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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2/17 04:21:21 |
Name |
skzl |
Subject |
슬픈 저글링.. |
1. 미네랄 광산 뒤. 작은 틈새. 불꽃을 뿜는 전사들이 스쳐지나간다. 기적같은 일이다. 내가 살아나을 수 있다니. 미네랄 덩어리가 뿜어내는 광채가 파벳의 불꽃을 튕겨낸다. 멀리서 총알을 쏘아대는 병사녀석들이 없는게 천만 다행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2.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생각을 하다니. 희뭇 희뭇 떠오르는 기억들은, 내가 오버마인드에게 먹히기 전 살았던 삶의 기억들이겠지. 점점 기억이 선명해진다. 제길.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게 좋을텐데. 그날 나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시험에 떨어졌을 때. 대학 등록금까지 합쳐서 5년 동안 내게 꼭 5000만원을 쓴 부모님들. 제길. 그날 술만 먹지 않았더라도. 아니. 그날 밤 여자친구와 헤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 일은 없었을텐데.
3. 철없던 대학 시절. 첫번째 여자친구는 여우같은 계집이었다. 허우대만 멀쩡한 나는 1학년 당시. 데리고 다니기 좋은 연애 상대였을테지. 헤어졌을 때 정말 아팠지만. 그년은 그때 나를 만나면서 2명의 남자를 더 만나고 있었다. 나는 심심하니까 만나는 거였고, 나머지 두 남자 중 누가 더 나은 놈인지 제고 있었을테지. 실연은 처음이었던지라. 그때는 그냥 그렇게 만났었다. 그렇게 당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여자친구. 막막하고 불안한 생활이 싫어 이 녀석을 만나게 되었는데. 같이 공부하는 녀석이었다. 처음 만난 그녀처럼 많이 사랑했던 건 아니였는데. 그러니까 마지막 시험에서 떨어지던 그날. 힘들다고. 나도 힘들고 그녀도 힘들었다고. 우리 더이상 만나면 서로에게 너무 비참할 뿐이라고. 그래서 헤어졌다. 나는 술을 마셨다. 그날은 집에 들어가면 안되는 거였다.
4. 아버지를 죽였다. 어머니를 죽였다. 동생은 두 다리를 잃었다. 나는 멀쩡했다. 다음날 나는 감옥으로 갔고, 3일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3일 뒤. 사형 집행. 죽은 줄 알았던 내가 깨어난 곳은, 병원의 병실. 내 또래 남자들이 누워있었다. 죄책감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고문을 받았고, 약물을 투입 받았고, 또 군사 훈련을 받았다. 모든 것이 불명확한 이 곳에서 내가 한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건.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5. 나는 총을 쏘는 병사였다. 지구를 떠나서 첫날 땅에 내렸을 때, 우리의 기지 주변은 난생 처음보는 생명체에 포위당해있었다. 탱크는 쉴새 없이 폭탄을 쏘아댔고, 나는 벙커 속에서 눈에 보이는 녀석들에게 총알을 쏟아부었다. 무언를 생각할 여지는 한번도 없었다. 그냥 총을 쏠 뿐이었다. 나와 함게 떨어진 놈들은 한놈씩 죽어갔지만. 이상하게 힘든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살아남았다. 차라리 죽었으면 나았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6. 군에 있는 몇 안되는 여군들이 있다. 가끔씩 포상으로 병사들의 성욕을 풀어주는 일을 제외한다면 여군들은 치료병으로 붙는다. 적의 기지에 쳐들어갈 때. 여군들이 병사들 곁에 붙어서 치료의 빛을 쏘아댄다.
7. 그날이었을게다. 적의 기지 앞에 벙커가 지어졌고, 나는 벙커 기지의 지휘를 맡았다. 벙커 안은 안전하기 때문에 메딕이 필요하지 않다. 그날, 벙커로 들어온 게 아니라 떨어진. 누군가가 있었다. 비명소리가 여자였다. 가끔씩 명령 실수로 벙커에 여군이 들어오는 날이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날은 상처 입은 여군이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벙커 속으로 도망을 친거였다. 다른 메딕에게 치료를 부탁해야 할게다. 헬멧을 벗겼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녀는 대학에 처음 들어와 사귄. 그녀였다. 카드 빚을 져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뭔가 사고를 쳤었나보다. 그녀도 나와 같이 이런 곳으로 떨어져버리다니. 산다는거. 정말 알수 없는거 아닌가.
8. 그녀를 다른 메딕에게 맡기지 않았다. 거센 적의 공격을 막아낸 후. 잠시 소강상태.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나를 발견했다. 잠시 침묵. 나는 웃었다. 그녀도 웃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헤어질 때는 그렇게 멋지게 살겠노라. 다짐했는데. 사지에 몰려서. 언제 개죽음 당할지 모르는. 이 긴박함을 다시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녀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고있는 내게. 그녀가 안겼다. 긴 입맞춤. 그리고 그날 밤 우리가 나눈 사랑은, 지난 날 숱하게 나는 사랑과는 달리 진심이었다.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2일 후 개마고원 2 소대 벙커는 지휘자를 잃었고, 저그군에게 함락당했다.
9. 빈 벙커를 돌아다니며 생을 유지하던 그녀와 나의 도주 생활은 어차피 오래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폐허가 된 버려진 벙커 속에서 숨어살았는데, 잠시 내가 물을 비우러 나간 사이 그녀는 벌쳐 부대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녀의 목에 총이 겨뉘어져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재판이 열렸다. 메딕이 부족한 지금 시저에서 그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나는 드랍쉽 특공부대로 저그 제 3 멀티 부대를 공격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영웅이 될 수 있는 드랍쉽. 하지만 대부분은 죽어달라는 요구. 그녀를 다시 만났기에 나는 후회는 없었다. 드랍쉽에서 내려, 명령받은 해처리를 신나게 때리고 있을 때 무언가 끈끈한 것이 내 몸을 덮쳤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게 내가 가진 마지막 기억이다.
10. 네 다리. 강한 팔과 다리. 발톱. 이빨. 높이 뛸 수 있고, 망원경이 없어도 멀리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저글링이라고 부르던, 괴물의 모습이다. 제길. 제길. 제길.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나았을 걸. 이놈의 인생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건데.
... 흠. 소설이라기 보다는. 전체 컨셉 정돈데. 마지막에 슬픈 저글링이 그녀의 손에 죽으면. 좀 많이 슬플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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