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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8/23 04:23:01 |
Name |
DEICIDE |
File #1 |
TheMarine.jpg (264.2 KB), Download : 19 |
Subject |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49화 |
2005년 5월 8일 2시 5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웃고 있었지만, 진호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동료 게이머들이 그를 부축해서 선수석으로 앉혔다. 진호를 부축하던 정민은 진호의 손이 아직까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크아악! 크와앙!”
“크르르르…… 크와악!”
아래쪽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판관들이 경기에 패한 외계인을 군중 속으로 던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덩치가 작은 외계인이었는데도 신체의 각 부분이 여기저기에서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흩뿌려지는 피를 보며 애써 여유를 찾으려는 정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통쾌하고 시원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자, 저들의 광기가 나에게까지 전염된건가 하고 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김정민 파이팅! 이제 네 차례다.”
“정민아, 끝내버려! 이기자!”
“그래, 네가 좀 끝내라. 힘들어 죽겠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큰 목소리로 일제히 정민을 응원했다. 정민은 그들을 보았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등이나 어깨를 두드리며 정민을 격려했다. 진호도 힘을 끌어모아 정민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민이는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파이팅을 외쳤다.
“정만아, 파이팅!!!!”
“알았다!!!”
그것을 본 정민도 웃으며 대답했다. 요환에 이어, 진호도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겨버리고 살아 돌아온 것이다. 이제 한 걸음이다. 한 걸음만 나가면. 한 걸음……
“……!”
그 때, 왼손을 뒤로 숨기고 있는 강민의 모습이 정민의 눈에 들어왔다. 정민의 입가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그제야 정민은 이 기쁨이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승리까지는 앞으로 한 걸음이었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 또한 없었다. 마지막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굳게 입을 다문 정민은 선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 수 없다.’
손을 다쳐서 경기가 불가능한 민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정민은 질 수 없었다. 자기 대신 쓰러진 정석이 때문에, 정민은 질 수 없었다. 나를 믿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 자신이 나를 믿자.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면, 나는 끝까지 다른 사람의 바라보는 나 자신만이 남아있게 된다. 이 자리까지 내가 걸어왔고, 꼭 이겨낼 것이다.
“다녀올게.”
정민은 크게 기합을 넣고 심호흡을 했다. 이상하게도, 죽는 것은 그다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수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정민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믿음직스럽다고 진호는 생각했다.
2005년 5월 8일 2시 5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김정민 선수!!! 반드시 승리해서 3:1로 끝내 주기를 바랍니다!”
“예. 선수들이 연이어 피말리는 경기를 하고 있어서, 사실 중계를 하고 있는 저희들도 몹시 지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해설진도 많이 지쳐 있었다. 정일훈 캐스터는 숨막히는 승부가 연이어 계속되자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서 힘차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경기석에 앉아있는 김정민 선수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 생각을 하면 힘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계신 세계 각국의 모든 분들! 바로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길고도 참혹했던 사흘간의 시간들이, 바로 지금 종식될 수 있습니다!”
요환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오는 정일훈 캐스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기울였다. 정말로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끝내야 할 때다. 정말로 끝났으면 좋겠다. 정민이가 제발 끝내 버렸으면 좋겠다. 그 마음은 진호도, 강민도 똑같았다. 그 때, 정일훈 캐스터가 큰 목소리로 정민을 응원했다.
“여러분, 김정민 선수입니다! 김정민 선수에게 큰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우와아아아아!!!! 김정민 파이팅!!!”
“김정민!!! 이야아아!!!”
바로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끄워어어어~ 크와아아아앙!!!”
“키키키키!!! 키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
경기장 앞에 가득하던 외계인들 또한 거세게 함성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노나 위협의 괴성이 아니라, 진짜로 흥분과 기쁨에 들떠 질러대는, 경기 시작 전에 그들이 내던 함성소리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민을 응원하던 세 명의 프로게이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 지금……?”
해설진도 순간 당황했다. 대체 저들이 왜 정민을 응원하는 것인가? 왜 갑자기 그들의 태도가 돌변했는가?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조차 하기 힙들었다. 바로 그 때.
“기이이이잉-"
정민이 앉아있던 경기석 반대편으로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었다. 납작한 원반 모양의 비행선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자, 외계인들의 환호성은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크와아아아!!!”
“캬아아아아아!!!”
그 비행선 위에는, 아까 보았던 키가 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외계인이 타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 검은 색의 커다란 금속 통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 것도 보였다. 비행선은 천천히 날아오더니, 경기장의 가운데에까지 들어섰다. 외계인들은 바로 이 외계인의 등장을 보고 열광했던 것이다.
“기이잉- 기잉-”
비행선이 내려앉고, 화려한 옷을 입은 외계인은 비행선에서 내렸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외계인들을 향해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외계인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외계인들이 조용해지고 나서 그 외계인은 정민과 지구 대표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을 돌아보았다.
“……너희 인간들의 파괴하고 죽이는 능력이란, 상상하던 것 이상이군.”
정민은 그가 하는 이야기를 선뜻 알아 들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외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정확하게 본 것일수도 있지.”
그 말을 하고 나서, 화려한 옷을 입은 외계인은 옆에 있는 커다란 금속 통의 무엇인가를 눌렀다. 그러자, 금속 통의 문이 열리며 안에 담겨져 있던 끈적끈적한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와 함께, 번들거리는 커다란 고치가 ‘철퍼덕’ 소리를 내며 정민의 옆쪽으로 떨어졌다. 그 흉측한 모양 때문에 정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재미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껏 우리 종족에게 패배란 없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외계인은 동족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서는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크게 외쳤다. 다시 한 번 외계인들의 함성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요환이형, 저…… 저기!!!”
진호가 무척이나 소란스러운 가운데에서도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 땅에 떨어진 고치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뭐, 뭐야?”
놀란 정민이 움찔 하며 경기석에서 일어났다. 그 때 고치의 윗부분이 좍 하고 갈라지면서, 안쪽에서 검고 진득한 물이 뭉클거리며 쏟아져나왔다. 그와 함께 위로 쑥 튀어나온 것을 보고서, 정민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사람의 손이었던 것이다.
“뭐, 뭐……”
미처 무어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사람의 손은 찢어진 부분을 잡더니 고치를 양쪽으로 좍 벌렸다. 그리고서 그는 검은 액체를 쏟아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정민과 다른 프로게이머들은 그 기괴하고 흉측함에 다들 순간적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곧이어 그 자리에 있던 프로게이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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