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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6/05 09:57:07 |
Name |
Milky_way[K] |
Subject |
별들의 전쟁 episode 0. ☆Ⅱ부 prologue ~ 19장. |
Ⅱ부. 피를 부르는 피의 향기(血香)
prologue : 回想(회상)
칠흑(漆黑) 같은 어둠으로 위장하며,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대우주(大宇宙)의 어느 한편에는 ‘차우사라’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행성이 있었다. 불규칙한 모양의 보랏빛 고리들이 행성(行星)의 중심을 따라 공전하고 있어 더욱 괴이하게 보이는 이 별에는 인간과는 또 다른 미지(未知)의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300여년이 넘도록 고요했던 이곳이 왠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차 행성에서 가장 발달한 수도 아노키(anoki) 지역에서는 지금 수만 명의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한 남자의 피곤해 보이는 눈꺼풀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을 깬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아노키 지역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성을 향하고 있었다. 잠깐 그 성을 응시하던 그는 바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아노키 지역에서는 그 전쟁준비로 너무나 바쁜 것이었다. 병사들의 움직임을 쳐다보고 있던 그의 곱게 다물어진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그 말을 끝으로 그의 기억은 과거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과거회상은 333년 전, 그 끔찍한 살육(殺戮)의 현장에서 멈춰 섰다. 급작스럽게 쳐들어온 정체모를 12명의 괴한들... 그리고 그와 맞서 싸우는 동족 전사들... 하지만 몇 백 명의 전사들로도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처음 보는 괴상한 생물체들은 너무나 강력했다. 동족전사들이 거의 모두 숨을 거두었을 때, 또 다른 외계의 전사들이 나타나 괴한들과 싸웠지만 그들 역시 끝내는 잔혹한 괴한들에게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괴한의 손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의 그가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벽장 바로 앞에서 말이다. 어머니를 죽인 그 괴한은 곧 행성을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그 괴한의 말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칼을 들고 싸우던 동족 전사들이 모두 복종(服從)하기 시작했다.
어린 그는 이 모든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커다란 배신감과 충격, 그리고 슬픔에 휩싸였다. 눈가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인가? 아니었다. 눈물은 이미 메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뜨겁고 붉은 피.
그의 여린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고 다짐했다.
‘복수 하겠다고! 꼭 어머니를 죽인 그 녀석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그 이후, 그에게 펼쳐진 삶은 어린 그로서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고난의 삶이었다. 자신과 어머니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모든 이들이 갑자기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로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뼈 속 깊숙이까지 퍼져있는 복수심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를 더욱 냉철하게 만들었다.
일주일 후, 그는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의 보통 동족들과는 다른 외모 때문에 더 이상 도망쳐봤자 잡힐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자진해서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앞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그는 원수에게 복종을 맹세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원수의 눈을 쉽사리 속일 수는 없었다.
원수는 어린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을 준다.
그것은 바로 예전 어머니의 최측근이자 자신의 삼촌뻘이었던 포레버(forever) 장군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충성을 믿을 수 있다고 말이다. 순간 어린 그는 당황했다. 살인이라니... 어린 나이의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 묶여있는 포레버 장군의 목소리가 어린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포레버 장군이 모든 정신을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왕자님... 저의 죽음으로 ... 원수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전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포레버 장군의 비장한 텔레파시를 받았지만 어린 그가 살인을 한다는 건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그의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그의 치켜 올려진 손은 미소를 띠고 있는 포레버장군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리 떨어졌다.
그는 그날 결국 포레버 장군을 죽였다. 포레버 장군의 죽음과 동시에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성안에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좋아 너의 충성심은 이미 증명이 되었구나, 내 너를 거두리라!’
어린 그는 비열하게 웃고 있는 원수의 얼굴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미소를 띠며 죽어간 포레버 장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던 눈물이 원수의 웃음소리와 함께 메마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내 너를 죽이기 전엔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아아아악!!!’
그 이후 그는 원수의 밑에서 오직 기회를 틈타 원수를 죽이겠다는 일념(一念)하나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녀석은 자신에게 쉽사리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알게 된 그녀석의 강력한 힘에 그는 조금씩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동족들은 어찌된 일인지 전부 자신의 적들뿐이었다. 모두가 미쳐버린 것만 같았고 그 역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 우주(宇宙)를 떠돌며 자신의 동료가 될 이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비참한 일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초짜(chojja), 고러쉬(gorush), 줄라이(july), 쭈(jju)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여행했던 그 시간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300여 년이 넘게 준비했던 복수를 시작 할 때가 된 것이다. 예전의 아픈 기억의 회상에서 빠져나온 옐로우(yellow)는 다시 한 번 어두운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성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작게 중얼거렸다.
‘’제토(Zeto).....‘’
하지만 그는 어둠속에서 또 다른 눈동자가 그와 똑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별들의 전쟁 ☆Ⅱ부 - ◎ 19. 파괴(破壞)와 혼돈(混沌)의 종족, 저그(ZERG)
피 냄새를 머금은 비릿한 향기가 한 계곡의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지를 환하게 밝혀주던 태양은 어느덧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산의 뒤편으로 몸을 감췄고 그 틈을 타 낮 동안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던 어둠이란 두렵고 음침한 녀석이 점점 기지개를 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계곡의 아래쪽에는 하나의 지옥도(地獄道)가 펼쳐져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한 채 이제는 고철이 되어버린 전차들과 탱크들, 그리고 계곡을 뒤덮고 있는 사람들의 피와 여기저기 흩날려있는 시체들, 그리고 그 시체들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먹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굶주린 맹수들의 모습까지. 인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지잉‘’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계음과 함께 하나의 밝은 빛줄기가 이미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버린 계곡아래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불빛에 놀란 맹수들이 피 묻은 날카로운 앞니를 드러내며 불빛을 피해 숨어들어가자 계곡위에서 불빛을 비추던 한 대의 벌쳐(vulture)가 서서히 계곡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이거 끔찍하게도 당했구만. 빨리 본대에 연락을 해야겠어.‘’
정찰 중이던 골룸상병은 재빨리 본대에 남아있는 직속상관인 스미골병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저 멀리 본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하얀 빛으로 온 몸을 칠한 듯 한밤중에도 은은한 빛을 발하는 대규모의 군대는 골룸상병이 있는 계곡 쪽에 다다르자 잠시 진군을 멈췄다.
‘’엥? 저거 나다녀석 병사들 아냐?‘’
화면에 나타난 계곡아래쪽의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살피고 있던 두 남자 중 검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상을 찡그리고 화면을 살피고 있던 그와는 달리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던 블루블랙의 머리칼의 남자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이정도의 부대 규모라면 일개 중대 급은 되어 보이는데 대체 왜 이런 곳에서, 누구에게 당한거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는 블루블랙 머리칼의 남자, 박서의 눈이 순간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반짝였다.
‘저, 저건!?’
얼마 후, 박서의 본대는 계곡을 떠나 다시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박서와 우브의 군대는 지금 얼마 전까지 만해도 나다 군과의 군사경계지역이었던 자르딘지방을 지나오고 있었다. 일주일 전 벌어진 커다란 전투에서 그들의 군대가 승리하자, 나다 군은 이 곳을 버리고 더 뒤쪽으로 경계선을 옮겨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박서는 나다 군이 버리고 간 지역을 차지하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단지 그 지역을 돌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을 하나둘씩 구제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벌써 그 후로 두 달이 지난건가…‘’
박서의 피곤에 찌든 눈이 조금씩 슬픔과 회한(悔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 지난 펠레노르에서 박서가 우브를 도와준 그 날부터, 레퀴엠에서 씽크와 일전을 치른 그 후로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뇌전(雷電)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이다. 당시 대륙은 크나큰 혼돈에 휩싸였다. 박서가 그 당시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든 대륙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 경악 그리고 쏟아지는 비난과 따가운 적의(敵意).’
박서는 괴로웠다. 이미 그 모든 것들을 각오하고 친구를 구한 것이지만 그의 예상 보다 더욱 차갑고 시린, 도저히 범인이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불신과 적의들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어 들어가고, 단단했던 그의 결심의 방패를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 미지의 존재들에게서는 뚜렷한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 자신의 이 하찮은 고민을 들어줄 만큼 그들이 한가하지 않다는 것은 박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태로 계속되다간 대륙은 스스로 자멸(自滅)해 버릴지도 몰랐다.
이미 대륙은 제 2차 대륙전쟁이라는 가공할 만한 포화로 인해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처럼 끝없이 계속 폭주하고 있었다. 박서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나다는 씽크와 결탁해 ‘대륙의 공적(公敵)을 처단한다는 명분’하에 더없이 강하게 박서와 제로스 군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얼마 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웅크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클라우드의 군까지 가세해 급기야 전 대륙이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박서와 우브 군은 나다의 본군과 클라우드의 군을 막아내기에 급급했고 남쪽에서는 씽크와 제로스의 치열한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전 속에서 점점 대륙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박서는 전장의 이곳저곳에 흩날려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결코 이렇게 흘려져서는 안 될 피였어!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자신의 경솔한 선택과 안일한 행동으로 인해 대륙이 피로 물들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몸서리치던 박서는 모종의 결심을 하기라도 한 듯 주먹을 곧게 말아 쥐기 시작했다.
한편, 대륙의 서남쪽 국경지역에서 하루를 멀다하고 벌어지는 제로스와의 치열한 교전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고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씽크의 앞으로 한 장의 서신이 도착했다. 양지대령이 가져다주는 그 서신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뜯으며 내용을 읽어보던 씽크의 눈에 조금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 어렸다.
‘’무슨 내용입니까?‘’
‘’이거 좀 의외인데? 박서 녀석이 대륙회의 개최를 통보했다. 꼭 참석하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야.‘’
눈앞에 놓인 정체불명의 서신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한 양지대령의 물음에 조금은 의아해하며 대답하는 씽크였다.
‘’아니, 아직도 자기가 대륙회의 의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이거 참 어이가 없어서. 뒤에서 비열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땐 언제고 지금 와서 갑자기 대륙회의를 한다는 거죠? 이거 혹시 함정이 아닐까요?‘’
‘’으음. 물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이 들었긴 한데, 서신에 보니 평화의 전당까지 오는데 그 어떤 호위 병력을 대동해고 된다고 적혀있어.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지난 10년 전부터 단한차례의 무기나 기타병력의 침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그 평화의 지역 '피스존(peace zone)'이 지켜온 철칙을 깨버리는 일이 되지. 거기다 박서 그 녀석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나와 나다, 클라우드까지 합세한 군세를 이런 얕은 수작 따위로 뭉개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씽크가 양지대령의 물음에 답했다.
둘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곧바로 나다와 클라우드 측에 연락을 했다. 이미 그쪽에서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셋은 과연 이 의문스런 초대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박서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나다-클라우드-씽크는 몇 번의 난상토론(爛商討論) 끝에 그들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것도 모든 대륙인들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방송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공개적인 방송을 통해 박서의 초대에 응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은 사실 굉장히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박서의 초대를 공개적인 일로 만들어 수많은 대륙인이 지켜보고 주시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즉, 혹시 박서가 자신들에게 기습을 하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많은 눈들을 미리 깔아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박서로서는 그의 예측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륙전체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이 퍼져나가면 어떤 혼란이 생길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조용히 스미스군사를 불렀다. 잠시 뒤 근심어린 얼굴을 한 스미스군사가 박서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나요? 확실한가요?‘’
‘’후우. 정말 놀랍더군요. 확실히 이계의 생물이 이었습니다. 대륙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박서의 물음에 침울한 음성으로 스미스 군사가 대답했다. 그의 경직된 얼굴에는 더없이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박서가 스미스 군사에게 보여준 것은 얼마 전 나다와의 국경지역에서 발견했던 그것이었다. 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대륙회의의 형식을 빌려 대장군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신다는 이야기는 연구실에서 들었습니다. 공개하실 작정입니까?‘’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어오는 스미스의 표정을 보며 박서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해야겠지요. 어쩌면 나의 이 선택이 또 한 번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게 되더라도 말이에요. ‘구름너머의 적’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직 ‘별’의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했지만, 지금 대륙에 흘려지고 있는 저 무의미한 피들을 보세요. 이것이 모두 나의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너무나도 안타깝게 흘려진 것들입니다. 전쟁이 너무 심각해져만 가고 있어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진정한 적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우리는 자멸할지도 모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박서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스미스는 잠시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50평생을 산 그의 인생에서 이렇게 놀라보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스미스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어젯밤 박서에게 들은 그 ‘이야기’를 단지 실없는 농담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아니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만큼 박서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누가 들어도 그것을 진정한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아침 박서가 데리고 간 비밀 연구실에서 ‘그것’을 본 후로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처음 보는 괴물이었어. 후우.’
지금에서야 다시 그 괴물의 끔찍한 형상을 떠올려보며 한숨 쉬는 스미스였다. 숨을 고른 그는 다시 한 번 박서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SF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외계(外界)인의 침략이라. 과연 대륙인들이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사실로 믿어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놀란 만큼은 아니, 일반인들은 자신보다 더욱 당황할 것이고 심지어는 눈앞의 진실을 왜곡하려 들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저 미지의 괴물을 보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납득시켜야 했다. 박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사실 지금까지도 스미스는 박서의 말을 100%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 눈앞에 닥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매캐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이곳은 로우웰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박서와 나다의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근처에만 오면 코를 감싸 쥐며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심한 악취를 풍겨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사람 사는 마을인 것만 같은데 어쩐지 그 분위기는 꼭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떠나버린 흉가(凶家)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동안 인적이 끊긴 듯 보이는 이곳을 찾은 낯선 발걸음들이 있었다.
‘’이곳인가? 로우웰 마을이라….‘’
선두에 선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며칠간 면도기와 인연을 끊고 살았는지 조금은 제멋대로 나있는 턱수염들이 인상적인 남자는 강인한 눈빛으로 마을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옆에서 또 다른 남자가 말을 걸었다.
‘’자드대령님. 왜 이런 곳까지 직접오신 겁니까? 그냥 저희들을 시키셔도 될 일을 이거 괜한 수고를 하시는 건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드대령이라 불린 남자가 말했다.
‘’흠. 아니야. 직접 와보니 내 선택이 옳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이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즉각 연락하도록!‘’
‘’옛!‘’
자드대령의 명령에 뒤따르던 6인의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명령에 따르고 있는 병사들조차 나다 대장군을 보좌하고 있어야할 자드대령이 이 후미진 곳까지 무슨 일로 온 것인지 그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처음의 위치로 모인 그들은 자드대령에게 수색의 결과를 보고했다. 그들의 보고는 전부 한결같았다.
‘아무(것)도 없다!’
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건만 사람의 인기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동물들조차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하들의 보고를 들은 자드대령의 머릿속에는 직감적으로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매서운 눈이 로우웰 마을의 뒤편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크산을 향했다.
‘그래. 분명 이 지독한 악취도 저 산에서부터 풍겨져 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해. 모든 의문은 저 산에 있다!’
로크산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자드대령은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살기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며 몸을 피했다.
‘’웬 놈이냐!? 모두 전투태세를 유지하라! 적이다!‘’
자드대령의 급박한 외침에 그의 주위에 있던 수하들이 제각각 C-14 임페일러 가우스 소총(8mm 구경의 금속 스파이크를 초음속으로 발사하는 소총으로 마린병사들 뿐만 아니라 대륙의 거의 모든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총이다. 임페일러 소총의 총탄은 모든 장갑에 대해 최대의 관통성을 지니도록 설계되었고 에너지와 탄환 소모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발의 총탄을 순간적으로 발사하는 점사 시스템을 사용한다. - ‘총알이 모자라’님의 칼럼에서 인용.)을 꺼내들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습격한 괴한의 몸놀림은 굉장히 재빨랐다. 자드대령은 순식간에 자신의 등 갑옷을 찢고 지나간 적의 모습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것은 나머지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지나간 것 같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히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찰나의 시간은 무거운 침묵을 동반한 채 그들의 마음속에 시나브로 미지의 공포를 심어주고 있었다. 이윽고 숲 저편에서 미세한 나무의 울림을 본 자드대령이 지체 없이 들고 있던 소총의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 투앙!‘’
귀를 울리는 커다란 소음이 매캐한 화약 냄새를 동반한 채 대기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목표물이 된 숲속에서는 아직 아무런 뚜렷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자드대령의 옆에 있던 부하 중 하나가 조심스레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의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주변의 전우들에게 들릴 정도로 긴장된 그 순간! 갑자기 자드대령 일행을 중심으로 수많은 괴생물체들이 숲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발톱을 가진 그 괴물의 무리들은 자드대령 일행을 집어삼킬 듯한 매서운 기세였다.
자드대령은 그 긴박한 순간에도 두려움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못해내고 있는 불쌍한 부하들에게 소리치며 가우스건의 방아쇠를 힘차게 당겼다.
‘’이런 제기랄! 뭐하고 있어 이 멍청이들아! 빨리 공격해!!!!‘’
사실 자드대령이 이 먼 오지까지 오게 된 것은 얼마 전 우연히 집무실에 쌓여있는 잡다한 서류들 중 흥미를 끄는 하나의 서류 때문이었다. 전쟁 통에 잠시 지방의 일들에 대해 신경을 덜 쓰고 있던 자드대령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귀신이 나타나는 산’에 관한 민원서류 같은 것이었는데 처음 받았을 당시에는 그냥 장난이겠거니 또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것인데 이 후로도 계속 서류가 올라와 조금은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본 그 서류에는 더욱 놀랄만한 일들이 적혀있었다.
‘여기는 북서쪽 경계선에 위치한 로우웰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제발 저희 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이 괴이한 일들을 처리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마을 뒤편에 위치한 로크산에서는 괴이한 불빛과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으며 집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마을을 좀 구해주십시오.’
서류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면 분명 무슨 불가사이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서류를 봤을 당시도 박서 군과 한창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을 이번 교전이 로우웰 지방과 가까운 자르딘 지방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한 번 살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온 것이었다.
자드대령은 괴물 중 하나가 자신의 오른쪽에 있던 부하를 예의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도륙하는 모습을 보고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이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란 생각보다는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야하나?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타앙!‘’, ‘’끼에엑.‘’
여기저기서 난사되는 가우스 건의 소음이 그의 귀를 점점 멍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우스 건에 계속해서 터져나가면서도 괴물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끌어봤자 미래는 없다고 판단한 자드대령은 급히 주변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스팀팩(stim pack)을 쓰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주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서 이곳에서 본 사실들을 나다님께 보고해야해!‘’
자드대령의 긴박한 외침을 듣자마자 병사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괴물들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죽어버린 한명을 제외한 자드대령 외 5명이 갑자기 각개도주하기 시작하자 괴물들은 잠시 방향을 못 잡고 갈피를 잃은 듯 했지만 이내 괴물들 역시 사방으로 나누어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자드대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그의 목표는 그들이 타고 온 드랍쉽이 정박해 있는 마을외곽의 작은 공터였다.
‘’으아아악.‘’
도망치고 있는 자드대령의 등 뒤에서 또 한 번의 비명소리가 울러 퍼졌다. 이것이 벌써 4번째였다. 하지만 자드대령은 발길을 돌리거나 멈추지 않았다. 자신은 꼭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본 것을 나다에게 꼭 말해주어야만 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모종의 커다란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스팀팩(코카인, 엔돌핀, 아드레날린, 스테로이드, 카타콜라민이 이 주성분인 이것은 일종의 마약으로도 볼 수 있다. 일정 시간 내에 근육과 신체운동, 체력을 향상시켜주며 고통을 잊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이었다. 조금 전에도 한번 사용했기에 과다한 사용은 오히려 그에게 좋지 못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과다한 살기가 그에게 그런 부작용의 우려 따위는 말끔히 없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가면 되!’
스팀팩의 과다복용으로 인해 붉게 충혈 된 자드대령의 눈에 드랍쉽을 세워 두었던 공터의 모습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다는 갑작스런 보고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정찰을 나갔던 자드대령이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돌아왔다니?’
나다는 박서군의 기습에 당한 것인지 걱정이 되어 급하게 병실을 찾았다. 하지만 자드대령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함께 살아 돌아온 드랍쉽 조종사를 불러 보았으나 자드대령이 큰 부상을 입고 홀로 드랍쉽으로 돌아와 빨리 회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순 없었다.(당시 드랍쉽 조종사는 기내에 남아있었기에 자드대령 일행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다는 얼마 전 연락이 두절된 8중대 문제로 골치가 아프던 차에 중상을 입고 돌아온 자드대령을 보니 더욱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거 하나같이 다 엉망이잖아! 에이 썅.’
마음속으로 욕을 내뱉은 나다는 자드대령의 병실을 빠져나와 다시 집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자드대령의 일을 알아보는 것보다는 바로 내일 있을 대륙회의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드대령이 깨어나면 그의 이야기를 듣자고 생각한 나다는 서둘러 집무실로 들어와 내일일정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차근히 부하들에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펼쳐진 가로수들의 환영을 받으며 성대한 파티장 앞에 깔린 레드카펫처럼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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