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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3/14 20:37:44 |
Name |
Timeless |
Subject |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5 |
- 제 5 화 -
“띠이.. 띠이.. 띠이.. 찰칵”
“네. 임소희입니다.”
아..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고서야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구나 라는 것이 실감 되었다. 저 이정후라고 합니다. 아침 지하철에서의..
“아~ 이름이 이정후씨군요. 후훗~ 제가 3번은 더 재촉해야 전화 주실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네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 이런 그녀와 만난다면 지금 나의 이 꿀꿀한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다. 그녀는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것이냐며 특유의 유쾌한 웃음 소리를 수화기를 통해 들려 주었다.
영등포역 G 까페. 나 역시 에티켓 정도는 알고 있기에 15분 정도는 일찍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도 역시 에티켓 정도는 알고 있는지 15분 정도 늦을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30분 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시계 속의 바늘 삼형제는 서로 다른 속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오늘의 침울한 나에게는 그것조차 '아.. 역시 시계 바늘도 이러할 진데 사람들도 결국 다 별개의 존재인가..' 하는 상념에 빠져들게 만든다..
“워~”
나를 깜짝 놀라게 하려는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소리를 지른다. 솔직히 조금 놀랬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더운 여름에 꼭 맞는 시원한 스타일의 그녀가 날 보며 옷 이상으로 시원한 미소 짓고 있었다.
“어? 안 놀라네요. 난 골똘한 그 표정 말고 다른 표정이 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맞은 편에 앉아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에 조금은 놀래볼까 했으나 너무 타이밍이 늦은 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주저함이 약간 티가 났나보다.
“아! 어색한 표정 발견!”
그녀는 오늘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녀는 카페라떼를, 어색한 얼굴로 나는 우유를 시켰다. 나에게는 보통때처럼 우유를 시킨 것이지만 그런 나를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한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약간은 움찔해서, '역시 우유가 건강에 좋지요?' 하고 괜히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물어보고야 말았다. 종업원도 약간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그..그렇지요. 카페라떼 하나, 우유 하나요.”
주문을 확인 하더니 카운터 쪽으로 가서는 다른 종업원과 몇 마디 하면서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약간은 후회감이 들기 시작할 때 쯤 내 앞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후씨, 정말 재밌는 사람이에요. 아! 이거는 칭찬칭찬.”
그런가? 나는 재밌는 사람이었던 것인가..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일 때문에 만나자고 했는 지는 물어보지 않고 그저 날 보며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그러니까..
“정후씨, 나 오래 기다렸죠?”
아..아니요. 저도 바..방금 왔어요.
내가 말을 꺼내다 버벅 거리자 그녀가 나를 구해준다.
“정확히 30분 기다렸죠?”
눈이 휘둥그래진 나를 그녀가 더 놀래 킨다.
“정후씨 들어가는 모습보고 저도 따라 들어왔어요. 정후씨 뒤에서 계단 올라오는데도 모르시길래 그냥 장난끼가 발동해서. 정후씨 기다리게 해봤어요. 어떻게 되나”
켁. 그녀가 30분 동안 날 지켜본 것이다.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지하철에서도 날 지켜봤다고 그러고.. 앞으로는 어디에 있든지 표정 관리를 좀 해야겠다. 뭐 평소에 인기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혹시 그녀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후씨 아까 왜 울었어요?”
나는 울어본 적이 없는 남자에요, 평생에 3번만 운다는 남자가 바로 나에요
라고 말은 했지만 아침의 그 짧은 순간에 나의 눈물을 알아 봤다니.. 이런 그녀에게 다 털어 놓을까.. 하다가 그냥 기분이 안 좋았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그런 거라면 자신이 전문이라며 나의 오늘 저녁을 자기에게 통째로 맡기라고 하였다. 나의 저녁이 얼마나 비싼 것이라고 주지 않겠는가? 그녀에게 그러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정후씨 이제 큰일났어요. 너무 웃길텐데~”
그녀의 약간은 과장된 행동과 말투에 어느새 미소 짓고 있는 나를 창문에 비친 환한 얼굴의 내가 알게 해준다.
그녀의 즐거운 이야기를 듣고,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기분이 풀려갈 무렵,
“아~ 배고프다. 나 점심에 바빠서 굶었어요. 맛있는 것 사주세요 정후씨. 네?”
나도 슬슬 배가 고팠고, 내가 만나자고 했으니까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그녀가 또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먼저 말했다. 내가 계산하겠다는 말도 안했는데 여기는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서지 말라고 고집 부리는 그녀. 계산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가 맛있는 곳을 안다고 해서 영등포 거리를 걸었다. 아.. 영등포 경찰서가 보였다. 그녀와 그 곳을 지나칠 무렵.. 내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아.. 그녀.. 또 다른 그녀다..
여전히 흰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경찰들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마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태워 어딘가로 보내질 모양이다. 괜히 화가 났다. 그녀를 양쪽에서 잡고 있는 경찰들이 너무 거칠게 그녀를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고. 화가 나 그 쪽을 계속 보고 있을 때, 그녀도 나를 발견했는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슬픔 가득한 눈.. 내 기억의 저편에 있는 아련한 슬픔.. 그것이 느껴질 때쯤,
“워~ 뭐해요?”
임소희씨가 날 또 놀래 킨다. 이번엔 놀랬다. 그녀가 날 깜짝 놀라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장난치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그녀를 본 흰색 코트의 또 다른 그녀 때문에.. 슬픔 가득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무슨 의미일까? 나.. 나는 그녀가 단지 오늘로써 세 번째 잠깐 본 사람 같지가 않았다. 어제도 밤새 그녀 생각만 했고, 처음 봤을 때는 몰라도, 두 번째 경찰서에서 봤을 때는 정말 남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왠지 내 주위에 있어야 할 사람..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도 그런 것일까.. 그녀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고는 곧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경찰차에 올라탔다. 나 역시 임소희씨에게 이끌려 그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 뒤를 돌아봤다. 반대 쪽으로 가는 차 안의 그녀가 고개 숙인 모습이 내 눈에, 내 머리에.. 그리고 내 가슴에 묻힌다.
임소희씨와 저녁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렇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대화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그녀와 헤어지며 그녀에게 오늘 즐거웠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나 거짓말은 싫어요. 오늘은 내가 거짓말 싫어한다는 거 몰랐으니까 봐줄게요. 다음엔 혼나요!”
역시.. 그녀는 내 마음을 뚫어 보나 보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잠시 후 그녀가 내 마음을 뚫어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나는 전혀 즐거운 얼굴이 아니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어색한 표정이었다. 계속 이런 표정이었던 것일까.. 아까 맛있게 먹는다고 나름대로 지었던 표정도, 그녀와 대화하던 표정도..
그것은 즐겁기는 커녕 슬프고, 시무룩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그녀.. 그녀도 그런 것일까..
- 제 5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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