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그 관전일기 -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2Round 결승전(2005년 6월 18일)
강민, 변화의 목적
‘패러다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시각적인 감각에서가 아니라, 지각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기나긴 백일야에서 깨어나(?) 팬들을 다시 한 번 꿈속으로 안내하려 하는 ‘몽상가’ 강민 선수는 저그를 상대하는 프로토스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꿔버릴 셈인가보다, 마치 우리가 화학구조식의 어느 한 부분을 바꿈으로써 그 결과의 본질 자체를 바꾸는 것과 같이.
지난 6월 8일, <포르테>에서 1시간 남짓한 혈투 끝에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 선수를 잡아낸 강민 선수는, 적어도 저그를 상대하는 이상, 긴 호흡의 경기 운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결론에 합의한 것 같다. (그 강도가 예전만 하지는 못할망정, 상대는 ‘폭풍 저그’이자 KTF매직엔스의 한 식구인 홍진호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기를 ‘더블 넥서스’로 풀어가려 했던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강민 선수가 이토록 갑작스럽고 고집스러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지금처럼 가다가는 프로토스 플레이어들이 점점 더 신음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저그에게 미네랄 한 덩이를 덜 주기 위해 혹은 저그보다 미네랄 한 덩이를 더 차지하기 위해 질럿을 내던지고 사이오닉 스톰을 뿌려댄 결과에 대해, 선수들과 팬들 사이에는 거대한 연대가 형성되어 있다. “일관된 운영으로 지상에서 저그와 힘을 겨루는 것은 대체로 무모하다”는 것이다. 물론 ‘영웅’ 박정석 선수도, ‘악마’ 박용욱 선수도 해내지 못한 ‘일괄된 운영’에 도전한 선수가 있었다. ‘안전제일’ 전태규 선수이다. 전태규 선수는 안정적인 플레이 패턴만으로도 저그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어주었지만, 그 기대는 저그 플레이어들의 진화에 발맞춰 수그러들기 시작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인간의 감각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긴 호흡의 운영이 필수‘라는 결론의 결정적 근거는 “인간의 감각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필살의 하드코어 질럿 러시나 신이 허락한 리버 드랍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기가 적당히 무르익었을 때쯤 저그에게 난도질당하는 프로토스의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기의 스케일을 무제한으로 늘려야 한다는 강민 선수의 경기 운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요점은 간단하다. 20개의 해처리를 보유한 저그 플레이어가 10개의 해처리를 가진 저그 플레이어보다 정확히 2배 더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저그 플레이어의 물리적인 감각, 예를 들어 한 번에 인지할 수 있는 맵의 범위, 유닛을 생산하고 동시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손 빠르기 등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그 플레이어가 보유한 자원과 그 전투력은 어느 수준까지는 정비례 할지 모르지만 특정 수준 이상의 자원은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퍼펙트 테란’ 서지훈 선수 혹은 ‘저그신동’ 조용호 선수의 개인 화면에서조차 1000 혹은 그 이상의 자원이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에서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병력의 산술적인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율이 높은 프로토스 유닛들이기에, 강민 선수는 판을 키우고 키워 프로토스 플레이어가 100%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최대 자원을 확보 할 수 있는 시점까지 경기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물론 저그는 더 많은 자원과 해처리를 보유하고 있겠지만, 저그 플레이어 역시 사람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자원과 유닛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임계점을 경기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결국 ‘소모’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저그가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패배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2Round] 타이틀을 홍진호 선수에게 빼앗긴 것은, 비록 이벤트 성 대회이기는 하지만, 프로토스에게도 밝은 청사진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골수 프로토스 팬들에게는 아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강민 선수는 앞에서면 자신의 키가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며, 몸이 뚱뚱하게 보이기도 하고 홀쭉해 보이기도 하는 ‘요술거울‘ 같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맵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딱딱한 초반을 고집한 것이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자기 성장은 부서지기 쉽고 신성한 영역이지만 이 세상에 이보다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강민 선수는 탐구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런 탐구의 귀착지는 프로토스라는 종족의 근본에 도달하는 것이며, 또한 바로 그 근본을 처음으로 깨닫는데 있기 때문이다.
끈질김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외롭겠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연주한다면 그리고 그 음악의 멜로디가 진실을 울릴 수 있다면 결국 누군가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얼터너티브 프로토스Altanative-Protoss의 운명이자 사명이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다.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강민의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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