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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16 18:47
장종훈 그는 절 프로야구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이였습니다.
이제 비록 한화팬이 아니더라도 제가 아직도 한화의 성적에 관심을 갖는것도 다 장종훈선수 당신 때문이였습니다. 그런 당신이 이제 은퇴를 합니다. 다음에 부디 명 감독으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05/06/16 18:50
개인적으로 장종훈 선수같이 노력형의 선수를 좋아합니다. 또 순진하게 생겨서 더 좋구요^^
그러고보니 요즘 잘나가는 코리언들은 전부 순진하고 마냥 착하게 생겼군요. 최희섭, 박지성, 박주영 등등... 장종훈 선수, 당신은 이미 전설입니다.
05/06/16 18:56
빙그레 팬으로서 정말 그립습니다. ^^
당신은 레전드! 이제 김태균선수가 장종훈 선수의 뒤를 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화의 4번타자 계보로요~
05/06/16 19:27
아 아직도 생각나는 99년 추석 3연전(vs현대전) 이때부터 10연승달리면서 현대 떨쳐냈죠 이때 고3임에도불구하고 서울가서 최종우승하는 장면 보고왔다는 (야자는 물론 땡땡이) ^^
05/06/16 20:08
장종훈 선수이 일궈낸 수많은 신화들과 업적... 정말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근 3년간 자신의 은퇴할 때를 놓친 것, 그로인해 한화는 참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는 것 .. 장종훈이라는 팬이 아닌 한화의 팬으로 아쉬운 점입니다.
05/06/16 21:18
송진우선수의 퍼펙트 게임은.하나씩 차례로 깨어졌죠.
실책으로 출루. 노히트노런 남음. 안타. 완봉승 남음. 실점. 승리 남음 역전. 패배 이때 저도 보면서 울었습니다.왜 그렇게 해태가 얄밉던지요.ㅠㅜ 그때선동렬 선수는 장난이 아니었죠. 한국시리즈 1차전은 양팀 에이스들의 대결이 되야되는데,김영덕감독은 당시 빙그레의 에이스 한용덕 선수를 2차전에 출전시킬정도였죠. 99년도는 제가 나라를 지키느라 못봤는데(우승한것만 알았습니다). 3할이 7명이라니 -.- 대단했었군요.거기에 10승3명에 확실한 마무리투수까지.
05/06/16 21:41
저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ㅠㅠ글 정말 잘 봤습니다. 90년대 초반 에이스는 한용덕 선수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송진우 선수였나요? 원투에 한용덕 송진우 그리고, 한희민..ㅠ.ㅠ91년 한국시리즈 장채근한테 맞은 역전 중전 안타 아직도 기억합니다.
05/06/16 21:57
초등학교때 장종훈 선수보러 진짜 많이 갔었는데
중학생 되고 고등학생 되니 야구장에서 멀어졌죠 친구들은 다 축구며 농구며 좋아하고. 야구장 가자고 해도 같이 가주는 놈 하나도 없고, 대전에서 장종훈 선수 은퇴식 하면 꼭 가야 겠네여... 장종훈 화이팅... 근데 4번타자 왕종훈 만화에서 왕종훈의 이름을 장종훈 선수한테서 따온 건가여? 원래 일본만환데..그 때의 장종훈 선수의 포스란..... 이윤열 최연성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저리가라 였죠..
05/06/16 21:59
에이스가 송진우 선수 였나여?
그때는 송진우 선수 거의 신참 수준 아닌가여? 그때 이상군선수 한용덕선수 글고 한희민선수가 잘나가지 않았나여? 그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여
05/06/16 22:27
저는 오늘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네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이면서 한사람이 자기에 길에서 떠난다는 말을듣고.... 장종훈 이름 석자에실린 무게가.......... 화려했지만 아쉽게 떠나가지만 화려했던만큼 멋진 지도자가되시길바랍니다...
05/06/16 22:43
91년전이라면 한용덕선수가 에이스였겠지만 92년의 에이스는 송진우선수 아닌가요? 그리고 송진우 선수는 89년에 데뷔했고 한용덕선수는 88년데뷔햇으니 그렇게 데뷔차가 많은 것도 아니죠.
05/06/16 23:04
좋은 글 잘 봤습니다..정말 예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해태와의 경기에서 송진우선수//정말 아까웠죠 제 기억으로는 해태의 장채근선수같은데..맞나?? 그분에게 크게 맞으면서 결국 한화가 졌던 기억이 나네요..가물가물하지만 장종훈선수..그 실력 그대로 아마 코치의 위치에서도 보여 주실거라 믿습니다..비록 종훈선수는 떠나시지만 그는 영원한 한화맨입니다.. 그리고 우리 충청도의 영웅이고요^^
05/06/16 23:29
한화팬으로서 장종훈선수를 우상으로 여기던 제에게 이런 좋은 글은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요.
예전에 공부한다고 하면서 제방에서 라디오 틀어놓고 한화경기 듣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야구장처음갔던 경기가 빙그레와 LG경기였는데 그 경기에서 장종훈선수가 장외홈런을 쳤었죠. 정말 아련한 추억이네요. 장종훈선수가 42홈런쳤을때는 정말 아무도 못 깨는 불멸의 기록인줄 알았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네요. 장종훈선수가 떠나서 아쉽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장종훈선수 화이팅!
05/06/16 23:49
정말 대단한 기록..
기록의사나이입니다. 어렸을때 어린이회원 모자 쓰고 가서 경기보면서 즐거워하던게.. 벌써 이렇게 지나서 은퇴소식까지 듣고.. 종훈선수. 더더욱 멋지게 한화 이끌어주세요!
05/06/17 00:25
이상군과 한희민 선수는 80년대 후반을 이끌었던 선수들입니다.
90년대 초중반 빙그레의 에이스는 한용덕입니다. 그기간 송진우 선수 역시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에이스는 아니었죠. 실력이 모자란다는 뜻이 아니라 선발투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시 한국 야구의 이상한 관습 덕에 선발이며, 마무리며 가리지 않았지만 말이죠.(에이스가 강력한 선발 투수를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보면, 지금까지도 던져주는 송진우 투수가 참 대단해 보입니다. 어찌되었든, 장종훈 선수는 초창기 이만수 선수와 함께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입니다. 이승엽은 어느 정도 정착된 이후의 선수이기에 의미나 무게감에서 조금 차이가 날 것 같군요.(양적 차이라기 보다는 질적 차이. 아무래도 시대가 다르기에) 그런데 영구 결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구단의 입장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표현만 그런 식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장종훈 같은 선수의 영구 결번은 긍정적으로 검토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것이죠.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타자를 결번시키지 않는다면 누굴 시켜야 할까요? 연습생 신화나, 좋은 이미지 같은 것들을 떠나서, 장종훈 선수가 보여준 능력과 기록만으로도 이미 모든 야구팬의 축복을 받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은퇴식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05/06/17 00:39
한 가지 덧붙이면, 장종훈 선수의 위대함을 언급하는데 빠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통산 기록'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예컨대, 에디 머레이(Eddie Murray)나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 같은 선수들은 단 한 번도 35+ 홈런 시즌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립켄의 경우 단 한 번의 30+ 홈런 시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3000안타를 쳐냈고, 머레이는 500홈런, 립켄은 400홈런을 쳐냈습니다.
물론, 이들의 꾸준함은 존경받을만하고, 립켄의 경우엔 유격수이고,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의 제곱을 해 주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적어도 타격에서는) 리그를 압도하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장종훈 선수는 통산 기록의 측면에서도 뛰어나지만, 전성기 동안 리그를 압도했습니다. 3년간 홈런 1위를 차지하는 동안 28, 35, 41 홈런을 쳐냈는데, 당시의 20홈런과 지금의 20홈런의 무게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일례로, 95시즌 김상호는 25홈런으로, 93시즌 김성래는 28홈런으로 홈런 1위를 차지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정민철 선수의 94시즌은 2.15의 평균 자책을 기록하고도 14승 10패, 97시즌은 2.46으로 14승 11패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타선의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시는 지금에 비해 투고타저의 시대였음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약팀 태평양에서 뛰었던 최창호 선수의 경우 89시즌 2.22로 10승 14패, 93시즌 2.99로 7승 12패를 기록했었죠. 91, 92 시즌 연속 홈런 2위를 기록한 김기태 선수는 각각 27, 31개의 홈런을 쳐냈습니다. 장종훈 선수와는 각각 8, 10개 차이였죠. 그리고 3위와의 격차도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장종훈 선수는 통산 성적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점을 더 강조하고 싶은데) 상당 기간 리그를 완전히 압도했던 선수라는 점입니다. 꾸준함과 압도적인 모습이 결합되어 더 위대한 선수로서의 이미지가 형성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05/06/17 00:59
혹시 한화이글스 게시판에서 활동하시는 분인가요? 저도 만년 골수 한화팬인데.. 혹시 아이디가? 그리고 좋은 글 너무 잘봤습니다. ^^
05/06/17 01:57
너무 존경하는 우리 학교 선배님,
99년 한국시리즈는 잊을수 없습니다. 마지막에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어린 소년에게는 꿈이 되었고 막 세상에 뛰어든 청년에겐 희망이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 같네요;; 덧:정민철선수 싸인볼은 너무나 소중한 보물입니다;;
05/06/17 12:31
갑자기 살짝 눈물이...
대전에서 자라서 자연스럽게 빙그레 팬이 되었고 정말 번번히 한국시리즈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99년, 이미 나이도 들었고 야구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지만 한화는 다시금 저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해주었지요.. 저도 장종훈선수의 싸인볼은 정말 소중한 보물입니다... 덧, 팬 싸인회에서 한용덕 선수랑 악수도 해보았습니다. 10년도 더됐는데 기억이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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