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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2/06 11:47:10 |
Name |
G]Fresh |
Subject |
내 머리속의 스타리그 |
제가 질레트배를 전후하여 스타리그를 시청하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전 박성준 선수의 골수팬이 되었을 겁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방해가 되는 다른 일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미칠 듯이 노력하여 정상에 우뚝 선 연습벌레
어려서부터 만화와 소설에 파묻혀 살아왔기 때문에 저만 그런 걸까요, 이 정도의 캐릭터라면 어떤 스토리에서나 주인공 자리를 꿰찰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노력하는 최고’라는 건 정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캐릭터이지만, 매번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주인공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매주 즐겨보는 스타리그, 그리고 제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선수들간의 드라마에서 박성준선수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선수들과 게임관계자들이 출연하고 결정적으로 제가 ‘편집해서 마무리하는’ 그 이야기속에서 박성준 선수는 스토리 중반부에 등장해서 주역들의 성장에 일조하는 훌륭한 조연일 뿐이죠.
괜히 발끈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스토리는 오직 제 머릿속에만 방영되는 저만의 이야기니까요.
노력하는 최고, 박성준 선수가 주인공으로 출연중인 수많은 드라마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절찬리에 방영중일거라는 확신, 저에게도 물론 있습니다. 주역, 조연 같은 단어에 사로잡혀서 오해하시지 말았으면 하네요.
천재.
천재 캐릭터가 단역으로 나오는 이야기도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만, 대부분은 둘 중 하나죠. 주역, 혹은 조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소재(여기서는 스타크의 실력이겠죠,)분야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캐릭터라면 스토리 전개상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테니 말이죠.
여러분은 스타리그를 떠올릴 때, ‘천재’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저에게는 황제 임요환, 영웅 박정석, 폭풍 홍진호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선수가 천재 이윤열입니다.
네, 제 머릿속의 스타리그에서 첫 번째 주인공은 천재테란 이윤열 선수입니다.
실제의 나다가 스타에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는지, 사실은 노력파라고 언급되는 여타의 선수들보다 몇 백배의 노력을 거듭해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이미지의 시대죠. 지방에 살아서 게이머나 게임방송현장을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제가 브라운관, 모니터를 통해 받아들이는 그의 이미지는 ‘천재’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이 어렵네요.
앳되보이는 외모, (지금은 훌쩍 성숙해버렸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던 물량, (요즘은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죠) 전무후무한 그랜드슬램의 업적.
남들과 같은 만큼의 노력을 하면 남들보다 훨씬 값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은 선수, ‘천재’테란이 제게는 이윤열입니다.
천재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을 만한 성적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았죠.
프리미어리그 통합 3위(확정), OSL 4강진출, MSL 결승진출.
세 대회 모두 이미 나다를 능가한다고도 평가되는 최연성 선수와의 격돌이 없어서 이윤열선수의 팬으로써는 안심반, 아쉬움반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성적은 분명 이윤열 선수에게 크나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승을 차지하고, 특유의 그 더듬거리는 말투로 울먹거리며 인터뷰하는 모습, 이번엔 볼 수 있겠죠?
자신감.
자신감은 보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는 훌륭한 무기입니다. 그것은 자칫 지나치면 자만으로 비춰질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조심스러워 하는 감정입니다만,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보는 이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죠.
거기에 자신감에 어울릴만한 실력이 겸비된다면, ‘니 뜻대로 어디한번 해봐라. 지켜보마.’하는 기대감은 서서히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라는 믿음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이건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기전에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혹은 경기를 승리로 이끈 후에 헤드폰을 벗고 키보드를 누르는 모습에서 그 ‘자신감’이 가장 적절히 내비치는 선수가 바로 박태민 선수라고 생각되네요. (예의 자신만만한 인터뷰나, ‘박태민 선수는 자신감이 가득찬 선수다’라는 중계진의 이야기를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태민 선수, 조용호 선수를 같은 조에 지목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저그 대 저그를 가장 잘 하는 선수가 조용호 선수라고 다들 말씀하시고, 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인터벌 - 이제는 제가 최고라는 걸 보여드릴려구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한게임배 스타리그의 조지명식에서 4번시드의 박태민 선수 인터뷰내용이었죠. (저 문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내용의 말이었습니다.)
그 인터뷰를 보고 저는 웃었습니다. 혼자 티비를 보다가 바보같이 소리내어 웃어버렸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생방송에서 서슴없이 저런 얘기를 해버리다니, (사전에 준비는 해왔겠지만,) 저러다가 경기에서 지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 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경기 후, 공언대로 승리를 거둔 박태민 선수를 보고 다시 한번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소리는 나지 않더군요. 조용히 혼자 미소지었습니다.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던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훌륭히 지켜내는 모습에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용호 선수 팬들께는 죄송합니다)
온게임넷 신기록인 개인전 11연승을 달성한 후 헤드폰을 벗고 눌린 머리를 정리하면서 “해냈다!”가 아니라, “11연승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표정.
“제가 테란전이 약하다고 알려진 것 같은데, 이번에 열심히 연습해서 테란전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비록 16강에서 떨어졌지만, 저그전 초극강이라고 부를 만한 최연성, 변길섭 두 선수를 붙들고 재재경기까지 물고 늘어졌던 에버배 스타리그.
박태민 선수의 자신감을 ‘지나친 자만심’으로 여기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가끔 봤습니다. 결국은 개인차이겠죠. 그리고 제게는 튀지 않게 은근한 자신감으로 가득찬, 그 자신감을 뒷받침할만한 실력과 재능, 노력을 겸비한 선수가 바로 박태민입니다.
흉내낼 수 없는 재능과 엄청난 노력을 더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소심하고 주눅이 든 더파이팅의 ‘일보’도 좋지만,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이번엔 내가 이기겠다고’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센도’같은 캐릭터도 주연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 새삼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껏 언급한 저 두 명의 선수가 제 머릿속의 드라마에서 전혀 다른 색깔로 거의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 주인공들입니다.
누구든 물리치고 정상에서 웃는 모습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천재 이윤열,
‘이번엔 내가 이기겠다’고 자신감있게 말하고, 그 자신감을 실제로 표현하기 위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박태민.
이 두 선수가 이미 주연으로 활약중이었기 때문에 ‘노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훌륭한 설정의 박성준 선수마저 그저 중반부에 투입된 강력한 라이벌 조연으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에 두 선수가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두 번의 혈전을 치러야만 하죠.
오늘의 MSL 결승, 그리고 OSL 4강.
혼자 생각하는 머릿속 스타리그의 편집장인 저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열심히 고민중이었습니다.
한동안의 침체기를 딛고, 메이져 2개대회를 휩쓸며 최정상의 자리에 복귀한 천재 이윤열! 라이벌을 넘어 천적이라고까지 불리는 최연성과 다음 대회의 4강에서 격돌하다!
한번 패배한 상대에게 같은 결과를 허락하지 않는 박태민! 이윤열을 꺾고 MSL우승! 박성준을 꺾고 OSL우승!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다!
두 가지 모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텐데 말이죠. 하필이면 두 주인공이 승부를 보게 되어서는... 어느쪽을 선택할지 한참을 진지하게 망설였습니다.
결국 우유부단한 성격에 타협점을 찾아냈죠.
MSL우승의 이윤열, OSL우승의 박태민, 신흥 라이벌로 등극! 박성준 - 최연성에 이은 최고의 저그-테란 라이벌관계! 앞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
어느 한 선수가 두 개 대회를 휩쓰는 것보다 흥미는 덜 할지 모르겠지만, 두 주인공을 동등하게 대해주고 싶은 편집국장인 저로써는 이 방법밖에 선택할 수가 없네요.
네. 그리고 다들 예상하시다시피, 제 머릿속의 스타리그를 실현시키기 위해, 저는 편집국장으로써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야겠죠.
“응원”이라는.
그런데 지금껏 쭉 그래왔듯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워낙 고집이 세서, 제 지시를 따라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결과대로 나온적이 거의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런결과가 나오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OSL우승의 이윤열, MSL우승의 박태민, 신흥 라이벌로 등극! 박성준 - 최연성에 이은 최고의 저그-테란 라이벌관계! 앞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걱정...되는 게 아니라, 기대됩니다.
음...
이병민, 박성준 두 선수를 주인공으로 밀어붙이는 다른 드라마의 편집국장들이 뿜는 코방귀냄새가 주위에 진동하는 것 같네요.
어디 누구 생각대로 되나 출연진들을 지켜봅시다.
OSL이야 어찌되었든, 오늘만은 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겠지요.
결국, 이 지루한 글의 주제는...
"오늘 두 사람다 화이팅~!!"
이었습니다.;;;
ps1 ) 정말 오랜만의 PGR두번째 글이네요. ^^
ps2 )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제 머릿속의 스타리그에서 단 한사람 주인공을 뽑으라면 무조건 박정석 선수입니다.;; (심한 반전인가요?;;)
네명까지 뽑으라면 서지훈 선수까지. 일견 차갑고 냉정해보이는 외모나 게임스타일과는 달리 서 선수의 말한마디 표정 하나를 보면 엄청난 승부근성을 읽을 수 있죠. 슬램덩크의 서태웅과 같은...(비유가 꽝인가요?;;)
ps3 )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윤열 선수의 이야기에 최연성 선수를 끌어들인 건 그만큼 나다의 앞으로 행보에 우브라는 존재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아서입니다. 라이벌이 되었든 천적이 되었든 말이죠.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얘기하는 글이 아니니까 오해없으시길 바랄게요. ^^
물론 제 입장에서는 개인리그 4강이상의 무대에서 난투 끝에 최연성선수를 잡고 활짝 웃는 이윤열 선수의 모습을 기대하지만, 최연성 선수 팬들에게는 어림없는 모습이겠죠? 어쩔 수 있나요. 그저 응원하는 수 밖에.
ps4 ) 늦었지만 KOR의 프로리그 3라운드 우승을 축하합니다! GO의 그랜드 파이널 진출 좌절은...OTL
ps5) 오늘 두 선수 다 힘내셔서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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