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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3/12 20:06:13
Name Timeless
Subject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2
- 제 2 화 -


“때르르르릉”


사랑스러운 그녀가 매일 아침,


“일어나요. 좋은 아침.”


이렇게 날 깨워준다면.. 아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함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깊게 잠들게 될지도.. 하지만 내 머리맡에 있는 이 자명종은 너무도 사랑스럽지 않다. 2년째 거의 매일 아침 듣고 있어서 너무도 익숙한 것은 맞는데 편안함을 주기는 커녕 영 껄끄럽다. 나에게 사랑을 속삭여 줄 사람은.. 역시 없는 것인가.


괜시리 더 미워 보이는 자명종을 발로 툭 차버렸다. 바닥서 들리는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후회가 어디 저기 먼 바닷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어딘가 깨져서 보기 싫게 된 건 아닌지, 혹시나 고장 난 건 아닌지. 괜히 몸을 돌려 발로 차내는 수고까지 해 놓고서는 이렇게 후회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려는데 아직도 얄밉게 '때르르르릉' 거리는 자명종을 다시 발로 꺼버린다.


덕분에 오늘은 잠이 깬 채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면에 붙어있는 거울에 왠 백수 같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서 화들짝 놀랐다가 그것이 '나'란 것을 깨닫는 데 5초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부시시한 머리와 흐리멍텅한 눈 거기다 침이라도 흘린 건지 입 주위의 지저분함에 양치보다 세수를 먼저 하게 되었다.


정장을 차려 입으려 옷장을 열었다. 평소 대로 가장 먼저 보이는 넥타이를 꺼내려다


“아침에 서두르셨나 봐요.”


하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흠흠.. 셔츠와 가장 매치 되는 녀석을 꺼내어 반듯하게 매어 보았다. 아차.. 지각할지도.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자동 세탁기의 모니터와도 같은 나의 입에서 '에러' 란 말이 나오려고 한다. 옥수수향 식빵을 입에 물 새도 없이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8시 10분 지하철을 타야 된다는 일념 하에 달렸다.


열심히...... 슬리퍼를 신고….


자꾸 매일 8시 10분 지하철을 함께 타는 친근한 출근길 승객들이 나를 쳐다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열차에는 내 신발을 쳐다 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은 없었다. 슬리퍼라서 그런지 평소 만원 지하철보다 시원하긴 했다. 지하철이 왠지 '낑낑'대며 달리는 것 같았다. 이 지하철을 항상 타니까 드디어 지하철 녀석과 내 마음이 통하나 싶어서 미소 짓고 있는 나의 귀에 정말로 '낑낑'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상해서 고개를 돌리니 어제 그녀가 나를 향해 낑낑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사실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문가에 서있고, 지하철이 영등포역에 점점 근접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내리기 위해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단 말이지. 역시나 그녀는 나를 스쳐서 조금 더 문 쪽으로 다가간다. 휴...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아 네… 응? 좋은? 아침? 고개를 들자 그녀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녀는 마치 CM의 한 장면처럼,


“저 이번에 내려요”


하면서 나에게 윙크를 하였다. 두 눈 윙크지만.. 그저 눈을 깜빡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에게 보내는 윙크라고 믿고 싶었다. 지하철이 영등포역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우르르 몰려 나가는 사람들이 나 역시도 밀고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는 버티기지. 하고 있는데 마치 우리편이 끝내기 안타를 친 야구 시합의 마지막처럼 나 역시 문 밖으로 우르르 함께 나가게 돼버렸다.


“아! 문 닫혀요!”


그런 나를 지켜보는 그녀의 다급한 한 마디. 난 다시 타려고 닫히는 문에 가방을 먼저 태웠다. 그리고 가방만 홀로 출근을 했다. 나를 두고 말이다. 거기엔 중요한 물건이.. 없었고, 별로 비싸지도 않았지만 물건을 잃어 버린 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방 어떻게 해요? 몸을 던지 셨어야죠”


아 역시 거기선 몸인가요? 라는 실없는 말을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풋’ 하고 웃었다. 보았구나 나의 신발을..


“오늘도 아침에 서두르셨나 봐요.”


이틀째 같은 말을 듣고 있지만 오늘은 넥타이 얘기는 아닌 터라 나의 패션에 대한 안목이 역시나 나쁘진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런 만족감보다는 바람이 지나가 시원해진 내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창피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제가 무좀에 걸려서’ 헉.. 이건 무슨 소린지 이미 늦어버렸다. 에러..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무좀 치고는 발이 아주 예쁘네요. 호호호”


그녀는 뭐랄까? 커리어 우먼 스타일이랄까?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 나랑은 달랐다. 어제 봤을 때 보다 조금 더 예뻐진 것 같기도 했다. 신발도 나랑은 다르게 슬리퍼도 아니고..


“어디서 오시는 거에요? 전 쩌어기 부천역에서 오는데”


부천역이요? 전 더 올라가서 동암역에서 타는데요..


“아~ 먼데서 오시네요. 매일 이 시간에 출근하시죠? 가끔 봤어요 나~”


아 역시.. 응? 절 보셨다구요? 난 갸우뚱 거렸다. 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그 쪽은 지하철에서 항상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아.. 골똘히.. 항상 점심에 뭘 먹을까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 여기서 슬슬 말해야 할 텐데. 이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차라도 한 잔 하죠 라고. 드라마에서는 잘생긴 녀석들이 잘도 말하던데 도무지 내 입에서는 잘 안 나왔다. 자동 세탁기의 모니터라 역시 정해져 있는 걸까? 표시 기능이랄까?


“흐음~ 그 얼굴은 역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것?”


그렇죠.. 아 네?


“빙고~ 맞췄다~ 좋아요. 나중에 연락 줘요.”


그녀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어 주며 ‘지각이다’를 네 번이나 외치며 달려갔다.


정확하게 ‘로또 백화점 광고 사업부 임소희’ 라고 써있었다. 그 유명한 로또 백화점.. 왠지 어설픈 말장난 같은 이름의 그 유명한 로또 백화점.. 로또 삼강의 ‘추위 사냥’도 맛있지..


아.. 큰일 이다. 지각인데. 라는 중요한 것을 간신히 생각해 내었다. 다음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갔다. 슬리퍼를 들킬까 닌자를 연상 시킬 정도로 벽에 붙어 갔다. 더 이상했을까? 사람들이 오히려 날 쳐다봤다. 경영 지원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과장님 안에 안 계시죠?”


아 네. 다행히 안 계시네요. 휴우…. 어라? 뒤돌아 보자 과장님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정후씨 신발이 이게 뭡니까? 10분 지각에다. 자꾸 이러면 그 상태로 파란 츄리닝 입게 되요.”


파란 츄리닝.. 아침에 내가 화장실에서 봤던 그 사람을.. 아니 그러니까 백수가 되는 걸까? 다급한 마음에 어제 준비해두고 써먹지 않았던 변명을 순식간에 해냈다.


“경고했어요. 분명히. 자 일해요 일!”


'네’ 하고 대답하고는 내 자리로 와서 또다시 서류 흩뿌리기를 하고 중요 거래처 직원들의 명함이 꽂혀있는 책상 유리 아래 중요 거래처 직원.. 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임소희씨 명함을 껴 넣었다.


사무실에서의 평소와 같은 하루가 오늘은 약간은 다르게 시작되었다. 시원한 발도 그렇고, 유난히 다른 명함보다 빛나는 그녀의 명함도 그렇고.


- 제 2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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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5/03/12 20:18
수정 아이콘
빙○○ 더위사냥…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 진짜 맛있는데 흑흑.
잘 읽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염장을 지르시…-┏
HwanG_Ya
05/03/13 00:07
수정 아이콘
언듯 보면 미친소로 읽을 가능성이 있네요..
....저만 그렇습니다-_-;
05/03/13 03:07
수정 아이콘
아! 이번엔 좀 무겁기만 한 글인줄 알았는데 그 유머 감각은 어떻게 하실 수 없는 것 같군요! 타임리스님 글에 중독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_-^
05/03/13 03:12
수정 아이콘
아 근데 정말 미치겠네요. 보고 싶어서. 다음 편도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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