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렸을 적 영웅을 동경했다
제일 처음 동경한 영웅은 빠르고, 강한, 그리고 불멸의 투혼을 몸으로 새긴
이 소룡 이었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과 발차기 하나하나에 난 열광하며
따라했고 특유의 소리 "아다오~" 까지 따라하며 골목을 주름잡았다.
또래 아이들과 그의 소리를 홍보하듯이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 때는 정말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그가 살아 생전에 남겼던
주옥같은 명작들을 보며 모든 동작들을 따라했다. 발차기 하나에서부터
주먹하나 내지르는 것 까지,,,
난 이 소룡이었다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온 것처럼 `사망유희` 놀이를 즐겼다. 문구점
에서 산 장난감 쌍절곤을 휘두르며,,,내가 쌍절곤을 한 번씩 휘두르며 아이들을
살짝 살짝 칠 때마다 아이들은 몸을 날려 털썩! 쓰러지곤 했다. 난 쓰러진 아이들
위로 점프를 하여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짓밟는 척을 했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주위를 뒤돌아보면 아이들은 모두 주위에 엎어져 신음을 하고 있었다.
기뻤다. 날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세상은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영웅 심리에
잔뜩 매료되어 있었다. 그리곤 웃었다.
난 정의였다
언제나 난 정의였다. 내가 이 소룡이면 다른 아이들은 적이거나 친구였다.
친구는 정의였고 적은 곧 악이었다. 악을 징벌하기 위해서 쌍절곤을 휘두를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것이 진짜 정의를 지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서있었기 때문인것 이었을까? 이소룡과 그의 친구들은 악을 징벌할 때 눈의
핏발이 서있었고 일종의 광기에 젖어있었다. 마지막 악, 마지막 적이 무릎 꿇을 때
우리는 "크하핫!" 웃음 지으며 적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정의의 승리. 그것이
곧 이 세상의 법이었다.
난 무릎꿇었다
어느 날 많은 `사망유희 패밀리`들과 오락실에 갔다. 그 옛날 오락실에선 많은 게임이
있었는데 우리는 4인용 야구왕을 즐겨했다. 친우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야구 선수들이 멋진 필살기와 기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의를 지킨다는 점에서
우리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100원짜리 동전 4개를 연달아 넣고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악의 야구공을 불태우고, 전기에 지지고,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터뜨리고, 이쪽 저쪽
패대기를 치고,,,우린 그것에 신나 소리를 치며 "죽어 죽어!!" 를 남발했다. 열심히
게임에 집중하는 도중 비치는 검은 그림자,,,슬쩍 뒤돌아보니,,무서운 중학생 형들,,,
5 ~ 6명 되는 중학생 형들 중 제일 덩치 크고 돼지 같은 형이 내 목에 손을 툭 걸치며
말을 걸었다.
"야,,돈 좀있냐?"
말로만 듣던 불량 학생들이었다. 소위 우리 국민학교 아이들에게는 `깡패`라 불리는,,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게임 화면을 슬쩍 보니 우리의 정의는
악에게 당하고 있었다. 다시 그 형이 말을 걸어왔다.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
"야 돈 좀 있냐고? 이 XX 들아,,,"
"어,,없어요,,,"
"만약 뒤져서 돈나오면 10원에 한대다, 이 10원 짜리들아,,"
기겁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3700원,,머리속으로 계산해보니,,맙소사,,370대,,
이윽고 형, 아니 악이 내 주머닐 뒤졌다. 우르르 나오는 동전들과 지폐,,,서슬퍼런
악의 음흉한 미소,,,아이들은 날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난 그 때 보았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눈빛을. 반짝이는 눈빛을. 드디어 이 소룡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그 시기
적절하다는 눈빛을. 난 다시 악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악이 말했다.
"몇대라고 했지? 이거면 370 대냐? 아,,왜 돈이 없다고 뺑이를 치냐,,,이 XX아,,"
아이들의 기대어린 눈빛과 악의 음흉하고 무서운 눈빛. 난 그대로 악의 손에 쥐어
있던 나의 돈을 쥐고 오락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에 있던
친우들을 모두 버리고 내 심장이 터져라, 발이 부서져라 뛰었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아무 골목이나 숨었다. 그렇게 숨어버렸다.
난 도망쳤다
악으로부터 정의를 지켜내지 못하고 난 도망쳤다. 그 다음 날 난 정의에서 비겁한
악이 되있었고 다른 아이가 이 소룡이 되있었다. 아이들은 날 끼워주지 않았다.
다가서려고 하면 아이들은,
"가버려, 비겁한 새X !"
난 아이들의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독기어린 눈빛을 흘렸다.
'감히 날 버려? 내가 정의야,,내가 정의라고!'
그러나 아무도 날 정의라고 하지 않았다.
난 비겁한 놈이다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고 뒤에서밖에 외칠 수 없는 그런 비겁한 놈이다. 오늘도 나는
현실에선 아무 말 못한다.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지나가면 어깨를 움추리고
힘세고 싸움 잘하게 생긴 아이들이 지나가면 시선을 피한다. 시비라도 걸어오면 나는
그대로 '미안하다' 라고 사과한다. 그러면 `악`은 의기양양해 하며 나를 지나쳐간다.
하지만,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지나가면 나는 속으로 비웃는다.
`덩치 큰 돼지녀석들,,,`
힘세고 싸움 잘하게 생긴 아이들이 지나가면 시선을 피한다.
`무식하고 쌈박질만 잘하는 것들,,,`
시비라도 걸어오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더러워서 피하지,,크크`
난 오늘도 수 많은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을 `까며` 산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누구도 나의 이름을 모르니까, 주소나 전화번호를 모르니까, 난 무적이었다. 흡사
예전처럼 정의를 실현하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다른 녀석들은 무조건 죽어야 한다라는
논리를 피면 사람들과 싸움이 붙는다. 크크. 난 절대 죽지 않는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표적이 될 만한 인물들이 올라오면 나와 여러 정의 실행자들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낄낄
거린다. 표적이 어떻게 되든 난 신경쓰지 않는다. 욕을 먹을만하면 먹는거고 단죄를
받을만 하면 받는것이다. 철사마, 뺑사마, 떡사마 등등...우리에게 거쳐간 많은 인간들.
비록 마지막 한 칼은 날리지 못했지만 치명상은 입혔으리라, 오늘 날린 우리의 칼과
창들이 악의 가슴을 꿰뚫고 뜨겁고 더러운 피를 쏟게 하리라!
난 오늘도 눈에 핏 발이 선채로 모니터 앞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옳지!
오늘도 한 명을 까보자!
어떻게 날 잡겠니?
크크크. 난 무적이다. 난 정의다. 내가 이 세계의 규칙이며 법이다.
난 영웅이다.
--------------------------------------------------------------------------------
p.s : 참으로 이상한 하루입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을 하고 논쟁을 벌이고,,,결국 오늘
글도 습작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미천한 글로 시간을 뺏었다며 그저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리는 것 밖엔 도리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p.s 2 :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제 생각이 맞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터넷을 통한 `단죄`형식은 그릇되었다고 판단
했습니다. 여러 분들이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일벌백계`가 되어야
한다고, 물론 일리가 있습니다. 그 분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고
[태도 또한 말이죠]
인터넷에선 그 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의 커뮤니티를 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잘못된 행각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더욱 확대시켜 신상에 관련된 것을 노출시켜 사회 생활까지 지장을
주는 것이 두렵다는 겁니다. 저는,
이름이나,나이나,주소나,전화번호,휴대전화번호,학교,싸이주소,,,등등...
모든 것들이 낱낱히 공개된다면, 그 분은 과연 어떻게 될지,,,전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 분이 잘했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적어도 사람의 양심을 가진
자로써 예의와 도덕을 갖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생각, 아니 전체의 생각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제가 문제 삼고자 하는 건, 신상 정보를 알아낸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한 사회의 개인을
공격하는 게 두렵다는 겁니다. 단순히 비난 뿐이라면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학교 홈페
이지를 통한 공격, 싸이 폭격, 전화 협박, 등등...
만약 이것이 확대된다면 우리는 키보드를 놀리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을, 사회의 한 개인을
몰락시키는 것입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p.s 3 :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저,,,아까전에 제가 오바를 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을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