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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4/06 00:58:59
Name 칠렐레팔렐레
Subject 인생의 시련...
제 인생에 시련이 닥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대단한 사회적 지위나 부를 갖고 있진 않지만
또 제가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할만큼 외모, 조건, 능력이 받쳐주는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인지 한번도 실패란 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하나뿐인 딸로 귀여움 받으며 자랐고
대학도 이름대면 남들이 다 알만한 대학 나왔고
누군가에게 미움 받기보단 사랑받으며 컸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저보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기대가 컸는데 열정이 없다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제 직업은 방송작가였습니다
방송작가는 하루아침에 되는 직업이 아닙니다
교양다큐 구성작가의 경우, 대부분 6개월 정도의 방송아카데미 생활과
1년 이상의 자료조사 생활을 거친 후 3분, 5분짜리 짧은 글쓰기로 시작해
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전 4개월 정도 방송아카데미를 다니고
자료조사 생활을 1년 3개월 했습니다

자료조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겠죠...
자료조사는 PD와 작가 대신 모든 잡다한 업무를 도맡아 하는 역할입니다
PD가 찍어온 테잎이 20개든 40개든 100개든 상관없이
테잎에 나오는 모든 그림과 말을 받아적는 프리뷰를 하고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찾고
섭외하고 취재하고 선배들 밥까지 챙겨줘야 합니다
1주일에 며칠씩 밤새는건 기본에
출근 시간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고 퇴근시간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월급은 보통 60~80만원입니다
배우는 입장이니 이걸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는거죠

자료조사 생활을 하면서 몇 번 후회를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으로 성공을 거둘 때까진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없을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 힘든 자료조사 생활을 거쳐 방송작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된지 겨우 3개월만에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한 일주일 전에 언질이라도 있었다면
다른 자리를 찾아보면서 제 마음을 추스렸겠지만
금요일 방송이 끝난 후 조용히 저를 불러
월요일부터 나오지 말라며 단칼에 저를 내보냈습니다

'그만두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오지 마라'
3년 동안 함께 했던 회사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인사할 시간조차
주지 못할만큼 제가 부족했나 싶었습니다

서른 명이 넘는 회사 식구들 그 누구하나 저랑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전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그만두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솟아올라 차마 인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겠다고 말하곤 조용히 돌아서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전화할 용기조차 나지 않고 기쁜 소식도 아닌데 전하기 미안해서
문자로 인사 못드리고 나와서 죄송하다며 잘 지내란 얘길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흥분했지만
제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던 일인데...
기대했던 부모님께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친구들은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
온통 머리속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금요일,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 밤에 친구와 술약속을 잡고 집을 나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회사에서 짤렸다고...
걱정말라고...
만약 엄마가 화라도 냈다면 전 짜증이라도 내면서
덜 미안해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나보구나...
정말 원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볼 기회라고 생각해
이게 또 전화위복이 될지 모르잖아... 걱정마
엄마는 네가 그 일에 많이 기대한걸 알고 있는데
그런 일을 당해서 얼마나 속상했을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걱정마' 라고 절 위로했습니다

너무 눈물이 나 횡단보도 앞에서 울고 있는데
엄마는 그런 제 모습을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보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밤에 함께 식사를 하다 알게 된 아빠는
알았다는 말만 하시더니만
다음날 아침에 저한테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아빠가 힘이 되주지 못해 참 미안하다. 아빠가 능력이 있었으면
네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 관악산 가서 아빠 소리 좀 지르고오마'
하시는데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주위에 참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절 걱정해주는 가족과
하루라도 혼자 두지 않으려고 바쁘고 힘든데도 불러내는 친구들과
자리 알아봐 주겠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는 회사 사람들...

그래서 행복하다고 애써 외로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지금의 시련은 금방 지나갈거라고
당장은 죽을 것처럼 힘들고 아파도
언젠가 '그 때 그랬었잖아' 하며
웃으며 회상할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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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06 01:00
수정 아이콘
현실세계도 이렇게 힘든데...가상세계마저 이렇게 힘들면.....참;;;;
러브앤피스?
훗.................. 필요없어
즐기자!!!!!!!!!!!!!!!!!!!!!!!!!!!!!
핸드레이크
05/04/06 01:02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쫒아낸 사유도 명뱍히 하지 않은채 부당하게 내보낸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힘내십시오..아직은 주위에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맞아줄 사람이 있는 분이라서 안심이 되네요..힘내십시오
LaLaPaLooZa_
05/04/06 01:02
수정 아이콘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

어린 제가 님처럼 노력을 해본적도 없고

님처럼 아파본적도 없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이라서...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마시고 항상 되뇌이면서 꼭 성공하시길바랍니다.

이런 글이 올라와 갑자기 피지알이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거 같습니다.
안전제일
05/04/06 01:03
수정 아이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마음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수 있을까..뭐라고 해야 위로가 될까...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래도 스스로 기운내신다니 반갑네요.
원하시는 일...꼭 이루시기를, 그리고 그 안에서 꼭 행복 하시기를 빕니다.
괜히 지나가는 소리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 하고싶은 이야기는 늘 판에 박힌이야기일까요. 이렇게 댓글을 달면서도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까...괜한 걱정을 합니다.
라임O렌G
05/04/06 01:04
수정 아이콘
세상은 말입니다... 죽기전까진 살아볼만한거 같습니다... 인생은 실시간이죠... 멈추기도 되감기도 빨리감기도 안되는 실시간요...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매력 아닐까요..
05/04/06 01:06
수정 아이콘
밑에 분위기가 안좋습니다만 .. 그래도 이런 진솔한 글이 피지알에의 발길을 끊지못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빠른시일내에 잘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05/04/06 01:07
수정 아이콘
글 대충 쭉 보고 여성분인가 생각했는데 진짜 여성분이시네요. 다시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인생의 한 고비/구비를 넘을 시점이군요. 님 말씀대로 님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가족 외에는 그 한조각의 [친구]조차 없는 사람도 많거든요. I need a piece of Love. (레전드님이 언급한 러브앤피스보고 적습니다) 다시 써준다면 더 열심히 할 자신 있죠? 그런 자세로 살아가시길 바래요. 행운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제가 사장이라면 당장 채용하고 싶습니다 ^^ 마음씨가 느껴지는 글이군요.
소심한복숭아
05/04/06 01:07
수정 아이콘
언니 힘내세요.. 사실 저는 칠렐레~님과는 면식도 없고 이렇게 글에서나마 리플로 알게 되는 잠시 지나치는 만남 정도이지만.. 제 언니뻘 되시는 님께 언니 힘내세요라는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많이 힘드실텐데 다시 기운내신다니..
내일은 알수없대요.. 오늘의 좌절이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 나갈꺼에요
홧팅!!
Withinae
05/04/06 01:09
수정 아이콘
아...요즘 힘들죠...칠팔년 됐는데 근무 환경은 확실히 더 좋아진것 같은데, 직업 안정성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직장에서도 가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요즘은 가차없죠. 분위기 이상해지면 그냥 가는 겁니다.^^;......
힘네세요...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날아오를 수 있을 거예요...
쩌비, 저번주에 동기놈도 하나 그만 둔다던데...상욱아 잘 해야돼....
05/04/06 01:15
수정 아이콘
그야말로 첫 실패라는 거네요.......
그냥 기운내시지만 말고...푹 폐인생활느껴보실정도로 휴식(......뭐라고표현하죠;;)하시다가....
준비를 하세요.....그때 다시 기운내고 일어서시는 겁니다~!
사람인생이라는게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죠.
언젠가 시간이 지나 완전히 극복하시고 새로운시작을 하실때가 오면...
글남기세요 축하해드리겠습니다~^^화이팅~~~~~!!!
05/04/06 01:19
수정 아이콘
그런데 아르바이트도 아닌데 저렇게 이유 설명도 없이 해고하는게 가능한가요?(비정규직이라서 그런가) 어찌되었던 기운내시고 새로운 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we get high !
05/04/06 01:26
수정 아이콘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명장, 몰트케 원수-
네이버블로그 돌아다니다 발견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입니다. 정주영회장이 실패할때마다 되새긴 명언이라고 하네요. 힘내세요~!
구경만1년
05/04/06 04:57
수정 아이콘
음.. 인생은 산다는것.. 그런게 아닐까요? 근처에 화장실이 없을때 화장실의 소중함을 알수 있고. 목마른데 근처에 물이 없을때 물의 소중함을 알수 있듯이.. 실패란걸 겪어봐야 더 큰 성공의 기쁨을 알수 있겠지요..
흔한 말이지만 '개구리는 멀리 점프하기위해 잠시 움추린다' 에도 나오지만.. 더 높은 성공을 위해 잠시 움추린다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 잘 간직하시길 그리고 잠시간의 휴식후에 더욱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
05/04/06 10:29
수정 아이콘
해고의 방법이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그리고 3개월 동안 도대체 뭘 보여줄 수 있나요? 3개월이면 그 직업에 대해 적응하는 데 필요한 기간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저도 초창기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 3개월이 고비였고요. 계속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어떤 건가... 다행히도 저는 윗분들께서 먼저 알아서 지금 상태가 어떠냐, 우리가 보기엔 별로인 것 같은데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런 식으로 제 상태와 의견을 물어보셨지만 말이에요. 새 사람에 대한 능력에 대한 기대치까지 뭐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사람이 절대 혼자 자라는 거 아니거든요. 내가 해야 할 부분과 조직에서 이끌어 줄 부분이 분명 있는 법인데, 너무 경솔한 판단을 내리신 건 아닌가 싶네요. 제가 다 화가 나네요.ㅜ.ㅜ

그러나 언젠가는 칠렐레팔렐레 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회사는 칠렐레팔렐레 님과는 인연이 아닌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한마디로 손발이 척척 맞는 회사를 만나게 되면 또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기운내고 화이팅하세요.^^/
oh ho young
05/04/07 02:19
수정 아이콘
아.. 저렇게 단란한 가족이 tv가 아닌 현실에서도 존재하는군요. ^^; 아들만 셋있는 조금은 삭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저에게는 무척이나 부러운 모습이네요.. 아무쪼록 힘내시고 더 좋은 일 생기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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