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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3/07 02:42:54
Name 시퐁
Subject 애국심이라는 것.
게시판 분위기가 험악하군요. 마음에 여유를 두고 글들을 읽으세요. 릴렉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어떤 경기도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합니다. 축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2000년 이후 본 축구 경기라곤 지난 아시안 청소년 어쩌구 하는 대회에서 박주영이란 선수가 골문 앞에서 훼이크 써가며 수비수들을 농락하다 골을 넣는 그 경기 말고는 없습니다. 스물 일곱의 청년이, 축구 빼곤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군대도 갔다 왔으면서, 그렇다고 텔레비젼이 없는 것도 아닌데 -_-..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취향이지요. 축구는 싫어하지만 야구나 쇼트트랙 중계는 자주 봅니다. ^^

문제 되는 것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입니다. 저도 남자지만 남자들 스포츠 이야기 하는 것 정말 좋아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20대 중후반의 남자분들도 술자리에서 박찬호 선수 이야기나 박주영 선수 이야기 안들어보신 분 거의 없을 겁니다. 특히 축구 이야기가 대화의 주류를 이루는데요(월드컵의 여파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런 경우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합니다.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축구 싫어 -_-'라고 내뱉어서 분위기 깨기 싫거든요. 친구들은 좋아하니 저는 존중해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힙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이겼을 때라고 기억되는데요, 그 날 술집은 온통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종업원이 나서서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구요. 술에 취해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고 굉장한 난리였습니다. 그 날만큼은 고성방가가 허용이 되었고 서비스 맥주가 돌려졌으며 학생들은 떼로 모여 시내를 뛰어다녔습니다. 제가 간 술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마이크로 시선을 모은 종업원이 박수를 유도했구요, 사람들은 '짝짝짝 짝짝'거리며 대한민국을 외쳐댔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것에 호응을 안했다는 데서 일이 벌어졌지요.

대뜸 종업원이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러더군요.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은 오노 같은 놈이다. 그런 사람에겐 공짜 술을 줄 수는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박수를 치자.' 왠지 화가 나더라구요. 단지 공짜 술을 얻기 위해, 분위기에 호응하기 위해 제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싫었지만 그것이 오노와 비견되다니, 수모도 그런 수모가 없었지요 . 그래서 저는 재차 시작된 요구에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희 테이블엔 서비스가 돌아오지 않았지요.

거기까진 발단에 불과했습니다. 저랑 같이 앉아있던 친구들도 누구때문에 시선이 집중되었는지는 알고 있었고 급기야는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너는 애국심도 없냐?' 라구요, 순간 확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물론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았고 사람들 기뻐하는 것도 그걸로 인해 크게 보면 국민의 단결 어쩌구 하는 것들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축구만이 애국심의 척도가 된다는 분위기가 정말 증오스러웠고 화가 났습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의 애국심은 있고 그걸 발휘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축구를 안보면 애국심이 없고, 박수를 안치면 오노같은 놈이고...그렇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상황이 이해되지가 않았습니다.

그 친구와는 아직도 절교 비슷한 상태입니다. '나는 투쟁판에서 양심을 위해 뛴 적이 있다. 정권이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잡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고 그것 또한 애국의 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물론 함께 한국이 축구 경기에서 이기기를 응원하는 것 또한 애국을 나타내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경기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애국심이 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연히 내가 했던 방법이 아니라 해도 애국심이 없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만 좀 더 과격한 표현으로 쏘아붙이고는 나왔지요. 그리고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좀 더 마음에 여유를 두었다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_-

무릇 자기가 믿고 있고 자신이 내린 결론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게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류중 하나입니다. 생각이 다름을 깊숙히 인정 할 수 있다면 싸움은 줄어듭니다. 물론 이런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이 인간인 이상 쉽지만은 않지요.  또한 아직 생각의 차이라는 개념을 전부 받아들이고 있진 못합니다. 하지만 노력은 하고 있지요.
모두들 넓은 가슴을 가지시길. 여유를 두고 생각하세요. 마음들이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p.s 01 GO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이윤열 선수 끝나고 나서 무대로 나오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쓰럽더군요. 이긴 선수에겐 축하를 진 선수에겐 응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추측만으로 비난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팬의 자격에는 하나하나 꼬투리 잡는 것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p.s 02 오랫만에 글을 썼습니다. 키보드가 익숙해지지 않네요 ^^ 하지만 항상 마지막에 드리는 말씀, 건강하세요. 저는 다른 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건강하라는 말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니 절대 의례적인 빈말이 아닙니다. 건강하세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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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비치
05/03/07 02:51
수정 아이콘
애국심은 좋은 것일까요?
최연성같은플
05/03/07 02:56
수정 아이콘
모라고 할까요.. 국수주의적 애국심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강요된 애국심 같은 부류는 피해야 한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일본같은 나라가 조금 심하죠.

아무튼 애국심이라는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아닐까요?
05/03/07 02:57
수정 아이콘
말코비치님 말씀도(짧지만)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저는 애국심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국심이 없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애국심에 묶인다는 것, 삶의 수천가지 방식중의 하나가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것..그것으로 인해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준다면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애국심도 그런 방식 중 하나구요.
산은 강을 넘지
05/03/07 04:42
수정 아이콘
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도 2002 월드컵 한국 VS 포르투갈 경기 때, 루이스 피구 선수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환호성 지르지 않고 있다가 친구들한테 욕 먹고, 피구 선수 프리킥이 살짝 벗어났을 때 탄식하다가 완전 왕따 당할 뻔했죠^^;
애국심이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얽혀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되어 국수주의로 흘러간다면 그만한 폐단 또한 없겠죠.
p.s말코비치 님의 짧지만 강렬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질문에 올인입니다^^
치우천
05/03/07 04:59
수정 아이콘
저도 축구라고는 월드컵때 군인이라서 단체로 본 몇 경기를 재하곤 본적이 없고 또 축구국대전 이런 것에 애국이란 말을 붙여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하는 또 다른 사람이지요.
애국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도 많을텐데 유독 축구국가대표전으로만 애국심을 표현하시는 분이 많은 듯 보입니다.
겨울나기
05/03/07 09:09
수정 아이콘
*lb **rea.***에서 축구 싫어하는 건 표면적으로는 애국심이니 뭐니 해도 결론적으로는 '그냥 축구는 싫어'라고밖에는 못 봐줘요.
05/03/07 16:59
수정 아이콘
저는 대한민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월드컵 때도 정말 즐겁게 축제 분위기 즐겼었지만 시퐁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꽤 수긍이 갑니다.
오재홍
05/03/07 18:25
수정 아이콘
겨울나기님 이러시면 곤란하죠... 제 댓글 삭제 했습니다...
자신들도 별로 알려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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