV의 모습이 잡혔다. 레이스도 거의 도착했다.
“SCV가 생산되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온 레이스!!!"
"어?“
김동수 해설이 순간 놀랐다. SCV가 생산되자 마자 벙커를 짓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정민은 불길함이 사실로 드러나 버렸다. 정일훈 캐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SCV가 벙커를 건설합니다!!!!!!”
“아아아! 아까 배럭스를 쫓아온 마린이 여기에 와 있나요???”
배럭스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마린이 9시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정민은 레이스로 도착해서 마린을 찾았다. 하지만 숨겨 두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보냈는지 마린은 눈에 띄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건설되는 벙커의 체력이 160까지 올라갔다.
“김정민!!! 지금 마린 찾아다닐 때가 아니죠!!! 벙커 짓는 SCV만 잡아내면 마린은 어떻게든 찾아내서 레이스로 잡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벙커의 체력이 200 가까이 된 다음에야 정민은 SCV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벙커에 마린과 SCV가 같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츙! 츙!”
“레이스가 8번만 공격하면 SCV는 폭발합니다! 김정민 선수!!! 2번! 3번!”
레이스의 공격을 받으며, 벙커의 체력은 빠르게 올라갔고, 정민은 계속해서 SCV를 공격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마린만 잡으면 승리다. 하지만 벙커가 완성되고 마린이 들어가버리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츙! 츙! 츙!”
바로 그 때, 9시 지역의 무성한 나뭇잎 아래 숨어 있던 마린 한 기가 바깥으로 나와 레이스를 공격했다. 정민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시청 앞 광장의 시민들도 머리를 감싸며 탄식했다.
“두두두두!!!”
“아아아아……”
“아아아……!”
그리고, 끝내 레이스의 공격은 7번만 성공하고 결국 벙커가 완성되었다. 마린도, SCV도 모두 안전한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아악!!!!!”
“아아아, 안돼!!!!!!”
“두두두두……”
벙커에서 마린이 사격하자, 정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레이스를 후퇴시켰다.
“아아…… 김정민……”
해설진도 망연자실해 했다. 다 잡았던 승리를 손끝에서 놓쳐 버렸다. 폭풍같던 노스탤지어의 전장은 순간 고요해졌다.
“……”
유닛도, 건물도 미니맵 상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전한 침묵 속에 빠져 버렸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직입니다. 김동수 해설위원, 이렇게…… 이렇게 되면?”
깊은 아쉬움에 빠져 있던 터라 동수는 정일훈 캐스터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정일훈 캐스터가 한번 더 물었다.
“테란에 SCV가 있습니다만, 지금 레이스가 한 번만 가격하면 폭발하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SCV는 벙커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고, 레이스도 벙커를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바로 그 때, 옵저버가 퍼즈를 걸었다. 시청 앞 광장의 대형 화면에는 굳게 멎어버린 흑백의 화면이 떴다. 이상하게도, 무섭도록 소름끼치는 화면이었다.
“……무승부입니다.”
2005년 5월 8일 3시 4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정민은 고개를 파묻은 채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내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생각도 하기가 싫었다.
“정민아.”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돌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무런 기운도 없었고, 아무런 힘도 없었다.
“수고했다. 정말 멋졌어.”
정민은 그제야 그것이 강민인 것을 알았다.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있던 정민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를 갈았다.
“……왜, 왜 대체……”
강민은 그런 정민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감한 상황이었다. 외계인들은 강민에게 다음 경기를 속행할 것을 지시했다. 만약 패한다면, 마지막 경기를 정민이 한번 더 치르어야 할 것이다.
“……다 이긴 건데. 거의 다……”
“잘 했어. 어쨌든 살아 남았잖아.”
그 말에 정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민을 쳐다보았다.
“민아.”
정민이 자신을 부르자, 강민은 정민의 어깨를 양 손으로 붙들었다.
“진짜 멋있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김정민이야. 도망치지 않고 결국 네 스스로 여기까지 와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잖아. 네가 네 스스로를 믿었다는 증거라고.”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오자, 정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민이가 왼손에도 힘을 주어서 어깨를 꽈악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러 더 세게 왼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질수 없지. 꼭 이기자. 응?”
강민이 편안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던, 상처입은 날개를 가진 이카루스의 눈에서 결국 굵은 눈물이 한 줄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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