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7일 0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이재균 감독은 ‘역시 이윤열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항상 모두가 주저하고 꺼리는 선택을 해오던 그였다. 조지명식에서도 거리낌없이 항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해오던 것이 이윤열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은 적도, 좋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윤열이기에’ 그는 그러한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가 가장 어렵다가는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고맙다, 윤열아. 지금은 고맙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네.”
송호창 감독이 이윤열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윤열의 표정은 딱딱했다.
“저, 이만 들어가서 자겠습니다.”
“어, 그, 그래? 그래라. 어서 가서 쉬어.”
이윤열은 터벅 터벅 걸어 올라갔다. 그 때, 임요환이 이윤열을 붙들었다.
“자러 가냐?”
“어…… 형.”
“같이 자자.”
“어…… 어…… 그게…… 어버버……”
윤열은 당황해하면서 요환의 손에 끌려갔다.
“저, 형. 씻고 올게.”
“괜히 이상한 생각 들게하는 대사 하지 말고 그냥 누워 자. 내일 아침에 씻고.”
“이상한 생각은 무슨 이상한 생각이야, 형? 형이 이상한 생각 하면서?”
“너 죽는다.”
둘은 킥킥대면서 같은 침대에 누웠다. 옆 자리의 성제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이거 진짜 쫌 그런데? 성제는 안와?”
“오겠지. 자꾸 이상한 상상 하지 말고, 야…… 이렇게 둘이 같이 누워보는게 IS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그치?”
“그러게, 형. 그러고보니 참 오래됐다.”
“그때만 해도 네가 진짜 어렸는데…… 나한테 형형 하면서 졸졸졸졸 쫓아다니고.”
“형도 그땐 젊었어. 지금보다 머리도 좀 더 작았던 것 같고.”
“너 죽는다.”
“킥킥킥.”
이윤열이 웃자, 임요환이 이윤열을 막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래, 더 웃어라. 더 웃어.”
“악, 악, 아, 알았어. 그만, 그만. 내가 졌어. 내가 미안. 항복, GG, GG”
“진짜야?”
“어. 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킥킥……”
임요환은 그제야 간질이던 것을 멈추었다.
“으유, 이 수달아.”
“형, 보노보노는 해달이래.”
“수달이 왠지 간지나잖아.”
“그럼 형 간지나는 별명은 임요벙이야, 임대가르시아야?”
“너 죽는다.”
“아, 알았어. 진짜 안놀릴게.”
둘은 서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윤열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후아-”
“……”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요환이 윤열에게 말을 걸었다.
“윤열아.”
“응, 형?”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뭔데.”
그러자 요환이 그대로 천장을 쳐다본 채로 말했다.
“지지 마라.”
“GG 마라고?”
윤열이 허공에 알파벳 G를 두 번 그리면서 대답했다.
“그래, 절대로 지지 마라. 너 절대로 지면 안된다.”
“알았어 형. 이래봐도 천재테란이니까 걱정마셔.”
윤열이 대답하자, 못 미더운 요환이 윤열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절대로 지지 말라고. 임마.”
그러자 윤열이 요환을 슥 돌아보았다.
“알았어, 형.”
요환도 윤열을 한번 돌아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윤열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요환이형. 나도 부탁이 있어.”
“응? 뭔데?”
요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손좀 놓지?”
2005년 5월 7일 0시 반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아…… 또 다른게 뭐가 있는데요?”
“아이디가 유명한 선수들로는…… 임요환 선수는 SlayerS_`BoxeR', 홍진호 선수는 YellOw 가 항상 들어가고요, 여성 프로게이머 서지수 선수는 테란유저인데도 ToSsGirL 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해요. 김동수 선수는 GARIMTO. 고대문자, 박경락 선수는 Junwi. 삼국지 등장 인물이죠? 그리고, 옛날에 기욤패트리라는 선수는 Grrrrr.... 라는 아이디를 썼어요.”
“그르르르... 요?”
“예.”
“하핫…… 그럼 그쪽도 아이디 있으세요?”
“물론 저도 있죠.”
“뭔데요? 재밌는거에요?”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재미 없는거에요.”
“그래요? 그럼 저한테도 멋진 아이디 하나 만들어 주세요.”
"제, 제가요?“
만난지 다섯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인데, 참 사교성 좋은 아가씨라는 생각을 청년은 했다.
“음…… 잠시만요.”
“네.”
아가씨는 눈을 말똥 말똥 뜨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신의 가방에서 펜을 꺼내더니 종이에 무엇인가를 썼다. 그리고 그걸 건네주었다.
“이건 어때요……?”
“Black-Gean? 검은 청바지라는 뜻인가요?”
“예. 청바지 입고 오셔서…… 근데 밤이라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근데, 청바지의 ‘진’ 스펠링은 'Jean' 인데요?”
“아, 그, 그, 그래요???”
청년은 머리를 긁적였다.
“풋, 뭐, 괜찮아요. 오히려 더 센스있어 보이는걸요. 실제로 Gean 으로 독특하게 쓰는 상표도 있는걸요, 뭐. 고마워요.”
“아, 네……”
두 사람이 아이디 문제로 시끌시끌한 동안, 시청앞 광장은 떠들썩했다. 첫 번째 출전 선수의 결정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천재테란 이윤열이라는 것 또한 화젯거리였다. 이제는 6만명 가까이 운집한 시청 앞 광장에서, 이제껏 침울해 있던 많은 사람들은 활기 넘치는 분위기로, 이제 전광판에 나머지 선수들이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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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밤 1시
서울특별시 SKT T1 숙소
"정만이 형. 내는, 죽는게 무섭다."
그때 마침 불어온 바람이 박정석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지금 박정석과 김정민은 T1숙소 옥상에 있었다. 윤열의 출전으로 인해, 복잡한 기류가 흐르는 실내의 무거운 공기가 싫어 김정민이 먼저 옥상으로 올라왔고, 뒤이어 박정석이 올라와 그 옆에 섰다. 둘은 아직까지 여기 저기에서 불꽃과 연기가 솟아오르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윤열이 그 아라고, 와 안 무서웠겠노.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아는 아이다."
정민은 여전히 말없이 있었다. 정석은 그런 정민을 한번 힐끗 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근데, 그 아한텐 용기란게 있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렇제?"
"그렇지......"
정민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글마가 그래서 천재소리를 듣는거 아니겠노.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서 걸어갈 수 있는 용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글마의 그런 면이, 그런 성격이, 참 대단하다 느껴진다."
이렇게 남 칭찬을 한 적이 없었는데. 여전히 무표정하게 들으면서도 정민은 그런 생각을 했다. 정석이 말을 이었다.
"내는 그리 몬한다. 그래, 내가 지면, 이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생각, 그 부담감. 그게 억수로 크긴 크다. 하지만, 그거보다는 게임에서 지면 바로 죽는다는데, 그 압박을 누가 이기겠노. 솔직히 내는 몬하겠다."
"그래...... 사실 말은 안하지만 다들 그런 생각 하고 있겠지."
뒤돌아 서서 난간에 두 팔을 기대며, 정민이 대답했다.
"약이라도 묵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겠노.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제정신일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이 모두 미쳐버린 것만 같은데."
"그란데, 그란데. 정만이 형."
이제껏 계속 이야기하던 정석이,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정민은 고개를 돌려 박정석을 바라보았다. 정석은 자신의 가슴께를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여기가, 이 가슴이, 자꾸만 뜨거워진다."
정석의 가슴을 붙들고 있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안된다고, 미쳤냐고, 무서워 죽겠다라고 외치고 있는데, 내 이 가슴은 그럴수록 자꾸만 뜨거워진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정만이 형."
"응?"
정석이 정민을 보며 씩 웃었다.
"...내 신체 일부가 왕따가?"
"풋."
"쿡쿡쿡... 하하하하..."
두 청년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웃음이 진정이 되자, 정민이 정석을 불렀다.
"후아... 정석아."
"어, 정민이형."
"그게 바로 네 강점이다."
"내 강점이 뭔데?"
"멋."
정민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박정석은 정민의 어깨를 툭 치며 피식 웃었다.
"뭐라카노."
"멋. 멋 말이야. 멋있는거."
"형 와이라는데. 옥상에서 비행기 태워서 날려 보내려하나."
그러자 정민이 가슴을 쭉 펴며 이야기했다.
"네 안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멋있음을 향한 특유의 본능 같은게 있어."
"내 부끄럼 많다, 형아. 대체......"
정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정민이 박정석의 가슴에 주먹을 갖다 댔다.
"그래서, 그 본능이 네 가슴에 이야기 하고 있는거 아니야?"
박정석은 정민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쿵. 쿵. 쿵. 쿵."
또 다시, 정석의 가슴은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박동은 정민의 주먹에까지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힘찬 것이었다.
...그렇게 인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평온한 밤이 지나고 있었다.
성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자고 있는 요환과 윤열을 보고 피식 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들이 깨지 않도록,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살며시 문을 닫고 자신의 침대로 들어갔다.
강민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용호를 한번 쳐다보고,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는 듯한 링겔병을 천천히 떨어지도록 조절해 주었다. 내일은 숙소에 들러서 짐을 챙긴 후, 부모님께 가 보아야지. T1 숙소에 팀원들이 모여 있다니까 얼굴이라도 한번씩 보아야겠다. 그렇게 강민은 마지막 하루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길섭은 옥상에서 내려온 정석과 정민과 내려왔다. 정석의 눈빛이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정민을 바라보자, 정민은 눈을 천천히 한번 깜빡이는 것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한참이나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던 아가씨는, 청년에게 무엇을 물어보려다 멈칫했다. 청년이 꾸벅 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그러미 그 청년을 바라보고 있던 아가씨는, 손에 들려 있는 "Black Gean" 이라고 적힌 종이를 살짝 펴보더니, 미소짓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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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7일 아침 8시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인류의 마지막 날 아침, MBC 뉴스 스튜디오에서는 밝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희망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간밤에 2명의 대한민국 프로게이머들이 출전하였습니다. 이 두 선수의 이름은 이윤열 선수와 박정석 선수로서......"
김동수 해설은 팔짱을 끼고, 뉴스가 진행되는 스튜디오를 바라보았다.
"윤열이와 정석이라......"
믿음직스러운 두 명의 프로게이머들이었다. 특히, 정석은 동수와 같은 한빛 스타즈 소속이기도 했고, 프로토스 유저라 참 친했던 선후배 관계였다. 김동수 해설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정석이가 대견하기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출전하기 전에 한 번 만나볼 수나 있으련지......
"......그러므로, 어, 어??"
그 때,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퍼억!!"
"쿠당탕탕!"
외계인이 난데없이 스튜디오 안으로 난입했던 것이다. 외계인은 앵커를 거칠게 쳐서 밀어냈고, 당황하던 앵커는 화면 밖으로 사정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장면이 전 세계에 생생하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쿠앙!!!"
외계인이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자, 단단한 원목 재질 책상이 두동강나며 내려앉았다. 외계인은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천한 족속들이 우리가 약간의 인정을 베풀었더니 겂없이 날뛰는구나. 어제 우리 종족의 위대한 전사 넷이 죽었다."
전 세계적으로 외계인들에 대한 저항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국가나 레지스탕스들이 조직되고, 이들에 대한 공격이 감행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해는 고작 넷 뿐이라니, 이들의 강력함과 인류의 무력함을 다시한 번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외계인의 말은 더욱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또,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비겁하고 겁많은 너희 인간 녀석들은 여태까지 두 명 밖에 이 대결에 참여하지 않았구나. 이 나태하고 교만한 족속들이 반성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한 시간 동안 희생된 우리 전사 하나당 1억씩, 모두 4억의 인간들을 죽이겠다."
MBC 방송국 안이 크게 술렁였다. 전 세계의 이 뉴스를 듣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그 무참한 살육이 계속된다는 말인가?
"또한, 앞으로는 우리에게 적대하는 그 어떤 지구인도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이겠다. 살아남기 위해 마음껏 발버둥쳐 보아라."
말을 마치고 나서 외계인은 쿵쿵거리며 스튜디오에서 내려와 버렸다. 김동수 해설은 경악에 가득차 그만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희망의 아침이 처절한 살육의 아침으로 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다.
2005년 5월 7일 아침 8시 10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앞 서울광장
모자를 쓴 청년은 열심히 [Oops]Reach 라는 아이디를 가진 선수에 대해서 아가씨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스피커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지금 어서 이 곳에서 피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한 시간동안 외계인들이 인간을 다시 공격한다고 합니다! 피하십시오!!!"
어제 인파를 통제하던 그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는 더욱 다급해졌다.
"어서 피하십시오! 외계인들이 인간을 살육하기 위해서 인간이 많은 곳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지금 당장... 아아악!!!"
그 때, 자지러지는 비명이 시청앞 광장을 울렸다. 방송하고 있던 그 사람을 외계인이 머리를 붙잡고 들어올린 것이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더니, 아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몸뚱이가 털썩 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외계인이 손으로 머리를 바스라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악!!!"
"으, 으, 으아아아악!!!!"
10만 가까운 인파가 밀집해있던 시청앞 광장은 생지옥이 되어 버렸다. 열댓 정도 되는 외계인이 시청 앞 광장에 투입되어,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참혹한 것은 사람들에게 밟혀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약한 사람들은 바닥에 깔렸고, 그 위에 몇 명이고 사람들이 덮여 깔렸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외계인의 손에 죽어 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크아아악!!!"
"아아, 아아아악!!!"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도망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열심히 앞의 사람들을 밀어 보았지만, 도망치는 맨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속절없이 외계인들의 무기에 등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2002년 붉은 티셔츠로 물들었던 시청 앞 광장은 처참한 광경과 함께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어서, 어서 이쪽을 와요!!!"
"꺄악!!!"
청년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가씨를 잡아 끌며 달렸다. 다행히 인파의 중심에서는 떨어져 있었고, 외계인들이 공격해 들어오는 곳과 반대 방향 쪽에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인파에 묻혀버리거나 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전혀 안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달려가고 있는 방향에 두셋의 외계인이 달려오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퍼억! 퍼거걱!"
"아아아악!"
"건물 안으로, 건물 안으로!!"
두 사람과 채 10m 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외계인이 도망가던 한 여자를 뒤쫓아서 긴 장대같은 무기로 어깨를 내리쳤다. 쓰러진 여자를 외계인이 계속해서 장대로 내리치는 것을 보고 같이 달리던 아가씨가 얼어붙어 있자, 청년은 아가씨를 급히 잡아 끌어서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헉, 헉, 헉, 못가요, 못가겠어요."
"여기서 멈추면 안되요!!!"
청년은 아가씨를 잡아 끌려다가, 그제서야 그 아가씨가 절뚝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을 밟혔는지, 접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 일단 저쪽으로 갑시다!"
건물은 의류 판매장 같은 곳이었다. 두 사람이 한 귀퉁이로 들어서려는데,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렸다.
"저것들이, 저것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나봐요!"
"제... 제길!!"
아가씨가 걸음을 옮겨 보려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 어떻게 하죠? 이제 어떻게 하죠?"
"옆으로, 옆으로 숨어요! 이 안으로!"
청년은 겁에 질린 아가씨를 급히 문을 열고 숨겼다. 옷을 갈아입어보는 장소여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저기, 그쪽, 아니, 당신은요?"
아가씨는 그 청년을 부르려다가 여태껏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발견했다.
"전 됐으니까 이 안에 있어요!"
그리고 청년은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그만 매장 안을 누비며 사람들을 찾고 있던 외계인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크와아앙!!"
외계인은 괴성을 지르면서, 가는 길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집어던지며 청년에게 다가왔다. 그만 얼어붙어 버린 청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외계인은 청년 코앞까지 다가왔다.
"크르르르르르...."
"헉, 헉, 헉..."
청년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외계인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칼 같은 것을 쳐들었다. 공포에 질린 청년의 눈이 외계인의 칼날을 바라봤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죽음을 직면해 본 적이 없었다.
"크르르... 크와앙!!"
그 때, 칼을 쳐들었던 외계인이 괴성을 지르면서 칼을 내렸다. 그리고서는 뒤돌아서서 다른 사냥감을 찾아 쿵쿵거리며 떠나버렸다.
"헉, 헉, 헉, 헉..."
아직도 반쯤 넋이 나간 채 청년은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을 벌린 채 가쁜 숨만 내쉬고 있는 청년 뒤에, 문이 빼꼼히 열리며 역시 아가씨의 겁먹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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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ㅠ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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