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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3/13 11:25:17 |
Name |
Timeless |
Subject |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3 |
- 제 3 화 -
“때르르르릉”
아차.. 습관대로 자명종을 켜놓고 자버렸다. 오늘은 일주일 중 늦잠을 잘 수 있는 단 하루인 일요일인데 말이다. 7시 30분이라니.. 누군가 지금 나에게 타임머신을 주면서 미래든, 과거든 원하는대로 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준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어제 잠자기 바로 전, 그러니까 자명종 스위치를 'ON' 할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가 됐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때르르르릉’ 소리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결국 오늘도 벨에 이끌려 화장실에 들어와 칫솔을 물었다.
흐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역시 파란 츄리닝에 슬리퍼에 부시시한 머리다. 앞으로도 조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아침, 밤 동안의 일시적인 내 모습이 아니라 평상시의 나 자체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과장님 경고처럼 말이지.
사실 회사에 지각한 적은 거의 없는 나인데 말이다. 도무지 과장님은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거기다 고맙게도 ‘적당주의’라고 나의 사상까지 정의 내려 주었다. 하긴 뭐 태어나서부터 이때까지 무엇엔가 에도 열심히 였던 적이 없었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단순히 하루 이틀의 유희를 위한 것 정도랄까.
자명종 'OFF'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명종 'ON'으로 하루를 마치기 까지 그 중간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라는 식의 생각이 어느덧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어서 하루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까지는 굳이 하지는 않지만,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특별히 하는 일은 없으니까.
너무 일찍 일어나서 세 시간 정도 하루가 길어졌다. '역시 일요일엔 쇼핑인가? 백화점에 가야겠군' 하는 나의 억지스러움이 날 영등포역으로 이끌고 있었다. 물론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백화점 판매직도 아니고 광고 사업부인 그녀가 있을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영화 속,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또 우연히 마주치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특별히 쇼핑할 것도 없는데 그 드라마틱한 장면에 대한 기대가 날 억지스러운 녀석으로 만들었다. 우리 동네에도 백화점 쯤은 있는데..
일단 그녀, 임소희 씨가 근무하는 곳이 바로 여기 ‘로또 백화점’이지. 어디 백화점 구경이나 해 볼까나.
아니 저것이? 백화점 곳곳에 붙어 있는 광고들을 보며 저것이 그녀가 하는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내가 왜 그녀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유는 나에겐.. 자명종 밖에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없어서 외로워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나에게는 한 마디 밖에 안 하는 그런 녀석에게 나의 마음을 다 열고 친구가 될 수야 없는 노릇아닌가. 특히 시끄럽게 ‘때르르르릉’ 거리기만 하는 녀석에겐.
왠지 그녀의 상냥함에 끌린다. 그녀도 나에게 약간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드라마틱하게 또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잘 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며 백화점을 돌아다닌 지 세 시간 째.. 역시 현실은 과장님처럼 냉엄한 것이었다. 슬슬 돌아갈까...
“철썩”
4층 남성복 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파도가 친 것인가? 라는 어이 없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큰 소리가 내 바로 근처에서 났다. 옆을 돌아보니 한 여자가 나뒹굴어져 있고, 또 다른 한 여자가 재차 손을 들어 그녀 앞의 남자를 쳤다.
또.. “철썩”
무슨 남자가 저 정도에 쓰러져? 라고는 절대 말 못할 정도의 둔탁한 소리에 남자도 주저 앉고 만다. 때린 여자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다시 발로 남자를 힘껏 걷어 찬다.
이번엔.. “퍽”
아아.. 이 정도쯤 되니 그 동안 호신술 하나 못 배워 둔 것이 후회가 됐다. 저 여자가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면 나 역시 피해자가 되어 저 옆에 나뒹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긴 하지만 내일부터라도 당장 무슨 도장에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할 즈음에 무차별 폭행을 할지도 모르는 그 여자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하얀 코트를 휘날리는 그녀.. 코트라 분명히 지금은 여름인데.. 아 싸울 것을 대비해 방어복 대신 입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덧 그녀가 눈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번에도 "퍽"
결국 올 것이 왔구나, 그녀가 나에게 부딪혔다. 난 힘없이 쓰러질 준비를 하고 여기서 이제 누우면 되는 건가 하고 있는데, 의외로 그녀의 몸이 너무도 가벼워 부딪힌 후 그녀가 쓰러지려 했다. 난 재빨리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놔요!”
내가 아직 균형을 채 잡지도 못한 그녀를 놔버리자 그녀는 거의 넘어질 정도로 기우뚱거렸다. 그녀는 나를 한 번 노려보더니 다시 뛰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하얀 코트가 날려서이겠지만 왠지 하얀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 같았다. 뭐 대충 전투의 천사 쯤 일까나? 그런 생각을 하다 곧 저어기 쓰러져 있는 두 남녀를 쳐다 보았다. 여자는 울고 있었고, 남자는.. 응? 남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기절한 듯이 보이는 그 불쌍한 남자.. 전투의 천사에게 세게도 맞았나 보다. 사람들은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그 둘을 둘러싸고 쳐다 보며 서로들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아.. 우리나라도 치안이 나쁜편이 아니구나. 그 둘이 맞은 지 5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경찰이 출동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 하는 듯 하다가 주위에 둘러싼 관중들 몇 명이 나를 가리키며 또 뭐라고 말을 했다. 경찰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여자 얼굴 보셨나요? 잠깐 수사에 협조 부탁 드립니다.”
여기는.. 그러니까.. 경찰서다. 정말 아무 문제 없이 살아 온 나였기에 경찰서는 처음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파출소 보다 훨씬 컸다. 형사도 많고, 범인도 많고..
거기에 또 내가 있었다..
그녀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잠시 대기 하고 있었다. 맞은 두 남녀는 아마 병원에 보내졌나 보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냥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라고 늘상 말씀 하셨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외면해 버렸다. 그렇게 있기를 또 한참 후, 왠지 낯익은 여자를 경찰 한 명이 끌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서 봤더라?
하얀 코트.. 아.. 아까 그녀구나.
“이 여자 맞죠?”
나는 여자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끈질긴 헌혈 아주머니조차 아무 말 못하실 정도로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이 아까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던 표정 대신 지금은 무표정으로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갈 준비를 했다. 형사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지만 왠지 무서운 말투에 뭐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었다. 내 할 일이 끝나서 홀가분 해야 되는데 오히려 더 찜찜했다.
경찰서와 이제 안녕을 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그녀를 다그치는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나에게 고맙다고 딱딱한 말투로 말 했던 것은 정말 고마워서 하는 진심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무시무시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형사는 계속 다그쳤다.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본다. 그 눈... 왠지 마주칠 수가 없었다. 슬픔인가? 이런 느낌은.
최근엔 별다른 감정이란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일단 슬픔 정도로 해 둔다.
그녀의 눈엔 슬픔이.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런 피곤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잠시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였다. 손이 자연스럽게 자명종으로 가서 스위치를 'ON'으로 맞추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OFF'로 맞추어졌다.
“째깍 째깍”
오늘은 자명종이 나에게 다른 말을 한다.. “때르르르릉”이 아니라 “째깍 째깍”이라는.
- 제 3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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