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올해로 졸업한지 9년이 된 초등학교를 지나왔습니다.
정말 우연히 지나쳤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맘이 들어,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주위 시설과의 융화를 위해 교문 주위의 담장을 허물었어요.
왠지 더 편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기 멀리 뛰노는 아이들이 보이네요.
이제는 올라갈 수 없는 놀이기구들을 보며...
어린 아이들은 저곳에서 뛰놀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다투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과의 거리를 익혀가며, 어른이 되어가지요.
아직도 올라갈 수 없는 수직봉을 보며...
그때나 지금이나 팔 힘이 약해 오를 수 없는 수직봉.
저걸 잘 타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그 아이들은 그것을 잘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에게 없는 뭔가를 갖고 있었을테니까요.
세월의 무게를 느끼다
이 놀이기구들은 제가 다닐 때부터 있었던 것들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나네요. 저 놀이기구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직 더 사랑받을 수 있는데, 요새 애들은 놀이기구를 잊었습니다.
모두 집에서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죠.
모두가 똑같을 순 없다, 그러나...
턱걸이, 오래 매달리기... 누구나 해봤을 학생시절의 추억입니다.
그때는 왜 그것이 중요했을까요. 친구에게 지는 것이 왜 그렇게 분했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턱걸이 좀 못하면 어때요. 다른 걸 잘하면 되는데요.
그런데 왜 어른들은 모든 걸 잘하길 원했을까요?
결국 다 잘하게 되면, 아무것도 뛰어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데...
박제된 순수
우리는 이제, 어린이들에게서 더 이상 순수를 찾을 수 없다 말합니다.
무한경쟁만을 원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순수를 잃어갑니다.
옆집 애에게 질 수 없다고 학원 몇개씩 돌리고, 제대로 먹고 잘 틈도 주지 않는 우리네 부모들의 욕심이, 아이들을 지치게 만듭니다.
아이들은 그런 일에 기력을 소모해야 할 때가 아님에도,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조금씩 목이 조여갑니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우리가 비판해야 할것은 사회입니까. 아니면 어린이들입니까.
오랜만에 모교의 놀이터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봤습니다.