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05/03/25 03:50:58 |
Name |
Timeless |
Subject |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13 |
- 제 13 화 -
“때르르르릉”
꿈을 꾸다 깬 느낌이다. 무슨 꿈이었을까.. 언뜻 영상이 스쳐지나간다.
푸른 하늘.. 햇빛이 강렬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 날개..
더 기억해내려고 해도 더 이상 생각은 안나고 머리만 아프다. 아침부터 골치아프게 씨름하기는 싫어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들리는것일까? 집에는 나 혼자 밖에 없으니 당연히 그녀를 만날 것에 들뜬 내가 부는 것이다. 아침 준비가 예전과는 다르게 즐겁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옥수수향 빵을 입에 물고 집을 나섰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두 가지 목적으로 타는 지하철에는 요금을 2배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부천역에 도착했다.
그녀가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그 인파 속에 그녀를 찾아보려고 사람인 내 발을 까치발로 만들어 보았지만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 까치발이라 불안정한 상태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정신 없는 가운데 핸드폰이 '지잉'하게 운다.
'정후씨, 미안해요. 엄마가 갑자기 입원하셔서 제가 간호해야 되요. 늦지 말고 출근 잘해요'
라는 그녀의 문자. 아.. 오늘은 그녀 없이 출근해야 하는구나.
겨우 몇 일 같이 출근한 것 뿐이었는데 몇 년 동안이나 혼자 출근했던 것이 어색해져버렸나 보다. 그녀에게 어머니 쾌차하시길 바란다는 문자를 보내고, 오랜만에 지하철 밖 풍경을 보며 출근을 했다.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창을 통해 보이던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잘 먹고 있을까.. 더 야위진 않았겠지..
그녀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꾸 걱정이 된다. 오늘 토요일이라 오전 근무 마치고는 소희씨와 데이트를 하려고 했었다. 약속이 취소되면 누구나 조금은 허탈할 것이다. 그래.. 어차피 비게 된 시간에 그녀를 찾아가 볼까.. 어차피 조만간 가려고 했으니까.. 이렇게 변명을 늘어 놓는다.
바람피려는 마음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소희씨에게 미안해서 변명을 하나보다. 그녀를 만나러 갔을 때 소희씨에게 전화가 온다면 나는 분명히 다른 거짓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휴..
토요일 오전 업무는 활기차다. 다들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표정이 밝다. 어떤 이는 언제 끝나나 계속 시계를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나는 여러 생각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그녀의 의미.. 소희씨에게 미안함.. 그녀를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할까.. 소희씨는 나를 이해해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느라 오늘의 토요일 오전 업무는 나에게 너무도 짧았다. 평소에는 시간이 토요일 오전 업무조차 거북이 버스 같았는데.. 별다른 생각도 못했는데 어느덧 업무 시간이 끝나버렸다.
망설여졌지만 결국 그녀에게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긴장이 된다. 무슨 말을 할까.. 무엇을 물어볼까.. 혹시나 소희씨가 전화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언제 우리나라가 시속 300짜리 버스를 만들었는가. 무슨 말을 할까 아직 생각 못했는데 벌써 도착해버렸다.
결국 오늘도 바보처럼 있다가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여전히 교도소는 못생겼다. 그녀가 여기 있지 않았다면야 절대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지난번보다는 익숙하게 면회 수속을 마치고, 그녀를 기다렸다.
'철컹'
문이 열리면서 창문 구멍 사이로 그녀가 보인다. 자연적으로 얼굴에 눈이 간다.
다행이다. 그녀는 내 말을 잘 듣고 잘 먹었는지 예전보다 훨씬 나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앞에 앉았다. 물론 우리 사이에는 구멍 뚫린 창문이 있다.
나 또 왔어요. 오늘은 지난 번 보다 훨씬 예쁘네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죠?
조심스럽게 말하는 나를 그녀는 눈도 잘 깜빡이지 않은 채로 계속 응시하고 있다.
있죠. 우리가 예전에 어디서 만난적이 있을까요?
그 쪽을 보면 도저히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아요. 처음 봤을 때 부터 왠지 모랄까.. 친근감도 있고, 동질감도 있고.. 음 이런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어떤 느낌이 계속 들어요.
고개도 한 번 끄덕여 주지 않고 그녀는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다.
여기서 누가 괴롭히지는 않아요? 나한테 말해요.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해줄게요.
우리가 오늘로 몇 번째 만난줄 알아요?
이상하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면회오고, 또 와서는 이상한 소리만 하고.
내가 원래 조금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싫어하지는 말아요.
음.. 음..
사실은 오늘 오기 전에 계속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횡설수설하네요.
재미없죠? 다음엔 재밌는 이야기 많이 가져올게요. 오늘은 그쪽 건강한 모습봐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아프지 말구요.
교도관이 면회 마침을 말한다. 한 숨을 푹쉬고 그녀를 보았다.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는 채로 나를 아직도 응시하고 있다.
잘있어요. 가볼게요.
그녀는 오늘도 뒤를 보면서 교도관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나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란 사람을.. 뒷모습은 여전히 갸냘펐다. 그런 그녀에게 외쳤다.
밥 잘 먹어야 해요
문을 나서던 그녀가 멈칫 하더니 교도관에게 몇 마디 한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와 내 앞에 앉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긴장을 했다. 그녀는 계속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한테 할 말 있는거에요?
긴장을 너무 해서 숨이 턱턱막히는 것을 참다 못한 내가 먼저 물어 보고 말았다.
그녀가 입술을 한 번 지끈 깨물었다.
'어.. 언제 올꺼에요?'
그녀가 말을 했다. 생각 보다 더 여리고, 어린 목소리.. 차가움이란 것은 어디에도 묻어 있지 않은 따뜻한 목소리. 그런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다. 머리가 멍해져버렸다.
나 내일 올게요. 내일 꼭 또 올게요.
멍해진 상태에서도 주저없이 이 말이 나왔다. 나의 이 말을 듣고는 그녀가 곧 문에서 대기하고 있는 교도관 쪽으로 달려가버린다.. 그녀가 문 근처에서 멈추더니 내 쪽을 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 더 했다.
'내일 안 오면 다신 안 볼거에요'
그러더니 곧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시무시한 사람인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와 살짝 부딪혀서도 나가 떨어질뻔 한 여자였다. 그리고 이렇게나 여린 여자였다.
나 내일 꼭 와요. 걱정 말아요.
그녀는 못듣겠지만 크게 소리쳤다.
돌아가는 버스는 다시 우리 나라의 보통 버스로 돌아와있었다. 덕분에 천천히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 제 13 화 끝 -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