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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3/19 18:53:59 |
Name |
Timeless |
Subject |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9 |
- 제 9 화 -
”왜 폭행했습니까?”
…………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녀의 폭행 사건 참고인으로 처음 와 봤던 경찰서.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들렸던 경찰서. 이번엔 나의 폭행으로 오게 된 경찰서다. 이유는 올 때 마다 달랐지만 경찰서는 같았다.
자라오면서 처음으로 큰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의외로 마음은 편했다. 그녀의 폭행을 진술하고, 그녀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보다 지금이 훨씬 나았다.
그녀가 앉아서 조사를 받던 그 곳에 지금 나도 있다.
“천소영씨와 아는 사이였습니까?”
그 때 그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에게 물었다. 이상도 했을 것이다. 그녀의 폭행을 진술해 준 중요한 참고인이었던 내가, 같은 사람을 폭행해서 여기로 왔으니까 말이다.
아니요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을 보니까 울컥해서.
“어쨌든 합의가 되었으니 가서 사과 잘 하고 끝내요. 다신 오지 마세요.”
합의라.. 임소희씨의 삼촌이 유명한 변호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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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신고를 받고 달려 온 경찰들에게 폭행 현행범으로 검거되었다. 나와 같이 멍하게 있던 임소희씨는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정후씨, 걱정하지 말아요. 제 삼촌이 유명한 변호사니까..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을 거에요. 겁먹지 말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요. 제가 이따 갈 테니까.. 잘 있어야 해요. 알았죠?”
한 남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이런 무서운 나에게 겁먹지 말고 있으라는 그녀. 내가 혹시나 어떻게 될까봐 잘 있어야 한다며 울먹거리는 그녀를 뒤로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소희씨는.. 웃는 모습도 예쁘지만, 우는 모습도 예쁘구나.. 보통 때도 예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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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그녀의 삼촌이 힘 써준 덕택에 치료비와 위자료조의 소정의 합의금 만으로 합의가 되었다.
형사가 나의 수갑을 풀어준다. 수갑을 차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손목에 수갑자국도 나있었고, 꽤 아프기도 했다. 그 사람을 때렸던 주먹 역시도 때린 죄값으로 꽤나 부어 올라 있었고, 아픔도 느껴졌다. 또 굳이 소희씨 말을 들어서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래 앉아 있었더니 몸 전체가 뻐근했다.
그녀도 나처럼 이렇게 아팠을까?
아니.. 가냘픈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아팠을 것이다. 나처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또 피해자의 과장된 진술에 그녀는 가슴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녀의 그런 고통을 생각하니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고 생각하려던 내가 미워진다.
경찰서 문을 나서면서 거울을 통해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달라 보였다. 매일 아침 보는 백수의 모습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회사 갈 때의 그 자동 셋팅 된 모습과도 달랐다. 지쳐서 힘들어는 보였지만 왠지 평소보다 더 나아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찰서 현관문 앞에서 꽤나 오래 기다렸는지 나보다 더 지쳐 보이는 임소희씨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쪽이 아려온다.
누구 기다리세요?
지치고, 수심에 차있던 그녀의 표정이 곧 밝아진다.
“정후씨, 수고했어요. 자~ 여기 두부요.”
내가 뭐 감방 갔다가 나왔나요. 그냥 소희씨 말대로 앉아 있다 나왔을 뿐인데.
“그래도 이거 먹고, 다시는 이런데는 근처도 오지 마요. 알았죠?”
네.. 알았어요.
“아~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나 못생겨졌잖아요.”
하나도 못생겨지지 않았는데.. 예뻐요. 근데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당연하죠! 그것을 꼭 물어봐야 알아요?”
그런데... 왜 안 물어봐요? 때린 이유.
“그야 정후씨가 때릴 만 했으니까 때렸겠죠. 내가 아는 정후씨는 이유 없이 누군가를 때릴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그치만..”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시는 그러지 마요. 나 아까 정후씨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정후씨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서 혹시나 이대로 감방 가는 것 아닌가 걱정 돼서 죽을 뻔 했어요.”
이상한 일이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나를 이렇게나 믿어주고, 또 걱정해줄 수 있다니.. 그리고 또 그런 그녀가 전혀 불편하거나 부담되지 않는 나도 이상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경찰서 나오기 전까지의 나쁜 생각들, 나쁜 기억들이 한 여름에 잘못 내린 눈이었었다는 듯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 데이트 망쳤다. 소희씨. 다음에는 내가 꼭 웃게 해 줄게요. 하하하
“나 잘 안 웃는데~ 어떻게 웃게 해줄 껀데요? 못하기만 해봐라~”
그녀의 큰 눈에 고였던 눈물이 활짝 웃으면서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무의식 중에 내 손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다 곧 상황이 파악되었다. 나도 그녀도 경직되어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정신을 차린 내가 그녀의 눈물을 마저 닦아 주고 떼려는데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얼굴에서 내 손을 떼지 못하게 두 손으로 꽉 잡은 채로 그녀가 말했다.
“정후씨 손은 이제 내 얼굴 만질 때처럼 부드러워야 해요.
내 눈물 닦을 때처럼 착해야 해요. 알았죠?”
부어 올라있고, 아팠던 나의 손이 예전의 내 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역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내가 평소에 자던 시간을 훨씬 오버했다. 시계를 보고 나서야 피로가 밀려왔다. 마치 시계가 늦게 들어 온 남편을 꾸짖는 부인의 잔소리인 듯이 '째깍 째깍' 거렸다..
피곤에 지친 남편은 시계를 '온' 시켜 놓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하얀 코트를 휘날리며 뛰던 그녀를 보았다. 그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던 그녀가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미소 지어 줬다. 오늘 내가 한 일에 대한 칭찬이었을까?
- 제 9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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