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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8/18 11:35:15 |
Name |
DEICIDE |
Subject |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19~21 |
2005년 5월 7일 오후 5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이제 다섯시간도 남지 않았군요.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소.”
정수영 감독이 팔짱을 낀 채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선수들을 강제로 경기에 내보낸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마지막 5경기 선발입니다. 의욕과 뜻도 없는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소? 어차피 막판에 가서 선수를 강제로라도 선발할 거면, 한시라도 일찍 선발해서 그 선수에게 마음의 준비와 연습을 하게끔 하는게 더 좋은 방안 아니오?”
“정 감독님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벌써 네 명이 출전한 그들입니다. 분명,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직접 나설 선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재균 감독이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흐음……”
이제 각 팀의 감독들은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외계인들의 T1 숙소 봉쇄로, 감독들조차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곳에 갇히다시피 한 그들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선수 엔트리를 한 명씩 발표한 것 부터가 잘못됐어요. 선발된 선수들의 명단을 모아 놓았다가 최종적으로 제출했어야 하는 건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엔트리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송호창 감독이 불만인 듯 말하자, 하태기 감독이 되받아쳤다.
“그 무슨 생각없는 말이오, 하 감독? 선수 엔트리가 중요치 않다니. 아무 선수나 5경기에 나가도 괜찮단 말이오?”
“송 감독님, 하 감독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지면 다음을 기약하는 그런 경기가 아니잖습니까. 패배하는 선수는 바로 죽게 된단 말입니다.”
“감독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져서야. 누군 자식같은 선수들이 경기에 져서 죽는 꼴을 보고 싶겠소? 벌써 나만 해도 윤열이가 1경기에 출전한단 말이오. 하지만, 감독이라면 당연히 최악의 상황에 대처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선수를 내보내야 할 것 아니오?”
주훈 감독이 이의를 제기하자, 송호창 감독이 혀를 찼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씹어뱉듯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막말로, 문준희 같은 선수가 5경기에 출전하겠다고 하겠다 칩시다. 믿고 내보낼 수 있겠소?”
“송 감독!!! 당신 말이면 단줄 알아!?? 뭐? 문준희 같은?”
하태기 감독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재균 감독이 급히 제지했다.
“진정하세요, 진정! 하 감독님 진정하십시오. 그리고 송 감독님, 너무 심한 말씀 아니십니까?”
“특정 선수 이름을 거론한건 잘못이지만, 사실은 사실 아니오? 여기에 있는 감독님들도, 자기 팀에 에이스가 있고, 서포터들이 다 있을거요. 하지만, 이런 자리에 에이스가 아닌 선수가 나가는 걸 수수방관 할 수만은 없는 게 우리 감독들의 책임이잖소?”
“송 감독 당신, 당신이 경기 나가는 선수가 아니라고 그렇게 막말하는거 아니야. 뭐, 수수방관을 못해? 그럼 당신 팀원을 들먹일 것이지 애꿏은 우리 준희를 들먹여! 당신이 밥이라도 한끼 먹여보고 그딴소리 하는거야?”
“이사람이 아까부터…… 그래, POS의 그 잘난 박성준 선수는 어디 가 있길래 코빼기도 안 보이는거야? 응? 핑계는 좋아요. 부모님 곁에 있어드리겠다? 좋아하네.”
“이거 진짜, 당신 정말 막 나가자는 거야 지금!?”
두 감독의 언성이 높아지자, 회의실 안 분위기는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감독들이, 평소에 가슴 속 깊이 꾹꾹 억누르고 참아왔던 감정들이 터져나오면서 의견 충돌은 감정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스폰있는 거만한 꼬락서니가 눈뜨고 봐줄수가 없었는데, 오늘 보니 아주 쓰레기구만! 돈잔치해서 남의 팀 선수나 곶감고치 빼먹든 빼가고, 그렇게 돈잔치로 만든 팀이 자기 감독 역량인양 거들먹거리는게 대수야?”
“뭐? 이봐요 하 감독. 거기에서 스폰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요?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요?”
정수영 감독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훈 감독의 심기도 불편해보였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아무리 성적이 탐이 나기로서니 안그래도 환경 열악한 팀들에 있는 그나마 잘해보려는 선수들을 돈으로 쳐발라서 데리고가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런 어린애같은 소리를 하니까 만년 하위팀은 하위팀이지. 프로 세계에서 승리를 위한 정당한 수단을 사용한게 무슨 잘못이라는 건가?”
“만년 하위는 좀 심한 말씀이시군요, 정 감독님.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계시면서 우승 한 번 못하신 정 감독님께 그런 말 듣다니 섭합니다.”
“아니, 지금……!!!”
상황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주훈 감독이 벌떡 일어서서 크게 소리쳤다.
“제발 그만합시다!!!”
주훈 감독이 숨을 골랐다. 회의실 안이 잠시나마 조용해졌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우리끼리 뭉쳐도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운 판인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니요!”
“주훈 감독. 당신이 중재자라도 되오? 지금 우리가 그런걸 몰라서 그러겠소?”
“그만 합시다, 정 감독님!”
주훈 감독에게 정수영 감독이 무어라 하자, 이재균 감독이 제지했다. 주훈 감독이 말을 이었다.
“예. 저는 중재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감독이라는 위치 자체도 거추장스럽습니다. 이게 뭐하는 꼬락서니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정말!”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자제하던 주훈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정말로요. 부끄럽기 짝이 없고,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감독이라는 위치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다는 사실을 감독이라는 직함 아래 감춘 채, 마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이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스스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요. 제발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그만 둡시다. 꼴사납고, 솔직히 말해서 쪽팔립니다, 진짜.”
주훈 감독의 서슴없는 표현에 나머지 감독들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프로게이머들의 상급자가 아닌, 그들의 동료로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우리가 명령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닙니다. 때문에, 각 감독님들께 선수들과의 1:1 상담을 건의합니다. 각자의 선수들을 만나 봅시다. 그들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기계가 아닌, 실력의 상중하로 평가되는 ‘상품’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만나 주십시오. 그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차분하게 들어 봅시다. 마지막 선수의 출전이 자원이든, 선발이든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의실 내의 감독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암묵적으로 주훈 감독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잠시 후, 감독들은 하나둘 씩 자신의 선수들을 찾아서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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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오후 6시 반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연습실
“진호야. 잘 되나?”
열심히 스타에 열중하던 박정석이, 잠시 마우스를 멈추고서는 뜬금없이 옆자리에 있던 홍진호에게 물었다. 지금 연습실에서는 출전하는 선수 네 명이 앉아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선발 선수들은 가장 먼저 감독들과 1:1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조용히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따로 연습실을 배정받았다. 그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출전하지 않는 다른 프로게이머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다른 프로게이머들은 그들의 얼굴과 마주치는 것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고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휴……”
홍진호도 의미없이 마우스를 빙빙 돌리면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도통 게임이 풀리지 않아 한숨만 푹푹 쉬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잘 안되네. 아…… 대체 무슨 종족이 나올지라도 좀 말해 도. 깝깝시러워서 죽겠다. 이놈들아. 어엇, 어어……”
박정석이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들고 있는데, 누군가 박정석 뒤에 와서 정석의 목과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올려다보니 요환이었다. 눈이 마주친 정석과 요환은 서로 씩 웃었다.
“어이, 박정석. 목은 괜찮냐? 목 디스크 환자가 무리하는거 아니냐?”
“괜찮다. 날 뭘로 보노?”
“뭐? 보노보노? 그건 윤열이잖아?”
“킥, 킥킥킥……”
옆에서 듣고 있던 홍진호도 함께, 세 명이서 킥킥대자, 윤열이 저만치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아, 뭐야. 괜히 놀리기나 하고. 연습이나 해.”
“야, 수달. 좀 쉬엄쉬엄 하자. 상대방 종족도, 경기할 맵도, 상대방 성향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보통 하던 기본실력으로 하는 수 밖에 없어.”
“그래. 아까부터 계속해서 연습만 하고. 좀 쉬어가면서 해라.”
요환과 진호가 연합하자, 윤열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더니 세명이 모여있는 데로 걸어왔다.
“이씨, 맨날 나만 왕따야. 그리고 이제야 간신히 키보드랑 마우스 익숙해졌단 말이야.”
“아, 맞다. 좀 어때? 손에 잘 맞냐?”
“뭐 그럭저럭. 내가 쓰던 키보드랑 마우스하고 기종이 같으니, 아무래도 낫지.”
그 때, 진호가 기지개를 쫙 펴면서 하소연했다.
“으으으으~~~~ 나 오늘 왜 이렇게 경기가 안풀리냐. 요환이형이랑 윤열이한테 다 졌지? 정석이한테는 한판인가밖에 못 이기고.”
“아까 나한테 한판 이겼잖아.”
“그건 요환이형이 몰래 전진배럭하다가 딱 들켜서 그렇게 된거지.”
그러면서 진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 진짜…… 벌써부터 긴장해서 이렇게 잘 안풀리는데 나가서 경기 어떻게 하냐.”
그리고 나서 넷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요환이 진호를 불렀다.
“야, 홍진호. 너 그거 아냐?”
“응? 뭐?”
그러고 요환은 대답없이 땅만 쳐다보았다.
“뭐야, 불렀으면 말을 해. 뭘 알어?”
“아니, 아니야.”
요환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때 윤열이 말했다.
“나 요환이형이 뭐 말하려는지 알 것 같어.”
“뭔데?”
진호가 묻자, 윤열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진호 네가 출전한다는건. 여기있는 우리 셋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죽는단 이야기 아냐.”
“……!”
진호는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는 있는 사실이었는데, 지금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옆에 있자 전혀 다르게 그 사실이 다가왔다. 내가 지금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오히려 다르게 바꾸어 말하면 이 셋 중에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을 기정사실로 해 놓는다는 의미 아닌가. 갑자기 진호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미…… 미안해.”
“야, 야. 뭐가 미안하노? 그렇다고 연습 안할끼가? 우리중에 누가 잘못되더라도, 니가 이겨야지.”
정석이 진호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심각해진 진호의 표정을 보고, 요환이 얼굴에 씩 웃음을 띄웠다.
“너 안나갈 수도 있어. 우리 셋 다 지면.”
“말이라도 그런 소린 하지 마라, 형.”
진호가 인상을 쓰며 요환을 돌아보았다.
“미안, 미안. 농담이다, 농담. 너무 그렇게 심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연습실 안의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다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정수영 감독이었다.
“어, 감독님.”
“네 명 모두 잠깐만 와줄 수 있겠나?”
연습실에 들어선 정 감독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네 명에게 부탁을 했다.
“무슨 일인데예?”
“잠깐이면 되니까, 네 명 모두 거실로 나와주게.”
그리고 나서 정수영 감독은 가버렸다. 네 명은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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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오후 7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네 명이 도착하자, 거실에는 감독 서너명과 몇몇 선수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직 1:1 면담이 끝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같았는데. 대체 무슨일인지 의아해하며 네 명의 선발선수들은 그 틈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예? 큰일이라도 났습니꺼?”
정석이 질문하면서 선수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가 특별히 대답해 주지 않아도 대략적인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선수와 감독들이 빙 둘러서 있었고, 그 안에 낯익은 한 선수가 있었다.
“다들 왔으니 시작하기로 하지.”
정수영 감독이 말했다.
“예.”
정민이 그 네 명을 쳐다보면서 힘없이 말했다. 그가 선수들과 감독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었다.
“무슨……”
“정민이가 출전을 고민하고 있다.”
진호가 무어라 묻기도 전에, 정수영 감독이 대답했다. 순간, 거실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적막해진 공기 속에서 정수영 감독이 말을 이었다.
“정민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고, 출전 의사를 들었다. 하지만, 정민이 본인도 그렇고, 나도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다. 과연 정민이가 출전할 것이지, 말지에 대해서. 정말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고, 결정하기 곤란한 문제다. 그 이유는 다들 알겠지.”
거실의 분위기는 정민의 표정만큼이나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계속해서 정수영 감독이 말했다.
“정민이 본인 스스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우려하겠지. 어떤 이는 미친 짓이리고 욕할수도 있다. 어떤 이는 진심으로 응원할 수도 있겠고. 감독들, 다른 선수들, 저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말이야. 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오랜 이야기끝에 너희 넷이라고 결정했다. 경기에 출전하는 너희 네 명. 정민이는 너희 넷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고 싶다고 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네 명의 프로게이머들은 당황하기만 할 뿐이었다. 정민은 조용히 시선을 떨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정민이의 기분을 생각하거나, 미안한 마음에 솔직한 생각을 숨길 필요는 없다. 물론 정말 정민이의 출전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지.”
요환은 정민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정민은 도마 위에서 칼에 배를 드러낸 생선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난도질당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맡겼다. 요환은 생각했다. 정민이가 출전한다면? 김정민? 정민이가 출전? 정민이……?
“김정민 이 병X같은 X끼야.”
그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은 네 명의 선수가 있는 반대 방향이었다.
“관둬라, 관둬. 이딴 식으로 나올거면 집어치우고 꺼져버려, 자식아.”
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그 곳으로 모아졌다. 강민이었다.
“너는 끝까지 네 인생을 다른사람의 손에 맡기는 거냐. 정말 너란 인간도 지친다, 지쳐.”
강민이 벌레 씹은 듯한 얼굴을 하며 김정민을 노려보았다.
“민아……”
“내가 솔직히 말할까. 너 같은 X끼한테 어떻게 내 목숨을 맡겨. 니가 스타를 잘 해? 우승 한 번을 해봤어? 네가 할줄 아는게 대체 뭔데?”
강민이 점점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줄 알어? 여기든 저 바깥이든 대부분의 사람이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김정민이 출전하려고 생각한댄다. 그래? 그 X신은 지 주제를 좀 알라고 해라. 자기가 뭔데 나서냐. 안 그래?”
“민아, 말이 너무 심하다!”
“조용히 해봐!!!”
홍진호가 강민을 말리려 했으나, 강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약한 테란, 눈물의 테란, 너는 평생 그렇게 찌질거리는거야. 왠줄 알어? 너는 니 자신이 너를 천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민은 묵묵히 강민의 욕을 듣고 있었다. 강민은 이를 갈며 계속 욕을 퍼부어댔다.
“X신아. 너 자신부터 너를 인정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여기 출전하는 네 명이 얼씨구나 하고, 당연히 정민이 네가 나가야지. 그렇게 해 줄거라고 생각했냐? 아니면, 정민아 너는 아니다. 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냐? 대체 뭔 생각으로 사는거냐, 너는?”
“민아, 나는……”
“닥쳐. 말도 꺼내지 마, 너는. 김정민”
강민이 매몰차게 김정민의 말을 끊었다.
“네가 끝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휘둘려서 산다면, 세상에 ‘김정민’ 이란 건 없는거다. ‘강민이 보는 김정민’, ‘누구누구가 보는 김정민’, 그런 김정민만 이 세상에 사는 거지. 너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고,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받고 저울질당한 너의 찌꺼기만 남아 있는거야. 알아듣겠냐?"
그러고 나서, 강민이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강민이 한동안 숨을 고를 동안 아무도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강민이 다시 탄식하듯 말문을 열었다.
“……정민아. 최고가 아닐 수는 있어. 천재가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주인’일 수는 있잖아.”
그 말을 남기고 강민은 휙 하고 뒤돌아서서 가버렸다. 김정민은 그 사라지는 강민의 등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2005년 5월 7일 저녁 8시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이제 채 두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비어 있는 선수 명단의 나머지 한 칸을 보며 속을 태웠다.
“진호씨……”
아가씨는 손에 든 종이쪽지를 보며, 조용히 홍진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Black-Bean 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열심히 물어보았고, 그것이 한 프로게이머의 별명이라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그제서야 아가씨는 그 프로게이머의 이름이 ‘홍진호’ 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 이름은 묻지도 않고……”
씁쓸하게 웃으며, 아가씨는 다시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NC]...YellOw 라는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는 자기 스스로와의 약속, 그리고 아가씨와의 약속을 모두 지킨 것이었다.
‘또 보게 되기를 바랄게요’
아가씨의 귀에, 진호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자꾸만 그 뛰어가던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던 바로 그 때, 숫자 5. 옆에 아이디가 한 글자씩 새겨졌다.
< TheMarine >
"……!!"
아가씨는 숨을 들이켰다. 조금씩 주위는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 무어라 큰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사람, 다시금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
……그렇게, 인류의 운명을 책임질 다섯 사람의 ‘칼레의 시민’ 이 모두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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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ㅠ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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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스포일러는 덜덜덜입니다.. ㅡ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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