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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2/21 17:33:13 |
Name |
백운비 |
Subject |
Kaiser distress |
이를 악문다. 단단한 어금니를 부술 듯. 고통이 느껴져 왔지만,
상관 없었다. 지금 느끼는 아픔에 비해 은은하게 전해져 오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다 보니
승부욕이 생겼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 까? 생각을 하다 나만의
전략, 컨트롤을 발전시켜 수많은 승리를 거뒀다.
처음에는 그저 내 플레이를 보고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래서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어느 새 나를 황제라 불렀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황제라... 내가 황제라 불리다니... 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하나를 하고 싶으면 그 일에 열중하는...
어딘가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였다.
황제라 불리던 시절. 지금도 그렇게 불리지만, 난 더욱 신이나서
게임을 했다. 황제. 그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웠지만,
그 누구를 만나도 나는 이겼고, 이겼기에 그런 무거움은 깨끗이 떨쳐낼 수 있었다.
시일이 지났다. 언제까지 통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전략,
컨트롤... 분석을 통해 예측을 하는 상대가 생겼고, 나는 게임에서
지는 횟수가 늘어났다.
신인들도 대거 등장했다. 내가 보기에도 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대거 등장해 나의 자리를 위협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황제의 슬럼프라고...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이를 악물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권력도
맛본 자가 더 탐하는 것일까? 나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다.
내 위치에서 추락하기 싫었다.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많았던 연습량. 더욱 늘렸다.
하지만 그래도 지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갔다. 대전 상대들도
예전처럼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어느 새 나는 사람들의
조그만 한 마디에도 상처받는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예전의 당당한 모습은 더 이상 나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견딜 수 있었다. 팬들이 내 곁에 남아있었고, 그들에게
아직도 나는 황제라 불렸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컨트롤과 전략은 뛰어날 지 몰라도
물량은 뒤떨어진다...
맞는 말이다. 나도 예전부터 느끼던 바였고, 난 물량전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나의 강점이던 컨트롤 전략, 그것을 버리고 물량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으려 나는 노력했다.
몇 번의 승수를 쌓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황제가 변모했다고,
긴 슬럼프의 탈출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물량으로 대가를 이룬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처음
내 생소한 플레이에 의외라 생각했는 지 졌던 사람들도 내가
물량으로 나가면 물량으로 맞섰다. 나는 다시 패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테란의 황제는 몰락했다고...
나는 긴 슬럼프에 빠진 채 허우적 댔다. 허우적 대면 댈수록
사막의 유사에 발을 들여놓은 듯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게임을 계속했다.
허나 계속 계속 패했다. 이기기도 했지만, 승수는 패배보다 적었고,
이겼다 한들 만족할 만한 승리는 거의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내가 출석을 찍듯 나갔던 대회에조차 떨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애처롭다고 표현하기 까지했다.
그때부터 다시 이를 악물었다.
나는 물량전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물량전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처음부터 물량전을 연습한다?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나는 컨트롤과 전략을 갈고 닦았다. 내가 가장잘하는 것.
그것을 갈고 닦기로 결정한 것이다. 몇 번을 더 패했지만,
이기기도 했다. 그전 처럼 승수와 패수.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내가 출석부를 찍던 대회. 그 대회에 다시금 참가할 수 있었다.
나는 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갔다. 아쉽지만, 대회 준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번 눈을 돌린 나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시선을 돌린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과거의 영광은 나에게서 이미 멀어져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황제라 불리지 않았더라면...
그냥 평범한 나로서 생각해 주었다면... 지금 마음이 편했을
지도 모른다고...
나는 번민했고, 조금이지만, 다시 방황을 했다.
그러다 이번에... 이번에는 처음으로 피시방 예선으로 떨어졌다.
통할 수 있다 생각한 전략. 그런 마인드로 펼친 전략이 실패했고,
사람들은 수군수군댔다. 이제는 게임을 준비도 안해오냐며...
예전에도 수군대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심했다.
은퇴를 권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는 지금도 이를 악물고 있다. 예전처럼 황제라 불리지 않아도
좋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에는 이미 나는 너무나 상처입었고,
더이상 추락할 곳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예전과도 같은 위용. 보여줄 수
없을 지 모른다. 그저 소망이 있다면... 나를 황제라 기억하지 않아도
게이머 임요환.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내가 은퇴했을 때.
오래도록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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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이라는 게이머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피시방 예선의 나락까지 떨어진 게이머 임요환...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보고 쓴 글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만 가득한지라... 이해가 안되더라도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조금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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