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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6/26 15:11:10 |
Name |
rewind |
Subject |
충격 개구리소년사건[스크롤] |
사망 미스터리 (2002, 10, 25. 씀)
개구리를 잡겠다고 집을 나섰던 다섯 어린이가 실종된 지 11년 만에 유골이 되어 돌아오면서 사인 규명에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실종과 가출의 두 갈래로만 양분했던 경찰이 수사 허점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저체온 동사'라는 터무니없는 변명으로 책임회피의 병폐적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골로 돌아온 아이들 중에는 영규군의 두개골이 상의에 쌓여져 있었고, 늑골 등 일부 뼈가 없어졌다면 그것은 곧 타살을 의미한다. 더욱이 유해발굴 현장에는 탄두 65발과 탄피 1발이 발견되면서 일단은 총기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만일 총기 사고가 틀림없다면 아이들이 사격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사격장 가까이 접근했다가 1~2명이 유탄을 맞고 사망했을 수도 있다. 이때 아이들이 사격장에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사태를 은폐하려는 저들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판단하기엔 몇 가지 의문이 따른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릴 당시 사격장엔 여러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모두 은폐에 동참했다고 보기엔 너무 석연하고, 게다가 이날 사격이 있었는지의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요한 부분은 유해 일부가 묶였던 흔적이 있는 점으로 보아 아이들은 살해되기 직전 누군가에게 일정 시간 감금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 없는 살인은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살해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일시 적이나마 아이들이 포박 당해야 했던 까닭은 또 무엇일까?
아이가 한 명이라면 원한이나 치정, 또는 성폭행이나 금품을 노린 유괴 사건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추정하기에는 다섯 어린이가 동시에 잡혀 살해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범죄는 그 사건에 걸맞은 동기가 있어야 한다. 돈을 노렸다거나 원한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치정 같은 특정 이유가 성립돼야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어떤 측면으로도 납치되고 살해당할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범행은 무동기성이요. 무 동기성은 우발 범행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발이란 사고를 의미하고, 그 사고를 덮기 위해 나머지 아이들을 모두 죽였을 거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포박 당한 장소와 포박을 당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인지,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장소로 이장하기까지 그동안 아이들의 사체가 어디에 매장돼 있었는지가 수사의 관건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붙잡힌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공격을 받았는지의 여부이다. 만일 아이들이 처음부터 공격을 받았다면 다섯명 중 최소한 한두명 정도는 달아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이 집중된다.
그것은 당시 와룡산에 갔던 초등학교 6학년생인 함승훈군이 들었다는 비명소리이다.
함군의 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경에 아는 형과 만나 와룡산에 갔다가, 무덤 가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개구리 소년들은 9시에 출발해 산 계곡에서 도롱뇽을 잡은 후 실종된 것으로 보여 시간상으로 거의 일치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린장소. 원내는 함승훈군)
만일 그 비명 소리가 개구리 소년들이었다면 이 사건이 장기를 노린 나환자들의 소행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앞서 밝힌 것처럼 그들이 나환자였다면 아이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최소한 한두명은 달아날 기회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이 부분도 다소 설득력이 결여된다.
어쨌든 다섯명의 숫자가 한꺼번에 붙잡힌 점으로 보아 아이들은 지극히 자연스런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보여 범인은 2인 이상의 면식범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처음부터 강압적 분위기에 직면해 있었다면 범인은 3인 이상의 집단 범행으로 봐야한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계 곡에서 도롱뇽을 잡은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산에서 실종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 범인들이 산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사는 바로 여기서부터 재 시작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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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칼럼2)
<범인은 당 17~18세의 2~3인조 면식범...!>
-절망 (2002, 11, 1)
죄를 감추려다 보면 또 다른 죄를 범한다고 했던가?
유해가 발견되기 전만 하더라도 수사의 가닥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사망 원인을 측정할 수 있는 유골과 이끼에 생성돼 있는 곤충이라는 가검물이 있는 상태에서 감추기와 축소에만 급급하고 있는 경찰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채취한 가검물을 토대로 국과수와 경북대 법의학으로 보내 DNA분석을 의뢰하는 한편, 토양학자/ 지질학자/ 그리고 산림학자와 곤충학자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들의 관심 속에 각계 전문가가 총 망라된 매장시기 규명이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미 유골로 변해버린 아이 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마지막으로 사인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가족들은 한가닥 희망마저 무참히 깨져버리자 무너져 내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허탈해하고 있다.
애당초 유골로 발견된 시신을 두고 경찰이, '저체온 동사'로 몰아 붙였을 때부터 가족들은 경찰에 기대를 걸지 않았으면서도 한편으론 설마 하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와룡산으로 가는 옛 이곡동 벌판의 이동경로)
-두 번 죽다
살인이란 꼭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자가 아니다. 법 집행 자로서 사실을 왜곡하고 사건을 묻어버리면 그 또한 두 번 죽이는 또 하나의 잔인한 살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수억년 전의 '화석'으로 공룡의 멸종 시기와 멸종 원인을 추정해내는 초과학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남짓한 유골과 이끼의 곤충에서 매장 시기를 측정하지 못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법의학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할 것이다. 적어도 생물 법의학 팀들이 경찰과 한통수가 되어 입을 짜 맞추지 않았다면 말이다.
만일 그들이 입을 짜 맞춘 것이 사실이라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범인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다시 확인사살 한 거와 별로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던 것은 사건 초기에 실종과 가출 쪽으로만 몰고 간 수사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며, 반면에 이렇다할 단서가 없어 범인을 잡을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해 발굴 현장이 타살을 입증하고 있고, 거기에다 사인에 따른 납치와 이장 시기를 측정할 수 있는 갖가지 가검물과 정황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범인의 윤곽을 추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은 공범이 있기 때문에 범인으로 입증할 증거를 확보할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고도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경찰이 아니요, 한국 경찰의 수치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건 초기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제기됐던 납치, 이장, 그리고 매듭과 탄피에 따른 총기사고와 관련하여 사격장의 유탄, 공비소행 등에 얽힌 요소들을 짚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매듭과 탄피
먼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탄피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게되는 것 중의 하나로, 고물의 가치도 있어 아이들이 사격장에 가서 고물용으로 주웠을 가능성이 있고, 매듭 부분은 주운 탄피를 옷에 싸는 과정에서 생겼을 수 있다. 옷이 뒤집혀진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범인이 구태여 아이들의 옷까지 벗겨야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각 변동
다섯 구의 시신 중, 상당수의 유골이 유실되어 이장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장했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땅이란 지각 변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관으로는 식별이 잘 안되지만 땅속에서는 지각변동이 무한이 일어난다. 이 지각 변동은 보통 3~4m까지 이동하여 묏자리의 관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지형의 경사가 심하거나 용암이 근존하는 곳에서는 유동 거리는 훨씬 더 확대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신 중, 손, 발톱이 없어졌고, 머리카락도 없어졌으며, 땅속에서는 부패 속도가 느리다는 치아도 유실됐고, 게다가 영규군의 팔뼈와 내복마저 일부가 없어졌다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지각변동으로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총기사고설 (2-3)
그러면 총기사고는 어떠한가?
현장에서 많은 량의 탄두가 발견되어 총기 사고로 보는 시각도 많으나 총기사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격장은 유탄이 날아갈 수 없는 능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격이 능하지 않은 군인이라 할지라도 250미터가 기준인 과녁에서 총알이 크게 벗 어나지 않고,
또한 사격을 실시할 때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병을 세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탄을 맞고 사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파된 공비의 소행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으나 이것 역시도 불식해야 한다.
(옛 사격장 자리는 학교 운동으로 변했다)
생각해 보라. 이것이 공비의 소행이라면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흉기로 살해할 수도 있으며, 만일 아이들이 달아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왜 한방만 쏘고, 또 왜 한 명만 쏘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이 달아나다 사살됐다면 시신들이 여기저기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을 것이며, 굳이 시신을 한곳에 모아 애써 매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총기사고설은 사태의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식이 집으로 걸려온 전화에 금품을 요구해온 일이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금품을 노린 유괴사건으로 볼수는 없다.
금품을 요구하는데 다섯명의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상식 밖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수사권을 따돌리기 위한 의도에 불과하므로 이 부분은 과감히 떨어내 한다.
-이장 여부
이 사건의 핵심은 이장을 했는지가 최대의 관건이다. 만일 이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아이들은 잠시나마 어느 건물로 납치됐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산과 산에서의 이장은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해 발굴 장소가 계곡이라는 허술한 점으로 보아 매장 시기는 길어봐야 불과 2~3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10여년 가까이 묻혔던 시신을 다시 옮긴 것은 무엇 때문이며, 옮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범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볼 때 그간 시신이 매장됐었던 장소는 불안정한 곳이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다섯명의 숫자를 납치하기엔 적어도 2인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고, 이장 역시 삽이나 곡괭이 같은 도구가 필요한데다 유골까지 운반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용이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골 운반 과정도 문제가 있다. 유골을 운반하려면 부대자루 같은 곳에 넣어 어깨에 들쳐 메고 가야 하는데 이 경우 부피가 커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다. 따라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면 야밤을 이용해야 하는데 깊은 밤 산 속에서 혼자 유골을 매장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일정시간 감금됐었다고 볼 때 그럴만한 장소가 어디냐는 것이다.
만일 범인이 민간이라면 아이들을 끌고 가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외딴 곳의 시설이 아니고서는 가능할 수가 없다. 따라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을 팔고 이사하거나 증축한 건물에 살고 있는 자 중에서 가족들이 집을 자주 비우거나 낮에는 모두 직장에 나가는 가정만이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범행동기
이제는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유추해서 범행 동기가 될만한 것들을 찾는데 주력하는 한편 아이들을 죽여서 범인에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따라서 다섯명의 숫자가 원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건의 발단이 무동기성 우발 범행에서 비롯된 폭행치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폭행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와 대상이 누구인지를 고려하면 범인의 윤곽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17~18세 불량소년!
아이들이 사격장 주변에서 탄두와 탄피를 주웠다. 이때 탄피를 수집하러 산에 올라온 당 17~18세 가량의 두명이 아이들을 발견하고 탄피를 뺏으려 했다. 아이들은 뺏기지 않으려고 하자 그자들은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했다.
이 과정에서 한명이 죽었다. 즉 폭행치사인 것이다.
뜻하지 않은 사태에 직면한 그들은 나머지 아이들을 모두 죽여야 했다. 그래서 일단은 망서리는 시간이 필요했던 범인들은 아이들을 서로 묶게 했다. 내의 일부가 ??겨나가고 매듭이 지어진 것은 이래서 생긴 것이고, 두개 골의 함몰은 이장하기 위해 시신을 파내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범인의 나이를 17~18세로 추정한 것은 탄피를 강제로 뺏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나이이고, 4~5년후 군에 입대해 제대해서 이장하기까지 7~8년을 계산한 것이다. 지각 없는 사냥꾼의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가 아니라면 말이다!
-압축
이제 수사를 압축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사건이 발생할 무렵 인근 동네에서 산에 자주 갔거나 고물을 수집했을만한 당17~18세 가량의 불량스런 아이들을 찾아내고 고물상을 토대로 탄두나 탄피를 취급한 사실이 있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건 현장은 고요하지만 그러나 현장은 진상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거기엔 실마리를 푸는 어떤 단서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울림의 이치다.
쇠는 쇠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어우러지듯
마찬가지로 아이들 사건은 아이들끼리 어우러진다. 그렇다면 사건을 푸는 최대 열쇄는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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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칼럼 3)
<이런 유형의 범인은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이 정도는 돼야
"그동안 우리 경찰은 개구리 소년 사건을 원만히 수사하지 못한데 대해 피해자 유가족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억울하게 죽은 어린 소년들과 그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전 경찰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범인을 체포하고 말겠습니다."
이 얼마나 솔직 담백하고 믿음직스러운 말인가.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라면 사건을 축소하고 왜곡시키기보다는 적어도 이런 정도의 기틀은 잡혀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롱뇽 판매상?
개구리 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갖가지 정보와 목격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도롱뇽 알 판매상이 새로운 용의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도롱뇽 판매상은 범인 대상에서 지워야 할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아이들이 도롱뇽 판매상에게 살해됐다면 유해 발굴 현장엔 많은 량의 탄두와 탄피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현장에서 사격장까지의 거리가 직경으로 300여 미터나 떨어져 탄피가 유해 발굴 지점까지 날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단, 탄피와 달리 탄두는 암반 등에 맞고 날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탄두가 유해 발굴 지점까지 날아갔다면 그 일대는 탄두가 눈 싸라기처럼 사방에 널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많은 량의 탄두가 유해 속에 같이 묻혀 있었다는 것은 탄두는 아이들이 주워서 소지하고 있었다는 입증이고, 동시에 사건은 탄두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짐으로 도롱뇽 판매상의 소행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도롱뇽 판매상이 총기 사고로 유도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탄두를 같이 묻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또한 도롱뇽 같은 하찮은 물건을 채집할 수 있는 나이는 대략 20대를 넘지 않고, 또 도롱뇽을 잡으러 갈 때는 대개 혼자 가는 일은 극히 드물고, 보편적으로 두 명 이상이 동행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발적 폭행 치사가 발생하면 보편적으로 폭행을 가하지 않은 쪽은 나머지 살해에 동조할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그 죄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장이냐 아니냐
이 사건의 최대 의혹은 이장을 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을 가려내는 결과에 따라 수사 각도는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가지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매장 상태로 보아 이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유기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유골들이 불과 20~30cm 정도로 겨우 모습만을 살짝 가렸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영규 군의 두개골이 트레이닝복 상의 안에 쌓여져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장은 기정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장은 곧 납치를 의미하고 납치를 했다는 것은 와룡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해됐다는 의미이다.
(아이들 다섯 구의 유골이 엉킨채 발굴된 현장)
-납치?
문제는 다섯 구나 되는 많은 유해를 산으로 운반해서 이장한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실된 일부 유골과 머리카락, 그리고 손발톱 같은 부분들은 빗물에 씻겨 내려갈 수 있고, 둘째는 유골은 짐승들이 물어 갔을 수도 있다지만 유골이 상의에 쌓여 있는 부분은 이장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만일 납치 쪽으로 보자면, 한 명이 죽은 상태에서 나머지 4명을 강제로 끌고 갔거나 아니면 다섯 명을 다 죽여 놓고 시체로 끌고 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측면에서 납치는 전혀 불가능해 보인다.
단, 납치 가능한 장소와 인물로는 사격장과 사격 관계자가 유력해 보이지만 여러 정황상 특정 집단의 소행으로 보기 어려워 범인은 민간인으로 봐야하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따라 갔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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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칼럼 4)
<사격장의 유탄사고인가, 사냥꾼의 오인사고인가!>
김종식(9) 박찬인(10) 김영규(11) 조호연(12 ) 우철원(13)
-총기 사고?
개구리 소년들의 외인사를 둘러싸고 앞뒤 정황 없이 무수한 설이 난무하면서 총기사고설을 제기한 사람이 군의 명예훼손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검찰에 고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소총과 권총은 물론 심지어 박격포 탄두까지 추가로 발견되었는가 하면 아이들이 탄두를 주우러 갔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점점 더 총기사고 쪽으로 의혹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사격장 주변에는 접근 금지라는 경고판이 있기 때문에 유탄에 의한 사망이라면 그것이 나머지 4명을 모두 죽여야 할 만큼 그렇게 심각한 책임 추궁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격장 내부의 관련 설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암반을 맞고 튀어 나간 유탄은 총알이 암반에 맞을 때의 강한 충격으로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부상은 입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사망에까지 이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것이 군 내부의 소행이라면 사태의 중대성을 놓고 볼 때, 그들은 평범한 민간 단체도 아니고, 적어도 군인이라는 특수 집단으로서 의심의 타킷이 군 내부로 쏠릴 소지가 다분한 탄두와 탄피들을 제거하지 않고 유해와 같이 매장할 리가 있겠는가?.
또한 이것이 군 내부의 범행이었다면 그들은 번거롭게 나중에 다시 이장할 필요 없이 영구적으로 깊게 묻어버리지 인원과 장비가 충분한 그들이 유골이 드러날 정도로 그렇게 허술하게 묻을 수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한 것은 사건 당시 인근에 사격장을 보유하고 있었던 육군 某사단 측은 소년들이 집을 나간 날은 통상적으로 사격 훈련이 없는 공휴일이었으며, 설령 사격훈련이 있어 당시 누군가가 과녁을 잘못 맞췄다 하더라도 사체 발견지점 사이에 해발 100~120m가량의 능선이 가로막혀 있어 오발에 의한 가능성은 추호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사격 훈련이 없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격 훈련이 있었다면 유탄 사고보다는 사격장 주변을 감시하는 감적수(監敵手) 쪽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오른쪽 밑이 해발100미터의 사격장이고, 왼쪽이 유골이 발견된 장소이다)
사격장 주변엔 탄피와 탄두를 주우려는 아이들이 자주 접근하여 사격장 관리들의 심기를 많이 자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적수는 탄피를 주우러 온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해 붙잡아서 기압을 주는 과정에서 좀 지나치게 다루다 사망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아이들을 이미 붙잡아둔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총으로 사살할 필요성은 없고, 경부를 압박시켜 질식시켰다고 보자.
그러나 이렇게 보기에도 문제가 있다. 즉 아이들이 사격장 주변에 접근했을 때 감적수들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달아날 것이기 때문에 다섯명 모두를 붙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황분석 결과를 놓고 볼 때 감적수도 재외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왼쪽 두부에서 오른쪽 귀 방향으로 관통한 듯한 구멍 때문에 총기사고가 유력시되어 군 내부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것은 사태의 추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사격장과 관련된 총기사고는 과감히 떨어내야 할 것 같다.
-사냥꾼의 오인사고?
의혹이 집중됐던 군부대를 재외하고 나면 이제 의혹의 대상은 사냥꾼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냥꾼의 오인 사고로 출발해서 나머지 4명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도 면밀하게 유추해 보기로 하자.
사냥꾼의 오인사고로 아이들 중 한 명이 죽었을 때 아이들은 우선 겁에 질려 달아날 수도 있고, 또 아이들이 사냥꾼의 오인 사고를 읽었을 경우 달아나기보다는 사냥꾼에게 다가가 친구가 죽었음을 알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사냥꾼은 총으로 위협하여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서로를 묶게 한 다음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의 살해 방법도 역시 교살로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겁을 먹고 달아나는 아이들을 사냥꾼이 총으로 모두 사살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엔 수발의 총성으로 인근 군부대에 비상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인근에 사격장이 많은 관계로 군의 동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냥꾼의 입장에선 위기감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어 달아나기가 급선무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신들을 한데 모아 매장했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또한 아이들의 유골은 분명히 이장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사냥꾼은 시신들을 차량이 있는 곳까지 운반했어야 한다. 그렇다고 볼 때 다섯 구나 되는 많은 시신들을 이끌고 차량이 있는 먼 거리까지 운반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사냥꾼의 소행으로 보는 것도 접어야 하므로 총기사고는 과감하게 지워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볼 때 함몰 부위의 구멍은 탄환 흔적이 아니고, 세균에 의한 구멍이거나 이장할 때 어떤 도구에 의해 가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함몰 부위는 온전한 부위와 달리 부패 속도가 빨라 세균 침투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되고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특정인과 특정 집단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경찰이 혼선의 늪으로 빠져들며 수사가 원점에서 허덕이고 있
다.
지금까지 의혹의 대상이었던 곳을 간추리면 대략 여섯 곳으로,
1. 사격장의 유탄.
2. 사냥꾼의 오인.
3. 무장공비.
4. 도롱뇽 판매상.
5. 나환자.
6. 정부의 정략적 범행으로 요약된다.
(유족대표 안내로 유해발굴 현장을 취재하는 김해운)
필자는 세 번에 걸친 칼럼을 통해 그동안 줄기차게 거론돼왔던 사격장의 유탄사고, 사냥꾼의 오인사고. 무장공비, 그리고 도롱뇽 판매상에 이르기까지 주로 총기사고를 집중적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 그들 모두를 용의선상에서 재외 했다.
-나환자의 소행
예부터 나병 치유엔 간이 좋다는 허황된 소문으로 어린이 실종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환자들이 심심찮게 거론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병이 든 것만도 억울한데 사회로부터 참기 어려운 누명까지 받아 이중 삼중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수사상 누구를 막론하고 용의점을 두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무릇 범죄란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종류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전에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계획 범죄/
2. 순간적 충동에 의해 벌어지는 격정 범죄/
3. 그리고 뜻밖에 벌어지는 우발 범행, 이 세 가지다.
그중 계획 범죄는 말 그대로 사전에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현지답사까지 마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나환자의 소행으로 보자면 아무래도 1번 계획범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볼 때 다섯명의 아이들을 다 붙잡으려면 범인들도 다섯명의 숫자가 필요하다. 불과 두세 명만으로 다섯명을 다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환자들이 다섯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산에 나타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뿐만 아니라 나환자가 약용을 목적으로 했다면 범행대상은 두세 명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다섯명을 노렸다고 볼 수 없어 범인은 대략 2~3명만이 가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환자는 행색이 초라해 얼핏 봐도 나환자임을 직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환자가 나타나면 혼비백산 흩어져 달아나게 되어 다섯명 모두가 붙잡힌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환자가 범행을 목표로 다섯명이나 동원됐다고 보기가 어려워 나환자도 용의선상에서 재외 해야 할 것이다.
-정략적 범행
끝으로 일각에서는 대형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번번이 거론되어 왔던 것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략적 차원에서 벌어진 정국 타개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환자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개입 설도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섯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산에 갈 것을 미리 예측할 수 없었을 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부분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이처럼 지금까지 숱한 의혹을 받아왔던 대상들이 모두 재외 됐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오직 한 곳으로 두 번째 칼럼에서 제기했던 '탄두를 빼앗으려는 불량소년' 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옷에 쌓여 있는 자체로 이장은 추호도 움직일 수 없는 기정 사실이다. 그리고 유골이 겉으로 드러날 만큼 불과 20~30cm 정도로 얇게 덮인 점으로 보아 매장 시기는 불과 2~3년 안팎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10 여년 가까이 묻혀 있었던 유해를 다시 이장한 까닭은 무엇이며, 꼭 이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여기에 따라 납치냐, 아니냐의 여부가 달려있다.
그렇다고 봤을 때 이장을 했다는 것은 어딘가에 임시로 묻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범인에게 어떤 변동사항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변동에 가장 적용되는 대상은 범인의 집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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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칼럼 5)
<이 아이들의 원한은 반드시 풀어주어야!>
유해발굴 현장 주변에서 많은 량의 탄두가 추가로 발견되었고, 그중 박격포 탄두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모두 유탄이란 말인가?
만일 그것이 정말로 유탄이라면 그 일대는 수백 수천의 셀 수도 없는 엄청난 량의 탄두가 온 사방에 널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 감적수 시나리오
거듭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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