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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7 16:24
차범근 감독님
축협이 테클만 안걸었으면은 98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16강을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갈색폭격기, 차범근 감독님....정말 대단하시구요... 정말..축협은......보기도 싫습니다...
05/06/27 16:25
수 많은 게시판에 돌고 돌았던 글이죠.
어쨌거나, 차범근 감독님이 대단한 선수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감독님보다는 축구협회 전무로 가셨으면 제일 좋겠고 해설하실때에도 축구와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무척 좋아합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리 선수도 잘 해주길...
05/06/27 16:31
차범근 감독님...
우리나라에서 너무 과소평가 받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만... 왜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깎아내리려 하는지...
05/06/27 16:35
차범근 감독님이 아주 훌륭한 선수였다는 건 기록이로도 어른들의 말씀으로도 충분히 알 만합니다만 역대최강이라고 하기엔 이미 박지성 선수가 많이 따라 붙었죠.(물론 박지성 선수와 차범근감독님 간의 비교는 무의미한 일입니다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차범근 감독님은 과대평가면 과대평가지 과송평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전에 어떤 자료에서 보니 세계적인 연봉의 1/100정도 더군요.;; 너무 미화시킬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합니다.
05/06/27 16:36
일본에서는 나카타나 오노, 야나기사와 등 차붐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선수들을 영웅으로 모실려고 수많은 기사, 동영상, 프로그램 제작등 기를 쓰고있죠..
있는 영웅도 제대로 대접해주지 못하면서 .. 영웅이 없다고 한탄하는 윗대가리들이 어이없을 뿐입니다.
05/06/27 16:39
차범근선수시절에는 당연히 위대한 선수였고 지금의 쉐바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았던 세계적인 스타였음에 분명하나
그의 감독적 능력에는 약간 의문이 가긴함..
05/06/27 16:40
박지성 선수 훌륭합니다만, 차범근 감독님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때 분데스리가 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 였고(현재의 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와 비할만 합니다.) 그 리그에서 한 동안 외국인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신 분이신데, 아직 더 이루어야 할게 많은 박지성 선수와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차범근 감독님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건 어떤 근거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05/06/27 16:49
이적료 인지 연봉인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만
당시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과 비교해 봤을때 1/100정도 였습니다. 차감독님이 쉐바 정도의 선수였다면 그런 대접을 받진 않았겠죠. (쉐바는 첼시에서 1500억오퍼 있었다는군요) 차범근 감독을 까려는게 아니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이야기 한 것 뿐입니다. 박지성 선수가 차범근 감독님에 비해 많이 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05/06/27 16:53
비류연//
뒤진다 안뒤진다를 무슨 근거로 판단하셨는지요? 이미 업적을 이루어 놓은 사람과, 이제 업적을 쌓아갈 사람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죠. 박지성 선수가 은퇴한 다음에나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겠죠.
05/06/27 16:57
비류연님!! 박지성선수가 차범근감독을 많이 따라 잡았다구요.
어허.... 과연 그럴까요? 최소한 80년대 초반부터라도 축구 본 사람이면 절대 그런말 못합니다. 차붐이 괜히 차붐인줄 아시나요? 요즘은 인터넷이나 방송매체의 거대화로 박지성선수가 엄청난 걸로 보이지만 선수로서 보여준 플레이보다는 맨유로의 이적이 지성선수를 더욱 영웅화시키는것 아닌가요? 지성선수가 물론 골게터는 아니지만 아인트호벤에서 몇골이나 넣었다고 차붐에 필적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기록이나 성적, 명성 모든면에서 차붐이 아직은 월등합니다.
05/06/27 16:58
저는 박스컵 말레이시아전에서 1-4로 뒤지다가 5분 남겨놓고 차범근선수가 3골을 넣고 비기는 그 경기를 직접 봤습니다.
당시에는 황당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약 30년 전에 한국의 축구선수가 180 정도의 몸싸움이 되는 좋은 체격에 100m를 11초 3 정도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 그리고 골결정력까지 갖추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게다가 분데스리가에서 상대의 고의적 반칙으로 선수생명이 거의 끝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했으니... 오래 전에 MBC에서 분데스리가 경기를 방송해 주던 기억이 새롭네요.
05/06/27 16:58
비류연님//
차범근 세대 가 아니신 분이 차범근 선수 에 대해 이야기하시려면 어느정도 조사는 하고 거기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자신이 겪지 못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때 그정도는 갖춰주셔야 글에 설득력이 있을겁니다. 저도 70년대 생이지만 저 역시 차범근 세대는 아닙니다. 비류연님이 보지 못한 차범근 선수를 흘려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이야기 하시는데 님은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보실 수 있으며 그런 님의 말씀으로 다른 분들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05/06/27 16:59
;; 저기요, 위에님들, 댓글쌈 하라구 이글 퍼온거 절대 아니거든요-_-.
정테란님 말대로 박지성은 이제 막 맨체로 이적해서 활약을 할 선수인데..벌써부터 비교하는건 마치 송병구선수와 2우승업적을 기록한 김동수선수를 비교하는거와 똑같다고 봅니다. 그냥 좋게 봐주세요.. ㅡ_ㅡ
05/06/27 17:04
제가 활동하던 축구 사이트에서도 차범근 감독의 연봉을 들먹거리며 무시하던 분이 엄청 까였는데...전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신듯 하네요. 제가 고작해야 차범근 감독님의 선수시절 동영상을 서너편 보고 차범근 감독님의 실력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고 저는 단지 연봉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_-;;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05/06/27 17:06
박지성 선수는 아직까지는 차범근감독에 비해 부족한건 사실이죠
하지만 아직 나이가 있으니 기대해볼만하죠.. 맨유에서 제대로만 적응한다면요 그리고 저도 차범근감독은 감독으로서는 좀 그렇네요 ^^;
05/06/27 17:08
박지성선수가 맨유에 가서 맹활약 한다면 차범근선수를 능가 할 수도 있는겁니다. 아닐 수도 있고요. 아 참고로 위에 박찬호선수랑 비교한 건 좀 틀린듯하네요. 월드시리즈 우승과 UEFA컵 우승은 차이가 있죠. UEFA컵은 예나 지금이나 UEFA챔피언스리그보다 한단계 아래있는 대회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차범근선수가 과소평가를 받고 있던건 사실입니다만 요새는 너무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05/06/27 17:09
저 보고 역대 야구와 축구선수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뽑으라면
축구 = 홍명보, 야구 = 박철순...두 분을 뽑습니다만 역대 대한민국 넘버원을 뽑으라면 축구 = 차범근, 야구 = 선동렬 입니다 (물론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차.범.근...저에게 있어 이 이름은 참으로 뿌듯한 이름입니다 ^^
05/06/27 17:11
제가 아는형이 한일월드컵 피파직원이었죠.. 당시 독일의 자존심이라는 베켄바우어가 정몽준을 만나러 와서 자리에 있던 차범근을 보고 경외어린 눈빛으로 싸인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독일의 자존심" 베켄바우어가 말이죠.. 또 독일에서 온형이 있는데 그형은 독일사람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중국사람이냐와 "붐차"라죠... 대단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차범근....
05/06/27 17:12
인정할 건 인정하는 분위기...필요합니다...
차범근 감독...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선수 맞습니다...!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각 국가에서 인식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에 대해 피부로 체험을 몇 번 했었습니다... 독일 입국할 때...두말 필요없이 차붐입니다...! 유럽사람들..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축구라는 운동에 빠져있습니다...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축구에 열광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차붐에 대한 지식은... 같은 국민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엄청 났었습니다...!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당시 그들에게는 생소했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차범근이라는 선수를...그들이 그저 기억했을리는 결코 없습니다...! 유럽 최고의 무대...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로...최고의 활약을 펼쳤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베켄바우어가 누구입니까...?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축구선수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우리는 몇번이나 이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차붐... 그는 최고이다 ... " 차범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이루어놓은 업적은 인정해야 할 듯 하네요... 갈색폭격기...의 명성을 박지성 선수가 이어주기를 ~~^^
05/06/27 17:12
지금의 베컴, 지단, 피구와 비교하기에는 커리어면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나죠. 물론 이건 차범근선수가 뛰었던 팀문제도 있습니다만(프랑크푸르트를 레알, 맨유등과 비교하기는 힘들죠.)
05/06/27 17:16
덧붙여 말하자면 지금은 방송에서 프리미어리그나 세리에(?) 맞나?
이 두리그를 최고인양 많이 보여주지만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tv에 방송되는 해외 프로축구나 제 기억에는 오로지 분데스리가였습니다. 그 당시 바이에른뮌헨이 저는 무조건 세계 최강팀인줄 알았습니다.
05/06/27 17:19
- -
무슨 소리들 이신지.. 차법근선수. 당시 전체 3위의 연봉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의 물가 그대로를 반영한다는것은 우습죠. 그 당시의 스포츠 스타의 대접과 지금의 대접도 많이 틀리고요. 당시 2억 정도의 연봉을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2억이란 가치는 지금의 2억과는 하늘땅 만큼의 차이죠.
05/06/27 17:24
독일통합 이후로 자금력에 밀려 ...
영국/스페인/이탈리아 리그에 밀려 버렸지만 ... 70~80년 유럽최고의 리그는 ... 분데스리가 맞습니다 ...! 맨유나 레알, 바르셀로나, AS밀란 등의 팀보다는 ... 함부르크,도르트문트,바이에른,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 등의 분데스리가 팀들의 이름을 먼저 들었었죠 ...~~ 이름을 먼저
05/06/27 17:24
1/100이 아니라 1/10이었군요;
차범근 이적료 83년 40만불 마라도나 이적료 84년 800만 달러 지코 이적료 83년 450만불 (차범근과 동갑이며 똑같은 시기에 이적) 라고 하네요. 이런 자료를 굳이 갖고오는 이유는 전체 3위의 연봉이라느니 이런말이 나오기 때문이죠 -_-;; 자꾸 이런쪽에 서서 글쓰는것도 죄송스럽고 힘드네요.
05/06/27 17:25
차범근 씨의 위상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겸사겸사 해서 독일 한번 정도 다녀오시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덧붙여서 아직 어린 나이이고 70년대는 전혀 모르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분데스리가는 알고 있었죠. 세리에A나 프리미어리그는 글쎄요..
05/06/27 17:26
bilstein//
지금은 프리메라리가,프리미어리그,세리에A 가 최고의 빅리그들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분데스리가가 최고의 빅리그였습니다
05/06/27 17:28
지금까지 최고의 선수는 차범근 선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라는 명칭으로써는 아니었죠. 최고의 선수라고 해서 그의 과거가 훌륭했다고 해서 감독으로써 경질될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최고라도 감독으로써는 잘 모르겠습니다.
05/06/27 17:28
그 어느 센터 포워드도 308경기를 출전해서 98골을 넣기가 쉽다고 말할수 없는데
차범근 선수는 사이드 어태커 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만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외국에서 인정받는 영웅을 왜 우리나라에서 깎아내리는지 의문이네요... 중국이나 일본에선 없는 영웅 만들기도 급급한데 말이죠... 이런 이야기도 있죠 이창호 기사님이 중국이나 일본사람이었다면 그는 예전부터 영웅화 되었을거라고... 우리나라는 항상 영웅을 바라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영웅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05/06/27 17:28
그리고 80년대 최고의 리그는 세리에였다고 생각합니다; 미셸플라티니, 굴리트, 반바스텐, 지코, 말디니 등... 당시 분데스리가가 우리에게 유명했던건 차범근 감독님의 영향이 아니었나 하네요.
저도 들은 얘기니 자세히 아시는 분이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05/06/27 17:28
비류연님// 본문을 잘못읽으셨나보네요. 비류연님이 들고오신 자료는 이적료죠. 연봉이 아니거든요. 세계에서 꼽히는 연봉을 받았다고 하는 시기와도 일치하지 않는군요.
05/06/27 17:35
그리고 꼭 당시의 마라도나나 지금의 쉐바급되야 영웅이 될 수 있는건 아니지않나요? 우리나라의 당시 환경에서 차범근 감독님 정도 되는 득점력과 실력을 갖춘 분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데 왜 굳이 더 과장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05/06/27 17:37
비류연님. 틀린자료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두는 이유가 뭔가요?
잘못된 자료라는 것. 내용과는 하등 상관도 없는 자료라는 것을 아셨다면 다른 이들의 오해를 사지 않게 삭제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05/06/27 17:37
굴리트, 반바스텐 선수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이 전성기 인 선수들이고, 말디니는 90년대 초 중반부터..전성기가 달랐던 선수들과 비교할 수는 없죠. 그나마 지코나 플라티니 정도가 비슷합니다만..
그리고 80년 초 중반까지 최고의 리그는 분데스리가였습니다. 그 이후 부터 약간씩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만...
05/06/27 17:39
비류연님 누가 뭘 더 과장한다는건지 이해가 안갑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게 과장인가요? 차붐은 당시에 세계적인 선수였습니다. 지금의 박지성선수가 과연 세계적인선수라고까지 불릴수 있을까요? 하긴 그렇게도 불릴수 있겠지요? 요즘은 유명팀에만 가면 세계적인 선수라고 할테니 말입니다.
05/06/27 17:39
Libestram님/ 연봉 3위라는게 틀린자료 같습니다만...
차범근 감독님이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에 이른 것도 아니고 10위 안에 든게 단 한번인걸로 알고있는데 전체에서 3위라뇨;; 세계 최고수준의 리그에서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축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런 일인데 연봉 3위라는 둥의 말을 지어내는 의도를 모르겠네요;
05/06/27 17:41
저는 차붐의 레전드가 과장되었다는 말은 정말 처음 듣네요-_-a
나쁘게 말하면 철저히 조국에 외면당하면 외면당했지.. 과.대.평.가 받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05/06/27 17:41
차감독님의 전성기 시절 태어나시지도 않은 분께서 왜 과장하려고 드느냐고 언급하는 게 좀 아이러니 하네요...
만약 그러한 평가가 다 과장이라면 차감독님을 극찬했던 수많은 세계의 유명 선수 또는 감독들은 다 허풍쟁이겠군요... 박지성 선수 훌륭한 거 다 압니다.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맨유로 이적 했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고..어쩌면 차감독님을 능가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닙니다. 단지 가능성만 있을 뿐입니다.
05/06/27 17:43
-_- 들고오신 자료를 확인해 보시죠.
83년 '이적료' 가지고 1/10이니 1/100이니 운운하고 있으니 맞을 턱이 있습니까? 원글에는 버젓이 79/80시즌이라고 써있는데 말이죠. 사실이야 어쨌건 간에 들어맞지도 않는 자료가지고 멋모르는 사람들을 속이지 말라는겁니다.
05/06/27 17:44
그리고 연봉 3위라는건 분데스리가에서 연봉 3위 였습니다. 다른 리그랑은 비교를 못해봐서 모르겠지만, 당시 최고의 리그에서 연봉 3위였으면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05/06/27 17:44
그 당시 분데스리가가 최고의 리그였고,독일인과 독일의 자존심이라는
베켄바우어가 차범근에게 경외의 눈빛을 보낸다... 이 사실 하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05/06/27 17:45
제가 어려서 또 헛소리를 하고 갔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굳이 차범근 감독님을 지코나 그런 선수급으로 생각하거나 지금의 박지성보다 훨씬 대단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도 차범근 감독님은 충분히 영웅이라 불릴만 하죠. 제가 하려는 말은 지금 이상황에서 차범근 감독님에 대한 평가가 과소평가라는 말은 오히려 지나친 미화라는 점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우리나라의 축구 영웅이라면 지코정도는 됫겠지.' 라는 느낌의 뉘앙스를 느껴서 입니다. 괜히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05/06/27 17:46
저는 축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차범근 감독님의 선수 시절만큼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봤습니다. '지금 당장 감독직을 주자!'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뭐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었다 정도인데 그걸 굳이 반대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나요? 물론 객관적 시각은 필요합니다만 그냥 칭찬하고 넘어가는 정도에 필요 이상의 태클은 좀 그러네요. 그리고 박지성 선수와의 비교는 지금 상황에선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05/06/27 17:47
하여튼 저는 박지성선수가 이미 차붐에 따라붙었다는 말은 인정할수가 없네요. 국민학교 시절 책받침에 그려 있던 유일한 축구선수 차범근과 그의 사인과 그가 오버헤드킥을 날리는 사진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05/06/27 17:48
비류연 // 그럼 지코정도까지 안됐다는 근거는 어디있나요?
비류연님은 지금 '우리나라의 축구 영웅이라도 지코정도는 안됐겠지' 라는 생각으로 글 쓰시는거 아닙니까?
05/06/27 17:49
처제테란 이윤열님//인터넷에 찾아보시죠..당시 독일에서 3번째 연봉으로 계약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연봉은 아니라도 대강의 연봉 추정치는 현재 선수들도 알 수 는 있습니다.
제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05/06/27 17:50
다른 사이트 얘기라서 좀 그런데.. 후추에 김유석님이 작성하신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란 글을 한번 읽어보심이..
05/06/27 17:51
안녕하세요 homy 입니다.
약간 열받은 상태에 있는 분들이 있으시네요. 조금 진정하시길 ^^ 토론은 상관없지만 특정인에 대한 공격적인 댓글은 자제 바랍니다. 누가 더 잘하냐가 뭔 문젭니까 ? 둘다 너무 잘하고 둘다 우리 나라 사람인데. 차감독님 박지성선수 화이팅.
05/06/27 17:52
댓글 싸움은 무의미하고... 일단 '정설' 로 거의 굳어진 것만을 몇가지 말씀드리자면...
1. 당시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2. 차범근 선수(선수 시절)의 연봉은 분데스리가 최상위급이었다. 3. 세계 굴지의 축구스타, 특히 독일의 축구영웅들은 차범근 선수에게 경외의 눈길을 보냈다. 4. 현재 한국내에서 차범근이란 선수에 대한 평가는 과소평가이다. 5. 그는 현재의 평가보다 훨씬 더 영광스런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6. 차범근 선수와 차범근 감독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정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이정도가 정설로 통하고 있습니다.
05/06/27 17:53
차범근선수의 연봉을 알고계시는분들은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네요.. 아시는분이 리그 관계자이신가요? 철저히 비밀로 부쳐지는 연봉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지..
05/06/27 17:55
예전에 한국 방문 당시 베켄바워가 박주영을 만났을때 이런말을 했죠.
"차범근에게 조언을 받아라. 그가 최고다.' 그말 하나면 대충 어느정도인지 짐작 하실텐데요. 차범근이 지금으로따지면 쉐바, 앙리 급이다라는 말에 몇몇 분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시는데 실제 자기 포지션(윙포워드)에서만큼은 세계최고로 꼽을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유럽에서 최고라고 하는 한국 선수를 우리나라에서 깎아내릴 이유가 있을까요?
05/06/27 17:57
박지성선수가 차범근 감독과 비교되는것 자체가 영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지성 선수는 아직 소위 빅리그라고 불리는 4대리그에 이제 거기서
업적을 쌓을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 주어진것이고, 차범근 감독께서는 이미 거기서 업적을 이루신 분입니다. 박지성선수가 더큰 캐리어를 쌓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아직 가능성일 뿐이죠. 그리고 연봉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물가상승률을 단순히 곱하는걸로 지금의 연봉과 그 당시의 연봉을 비교하는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05/06/27 17:58
요즘 유럽 리그등을 해설하시는 서형욱님이 쓰셨던 차범근 전 감독님 관련글입니다....
이번에 챔피언스리그 현장 중계를 나갔다가 축구 변방이랄수 있는 그루지아 공화국의 중계팀을 만났는데, 그들이 제가 한국에서 온 걸 알고 던진 말은 '차붐!'이었습니다. 선수 차범근의 위상은 그만큼 대단합니다. 유럽인들에게 그는 그 어떤 한국인보다 유명한 존재죠. 글로벌 스포츠인 축구의 특성을 감안하면 역사를 통틀어도 한국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3개의 다른 팀에서 챔피언스컵을 거머쥔 시도르프를 보며 경탄하지만, 차범근은 80년과 88년, 2개의 다른 팀에서 UEFA컵을 껴안은 최초의 축구선수였습니다. (최근들어 2류로 전락한 감이 없지않은 UEFA컵이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UEFA컵의 위상은 챔피언스컵에 크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는 주당 수만파운드의 급여를 받으며 유럽 무대에서 대접받는 수퍼스타들을 부러워하지만, 차범근은 이미 80년대 유럽 최고 리그 중 하나로 평가받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연봉랭킹 3위에 오를만큼 인정받는 스타플레이어였습니다. (당시 1위가 독일이 낳은 최고의 골게터 루메니게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80년대 중반 레버쿠젠과의 재계약을 앞두었을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AC밀란에서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오기도 했었죠. (그때 밀란에 합류했더라면 오렌지 3총사와 발을 맞췄을까요? ^^) 챔피언스리그와 각종 유럽 톱리그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우리들이지만, 80년대에는 우리에게도 그곳을 누비던 스타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런지...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Cha, Bum Keun Report' (KBS Internet) 다음은 예전 굿데이 <풋풋토크>란에 올렸던 기사입니다.<- 참고로 예전에 서형욱님이 직접 글을 쓰는곳임. - http://news.hot.co.kr/2002/01/24/200201241713237111.shtml '불세출의 축구스타 차범근 - Episode 1'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 86년 월드컵 국가대표 차범근 최근 국가대표로 활약중인 차두리의 등장 이후 그의 아버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차범근 '선수'에 대한 궁금증이 대부분인데, "얼마나 대단했길래 이 난리들이냐"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차범근씨가 선수생활을 끝낸것이 벌써 13년전의 일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쉬움이 가시질 않더군요. 한국의 축구팬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아둬야 하는 상식(?)이 아닐까 합니다만. 박찬호의 이름이 아무리 유명하다한들 국내 최고 스포츠 스타의 자리는 여전히 '차붐(차범근의 애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찬호는 미국에서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차범근의 이름은 그의 주 활동무대였던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죠. 축구가 글로벌 스포츠인 덕택이겠지만,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차붐 개인의 화려한 전력입니다. 지난해 필자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일이 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차를 한잔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끼리 내기했다.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자존심이 조금 상한 저는 "아임 코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 이 노인네가 뜬금없이 "차붐 요즘 뭐하나?"라고 물어오는게 아닙니까. 곁에 앉은 할머니도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차범근과 김치뿐이라오"라며 친한척을 하더군요. 이후 할아버지와 몇마디를 나누면서 차범근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차범근씨가 선수로 활약하던 레버쿠젠의 팬이라는 이 부부는 차붐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훌륭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할머니는 "히 이즈 어 나이스 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까지 하더군요. 이전 로마를 돌아다닐때 제 일행을 일본인으로 오해하고 "나카타 넘버원"을 외치던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던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만큼 차붐의 인지도는 여전히 높습니다. 독일의 모 신문이 2002년 5월 22일자 지면을 통해 차범근의 생일이라는 기사를 냈을 정도니까 말이죠. "5월22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60년대 전성기를 이끌던 조지 베스트와 한국 차범근의 생일이다..." * 원문 : George Best feiert heute seinen 55. Geburtstag. Best bestritt 37 Fußball-Landerspiele und schoss dabei zehn Tore fur Nordirland. Er gewann 1965 und 1967 mit Manchester United den englischen Meistertitel und 1968 den Landesmeisterpokal. Dazu wurde er 1968 zum besten Fußballer Europas gewahlt. Auch Bum Kun Cha hat heute ebenfalls Grund zur Freude. Der ehemalige Fußball-Nationalspieler Sudkoreas wird 48 Jahre alt. Seine großten Erfolge feierte er mit deutschen Klubmannschaften. Sowohl 1980 mit Eintracht Frankfurt als auch 1988 mit Bayer Leverkusen gewann er den Uefa-Pokal. Wahrend Cha in 308 Bundesligaspielen 185 Tore erzielte, absolvierte er 144 Landerspiele fur Sudkorea. Nachdem er 1989 seine aktive Karriere beendete, erwarb er die Trainerlizenz und grundete eine eigene Fußballschule. Heute ist er als Journalist fur das sudkoreanische Fernsehen tatig. (후략) 그래서 차범근씨의 선수시절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월드 풋볼 스타인데 제대로 알아둬야죠? ^^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실지 모르지만 말이죠. 이전에 정돈해놓았던 <선수 차범근>의 일대기(?)입니다.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79년 프랑크푸르트 입단 8월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최고 시청률.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 (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차범근 거절).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기립,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106골/218경기) 308경기 98골은 차범근 위원이 윙포워드에 가까운 전형적인 골게터 스타일이 아니고, 페널티킥, 프리킥을 전혀 차지 않았던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수치이지요. 하지만, 위같은 영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정말 말이 안나올 정도입니다. 아직도 그의 활약을 실제로 보지 못해 부풀려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당시 분데스리가가 최정상급이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지요. 정말 자신의 영웅들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 나라들에 비해 참 안타깝습니다.
05/06/27 17:59
처제테란 이윤열 // 공식 발표된 추정 연봉선을 감안한 추측이겠죠...
문영호님 말씀대로 대강의 연봉 수준은 입단하는 팀과 이적 시기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추측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맨유로 이적 확정된 박지성 선수의 연봉도 약 200만 파운드라고 공식 발표되는데 철저히 비밀로 부쳐진다는 말은 약간 어폐가 있네요... 물론 액면가 말고 뒤로 뭔가 플러스 계약이 있겠습니다만... -,-
05/06/27 18:00
글제목처럼 과연 위대하다고 할만한 한국축구선수가 차붐말고 누가 더 있을까요?
홍명보? 황선홍? 박지성? 과연 위대하다는 표현을 쓸수 있을까요?
05/06/27 18:01
왠만한 톱클래스 선수들의 연봉이 아니면 거의다 비공개 아닌가요? 그리고 차붐의 연봉이 공개되어있고 연봉 3위라면 그에 합당한 자료와 액수를 제시하셔야지 납득 할 거 아닙니까..
05/06/27 18:03
KICKER지에 실린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랭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Gerd Müller(FC Bayern. 60,3%) 2. Uwe Seeler(Hamburg SV. 15,9%) 3. Klaus Fischer (Schalke 04. 5,1%) 4. Ulf Kirsten (Leverkusen. 4,9%) 5. Stéphane Chapuisat(Dortmund. 3,3%) 6. Giovane Elber (FC Bayern. 2,7%) 7. Horst Hrubesch (Hamburg SV. 1,8%) 8. Klaus Allofs (Köln. 1,7%) 9. Bum-Kun Cha (Leverkusen.1,6%) 10. Karl Heinz Riedle (Dortmund.1,4%) 11. Dieter Müller(Köln. 1,3%) 퍼온 자료 하나만 올려 드립니다..역대 분데스리가 최고 공격수 랭킹에서 9위에 랭크되었죠. 사실 그것도 1위인 게르트 뮬러 선수(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 이죠?? 아마도..)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나머지 선수들은 차이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05/06/27 18:05
GQ코리아에 한준희 MBC 축구 해설위원 겸 사커라인 컬럼필진이 쓴 글입니다.
이게 좋은 예가 되겠죠. http://www.gqkorea.co.kr/sports/index.asp?menu=01&ins_no=118&cpage=1
05/06/27 18:06
차붐은 분명 그당시 시절에는 톱클래스 였습니다 그러니 연봉이 공개 되었겟지요,, 그당시에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리그 였습니다 그 리그에서 연봉랭킹 3위라면 이미 톱클래스 아닌가요?
05/06/27 18:06
아직까진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선수는 차범근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으로서는 별로 인정하진 않지만 선수시절로는 역대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수원의 경기를 보면 자꾸 예전 김호감독시절의 수원이 그리워 집니다.. 그당시 데니스도 그립고 고종수도 그립고 스트라이커로 뛰던 박건하도 그립고.....
05/06/27 18:08
처제테란 이윤열//
네 님 말씀대로 아무도 차붐의 연봉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건 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럼 님이 차붐의 연봉이 랭킹3위가 아니라는 자료를 제시해보시길..
05/06/27 18:08
아니라면 아니라는 자료를 제시하면 될 것을...
자료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반박하려고 드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죠.
05/06/27 18:09
당연히 어디에도 차붐의 연봉이 3위라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이 아닌가요? 저보고 자료를 대라는건 좀 황당한 소리군요
05/06/27 18:10
전 축구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분명 차붐의 연봉 액수를 모르지만 독일 어느 예전 기사에서 분명 차붐의 연봉은 5위안에 있었습니다.. 독일선수들 연봉도 다 나와있었습니다만..
05/06/27 18:12
차붐의 연봉이 3위라는 증거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되는군요 찾아보시고 말씀하시는건가요?? 전 지금도 그 기사가 아직 찾을수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에 분명히 그의 연봉을 봤었고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액수는 모르지만,,,,
05/06/27 18:12
어차피 연봉은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연봉을 엄청나게 많이 받아야 우리이 영웅이 될수 있는건 아니죠. 연봉은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합니다. 연봉이 10위든 100위든 차범근 감독이 이룬 업적은 인정해야겠죠.
05/06/27 18:16
Love♥Toss님// 예전 차붐을 알게되었고 그를 존경할때부터 항상 연봉에는 의문이 갔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차범근의 연봉에 대한 글은 거의 다 찾아서 읽어봤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아무도 제시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겁니다. 님이 직접 보셨었다면 그게 바로 증거가되는것입니다. 그것도 독일 잡지에서 보셨다고 하시면 전 당연히 수긍할 수 밖에요
바알키리님// 전 차붐을 깎아내리고자 한게 아니라 단지 그의 연봉에 의문을 가진것 뿐입니다. 오해가 있으셨었다면 사과드립니다
05/06/27 18:22
WizardMo님//의견이나 생각이 있으시면 명확히 밝혀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툭 한마디 던져 놓고 가시면 위에 열심히 글을 써주신 많은 분들을 뭉뚱그려 웃기다고 하시는 걸로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05/06/27 18:24
차범근씨를 칭찬하는글에 굳이 반론을 제기해서 깍아내리려고 하는 심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중국이나 일본싸이트에 온 기분입니다만??? 뭐 이순신 장군도 깍아내리고 원균을 띄우는 실정이니 오죽하겠습니다만. -_-
05/06/27 18:27
맞아요맞아요..사실을가지고 과장이라고 그러지않나..; 유럽에서의 차범근씨의 평가는 본문보다 더 대단하다는게 사실인데말이죠..왜 굳이 그러는지 참..
05/06/27 18:28
(wordy님/ 그렇군요.. 찾아보니 다른 페이지에 원작자와 글 전문이 있네요. 다시 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글은 스포츠 컬럼 사이트인 후추의 김유석님이 쓰신 글입니다. 차범근의 선수 시절의 위상을 잘 알려주는 글인듯 합니다. 사커월드에서 재펌 했습니다.) 일본 스포츠 잡지 중에「주간 사커 다이제스트」라는 축구전문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 [Great Player 열전] 이라고 하는 코너가 있더군요. 이 코너는 역대 세계 축구계를 주름 잡았던 옛스타들의 전성시절을 회상하는 코너인데 제 6회 째[Great Player 열전]에 우리 차범근 감독이 소개되어 있었 습니다.(지난 5월 중순인가 말 경에 나온 잡지에 소개되어 있었어요.) 차범근이 UEFA컵 우승(88년 레버쿠젠 우승 때)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사진과 함께 차범근에 대해 평한 글이 실려져 있더라구요. [Great Player 열전]을 소개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독일의 유명 축구 평론가인 쿤트네처입니다.(쿤트네처에 관해서는 밑 부분에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그 잡지에 실린 쿤트네처의 [Great Player 열전] - 차범근 편 - 을 제가 서투르 지만 번역 해 봤습니다. 쿤트네처가 기고한 이 글은 안도 마사즈미(安藤正純)라 는 분이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인데 그것을 제가 다시 우리 말로 옮긴 것입니다. ....................................................................... 제 6 회 쿤트네처의[Great Player 열전] - 차범근 편- 세계 각지에서 차범근을 만날 때마다 그 시절에 왜 차범근과 인연이 없었 을까? 하고 자책하곤 한다. 그 시절이라고 하면 내가 함부르크SV의 매니져를 하고 있었을 때이다.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영입해 전력을 강화하려고 했을 시기는 함부르크가 분데스리가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고, 유럽컵 아테네 시합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난 바로 뒤였다. 스트라이커 후보로 거론 된 인물은 프랑크푸르트의 차범근과 장래성이 있는 젊은 독일선수 두 명이었다. 박력있고 운동량 풍부한 샤트 슈나이더와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운데, 측면 어느쪽에서 든 훌륭한 패스와 센타링을 구사할 수 있는 볼프람 푸트케가 바로 이 두 젊은 독일선수들이었다. 나는 차범근을 택하고 싶었다. 차범근은 당시 분데스리가 공격수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우수한 선수였다. 그 때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강의 리그였다. 그러나 마음 한 부분에서 또 다른 꼬득임이 있었다. '너는 이미 유럽 챔피언 팀 매니져로서 반년이란 세월을 보냈잖아! 팀에는 국제 경험 풍부한 선수가 남아돌 정도로 많이 있고..... 그러니 젊은 선수 둘을 택해라. 베테랑 선수들이 그 젊은 녀석들을 멋지게 키워 줄 것이다.' 그 후에,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대 축구에 적응할 수 없었던 두 젊은 선수에 의해서 그토록 강했던 팀이 비참하게 망가져 버리고만 것이다. 함부르크는 이 후 우승은 물론, 우승 다툼 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홀스트 후루베쉬와 랄스 바스돌프등의 공격진에 차범근을 끌어드려 페릭스 마가트와 만프레도 칼츠의 패스와 센타링을 받아 주었다면 함부르크는 3번째 리그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츠펠트와 에휀 베르크 콤비로 성공을 이룬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황금기를 우리도 당시에 구가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매니져로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로지 '장래성' 하나만 보고 차범근과 같은'안전패(安全牌)'를 버렸던 것이다. 차범근은 신뢰할 수 있는 선수의 표본이다. 차범근은 케빈 키건과 함께 분데스 리가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외국인 선수였다. 컨디션의 기복이 거의 없었고, 지방의 친선 시합과 같은 게임에서 조차 전력을 다해 플레이했다. 당시 아시아 출신 선수가 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의 제 1선에서 활약 한 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차범근은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었다. 차범근 정도라면 세계의 어느 클럽, 어느 공격진에 들어 가더라도 주전 멤버로 활약했을 것이다. 차범근은 골을 확실하게 터뜨렸을 뿐아니라 동료들에게 송곳과 같은 어시스트를 제공했다. 스트라이커로서 차범근은 흠잡을 때가 전혀 없었다. 현재까지 아시아에서 차범근 정도의 플레이어는 배출되지 않고 있다. 사실, 당시에 일본에는 가마모토 구시니게라는 훌륭한 센타포오드가 있었다. 데트마르 크라머가 놀랐을 정도로 재능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권의 나라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활약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현재 나카다 히데토시가 유럽에서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나카다가 10년간 유럽 무대에서 대활약한 차범근과 같은 수준의 실적을 올릴 수 있을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서 말하면, 차범근은 세계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차범근은 플레이 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동료들과 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인인 차범근은 후에 브라질에서 독일로 건너 온 선수 들이 본격적으로 전파한 기독교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기독교 선교사로서도 활동한 차범근에게 영향을 받은 선수들, 브라질의 죠르지뇨, 파울로 세르지오, 또한 레버쿠젠 팀동료였던 제 호베르토 루치오라고 하는 선수등은 스타디움 안에 서도 늘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1980년의 일이었다. 레버쿠젠의 DF 유르겐 겔스돌프는 그 해 UEFA컵 챔피언에 오른 프랑크푸르트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에게 경기 도중, 등 뒤에서 심한 태클을 가해 큰 부상을 입혔다. 겔스돌프의 파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테레비를 통해 그 장면을 목격한 독일 축구팬들도 경악했다. 차범근 주치의는「제 2 요추 골횡 돌기부 골절」이라고 진단 내렸다. 차범근이 병원에서 선수 생활의 사활을 걸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을 때 프랑크푸 르트는 매스컴을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발표했다. 「차범근은 [증오가 아닌 용서] 라고 하는 기독교적 신념에 입각해 겔스돌프에 대한 형사 고발을 거부합니다.」라고. 이후 3 년 뒤, 차범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 첫날 차범근은 겔스돌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날 부터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무렵 있었던 인터뷰를 나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도를 넘어선 강한 태클과 지져분한 플레이로 덤벼드는 상대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처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차범근은 이렇게 답했다. 「그러한 상대에게는 '이것은 룰 위반이고 파울이다. 또한 품격없는 행위다' 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무시합니다.」라고. 품격있는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보복 행위' 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범근 처럼 스피드가 있으면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그 민첩함을 살려 페널티킥 을 자주 얻어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 라는 질문에 언제나 웃으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런 행동은 안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라고. 차범근이 레버쿠젠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독일의 어느 기자가 작별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메시지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수라장(修羅場)을 맨발로 뛴 10년. 그 수라장(修羅場)이라고 하는 곳은 바로 분데스리가의 페널티 에이리어 안이었다.」 - 이상 - (쿤트네처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문장이 조금 딱딱하고 어색한 것은 제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이고 아울러 완전히 직역을 했기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 부분에 관해서는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 니다. 그럼 이 잡지에 [Great Player 열전]을 싣고 있는 독일의 쿤트네처의 프로필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쿤트 네처(GUNTER NETZER): 1944년생. 9월 14일생. 선수시절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보르시아 MG(63년 ~ 73년) - 레알 마드리드(73 ~ 76) - 스위스 그라스 호퍼(76 ~ 77년) 월드컵 출전: 74년 뮌헨 월드컵. 제가 쿤트네처의 활약상을 전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자세히 평할 수는 없고 그져 제가 알고 있는 부분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쿤트네처는 현재 독일에서 축구 평론가겸 해설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 입니다. 일찌기 쿤트네처는 독일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미드필더였다고 하더군 요.(전성기는 60년 대 말 ~ 70년 대 중반) 역대 독일 선수 중 가장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던 미드필더가 쿤트네처였다고 합니다. 72년 독일이 유럽컵을 차지할 때 베켄바우어와 세련된 콤비 플레이를 펼친 걸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쿤트네처는 정작 월드컵에서는 큰 활약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세대인 볼프강 오베라트라고 하는 미드필더에게 대표팀 주전 자리 를 빼았겼다고 합니다. 창조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쿤트네처에 반해서 오베라트는 키는 작지만 엄청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투쟁심이 대단했던 선수였다고 합니다. 72년 유럽컵에서 독일이 우승할 때 쿤트네처가 워낙 발군의 기량을 발휘 했었기 때문에 74년 뮌헨 월드컵에서도 대활약이 기대 됐었는데 결국 월드컵에서는 오베라트에게 밀리고 말았답니다. 볼프강 오베라트 프로필도 조금만 소개 해 드리고 넘어갈께요. 볼프강 오베라트(WOLFGANG OVERATH): 1943년생. 9월 29일 생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FC쾰른(1963년 ~ 1977년) 월드컵 출전: 66년, 70년, 74년 월드컵. (유럽 축구를 공부하고 계시는 후추인 여러분들은 쿤트네처와 오베라트를 반드시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는 70년 대 초, 분데스리가의 명문 보르시아 MG가 한국에 내한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쿤트네처도 왔답니다. 그 당시 보르시아 MG와 한국 대표팀이 평가전을 가졌는데 그 때 쿤트네처가 코너 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킨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이 아니고 어디선가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김영걸 님께서 자세히 알고 계실것 같은데요? (쿤트네처와 오베라트의 프로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일본어로 된 유럽축구 전문 서적에서 발췌한 것이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제가 조금 알고 있는 것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참고: 위의 [Great Player 열전] 내용 중에 '차범근은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었다'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차범근 이전에 일본의 오쿠데라가 차범근 보다 2년 먼저(77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쿤트네처는 차범근을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 이라고 표현했더 라구요. 이것은 제가 볼 때 쿤트네처가 오쿠데라를 몰라서, 아니면 글 쓰는 도중 에 잠시 착각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 차범근의 위상이 대단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 지금까지 독분비관에 올라온 수많은 글 중에서 차범근 감독에 관한 글도 상당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 역시도 차범근 감독에 관한 글을 몇차례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우리 후추 가족 여러분들께서 많은 호응을 해 주셨었지요. 그런데 걔 중에는 이런 글도 몇 개 읽은 기억이 납니다. *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 *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러는데 차범근은 솔직히 별것 아니라고 하던데? * 차범근이 소속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당시 약팀이었기에 차범근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차범근은 플라티니 또는 지코 수준의 선수가 아니기에 세계적 선수라고 하기 에는 조금.......? * 차범근은 개인기가 없다? * 차범근은 국내 매스컴을 통해 과대 포장 된 선수라고 누가 그러던데? 대략 이런 식의 질문성에 가까운 글들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제가 이러한 질문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답변을 해 드릴까 하다가 그냥 넘어 갔었습니다. 기왕이면 날 한번 잡아 여기에 대한 답변 내지는 반박을 제대로(?) 한번 해 드리려고요.(솔직히 자격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 부분에 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글을 풀어 나가도록 할께요. ..................................................................... *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 이 질문에 관해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과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견 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차범근의 모국 한국이라 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 해서, 차범근을 좋아하는 사람들 측에서는 '두 말할 필요없이 차범근 은 세계적 선수다!' 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고, 반면에 차범근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는 사람들 측에서 봤을 때는 '차범근이 우수한 선수이긴 하지만 결코 세계적 선수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극적인 현실인지는 몰라도 차범근의 '축구 실력' 은 한국 축구인들 보다 유럽 축구인들에게 더 확실하게 인정 받고 있는 게 사실인 듯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차범근의 축구 실력과 유럽에서의 활약상을 국내 전문가들이 잘 몰라서가 아니라, 함부로 머리를 수그리지 않는 차범근이 꼴같지 않으니까 아이야 인정을 안하려 드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일부 축구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팬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선수를 가지고「세계적 선수」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한 마디로, 세계적인 선수란? 세계적인 축구 시장(아무래도 유럽 무대라고 봐야겠지요.) 에서 그 플레이가 완벽 하게 통하면 그것은 곧「세계적 선수」라고 불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깊이 생각 할 필요 없이요. 차범근은 독일에서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맹활약 하며 유럽 전문가들로 부터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라고 인정을 받은 인물입니다. 또한 누구나가 다 알고 있듯이 결과까지 냈구요. 그렇다면 차범근은 세계적인 선수임에 틀림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범근에 대해 그 쪽 전문가들이 '세계적 스트라이커' 혹은 '최고의 스트라 이커' 라고 극찬한 것은 축구 후진국의 선수가 축구 강국인 독일에 와서 10년 간 열심히 뛰었으니까 예의상 가볍게 립 서비스를 한 것에 불과 할까요? 유럽 축구 시장이 무슨 인권 단체 입니까? 축구 후진국 선수한테 그렇게 친절을 베풀게! 그리고 프로 세계가 그렇게도 인정있고 푸근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 입니까? 더군다나 유럽 무대가? 위의 쿤트네처 글에서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 (釜本邦茂) 얘기가 나왔는데 일본에서는 가마모토를 세계적 선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가마 모토는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할 때 일본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였으며 아울러 대회 득점왕(6 게임에서 7 득점)까지 차지한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는 가마모토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축구계에서는 가마모토를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혹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로 부르는데는 주저하고 있습니다. 가마모토가 멕시코 올림픽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유능한 스트라이커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한국에 차범근이라는 '거목' 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는 일본의 가마모 토 구니시게가 아닌 한국의 차범근이라는 걸 일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추인 여러분! 자존심 강한 일본 놈들이 왜 가마모토 보다 차범근을 한 수 위로 평가하는 줄 아 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차범근은 유럽 무대에서 확실한 검증을 받은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마모토가 올림픽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 하나 가지고는 차범근한테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본 축구 전문가들이 그렇게 얘길 하고 있고, 또한 일본 축구 전문 서적이나 잡지 에서도 이와같이 평가하고 있는 것을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차범근을 '아시아의 호랑이(アジアの虎)'라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참고: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독분비관에 '차범근 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라구?'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을 때 조금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라는 얘기만 나오면 정말 피가 꺼꾸로 솟 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물론 일부이겠지만) 무슨 놈 의 피해 의식이 있길래 차범근의 실력과 명성을 믿으려 하지 않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까?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라는 게 두려운 것입니까? 아니면 차범근이 한국 축구 선수였던게 쪽팔린 겁니까? 유럽의 '검증 된' 축구 전문가들에게 무려 10년 동안 검증을 받은 축구 선수가 우리의 차범근입니다. 더 이상에 어떤 검증이 또 필요하단 말입니까?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는 더 이상 딴지를 걸 필요가 없습니다. 차범근은 '세계적 선수' 임이 분명할 뿐아니라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갖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 차범근이 소속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당시 분데스리가의 약팀이 었기에 차범근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예전에 독분비관에 올려진 차범근에 대한 비판(?)의 글 중 이와 같은 내용도 올려져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예리한 지적이긴 하지만 솔직히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야비한 감이 듭니다.) 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아인트라하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엘 레버쿠젠은 차범근이 활약할 당시에 강팀은 아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1963년 분데스리가가 창설될 때 함부르크SV, FC쾰른, 카이져스 라우테른과 함께 같이 출발했던 명문 팀이었지만, 차범근이 입단 했을 때는 중, 상위권에 속하는 팀이었지, 막강한 전력의 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약한 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시 분데스리가 최강팀은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SV 였지요. 대신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명한 선수가 꽤 많이 소속 되어 있었어요. 74년 뮌헨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그라보스키와 휄첸바인. 그리고 독일대표 경험이 있는 니켈, 노이베르거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당시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전기 철조망' 브르노 페차이도 프랑크푸르트 소속이었지요. 백넘버 5번이었던 페차이는 프랑크푸르트의 간판 선수였습니다.(페차이는 지금 故人입니다.) 페차이는 현 포르투갈 대표 중앙 수비수인 훼르난도 코우토와 아주 비슷한 이미지의 수비수였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이나 헤어 스타일 모두요. 페차이 머리가 조금 더 곱슬거리긴 합니다만...... 그리고 돈 많은 구단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엘 레버쿠젠은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하위권에 속하는 팀이었는데, 차범근을 영입하면서 부터 중위권으로 도약을 했습 니다. 당시 레버쿠젠은 독일 대표가 한 명도 없었을 뿐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출전 한 선수가 차범근 이전에 단 한명도 없었을 겁니다. 차범근이 아마 레버쿠젠 구단 사상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한 선수였을 꺼에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어떤 운동 선수든지 반드시 명문팀 혹은 강팀에서 뛰어야만 세계적 선수로 인정 받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선수가 약한 팀에 소속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선수를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지요. 여기서 저의 견해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예를 깔끔하게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얀 펠레' 로 불리운 브라질의 축구 영웅 지코(현 일본 대표팀 감독)는 이태리 에서 활약 할 당시 소속팀이 우디네제였었습니다. 우디네제는 예전이나, 지금이 나 늘 SERIE-A 리그 중,하위권을 맴도는 팀이쟎아요. 아르헨티나의 카브리엘 바티스투타 역시 AS로마로 이적하기 전까지 SERIE-A 리그 중, 하위권인 피오렌티나에서 뛰었지 않습니까. 포르투갈의 루이 코스타(현 AC밀란)와 함께요. 더군다나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가 있을 때 2부 리그로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또한 94년 미국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브라질의 둥가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 할 당시 소속팀이 어디였었습니까? 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였습니다. 90년 대 중반 경의 분데스리가 라면 차범근이 활약할 당시와 비교했을 때 보다는 솔직히 레벨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은 후추인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지코와 바티스투타, 둥가는 명문 팀(강팀)에서 뛰질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 선수' 라고 보기 어려운 걸까요? 차범근이 당시 강팀에서 뛰질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실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논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유치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약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강팀들과 맞서 그렇게나 많은 득점을 올렸다는 것에 더 많은 갈채와 박수를 보내야 마땅한 것이 아닌지요? 차범근이 쌓아올린 그 기록과 그 명 성은 다 강팀들과 싸워서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인 것입니다. '차범근은 어떠한 리그, 어떠한 팀에 가더라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다.'라고 쿤트네처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당시의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쿤트네처가 술 쳐먹고, 그냥 헛소리 한 것일까요? 차범근 감독 명예의 전당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를 나올 때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차범근을 영입하려고 했다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태리 AC밀란과 나폴리에서도 당시 차범근에게 입단 제의를 한 걸 로 알고 있습니다.(인터 밀란이 아니라 AC밀란이라서 안 갔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신앙의 문제도 있고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이태리로 안가고 독일에 남은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레버쿠젠이 제시한 조건이 가장 좋았었겠지요. 위의 쿤트네처 바람대로 당시에 만일 차범근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지 않고 강팀인 함부르크SV로 이적을 했었다면 차범근은 레버쿠젠에서 보다는 훨씬 더 볼을 수월하게 찰 수 있었을 겁니다. 쿤트네처가 위의 글에서 거론한 후루베쉬나 마가트, 그리고 칼츠는 당시 독일 대표 팀의 주전 멤버들이었는데 차범근이 이들과 함께 함부르크SV 에서 호흡을 맞추었다면 아마도 분데스리가 통산 120골 정도는 족히 떠뜨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98골도 대단한 것이지만요. 당시의 함부르크 전력은 독일에서 뿐아니라 유럽에서 손 꼽히는 강팀이었어요. 후루베쉬, 칼츠, 마가트 이 외에도 좋은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케빈 키건도 함부르크SV 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지요.) 이야기 나온 김에 홀스트 후루베쉬, 페릭스 마가트, 그리고 만프레도 칼츠에 대 해서 말씀 드릴께요. (예전에 제가 후루베쉬에 대해서는 조금 다룬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후루베쉬는 신장이 190cm 가까이 되는 장신 선수였습니다. 백넘버는 9번이었는데 대단히 뛰어난 헤딩 능력을 구사했던 공포의 센터포오드입니다. 별명이 '헤딩괴물' 이었어요. 별다른 테크닉은 없었지만 스케일이 큰 축구를 했던 선수입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은 프랑스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 대 4 로 이긴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승부차기 당시 독일 대표팀의 마지 막 킥커가 후루베쉬였습니다. 차범근이 그 시절에 함부르크SV로 갔었다면 후루베쉬와 투톱을 이루었을 겁니다. 후루베쉬는 지난 유로 2000 에서 독일 대표팀의 코치로써 리벡 감독을 보좌하 더군요.(참고: 후루베쉬는 원래 '루베쉬' 라고 발음해야 맞는 것이라고 전에 김영걸 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트 역시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왼 쪽 윙으로 뛴 선수입니다. 백넘버 10번의 마가트는 스피드와 페인팅이 아주 좋은 선수였습니다. 생김새가 브라질의 블랑코(94년 월드컵 우승 멤버)와 흡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차범근 감독이 푸스발레러(분데스리가 팀을 지도할 수 있는 코치 자격증)코스를 밟을 때 마가트도 함께 수업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칼츠는 70년 대 중반 ~ 80년 대 초까지 세계 최고의 오른 쪽 풀백으로 명성을 날렸던 유명한 수비수입니다. 백넘버는 대표팀에서는 20번을 달았고, 함부르크에서는 2번이었어요. 184cm의 장신에 바가지 머리를 휘날리며 오른 쪽 측면 공격을 아주 많이 했던 선수입니다. '오바래핑의 원조' 가 만프레도 칼츠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제가 만프레도 칼츠의 직필 싸인을 가지고 있답니다. 물론 직접 받은 것이지요. ^*^ 브르노 페차이 싸인도 있구요. 제가 이 두 선수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82년 스페인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후추의 젊은 분들(특히 유럽 축구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당시 독일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을 제가 기억나는 대로 소개 해 드리지요.(괄호 안은 소속팀입니다.) GK 슈마커(FC 쾰른) DF 칼츠(함부르크SV), 브리겔(카이져스 라우테른), B 푀르스터, KH 푀르스트(슈투트 가르트), 스텔리게 (참고: 주전 스위퍼였던 스텔리게의 소속팀을 제가 지금까지 모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B 푀르스터, KH 푀르스트는 쌍동이 형제입니다. B푀르스터가 형이지요.) MF 리트바르스키(FC 쾰른), 브라이트너(바이에른 뮌헨), 드레 뮐러(드레 뮐러 소속팀 도 모르겠네요.) FW 루메니게(바이에른 뮌헨), 피셔(샬케 04), 한스 뮐러(슈투트가르트), 후루베쉬, 마가트(함부르크 SV)등 대략 이 정도 입니다. (이들 선수들 이름 보시면 김영걸 님께서 가장 기뻐 하실 것 같군요.^0^) 괜히 이야기가 독일 선수들 쪽으로 빠진 듯 한데,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차범근이 소속 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 쿠젠이 강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범근의 실력에 의문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입니다. * 차범근이 플라티니와 지코 수준이 아닌데 어떻게 세계적 선수라는 것인가? 이와 비슷한 글도 독분비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 밖에 는 안들더군요.(이 글 역시도 '누가.....그러던데?' 식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시절(70년 대 말 ~ 80년 중반)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선수 중에서 플라티니, 지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수들이 과연 몇이나 됐는지 한 번 저에게 말씀을 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폴란드의 보니에크. 독일의 브라이트너,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캠페스, 발다노. 브라질의 소크라테스, 팔카오. 프랑스의 티가나, 질레스, 이태리의 시레아, 브르노 콘티, 파울로 롯시등의 수퍼스타들도 플라티니와 지코의 실력과 명성 앞에서는 초라해 보일 정도입니다.(유일하게 독일의 칼하인츠 루메니게만이 이 두 선수와 같은 레벨의 선수로 평가 받았습니다.) 이들 세대를 잇는 우루과이의 프란시스 콜리, 독일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 프랑크 라이카르트, 이태리의 프랑코 바레시, 벨기에의 엔조 시포, 루마니아의 하지, 프랑스의 에릭 칸토나, 쟝 피에르 파팽, 덴마크의 라우드롭 형제, 잉글랜드의 게스코인, 유고의 스토이코비치, 그리고 지금의 베컴, 히바우도, 베론, 토티등도 플라티니, 지코한테는 안됩니다. 피구나 지단도 이 두 선수를 능가한다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천하의 로베르토 바지오도 이 두 선수한테는 솔직히 역부족입 니다. 바지오가 어릴 적 부터
05/06/27 18:29
처제테란 이윤열/ 저에게 사과할 필요까진 없으신데... 이까이께 무슨 사과하실 일이라고... 사과까지 하세요... 민망하게...저두 죄송해요.
괜히 기분 상하게 한거 같아서...
05/06/27 18:31
<조이뉴스24>
'순둥이' 박지성(24)이 22년만에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성공적인 이적사례를 만들어냈다. 차범근(현 수원 삼성 감독) 이후 사상 두번째다. 지난 2003년 2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했던 박지성은 2년4개월만에 세계 최고의 클럽대열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한국 축구의 신기원을 개척해냈다.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제패한 차범근은 1983년 7월 레버쿠벤으로 이적했다. 이적료 135만 마르크(4억5백만원), 연봉 52만6천 마르크(1억5천만원)는 당시 최고의 수준이었다. ----------------------------------------------------------------- 대략의 연봉 수치는 위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지금 부터 22년전의 일이니 물가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인지 판단이 가능하실 듯 합니다.
05/06/27 18:35
차두리 처음볼때는 저따위선수가 아버지 영향력덕에.. 라 생각했었는데, 볼때마다 하드웨어는 정말 축구선수로서 최상급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에게 몸하나는 확실하게 물려받은듯, 그리고 실력도 점점 느는걸 보니 조만간 독일에서의 차범근의 환생을 볼 수 있을듯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05/06/27 18:36
저도 저 기록은 많이 봤었는데, 예전에 하이텔에 약간 다른 기록이 있어서 올립니다...저도 저 세대가 아니라서 어느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차범근 선수는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제 목:[축구] 차범근 기록 수정 정리 관련자료:없음 [28962] 보낸이:이정원 (바람그네) 2002-04-29 23:35 조회:118 게시판에 뿌려졌던 차범근씨의 선수적 기록들 중 기사 내용이나 경기 중의 소소한 일들을 제외하고, 기록에만 입각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80% 이상의 내용이 틀린 것들이더군요. * 알려졌던 내용 > 수정된(교정된) 내용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 틀림, 76년 9월 대통령배 축구대회. 1 : 4 로 뒤지던 상황, 7분 남기고 3골 넣어 동점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 틀림, 분데스리가 데뷔는 78/79 시즌 다름스타드98 (Darmstadt 98) 공격수로 스타팅 출전하여 우베 한(Uwe Hahn)과 77분 교체. (무득점) 79/80 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 데뷔. 상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orussia Dortmund)가 맞음. 스타팅으로 뛴 것도 맞으나 75분이 아니고 끝까지 다 뜀. 어시스트 없음, 왜냐... 0 : 1 로 졌기 때문.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 맞음. 헤딩 골, Kicker지 선정 여부는 알 수 없음. 전반 52분 1 : 0 에서 2 : 0 쐐기골. 2 : 0 으로 경기 끝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 틀림, 네번째 경기는 아인라흐트 브라운슈바이그(Eintracht Braunschweig)전. 전반 32분 득점을 함, 선취골이 아닌 만회골 (1 : 1)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틀림, 보루시아MG(Borussia Monchengladbach)전은 8번째 경기. 차범근 처음부터 끝까지 뛰었으나 한 골도 못 넣고, 팀은 4 : 1로 짐. 세경기 연속골은 맞으나 2,3,4 번째 경기였고, 상대팀은 차례로 '슈트트가르트, 브라운슈바이그, 레버쿠젠' 이었음.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 틀림, 79/80 시즌 차범근 해트트릭 기록한 적 없음. (11월 쾰른전에서 2 득점이 79/80시즌 한 경기 최다임) 9월 22일, 함부르크(Hamburger SV)전 에서 풀타임 뛰었으나 득점 없음. 팀은 3 : 2 로 이김. *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 틀림, 오데쿠라가 아니라 야쓰히코 오쿠데라(Yasuhiko Okudera) 전반 26분 선취골과 후반 79분 쐐기골로 두 골 기록 맞으나, 3 : 0 승리임.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죄다 틀림, 79년 11월 28일 UEFA 컵 1라운드 경기. 상대는 FC 아버딘(FC Aberdeen), 1 : 1 무승부, 1 : 0 승. UEFA 컵 2라운드 경기. 상대는 디나모 부카레스트(Dinamo Bukarest), 0 : 2 패, 3 : 0 승. UEFA 컵 16강 상대는 로테르담 (Feyernoord Rotterdam), 4 : 1 승, 0 : 1 패. 80년 5월 3일 두번째 경기. 상대는 쥬브로죠브카 뷰노(Zbrojovka Brno), 4 : 1 승, 2 : 3 패. 4강 진출. UEFA 컵 4강 바이에른 뮌헨과 첫번째 경기 2 : 0 패, 두번째 경기 5 : 1 승, 프랑크푸르트 결승전 올라감.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마테우스! 차붐을 막아라>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 맞음. (결과만 봤을 때, 신문 내용은 알 수 없음)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 맞음. (역시 결과만-_-, 내용 알 수 없음)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 틀림, 시즌 득점 31경기 12골로 공동 12위. (동점자 수 제외하면 8위) 1위는 34경기 26골로 바이에른 뮌헨(Bayern Munchen) 소속의 칼-하인쯔 루메니게(Karl-Heinz Rummenigge) 팀내 득점 1 위 (12골), 2위는 베른트 홀젠바인(Bernd Holzenbein, 11골) *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 알 수 없음. *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한심한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 80/81 시즌 중이던 80년 8월 23일, 바이어 레버쿠젠(Bayer Leverkusen)과의 경기 도중 전반 16분 위르겐 겔스도프(Jurgen Gelsdorf)에게 부상. (당시 경기 기록이 미흡하여 확실치 않음)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 맞음. 83/84 시즌 전 트레이드. *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 맞음. 34경기 17골로 득점 단독 4위. 1위는 34경기 22골의 스테판 쿤쯔(Stefan Kuntz) MVP는 확실치 않음. 팀내 득점 1위, 2위는 34경기 14골의 헤르베르트 바스(Herbert Waas) *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맞음, 3경기 출전, 무득점.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5월 4일 UEFA컵 결승 1차전 0 : 3 으로 패. 5월 18일 결승 2차전 3 : 0 으로 승, 81분 차범근 동점골! 승부차기 3 : 2 로 승. * 신문 톱기사 <지구 최고의 선수 ''차붐''> KICKER지 <차붐, 팀 창단 첫 UEFA 우승 두번이나 이끌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의 최고스타>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아쉽게도 이기록은 최근몇년전에깨 짐)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우리나라 사상 최단시간 골 기록(전반 시작 15초) > 확인 불가능, 308경기 98골은 맞음. 어쨌든 차범근씨의 선수적 기록은 거품을 뺀 지금 봐도 엄청나네요. 특히 현재까지 유수 클럽팀에서 그의 기록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아무도 없기에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당시의 기록을 뒤져서 맞춰본 것이니 틀린 점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차범근... 아니 차감독... (이라 부르고 싶군요) 역시 불세출의 스타라고 생각되네요.
05/06/27 18:37
문영호님// 최근에 그런 기사가 났었군요.. 자료제시 감사드립니다. 지난주까지는 그런 기사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었거든요.. 그나저나 그당시 1억 5천이면.. 지금으로 치면 10억대 정도 되나요? 그리고 위에 제가 깎아내린다고 하시는 분이 몇분 계시는데 전 차범근감독의 커리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연봉에 대한 정확액수가 없어서 그것에대한 의문을 표시했을뿐입니다. 제가 오해를 샀다면 일단 사과드립니다
05/06/27 18:38
그나라를대표하는 위대한축구선수에겐 대표팀감독직을 맡기지 않는다는데.. 펠레와 마라도나가 그 예죠.. 차범근감독님에게 대표팀감독을 맡긴것이 차범근감독님의 업적을 깎아내리게한 한 원인이 될수있겠네요
05/06/27 18:45
박지성선수가 차범근감독의 명성을 뛰어넘는 레전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견으로는 위의 논쟁들은 너무 소모적인 것 같네요. 물론 차범근감독의 선수때를 본 분들이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리신 분들이 차범근감독의 커리어 및 명성을 과대평가되었다고 하시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물론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이긴 했지만, 몇몇 분들은 어떤 아시아의 선수도 차범근감독을 뛰어넘지 못할거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죠. 전 박지성선수가 꼭 차범근감독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문제도 없고 아직 7~8년은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으니까요.
05/06/27 18:46
10억은 훨씬 넘을껄요. 당시에 어머니께서 천원들고 장을 보러가셨다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만원들고 장 못보죠...
당시의 아파트 한채값이 2천만원 정도라고 보면 지금은 아파트 한채값이 얼마죠? 단순비교하는것 자체가 무리이긴 해도 저 당시 1억5천이면 우리 아버지 월급의 500개월치 월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일반사원 48년치 연봉입니다.
05/06/27 18:47
차라리 차 감독님이 의리를 져버리고 바이에른 뮌헨이나, AC밀란 같은데로 갔었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이런식의 논쟁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05/06/27 18:48
처제테란님//가장 정확한건 같은 해 다른 선수들의 정확한 연본 수치를 알아야 겠지요. 그 때 연봉 1억 5천이 지금의 10억대라고 말하기 어려운게 전체적인 연봉 수준이란게 20년전과 지금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죠.
어쨌든 축구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과 기사를 볼 때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함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합니다.
05/06/27 19:00
당시 차범근 감독님의 이적료는 4억, 지코는 40억 마라도나는 80억입니다. 물론 돈=실력이라곤 말하기 힘듭니다. 같은 위치의 실력을 가진 선수라도 스트라이커나 플레이메이커가 윙보다 많이 받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죠. 스타성도 중요한 역할을 하구요.
많은 분들이 적어주셨지만 팀내 공헌도 등을 보았을 경우엔 세계적인 스타들과도 별 차이 없구요. 단지 약간의 반론이 있는 이유(저 같은 놈 -_-;;)는 차범근 감독님이 쉐바나 앙리급이라는 말, 우에파컵이 챔피언스리그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 분데스리가가 독보적이었다는 말( 세리에, 프리미어, 프리메라 3개를 합친 정도라고 까지 표현하더군요;;) 등의 과장이 있기 때문이지 차범근 감독님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이 마지막 댓글만은 오해없이 받아들여졌으면 하네요.
05/06/27 19:01
참 이상하십니다. 차범근 선수 최고인거는 알만할 사람들 알고
독일에서도 리틀 차붐이라는 말처럼 차두리 선수에 대한 인지도도 많죠 차붐 하면은 정말 독일에서는 영웅같은 선수인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 차감독을 깍아내리려고 안달인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신가요? 뭐를 원하시는 거죠? 참 답답합니다..답답해요
05/06/27 19:01
해외에서 인정하는 우리나라 스포츠계 3대 거장이 있죠~ 축구에 차범근, 야구에 선동열, 농구에 허재..
3명 모두 우리 나라 각 분야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한 불세출의 영웅이죠~
05/06/27 19:03
비류연님 뭔가 잘못이해하시는데
연봉이 전체 3위였지, 이적료가 3위라는 말은 아니였는데요 답답합니다..정말..그렇게 차감독님을 깍아내리고 싶으십니까?
05/06/27 19:06
세리에, 프리미어, 프리메라 3개 합친 정도는 엄청난 과장이라고 말 할수는 있지만 지금 말고 70~80년대의 분데스리가는 최고였습니다.
지금의 분데스리가를 보시지 마시고, 예전의 분데스리가입니다..
05/06/27 19:10
비류연님이 생각하는 반론에 대한 반론은...
차범근 감독님이 쉐바나 앙리급이다..<--- 이건 국내에서 나온 말이 아닌 유럽 유명한 축구선수들이 인정한겁니다.. 절대 국내에서 나온 말이 아니죠.. 우에파컵이 챔피언스리그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 <--- 댓글들 중에 그런 말은 없네요.. 차범근 선수가 거기서 맹활약했다는 말 빼구요.. 마지막으로 분데스리가는 독보적이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전문가들 포함) 분데스리가가 대단했다고 계속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비류연님만 인정하지 않고 있네요
05/06/27 19:11
뭐...나머지 3개 합친거랑 분데스리가랑 비슷하다는 건 엄청난 과장 맞죠..근데 뭐 그렇게 까지 표현하신 분은 없는 듯 한데요???
쉐바나 앙리급이라고 표현 하는건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베켄바워나 클린스만, 마테우스 등 독일이 자랑하는 톱스타들이 그렇게 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수라면 쉐바나 앙리보다 훨씬 위는 아닐지 몰라도 그들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 없는 동등 레벨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05/06/27 19:12
깎아내리고 싶어하는게 아닙니다-_-;;
우리나라 사람이기에 약간의 과장을 당연하단듯이 받아들여야 하는건 아니죠. 스포츠 선수의 실력을 평가하는데 국적이 그리도 중요한 요손가요? 해외에 나가서 축구 얘기를 할때 마라도나 지코 얘기가 나왔는데 차범근 감독 얘기가 없다면 차범근 감독이 분데스리가 연봉 3위였고 세계적인 선순데 왜 아무 말 없느냐?고 말하는게 한국인으로써 필요한 자센가요? 참고로 분데스리가가 독보적이었던건 70년대고 차감독님이 활약하신 80년대엔 이미 세리에가 분데스리가를 따라온 상황이었습니다. 대다수의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차범근 감독님이 우리나라의 축구 영웅이라는 것과 독일인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는 것, 몇몇의 축구 영웅들이 차범근 감독님을 칭찬한 점 등 이런 부분을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블랙홀님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몇몇 분들은 지나친 과장을 하고 계시고 전 그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매국노라서 이러는 걸 수도 있겠네요. 사죄의 의미로 탈퇴하고 나가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떄문에 불쾌하셨을텐데 죄송합니다.
05/06/27 19:13
차범근 감독의 선수시절의 활약도를 깎아내린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박지성 선수가 따라잡았다는 코멘트인 것 같네요. 거기서 부터 이런저런쪽으로 가지가 쳐졌구요.
다른 것은 몰라도 박지성 선수는 아직 차범근 선수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당시 챔피언스리그 정도의 대우를 받았던 유에파 컵을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당시 선수와 4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던 박지성 선수의 차이만큼요. 차범근 당시 선수의 활약을 지켜볼수 있던 세대는 아니지만 삼촌이 가지고 계신 비디오 몇편과 자서전등을 읽으면서 차범근 선수에 대해서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만.. 박지성 선수가 차범근 감독을 따라잡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챔피언스리그의 우승기록이 필요할 겁니다. 또하나 만약에 맨체스터에서 윙포워드로 출전하게 된다면 차범근 감독님이 기록하셨던 것에 필적하는 공격포인트도요.
05/06/27 19:14
격세지감이네요. 7년전 프랑스 월드컵때 네덜란드에게 0:5로 지고 나서 온 스포츠신문에 다 검은헤드라인이 뽑히고 네티즌의 열에 아홉이 차감독을 성토하면서 심지어는 종교문제까지 걸고 넘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더 웃긴건 97년 아시아 지역 예선 통과 때는 '단지 뛰기만 하던 한국축구를 차감독이 진짜 축구로 만들었다.'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말이죠.)
유수의 '세계축구의 전설'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차감독이 세계적인 선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댓글 다신 분들 모두 인정하시는 것 같은데요. 오해하셔서 싸우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지금이야 프레미어, 프리메라를 세리에와 분데스리가보다 더 쳐주는 분위기지만, 80년대에는 거꾸로였고, 세리에도 분데스리가보다 떨어지는 리그는 아니었던게 맞잖아요. 모진종, WizardMo// 굳이 설명하기도 싫고, 싸움을 하기도 싫은 분이 다는 댓글치고는 별로 적절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 어차피 '알분 다 아는거' 댓글 다실 필요도 없겠네요.
05/06/27 19:36
일본에선 이순신을 군신이라 칭하는데
이순신의 나라에선 이순신의 업적이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맨유 팬들의 90%가까운 수가 박지성선수에 대해 엄청난 기대와 호응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의 조국에선 찌질이들이 스승을 배반한 나쁜 놈. 명예만 쫓아다니는 의리없는 놈으로 매도하더군요. 이제는 차범근씨마저 그저그런 선수로 만들어버릴 생각인가요??
05/06/27 19:38
답답하신 분들이 많네요. 상대평가를 해야지 절대평가를 하시는분이 계시네요. 그때의 연봉이 얼마였냐 보다는 다른선수들과의 연봉 차이를 보셨어야 되지요. 그걸 나타내는게 연봉 3위라고 나와있네요. 그때 당시 연봉이 얼마였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리고 차붐과 박지성선수를 비교한다는 것은 엄청난 넌센스네요.
05/06/27 19:39
차범근 선수에 대한 활약상에 대해서 약간의 거품이 있는 댓글이 달리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약간의 미화가 있는건지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국의 선수가 그렇게 큰 활약을 과거에 했었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 3자가 본것 보다는 더 많이 기쁘고 약간의 미화가 생기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내요. 이런글은 그냥 사람들이 읽고 차범근 선수에 대해 다시 알고 이런선수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고 기뻐하면 되지 않을까요. 괜히 이성적인 선을 긋고 싶어서 자신이 생각한 차범근 선수보다 과장히 심하다고 하여 공격적인 댓글을 다는것은 좋아보이지 않내요.
05/06/27 19:44
비류연님
굳이 이런 것 때문에 탈퇴할 필요가 있을까요?? 암튼 비류연 님은 축구에 대한 지식이 많으신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마라도나와 지코와 차범근 감독과의 이적료 문제에관한 것인데요 이적료와 연봉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비류연 님 또한 알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적료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가 더 기량이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적인 예로 현재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의 경우 이적료는 500억원정도 되고 루이스 피구는 200억도 안될 겁니다. 그러나 연봉의 경우 루이스 피구가 더 높습니다. 실력=이적료 가 아닌 셈이죠. 이적료에는 스타성과 장래성 등 많은 요소가 포함됩니다. 차범근 감독의 경우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나 당시 한국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고 축구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스타성이 없기 때문에 이적료가 별로 많지 않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번째로 그 당시 분데스리가의 실력에 대한 것인데요. 비류연 님께서 말씁하신 대로 80년대에 세리에와 프리메라 리가가 많이 따라 오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은 상위 몇팀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당시의 분데스리가 전체의 수준은 다른 리그들에 비해 많이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3대리그라고 하여 프리미어, 프리메라, 세리에 순으로 랭크되고 있으나 당시에는 세리에와 분데스리가 가 세계 축구 흐름을 휘어 잡았죠. 현재의 프랑스 리그와 빅리그를 비교해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수 있을 겁니다. AS모나코, 올림피크 리옹, 파리 생제르망 등은 빅리그의 팀들과도 비교해도 뒤떨어 지지 않습니다만 프랑스 전체는 수준이 떨어지죠 아무튼 차범근 감독의 분데스리가 선수 시절은 엄청나게 화려했다고 보시면 될겁니다. 비류연 님께서도 이 부분만은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가 있고 싫어하는 선수가 있듯이 선수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입니다. 비류연 님의 글을 읽고 비류연님이 이상하다느니 하시는 평가는 자제해 주시는게 좋지않을까요?? p.s 피쥐알 분들중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서 매우 기쁩니다. 앞으로도 자게에 축구에 관한 글 많이 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05/06/27 20:12
정말 차범근 감독님... 이런글 볼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네요...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지만 이미 우리에겐 영웅이 있었습니다.' 이부분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차범근 감독님은 이미 영웅입니다...
05/06/27 20:25
이카로스님//뭐 논점과는 크게 상관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글중에 한가지 틀린부분이 있습니다. 이적료1위 지단(6500만달러)에 이어서 2위선수가 루이스 피구(5600만달러,현재는 600억이 채 안되지만 당시 환율로는 700억에 육박했을겁니다.)입니다. 물론 계약당시에는 최고이적료였고, 1년인가 2년뒤에 지단이 그 기록을 깬것이죠. 중세부터 이어지는 유럽사회의 전통이랄까..그런것때문에 이적료가 항상 더 큰 관심을 끌며 액수도 장난이 아니죠. 이적료=실력이 아닌 큰 이유는 그 선수가 가치가 어느정도 인정받을때 이적하느냐가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겠죠. 허나 이적 순간의 가치는 그 순간의 실력이라 봐도 크게 다르진 않을것입니다.
05/06/27 20:39
그리고 박지성선수가 차범근을 따라잡았느냐 아니냐때문에 긴 논쟁이 거듭된듯한데, 한마디로 박지성선수가 맨유에서 커리어를 쌓으면서 긱스만큼의 대접을 받는다면 그땐 따라잡았다 보면 된다 생각합니다. 허나 아직은 맨유에서의 기대주일뿐이죠. 그렇다면 단순 실력비교는? 동시대선수가 아닌데 실력비교란 자체가 넌센스죠^^.
05/06/27 21:04
뜬금없지만..제가 가지고 있는 기억으로..
남양 3.4우유 홍보용 책받침이 있었다는 사실.. 신동우 화백이 그린걸로 기억하는데...차붐!! 차붐!! 이 주인공이었죠.. 기억하시는분 있으실런지..^^
05/06/27 21:33
스타실력은 또 여기서 왜나오는건지 모르겠고 -_-a
그런사람들 있죠? 경외의 대상. 기독교신자들이 신성시하는 그분처럼요. 차감독님은 그런가치를 지는분입니다.
05/06/27 21:50
김테란님//
제가 쓴 글의 뉘앙스가 좀 잘못된것 같군요.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의 이적료가 아니라 현재의 이적료를 말하는 겁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가 리빌딩 중이라 선수 교체하려구 하는데 그 1순위가 피구라고 알고 있거든요. 지금 피구가 이적한다면 이적료가 200억이 안될 거라는 것이 축구 전문가들의 견해라 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의 경우에는 맨유로 이적 당시에는 200억 정도 였는데 약 한시즌이 지난 지금은 이적할 경우 500억 넘게 맨유에 지급해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피구가 200억이 안되고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가 500억이 넘는다고 글 쓴겁니다. 정확하게 적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05/06/27 22:06
그당시 uefa컵이 챔피언스리그보다 결코 떨어지는 무대가 아니었다는것은
맞는 말입니다 -_- 그때는 지금처럼 uafa가 챔스리그 2부리그격인 대회가 아니었죠. 참가팀 선출방식도 달랐고
05/06/27 22:10
어릴적 까지만 했어도 차범근 선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98월드컵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차범근 감독은 너무 싫었죠. 비류연님.. 님께서 말씀하신건 조금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자고 하신 말씀 같으신데...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신 분이 우리나라에 많으신거 같아서 많이 차이시네요... 그래도 비류연님의 의견이 몇몇분들에게는 더 객관적으로 볼 여지를 만들어 준거라고 생각하시고 피지알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고요...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을 더 사랑 하는 저 이기에 차범근'선수' 는 뻥튀기 되더라도 믿고싶습니다. 솔직히 뻥튀기 돼면 어떻습니까?? 항상 우리랑 비교돼는 섬나라 원숭이들은 돈으로 실력을 사고 그것을 레전드를 만들고 있는데 말이죠...
05/06/27 22:20
박지성 선수 깍고싶어하지 않는 분들도 소모적인 분쟁으로 인해 약간은 차붐에 비하여를 근거로 박지성 선수를 깍게 되네요.. 차붐은 위대한 축구선수였고 박지성 선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댓글들을 다읽고 나오는 결론은 이거 하나네요..
05/06/27 22:48
이건 그냥 넋두립니다.(그래서 반말을 좀 섞었습니다.)
시작~ 형들, 뭐하는짓이야... 원래 애들이 그렇잖아, 지가 모르는건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토론을 할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지, 어린 친구들이라도 얼마든지 날카로운 시각으로 합리적인 의견을 말하거든. 근데, 어린친구들 중에 그런 친구들이라면, 절대로 지가 모르는거라고 함부로 우기는 짓따위는 안해. 난 축구는 전문가가 아니구, 농구느 ㄴ좀 아는데, 티맥보다 릭 베리나 피트 마라비치가 훨씬 더 엄청난 공격수란 얘길 해줘바야 애색히들은 못알아먹어... 샤크는 '아직은' 쳄벌린이나 러셀에 비할바가 아니라고 해도, 지들은 몰라. 꼭 이런 얘길 하지. '객관적인 증거를 들고와보셈~!' 니들 눈엔 챔피언쉽 11회가 장난으로 보이니? 그래도 몰라... 그 시절의 유에파 챔피언쉽이 챔스리그 챔피언쉽가 동급이나 그 이상이라고 '객관적인 증거' 를 대주면 뭐해? 걔네들한텐 '에이~ 아닐꺼야~~~~' 라고 까대면 그만인걸... 그것도 말야, 지금이야 레버쿠젠이 명문이지만, 그 시절엔 최하위였다구. 너말야, 브라질이나 잉글랜드팀에 뛰어난 골게터 하나 나와서 우승시키는거랑 어디 중급정도 되는 남아공이나 일본팀에서 선수 하나가 우승 시키는거랑 어느쪽이 더 대단해 보이니? 그래도 못알아 먹지? 그래, 넌 니가 안본건 못믿을꺼야. 지금 최고의 팀이 어디니? 얼핏 잡아봐도 전통의 명가들인 레알 마드리드, 맨유, 아스날, AC밀란, 인터밀란 뭐 이런데지? 근데말야, 10년후에 레알 마드리드가 부도가 나버려서 자금력이 개판이 되고, 그래서 싼 선수들 밖에 못사오고 형편없는 수준이 됐다고 해보자구. 그럼 레알에서 뛰던 호나우도, 지단, 피구, 오웬, 카를로스는 완전 허접이겠네? 그렇지? 응? 장난하냐?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줘봐야 80년대 최고 부자국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나라(지금도 EU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중에 하나죠.)가 가진 오랜 전통의 리그가 최고급이라는 얘기가 거짓말이라고 밖에 안하게 되지? 응? 그래, 좋아. 박지성은 위대해. 정말, 요즘 선수들중엔 탈 아시아권 선수라고. 누가 그거 몰라? 근데, 이거 하나 물어보자. 넌 그럼 마이클 조던이랑 코비랑 같다고 보냐? 응? 물론 커리어 마칠떄면 코비가 마이클 조던급이 되있을지도 모르지. 근데, 지금 그게 가능한 비교냐? 응? 장난하냐? 장난해? 아는 동생한테 소주한잔 기울이면서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적어봤습니다. 휴... 그냥 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에휴...
05/06/27 23:09
난폭토끼님의
그것도 말야, 지금이야 레버쿠젠이 명문이지만, 그 시절엔 최하위였다구. 너말야, 브라질이나 잉글랜드팀에 뛰어난 골게터 하나 나와서 우승시키는거랑 어디 중급정도 되는 남아공이나 일본팀에서 선수 하나가 우승 시키는거랑 어느쪽이 더 대단해 보이니? 그래도 못알아 먹지? 그래, 넌 니가 안본건 못믿을꺼야. 이 부분에 완전 공감입니다. 축구 강국에서 좀 잘하는 선수만 나와도 난리법썩인 축구매니아 중 일부들은 변방에서 세계 탑 클래스 성적을 올린 차범근선수를 깎는지.. 영 이해가...안가는
05/06/27 23:18
누가 객관적인 자료만 정리해줬으면 좋겠군요... 양쪽의 입장다 자기 입맛에 맞게 자료들을 과장하거나 추출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군요..
05/06/27 23:53
결론은 이거네요 차범근은 20세기 최고의 아시아선수였고 세계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펠레,마라도나 - 크루이프,베켄바우어,미셸플라티니급은 아니었다 지금의선수와 비교하자면 모리엔테스,인자기급정도의 선수였다
-논쟁끝-
05/06/28 00:15
음...영웅을 영웅 취급하는 것도 힘들군요.
방금 저희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그때 차범근이면 연봉 순위 1위였어도 아무도 머라 몬한다..." 20년뒤 "임요환이라는 옛날 선수 연봉도 1위 아니였던거 같은데...잘하긴 잘했남? 너무 아저씨들이 치켜세운다..." 라고 하는 제 아들놈을 이해시킬려는 상황과 다를게 없어 보이네요. 분명 차붐은 우리나라에서 과소평가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대평가를 받아도 시원찮을 분인데 말이죠. 우리의 생각속에 있는 영웅이 아닌 세계가 인정하는 영웅이십니다.
05/06/28 00:57
/비류연 그놈의 차붐에 대한 과장과 미화는 문제가 아니냐는 얘기들.
축구사이트에서 차붐까들의 글과 조금 주워들은 풍월로 나대시는건지....정중히 요청합니다. 댓글 자제 부탁드립니다.
05/06/28 01:42
차붐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비류연님 주워 들은 얘기로 평가 하다가 결국 탈퇴까지 했군요.
근데 뜬금없는 얘긴데 어떻게보면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웅은 손기정옹이고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영웅은 히딩크 아닐까요?
05/06/28 02:10
정테란님//음... 그런거 같습니다. 온 국민에게 월드컵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TV에서 재방해주는거 보면... 외출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하면서 계속 보게 됩니다. 아직도 몸에 전율이...^^
05/06/28 05:51
비류연님 탈태하셨네요.
꼭 떡집에 와서 떡은 안찾고 다른 손님들과 이빵이 좋네, 저빵이 좋네 하면서 싸우다가 떡도 안사고 가는 사람들 많죠. 스타게시판에서 축구이야기로 싸우고 가면 어쩌라구요. 그럼 떡집주인(PGR21님)님 열받습니다.
05/06/28 09:42
비류연님이 했던말들이 틀린말들은 없었습니다. 물론 조금 감정적으로 앞선감이 없진 않지만 분데스리가가 최고였던 시절은 훨씬전이었죠.--;
이미 많은 스타급 선수들이 뛰는 리그들이 분데스리가를 앞질러가고 있었죠. 최고의 선수임은 틀림없지만 연봉 3위였다던가 -_-;; 이렇게 분명하게 제시된 글들은 안좋네요. 전혀 사실무근인 것이죠. 취지는 이게 아니었던것 같지만 너무 한사람을 가지고 다그치는 면은 좋지 않아보이네요.
05/06/28 10:40
하.....모리나 인자기급이라니요..
솔직히 쉐바급은 충분히 되고 넘쳐납니다.. 1~2부리그 왔다갔다 하는 팀을 가지고 차붐 이적 후 당시 최고 클럽 대항전이었던 uefa컵 우승한 것만 봐도 뻔하죠.. 물론 당시 최고 리그는 세리에 a였지만 분데스리가도 그 다음정도로 바짝 쫓아가던 정도였죠..
05/06/28 11:05
70년대에서 80년대 초 중반까지 분데스리가가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던건 맞는데요..-_-;; 뭐가 훨씬 전이라는 건지..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봉 3위라는게 사실 무근이라면 여러 축구 전문가들이 쓴 칼럼들은 다 뻥이되는 군요...
05/06/28 11:17
저역시 연봉보다는 이적료가 선수의 가치를 더 잘 나타내고,
그 가치라는것중 가장 중요한것이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연봉은 선수의 팀에서의 누적공헌도에따라 가치가 점점 하락하더라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며, 팀의 최근성적및 재정상태등, 소속팀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요인이 많은 부분이죠. 반면 이적료는 선수들을 팔고 사고자 하는 여러팀간의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르기에 그선수의 가치=이적료 라는 등식은 거의 성립한다고 봐야죠. 그러나 위에서 이카로스님께서 피구의 예를 들었듯이 공급자가 꼭 팔아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이적료는 폭락할 수 밖에 없으며, 당시 재정난에 허덕이던 프랑크푸르트가 그런 상황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다른 축구스타들과의 이적료 단순비교가 불가능한 첫번째 이유입니다. 또한 차범근선수는 이적 2년전에 큰 부상을(척추) 당합니다. 이적시 가치가 하락할 가장 큰 요인을 안게 된것이고 이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비교하시는 여타선수들과 뛰는 리그가 달랐습니다. 마라도나는 불과 2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이적료가 20억에서 60억으로 100억으로 마구 뛰는 상황였습니다. 선수의 실력이 불과 4년사이에 5배가 된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스페인리그가 판을 키우고 있었으며, 그런 투자들에 의해 시장이 커가고 있던 상황였던거죠. 그힘에 의해 80년대 중반이후 양국의 리그가 유럽최고의 리그가 되고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던 보수적인 독일축구계는 몰락하게 됩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는 타리그명문팀들에게서도 차선수의 이적제의를 받지만 결국 레버쿠젠과 이적합의를 하게되죠. 아마 분데스리가의 자존심과 차선수를 계속 보기를 원하는 독일축구팬들의 열망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런 요인들을 간과한채로 1/10이적료였다는것이 차선수가 과대평가되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겠는지요? 당시 어린이들중 다수는 차범근선수가 독일에 축구를 한수 가르치러 갔다 믿었습니다. 그러던중 83년 멕시코청소년축구선수권 4강, 86멕시코월드컵본선진출.. 역대 최강국가대표팀에 차범근선수까지 가세하게 되니 그 기대는 하늘을 찌를듯 했죠. 결과는 실망였습니다. 역대 최강이라는 선수들의 위축된 플레이에 세계의 벽은 높음을 실감했었죠. 그러나 차범근선수만은 달랐습니다. 저런 선수가 우리나라선수라는게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점이 안타깝기마저 하더군요.(현재의 긱스처럼) 당시 어린이들이 믿었던 '독일에 축구를 가르치러갔다'와 그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맞이한 86월드컵때 생각했던, '차범근만 있으면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이길수 있다.'등은 분명 잘못된 생각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많은 경험으로서 현실을 알게 된 이상 무엇이 더 과대평가이며 과장입니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고 그시대의 상황을 논하려면, (물론 경험한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보다 넓게 많이 보고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체 근거가 무엇일까 찾아보니 (비류연님의 글들에 근거가 부족해보여, 구체적근거들을 저역시 찾아봤습니다.) 네이버에 올라와있는 한 글만에 의존하고 계시더군요. 누구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비판하고 있는 나자신이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05/06/28 11:19
리그의 양적 규모를 보고 그 리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순위를 매긴다는 자체는 섣부른 판단이다. 아무리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위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토양은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데스리가의 양적 팽창에 대응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질적 향상(이 글에서는 경기력에 국한함을 먼저 언급한다)은 과연 어떤 수준에 이르러 있을까?
양적 팽창에 맞춰 발전하고 있을까 아니면 답보 혹은 여전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을까? 일단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02-03시즌, 20년만에 처음으로 독일클럽들이 유럽클럽대항전 8강에 '한 팀'도 진출하지 못했을 때 "분데스리가는 한계에 도달하였는가?"라는 물음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최근 몇 년간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유럽클럽대항전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에르 레버쿠젠 등 몇몇 상위권 팀들만이 겨우 체면치레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분데스리가가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당면과제는 무엇일까?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의 '전성기'를 생각하곤 한다는데 그렇다면 분데스리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7∼80년대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자.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점까지, 분데스리가는 다섯 시즌 동안 클럽들이 유럽클럽대항전에서 따낸 승점을 포인트로 환산한 리그순위에서 1위 자리를 지켰다. 호성적은 단순히 몇몇 상위권 클럽들의 활약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7∼80년대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고리그로 인정받았던 것은 분데스리가의 '절대 지존' 바이에른 뮌헨뿐 아니라 여러 팀들이 고루 좋은 성적을 냈을 정도로 평준화된 리그수준에 기인했던 것이다. 단순히 전성기 때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현재 분데스리가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리그의 '상향 평준화'라는 데 이의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 출처는 베스트 일레븐이라는 잡지에서 나온 기사의 일부 입니다. 제목은 '비상을 꿈꾸는 분데스리가' 입니다. 위 기사에서 나와 있듯이, 7~80년대 최고의 리그라는 얘기가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장이라고 욕하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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