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5/03/28 15:04:15
Name happyend
Subject 잊혀진 영웅들에 관한 소고 2
스토브리그인지라.....

....

꾸벅

....

나는 어릴 적 야구 규칙을 좀체로 이해하지 못해서 한동안 야구를 즐기지 않았다.그런 어느날,휴일 낮에 벌어지는 경기인데다 달리 볼 프로그램도 없고하여 티비를 야구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단지 음악 듣듯이....
그런데 경기는 예상외로 긴장되었다.다른 캐릭터들은 기억조차 안난다.하지만 양팀의 두 투수.그 둘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위화감.
해군팀의 투수는 훤칠한 다리와 멋진 곱슬머리를 가진 미끄러운 투구폼의 박철순이었고,상대팀은 당대 최강 연세대학의 투수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투구가 역동적이었고 거만했다.반면에 박철순은 물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무언가 끈끈한 것이 있었다.경기는 횟수를 거듭할 수록 두 사람의 팽팽한 스타일에 의해 움직였다.다른 캐릭터나 별로 많지 않았던 관중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 승자는 최동원이었고,패자는 박철순이었다.박철순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쓸쓸한 뒷모습을 결코 잊지 못했다.그것이 내가 야구를 처음 보게 된 게임이었고,그날 난 단박에 야구 룰을 깨우쳤다.더불어 한 고독한 승부사의 뒷모습도 ....

그 뒷모습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한참 후였다.
당시 야구계는 최동원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초고교급 투수로..별 볼일없는 구질과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것도 없는 145km/h의 구속.그런데도 타자들은 그 앞에 맥을 못추었다.최동원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믿기만 해도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를 낚아챈 것은 연세대학교였다.
신입생 최동원은 그렇게 백양로로 입성했다.

당시 연세대 야구부의 주장은 박철순이었다.박철순은 성실하고 투철한 자기의식으로 명문팀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그렇지만 기질적으로 최동원과는 맞지 않았다.박철순은 최동원이 연세대학교 야구팀의 한명이길 바랬고,최동원은 자기에 대한 극단적인 자존심이 없다면 공을 뿌리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충돌한 것은 연고전이 끝난 뒤였다.고대에 패한 연대 야구팀.주장에게 야구방망이로 소위 '빠따'를 맞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자기를 향해 내려치는 방망이를 붙들고는 놓지 않았다.박철순은 강압적으로 최동원을 체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주장은 전통을 지켜야 하는 힘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최동원은 그걸 문제 삼았다.즉각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항의를 해왔고 대학측은 곤혹스러워 했다.
최동원과 박철순.두 사람중 한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힘든 선택이 대학에게 주어졌다.
대학은 당대 최고의 황금팔.최동원을 선택했다.
박철순은 쓸쓸하고도 고독한 길을 가야했다.단지 최동원을 위해 길을 비켜주어야 했던 것이다.
박철순은 해군을 거쳐 미국 생활을 했다.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이너리그 생활도 아니었다.단지 야구를 그만두기엔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볼을 어루만지고 뛰고 던지고 있었다.

마침내 한국에 프로야구가 시작된 해.박철순은 오비에 입단한다.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고국의 그라운드.
그러나 오비팬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마치 올드보이의 귀환을 환영해주듯이...
그래서였을까.자신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을까.
박철순은 그 해 신화를 썼다.21연승.
그 기적은 아무도 예측 못했고,그런 만큼 그를 단숨에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팬들은 박철순을 사랑했고,박철순을 사랑하듯 그라운드로 몰려 들었다.
그가 없었다면 프로야구는 처음부터 그토록 인기스포츠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철순은 정말 한을 담아 던졌던 것일까?한이 풀리면 승천하는 원혼처럼....
그 다음해 부터 박철순은 더 이상 화려한 연승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승리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어쩌면 스스로 그걸 위해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었던 것은 아닐까?
단 한명의 영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길을 비켜야만 하는 것일까.우리 모두는 영웅이 될 수 없는 것일까.내 인생에서 진정한 영웅은 바로 내가 아닌가.
박철순은 그걸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투혼은 스포츠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를 영웅으로 마음에 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담긴 땀에 젖은 미소를 떠올리면서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 것은 왜일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뉴타입
05/03/28 15:36
수정 아이콘
불사조 박철순... 잘 읽었습니다.

부활하라 정민철...
브라운신부
05/03/28 15:43
수정 아이콘
제가 야구가 재밌구나 했던 것은 군산상고 조계현을 보면서였고, 퍼펙트한 투수를 본 것은 82년 오비의 박철순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동원 선수같은 성격을 좋아히지 않지만 코리언시리즈 4승하던 그때의 그를 보며, 싫어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하는 것을 느꼈던 때도 있었네요. 선동렬 선수의 경우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투수라는 찬사를 듣고 최고였다 생각을 하면서도 저에게 준 임팩트가 없었네요. 박선수 지금 it 업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찌되었을지... [다혈질적 성격이라고 들어서 ..]
05/03/28 16:07
수정 아이콘
박철순선수는 잊혀진 영웅이 아닌데....
굳이 OB의 팬이 아니더라도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박철순선수는 다들 좋아했는데...
05/03/28 16:34
수정 아이콘
결국 둘다 한국프로야구에 깨지기 힘든 기록을 남기며 강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최:한국시리즈 전승, 박:한시즌최다연승) 그러나 장기적으로 큰활약을 펼치지 못한게 옥의 티라고 할수있겠지요
deathknt
05/03/28 16:47
수정 아이콘
글을 잘 봤습니다..
그런데 박철순 선수는 22연승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최동원 선수이건 박철순 선수건 그들이 프로야구를 뛰기에는
당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고, 환경도 거친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05/03/28 17:10
수정 아이콘
박철순 22연승, 정민태 21연승...이라는데요.
마음의손잡이
05/03/28 18:18
수정 아이콘
정민태선수 21연승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크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던데... 예전 일본가기 전에 성적도 포함하면서 들어간다고 해서요... 한시즌에 세운기록이 인정받아야 되는데 말이죠. 박선수의 5구원승이 포함된 연승도 제대로된 승리라 부르기 힘들지만 대신 한시즌에 세워졌기때문에 박선수의 기록을 더 치는 분위기죠
마음의손잡이
05/03/28 18:20
수정 아이콘
인터넷 돌다 보시면 마이웨이가 흘러나오는 박철순선수의 은퇴장면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 박철순선수 던지는것 조차 보지 못했지만 참 잘던진 선수가 아닐까 하고 상상하곤 합니다.
브라운신부
05/03/28 19:34
수정 아이콘
정민태선수의 21연승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많이 따랐다라는 평을 듣죠. 박선수의 22연승은 백인천 선수의 4할과 함께 한국야구와 외국물 먹고 온 한국선수와의 레벨 차이라고 폄하받기도 하고요. 박선수의 원년 혹사가 원인이겠지만 그 빅맨 cf 생각만 하면 --;;
차이코프스키
05/03/28 23:06
수정 아이콘
미국간 이유가 그랬었군요..몰랐었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981 [03.29 01:10 수정]2005 e-Sports 대회 명칭 등의 주요 변동 사항 [25] Crazy Viper4934 05/03/28 4934 0
11980 전 고등학교급식실에 일하는 사람입니다 [45] 최연성같은플4569 05/03/28 4569 0
11979 위닝 좋아하세요? [22] 겁쟁이테란3549 05/03/28 3549 0
11978 [퍼온 글] 자살 권하는 사회 [8] 다미아니3140 05/03/28 3140 0
11975 영화 - 밀리언달러베이비 [20] 게으른 저글링3348 05/03/28 3348 0
11974 잊혀진 영웅들에 관한 소고 2 [10] happyend3639 05/03/28 3639 0
11973 전 T1 의 팬입니다. 하지만... [9] 게으른 저글링5347 05/03/28 5347 0
11971 잊혀진 나의 영웅들에 관한 소고 [5] happyend3895 05/03/28 3895 0
11970 임요환, 동양, 4U...... 그리고 SKT1 [20] Nerion9144 05/03/28 9144 0
11968 [연재] Reconquista - 어린 질럿의 見聞錄 [# 12회] [6] Port4205 05/03/28 4205 0
11966 저그주식회사2 <달려라! 박태민!!!>편 [13] 그양반이야기4420 05/03/28 4420 0
11965 99%의 노력의 길,1%의 운의 길. [26] legend3528 05/03/27 3528 0
11964 옷깃 스치다.. [15] 블루 위시3953 05/03/27 3953 0
11963 밑에 두발 자유화에 대한 글이 사라졌네요. [107] swflying3412 05/03/27 3412 0
11962 호모이미지쿠스 [9] Dostoevskii4078 05/03/27 4078 0
11960 밸런스 이런식의 패치는 어떨까요? [43] 이규수3681 05/03/27 3681 0
11959 저도 저의 만화 Best 10 [27] 서지훈만세4297 05/03/27 4297 0
11958 잘 알려지지않은 추천만화 [53] 리바휘바8203 05/03/27 8203 0
11957 내가 재미있게 본 만화책들.. [23] 승리의기쁨이4227 05/03/27 4227 0
11956 큰일날 뻔 했어요.. [19] 일택3609 05/03/27 3609 0
11955 저에게 있어 최고의 만화영화들 [39] 스타 절정 팬3933 05/03/27 3933 0
11954 <잡담>지금 배구 올스타전 하네요. [14] dreamer3336 05/03/27 3336 0
11952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Vol.1 [18] Nerion4338 05/03/27 433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