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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3/28 12:12:07 |
Name |
happyend |
Subject |
잊혀진 나의 영웅들에 관한 소고 |
스토브리그라....
그래서인지 저녁엔 시간이 많이 남아 책을 많이 읽게 되는군요.
...
그리고 옛 생각도 많이 나는군요.
...
그래서 나를 몇년 동안 열광시켰던 영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이 떠올라...막간을 이용해 올려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찌되었든 과거에 있었던 실존인물이므로...다소 자의적이어서 누가 된다면 오로지 저의 책임이며 그 일로 인해 나의 영웅이 상처입지 않길 바랍니다...꾸벅)
........
1981년,봄
고교야구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그 중 시즌을 열어가는 대통령기 고교야구 대회가 동대문경기장에서 열렸다.
광주상고와 S고의 준결승.
한점차로 뒤지는 S고의 마지막 공격.광주상고의 투수는 김태업이었다.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는 예선부터 무적팔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공은 힘을 잃었다.
볼은 어김없이 벗어났고,주자는 하나씩 채워져 갔다.
원아웃 만루.상황은 더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그럴수록 S고의 함성은 몰아치고 있었고,들끓는 함성만큼 태양도 뜨거웠다.
광주상고의 내야진과 감독은 마운드로 올라왔다.김태업은 던질 수 있다고 우기고 있었지만 더이상 던지게 해선 안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깊은 신음소리와 함께 감독은 공을 낚아챘고,김태업은 고개를 숙인 채 우익수로 자리를 옮겼다.
원아웃 만루.
열광하는 관중들.타석엔 4번타자 K모군.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기 위해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뿌려야 했다.감독도 포수도 무명의 광주상고가 거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며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마음을 비우자고 말했다.
그라운드는 질식할 것 같은 긴장이 감돌고 공은 뿌려졌다.
'딱'
너무도 경쾌한 타구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초고교급 선수라고 촉망받던 이순철의 고개도 푹 꺽였다.
공은 우익수쪽으로 뻗어갔다.점점 멀리....
그순간 관중석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공이 살짝 휜 것이다.파울 라인을 벗어나서.
깊숙한 파울플라이면 3루 주자는 들어오고도 남을 것이었다.현명한 우익수라면 그 공을 놓쳐야 한다.기회를 투수에게 한 번 더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 버티고 선 우익수는 김태업.그의 눈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팔을 벌렸다.
심판은 플라이 아웃을 선언했다.
그 순간 번개같이 S고의 3루주자는 홈으로 파고 들었다.김태업의 손에서도 공이 뿌려졌다.
3루주자와 공은 날카로운 속도로 홈을 향했다.벌써 S고 응원단은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고,광주상고 응원단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우익수 가장 깊은 파울플라이를 잡아버리다니...
하지만 다음 순간 관중들은 '어어!'소리를 뱉어내야 했다.
볼은 단 한번도 바운드 되지 않았고,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엄청난 속도로 포수의 미트로 들어가버렸다.이윽고 태그.S고의 주자가 주먹을 치켜올렸다.
잠시 그라운드는 침묵에 빠졌다.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심판의 손을 지켜보며 침을 삼켰다.
"아웃!"
심판은 고요를 깨뜨리며 크게 외쳤고,3루 주자는 고개를 꺾었다.
함성은 떠나갈 듯했다.결승전에 오른 것이다.
김태업은 어깨만큼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해는 한국야구사에 빛나는 해이기도 했다.전설의 야구영웅 선동렬이 광주일고를 이끌고 한수위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동렬의 빛에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불타올랐던 김태업.그는 선동렬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그렇게 둘은 좋은 맞대결을 보여왔다.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선동렬이 받아왔다.한국야구에겐 꿈의 숫자나 다름없는 150km/h를 던지는 고교생 투수 선동렬.
김태업은 강한 승부근성과 지치지 않는 어깨로 맞서고 있었다.둘은 대학도 라이벌 학교인 연대와 고대를 각각 결정한 채 겨울이 되었다.
...
그때부터 김태업과 선동렬은 다른 길을 갔다.선동렬은 줄곧 국보급 영웅의 길을 걸었고,김태업은 한해두해 잊혀지고 있었다.
선동렬이 화려하게 해태에 입단한 이듬해.김태업은 겨우 몇몇의 야구매니아만이 주목하고 있었지만 신통치 못한 성적에 대타요원으로 전락했다.
대학교때부터 이상스러우리만치 몸이 비대해지면서 힘만 세어서 투수는 꿈도 못꾼채 늘 지명타자자리 밖엔 못하더니 프로에선 그나마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영원히 이름에서 사라졌다.....
왜 일까.무엇이 나의 영웅을 망가뜨린 것일까.
나는 그 의문을 저버리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그 의문은 뜻밖에도 대학교에서 풀렸다.
대학교에 입한한 뒤 기숙사에 들어갔다.여러 곳의 지방학생들이 모인 기숙사는 공교롭게도 대학 체육부 기숙사 근처였다.당시 최고의 스타는 조계현이었던 것 같다.
기숙사 앞에는 '이화당'이란 빵집이 있었는데 그곳의 딸기 빙수는 명물이었다.맛있기도 하지만 일종의 전통비슷하게 기숙사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해주었다.
밤 10시 기숙사 마지막 점호시간(이거 세번 늦으면 퇴소...)5분전 냄비를 들고 이화당에 뛰어가면 가능한 시간만큼 딸기 빙수를 냄비에 채워주었다.
그 빙수를 먹는 맛이라니....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빙수의 맛뿐이 아니라 그곳에서 김태업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기숙사에 있었던 묘한 성격의 광주출신의 선배는 김태업이 왜 부진할 수 밖에 없는 가를 말해주었다.
당시 광주엔 김태업과 선동렬은 시민들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인물이었다.특히 여고생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태업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선동렬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외모를 가진 호남아.그것은 여고생들의 애간장을 녹이다 결국 모 여상 흑장미파 두목의 마음까지 사로 잡아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태업은 그 프로포즈를 거부했다.
흑장미파 여두목은 분노에 사로잡혔고,즉각 보복에 나섰다.
어두운 골목에서 김태업은 느닷없는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 했고,그 일로 투수에게 생명이랄 수 있는 허리가 나가버렸다.
청소년대표로 뽑힌 그에게 더이상 투수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외야수와 지명타자를 오갔지만 허리의 통증은 그나마도 지키기 어렵게 했다.
그럴수록 체중은 더욱 불어나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정말 설상가상이라던가.
대학4학년때는 교통사고로 1년 이상을 야구를 하지 못했다.
그의 초라한 프로 성적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역경속에 스러져버린 나의 영웅을 오늘 다시 기억해본다.
그가 어디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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